00141 그리고 신년 =========================================================================
칼라 프로젝트.
미스릴 네트워크의 핵심인 칼라 칩을 이용한 차세대 통신망 구축 작업을 일컫는 이름이다.
한서진의 사무소는 안 그래도 적은 인력을 쪼개, 이 프로젝트에 사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현재 사무소는 수퍼컴퓨터(타르타로스) OS 안정화 작업을 하는 팀, 그리고 칼라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팀으로 나뉘어 있었다. 물론 후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칼라 프로젝트 팀은 집에도 제대로 들어가지 못한 채 밤낮으로 작업에 시달렸다. 철야는 다반사였고, 몇 날 며칠째 집에 들어가지 못한 이도 꽤 많았다.
“영입할 때부터 쾌적한 근무 환경을 보장해드리고 싶었지만, 이번만큼은 제가 욕심을 좀 부리겠습니다. 일정이 정말 촉박해서요.”
한서진은 그렇게 양해를 구하고, 프로젝트 종료를 위해 직원들을 독려했다.
직원들은 야근에 힘들어할지언정 불만은 없었다.
“괜찮습니다. 이 바닥에서 야근이야 워낙 익숙한 거니까요.”
“오히려 야근에 연장근무에 철야까지 시켜주셔서 절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어느 회사가 추가 수당 45만 원씩 줘가면서 일시키나요. 이러다가 대출금 금방 갚겠습니다.”
시급 45만 원의 추가 수당. 심지어 회사에서 휴식하는 것도 근무의 일종으로 쳐주었다.
하루 종일 회사에 붙어 있으면, 하루치 추가 수당만 따로 855만 원이 나온다. 그러니 힘들어할지언정 직원들은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난 오히려 이렇게 돈 퍼주고도 사무소가 제대로 운영될지 걱정인데.”
“대표님 재산이 얼만데 이거 가지고 흠집이라도 나겠냐? 바가지로 한강물 퍼내기지.”
“하긴, 그건 그래.”
직원들은 추가 수당에 힘을 냈고, 자기들이 받는 돈에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일을 했다.
하나같이 업계 최고의 인재들을 모아놓고, 최고의 대우를 해주니 서운하지 않을 결과가 나왔다.
“이게 시제품인가요?”
“예, 서버 클러스터 구축에는 수퍼컴퓨터 프로젝트 팀에서 많이 도와줬습니다.”
미스릴 통신 네트워크는 기존의 통신 시스템과 전혀 다르다. 일단 통신 중계를 위한 기지국이 전혀 필요 없다. 또한 모든 단말기가 하나도 빠짐없이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유일한 기지국 역할을 하는 중계 서버도 넓게 보면 네트워크의 한 단말기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각 단말기끼리 통신하기 위해서는 중계 서버를 거치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즉 1개의 중계 서버 클러스터와 모든 단말기가 전부 연결된 채, 중계 서버의 지휘 아래 통신하도록 구축된 것이다. 또한 중계 서버는 단말기 간의 통신 중계 외에, 외부 통신망과 연결하는 교역망 기능도 수행한다.
“여기에 보안 유지를 위해 3대의 서버를 추가로 연결하여, 상시 시스템을 감시하도록 만들었습니다.”
3대의 추가 서버는 통신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다. 통신망 전체를 감시하고, 불온한 접속이나 해킹, 데이터 누수가 있는지를 지켜보는 역할을 한다.
중계 서버가 데이터를 운반하는 적혈구라면, 다른 3대 서버는 그 적혈구가 일을 잘하는지,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는지를 감시하는 백혈구 역할을 하는 것이다.
“3대의 감시 서버로 상시 의결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비상사태를 대비하기 좋겠죠. 시스템 특성상 해커에 뚫리면 정보 유출 타격이 크니 말입니다.”
칼라 프로젝트 팀은 일단 한서진이 구축한 대로 다중 연결 중계 통신 시스템을 구축했다. 작업을 마무리한 그들은 후련했지만, 한편으로는 찜찜함을 벗어던지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시스템이 의미가 있습니까?”
이 시스템은 모든 단말기가 중계 지점 없이 물리적으로 직접 연결이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 프로그래밍된 것이다. 그런 연결 구조가 아니고서는 이런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개발진은 이해되지 않았다. 단말기가 다른 단말기와 연결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계점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한서진은 사실대로 털어놓기로 했다.
“보안에 특히 유의해주시고…… 여기 칼라 칩의 정확한 스펙을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개발자들은 반신반의하며 스펙을 확인했다.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그들의 눈이 곧 터질 듯이 부릅떠졌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이런 게 정말 가능합니까?”
거리의 제한이 없다.
전파를 사용하지 않는다.
모든 통신 단말기가 차별 없이 서로 간에 직접 연결된다.
기존의 상식을 완전히 뛰어넘은 성질에 개발자들은 일제히 멍해졌다. 이거, 거짓말이 아니지?
한서진은 자신만만하게 설명했다.
“초기 세팅에서 동일한 처리 과정을 거친 칼라 칩은 그 개수에 제한 없이 모두 직접 연결됩니다. 중계 서버 역시 칼라라는 개념에서 보면, 다른 단말기에 비해 우위라 할 것 없이 동등합니다.”
“…….”
“그래서 이런 독특한 시스템 구축이 필요했던 겁니다. 그간 보안 유지 때문에 자세히 설명을 못 드렸습니다.”
“……아, 아쉽다.”
“이런 건 줄 알았으면 좀 더 이것저것 손볼 게 많았을 텐데. 몇 몇 기능은 처음부터 다시 잡아야겠네.”
“대표님, 이대로는 부족합니다. 저희 야근하겠습니다.”
거리 제한 없음, 전파 이용 않음, 연결 제한 없음.
개발자들은 희열에 몸을 떨었다. 기존의 통신망을 한순간에 쓰레기로 만들어버릴 시스템을 자기들 손으로 일궈낸 것이다.
그래서 더욱 열의가 불타올랐다. 처음부터 이런 스펙인 줄 알았으면 이것저것 더 손 봤을 텐데! 이대로는 많이 아쉬워!
“이대로는 만족 못합니다. 야근시켜주세요.”
“……전 이만 퇴근하고 싶은데요.”
“그럼 대표님은 퇴근하시고 저희는 야근시켜 주세요. 야근해도 되죠?”
“야, 야근시켜드리겠습니다. 얼마든지요.”
한서진은 미국, 한국, 유럽, 중국 등 여러 나라에 동시 특허를 냈다. 이번 특허는 슈나우저 특허를 낸 스티브 진이 아닌, 한서진이란 이름으로 냈다.
특허 내용은 별다를 게 없었다. 칼라 칩을 제조하는 방법과 회로 구조에 관한 내용만 담았다.
특허 내용만으로는 칼라의 진정한 비밀, 동기화 연결 성질을 알 수 없다. 다른 이들은 아무리 살펴도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1월 중순, 한서진은 백철중 회장을 찾았다.
“저희 쪽은 준비가 다 됐습니다.”
벌써? 백철중은 살짝 놀란 눈치였으나 의연히 대답했다.
“우리 쪽도 사업 추진 태스크포스 팀을 꾸렸네. 방송통신위원회에도 지금 한창 공들이고 있네. 상반기 안으로 사업에 착수하기에 별 문제 없을 거야.”
“다행이군요. 여기 시제품이 있습니다.”
한서진은 스마트폰을 내놓았다. 제품을 확인한 백철중의 미간이 가볍게 찌푸려졌다.
“이건 진성전자 제품 아닌가?”
국내 스마트폰 제조업의 1인자, 진성전자.
AP 등의 핵심 반도체 생산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시고 있지만, 스마트폰 완제품을 제조하는데 있어서 적어도 국내에는 진성전자의 노하우와 기술을 따를 자가 없었다.
“새 스마트폰을 개발한 게 아니었나?”
“오해가 있으신 모양입니다. 스마트폰을 개발한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만.”
“분명 통신 분야 기술을 개발했다고 기억하는데. 정말 좋은 기술이라고.”
전 세계 통신 시장을 집어삼킬 수 있는 기술이라고 했다. 그래서 백철중은 획기적인 스마트폰 관련 기술이라고 생각했다.
헌데 타사의 완제품을 가져오다니.
“스마트폰 제조업이 아닙니다. 이건 단지 기성품을 저희 기술로 개조한 거죠. 기존 제품과 얼마든지 융합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서 한서진은 칼라 칩을 꺼내 보여 주었다. 반도체 제품을 보자 백철중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게 진짜 시제품인가?”
“그렇습니다. 이 진성폰 안에 개조해서 장착했습니다.”
“흐음, 그럼 통신부품 제조업인가 보군. 이 시제품의 정확한 기능과 스펙이 어떻게 되나?”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제조업 그 자체보다는 기간통신사업입니다.”
“기간통신사업?”
“바로 무선통신사업이죠.”
백철중의 눈빛이 다소 변했다.
기간통신사업. 통신설비를 설치하고 전신, 전화 등 공익성이 큰 기간통신역무를 제공하는 사업을 말한다. 크게 유선통신, 무선통신으로 구분되며, 통신사업에 있어서는 가장 기본 인프라라고 할 수 있다.
“기간통신사업이라니…… 그야 큰 파이를 얻을 수 있는 시장이지만, 아마 우리 그룹은 안 될 걸세. 정부에서 허가하지 않을 거야.”
백철중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 그룹도 오래 전에 무선통신 사업에 참여한 적이 있네. 하지만 진성그룹과 같은 이유로 거절되었지.”
“거절이요?”
“이미 그룹의 규모가 너무 커서 추가로 빵을 줄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네. 그래서 정부는 우리보다 작은 대기업에 입찰 자격을 주었지.”
당시 소수 재벌의 독과점을 우려한 정부는 재계 1, 2위를 다투는 진성그룹과 H그룹의 기간통신사업 참여를 제한했다. 그 뒤 진성전자는 스마트폰 제조업으로 간접 참여했고, H그룹은 아예 사업 자체를 포기했다.
“자네가 반도체 설계자이니, 스마트폰 부품이나 완제품 제조에 관한 사업인 줄 알았는데.”
백철중은 무척 아쉬운 듯했다.
이 정도는 예상한 반응이다. 한서진은 피식거리며 항상 휴대하는 패드컴퓨터 화면에 전자문서를 출력해서 내밀었다. 알아보기 쉽게 1장으로 요약된 문서였다.
“이게 뭔가?”
“읽어보시죠.”
의아한 눈으로 읽어 내려가던 백철중 회장의 눈이 부릅떠졌다. 맨손으로 재계 2위, 지금의 H그룹을 일궈낸 사람이다. 그는 보고서의 내용과 그 파급효과까지 단숨에 이해했다.
한서진을 보는 그의 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이게…… 정말 사실인가?”
“이미 천 대의 단말기를 이용한 시제품 1차 테스트를 조용히 마쳤습니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동시에 진행했죠. 현재까지는 아무 문제없었습니다.”
“이건, 정말…….”
“아시겠지만 중계국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시스템입니다. 서버 몇 대만 갖다 놓으면 즉시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죠. 기초 투자비용이 거의 들지 않으며, 사업 착수까지 시간도 별로 걸리지 않습니다. 대규모 시스템 안정만 확인되면 지금 즉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백철중은 말이 없었다. 그의 눈빛에는 그저 놀라운 감정만이 가득했다.
상식을 완전히 벗어난 기술 아닌가. 그야말로 백 년쯤 후 미래에서 떨어졌다고 봐야 할 기술이다.
“요약본은 보셨으니, 본문도 한 번 보시죠. 2페이지를 보시겠습니까?”
백철중은 한서진의 말에 따라 전자문서를 다음 장으로 넘겼다. 그의 눈이 또 한 번 휘둥그레졌다.
“보안면에서는 기존 통신망보다 훨씬 우수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바로 품질과 속도죠. 초당 최대 1TB의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습니다. 당분간은 단말기의 송수신 처리 성능을 향상시키는데 주목해야 할 겁니다.”
“이런 게…… 정말 가능하단 말인가?”
“사흘 후 2차 테스트를 할 겁니다. 그때 회장님께서도 직접 오셨으면 좋겠군요. 태스크포스팀도 함께 말이죠.”
한서진은 피식거리며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전파를 쓰지 않아 공공재 문제로 정부 간섭을 받을 여지가 적습니다. 주파수 사용료도 안 내도 되고요.”
“그게 가장 마음에 드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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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신성한 칼라를 통해 모든 클럭과 모든 비트를 함께 나누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