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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138화 (138/609)

00138  군중 제어  =========================================================================

하루가 지났다.

뉴월드그룹 측에는 길고 긴 밤이자, 어느 때보다 가슴 떨리는 아침이었다.

마침내 아침이 밝고, 전국의 모든 뉴월드백화점이 일제히 개점했다.

이재희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긴 밤이었다. 그녀는 밤새 한숨도 이루지 못한 채, 회장실에서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개점을 한 지 5분쯤 지났을 때, 문이 벌컥 열리며 전무가 들어섰다. 그의 얼굴에 가득한 기쁨을 보고, 이재희는 순간 저도 모르게 엉거주춤 일어섰다.

“회장님!”

“어떻게 됐어?”

“지금 고객들이 오고 있습니다! 여느 때와 다른 없는 방문입니다!”

“정말이야?”

이재희는 크게 기뻐하며 얼른 창가로 다가가서 내려다보았다. 과연 백화점으로 들어가는 고객들이 보이고 있었다.

그녀는 살았다는 듯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럼 그렇지. 우리도 모르는 불매 운동이라니, 말도 안 돼. 어제 일은 그냥 우연이었던 거야.”

“참 재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니 복권 일등에 3연속 연달아 당첨될 확률보다 낮다고 합니다.”

“그냥 사람들이 하필 어제 저녁 우리 백화점에 오고 싶지 않았던 거네.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우연이 있어?”

이재희는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밤새 세운 대책들을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래도 설문 조사는 해. 상품권 아끼지 말고 뿌리고.”

“예, 알겠습니다.”

설문조사.

뉴월드그룹은 전국의 모든 백화점에서 고객 대상으로 질의문답을 수집하기로 했다. 다시는 어제와 같은 일이 없어야 한다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했다.

설문조사는 평소 뉴월드백화점을 몇 번이나 찾는지, 특별히 불매 운동에 관해서 들어본 적이 있는지, 뉴월드백화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등 자세한 질의사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참가만 하면 10만원에 해당하는 뉴월드 상품권을 주었기에, 고객들은 너도 나도 설문조사에 참여했다.

전국의 모든 백화점에서 실행한 터라 상당한 지출을 감수해야 했지만, 이재희는 그 돈이 아깝지 않았다.

어제 뉴월드백화점에 단 한 명의 고객도 들리지 않아 겪은 예상 손실이 20억 원이다. 앉은 자리에서 겨우 4시간 만에 20억이 허공으로 증발한 것이다.

20억. 뉴월드그룹 전체로 보면 작은 액수지만, 그게 하루 종일, 매일 반복된다면 어떨까?

2조 원에 달하는 백화점 사업 매출이 한순간에 몇 토막 날 수도 있는 일이다. 경영측은 지금 심각했다.

그날 하루 종일 이재희는 백화점을 떠나지 않았다. 고객들이 쇼핑을 잘 하고 있는지, 손수 백화점을 살피러 다녔다. 서울시의 모든 지점을 남김없이 살피는데 하루가 걸렸다.

그리고 대망의 폐장 시간이 왔다. 전국 각 지점에서 앞을 다투어 통계 수치 보고가 올라왔다.

“일일 매출은 큰 폭으로 줄어들었습니다. 평균 매출액의 60% 수준으로, 올해 들어 가장 낮은 수치입니다.”

일매출이 대폭 줄었지만, 이재희는 그래도 기쁜 얼굴이었다.

어제의 여파로 오늘까지 꼼짝없이 손님이 하나도 없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어찌 되었든 간에 복구는 되었으니까.

“아마도 어제 여파가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설문 조사 중 25% 이상이 어제 사건 때문에 오늘 방문하기가 꺼려졌다는 응답을 했습니다. 실제로 꺼림칙한 마음에서 방문하지 않은 잠재적 고객 수까지 생각하면, 그런 마음에서 빚어진 일시적인 매출 하락으로 생각됩니다.”

“그래, 그건 더 두고 보면 될 일이지. 어쨌거나 매출이 회복되었다는 것은 다행이야.”

이재희는 그렇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4시간 공백의 여파는 생각보다 컸다. 영업 자체는 정상적으로 회복되었지만, 줄어든 고객 수는 복구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래도 그 죽음의 4시간 때문에, 괜히 꺼림칙해서 방문을 안 하게 되더라고요.”

“우연? 세상에 우연이 어디 있어요. 분명 귀신에 씌거나 한 거예요. 그렇지 않고서야 갑자기 그 많은 매장의 손님들이 우르르 빠져 나가고, 또 아무도 안 들어온다는 게 말이 돼요? 그 황금 시간대에?”

“난 원래 단골이었는데, 꺼림칙해서 앞으로 뉴월드그룹 계열은 안 가려고. 백화점이든 뉴마트든.”

40% 가까이 줄어든 매출.

그것은 의문의 4시간 공백 사건에 찜찜함을 느낀 고객들의 기피 심리에서 빚어진 것이었다.

지옥 같았던 4시간이 다시 발생하지 않았다고 가슴을 쓸어내리기에는, 너무나 뼈아픈 타격이었다.

“이게 뭐야? 의문의 4시간 공백?”

“오빠, 몰랐어? 그저께 뉴월드백화점 전국 모든 지점에 4시간 동안 손님이 뚝 끊겼대. 오후 4시부터인가 시작해서 폐장할 때까지 손님 한 명도 안 왔대. 되게 신기하지?”

“…….”

“설마 내가 한을 품어서 그리 됐나 싶기도 하고. 아, 괜히 찔리네.”

한지혜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면서 웃었다.

그러나 한서진의 얼굴은 심각했다. 병실 침대에 누운 채 그는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쉴 새 없이 확인했다.

“최초 시작이 오후 3시 58분이라고…….”

그는 가만히 이틀 전 일을 회상했다.

‘뉴월드백화점인지 뭔지, 그냥 다 망해버렸음 좋겠네. 손님이라고는 한 명도 못 받고 그렇게.’

저주하듯이 그렇게 말했던 게 아마 그때쯤인 거 같은데.

한서진은 가볍게 소름이 돋았다. 설마 정말로 자신이 저주하듯이 한 말 때문에 된 건 아니겠지?

‘이런 우연이 정말 있을 수가 있나?’

우연이 세 개가 겹치면 필연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확률적으로 희박한 일이라고 입을 모아 주장하고 있었다. 증거가 없을 뿐, 인위적인 개입이 있는 거 아니냐는 의견도 작은 목소리가 아니었다.

저주처럼 내뱉었던 시간도 공교롭게 일치했고, 저주의 내용까지도 동일하지 않은가.

팔뚝에 으슬으슬 추운 기운이 스친다.

‘일반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이미 자신에게는 여러 번 일어나지 않았던가.

통찰안. 자신을 왕이라 부르던 신비한 꿈.

과연 이번 일도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아무 이유 없이 심하게 아팠던 것도 이상하고.’

생각을 거듭할수록 의심이 짙어진다. 자신이 특별해서라는 착각이 아니라, 정말로 특별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나 때문에?’

정말로 통찰안 외에 또 다른 힘이 주어지기라도 한 건가?

한서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중얼거렸다.

“뉴월드백화점 폭삭 망해라. 영영 손님 아무도 안 찾아서 매출 안 나오고 쫄딱 망해라.”

또 자신이 말한 대로 그 일이 일어날까? 한서진은 궁금했다.

“오빠? 갑자기 웬 헛소리야?”

“아니, 헛소리 아니고 저주하는 건데.”

“오빠가 저주한다고 그게 그렇게 쉽게 되나. 내가 한을 품어서 서리가 내린 거라니까.”

한서진은 피식거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퇴원하고 싶은데, 한지혜가 한사코 만류했다.

“열이 장난 아니었다니까. 하루 이틀 더 쉬어. 그러다가 탈나면 500억 달러는 어쩌려고.”

“내가 아니라 그 돈이 걱정 되냐?”

“오빠는 건강 해쳐서 그 돈 다 써보지도 못하고 죽으면 안 억울해? 나야 유산 엄청 받을 테니 고맙지만.”

그렇게 티격태격하고 있는데, 문득 송하나로부터 톡 메시지가 날아왔다.

「오빠, 지금 뭐 하세요?」

한서진은 몸을 비스듬하게 눕히며 답장을 보냈다.

「병원에 입원했어.」

「정말요? 왜요? 어디가 아파서요?」

「그냥 몸살인가 봐. 내일이나 모레 퇴원하래.」

「어느 병원이에요? 제가 문안 갈게요.」

「안 와도 되는데…… 동생이 지금 와 있어.」

「지혜 언니요? 저도 오랜만에 언니 보고 싶어요. 병원이랑 호실 알려주세요.」

한서진은 과일을 깎고 있는 한지혜를 돌아보며 물었다.

“하나가 병문안 온다는데, 불러도 돼?”

“하나가? 나야 상관없는데, 그 정도로 친한 사이였어?”

“어, 오빠 동생하기로 했거든.”

“오빠 생각보다 능력 좋네? 알았어, 난 그럼 이만 집에 들어가볼게.”

“야, 집에는 왜 가? 하나가 너도 보고 싶다는데.”

한지혜는 한심하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봤다.

“눈치가 없는 거야, 눈치 없는 척을 하는 거야?”

“…….”

“시선 피하는 거 보니 후자구나. 그래도 영 바보는 아니라서 안심 된다. 아무튼 난 갈게.”

“아니, 야. 그게 아니라…….”

“내 앞에서까지 체신 세울 필요는 없어. 상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

한서진은 조금 억울했다. 뭐 이렇게 동생한테 휘둘리는 느낌이 들지?

한지혜가 돌아가고 얼마 정도 지나서 송하나가 찾아왔다. 옅은 화장을 하고 감색 코트를 입은 모습은 평소의 성숙미가 다소 절제된 듯, 깜찍하고 발랄한 느낌이 났다.

송하나는 가볍게 두리번거리더니 물었다.

“지혜 언니는요?”

“어, 그게……. 집에 갔어. 뭐 일이 있어서 바쁘대.”

“아하, 집에 가셨구나. 바쁘시구나.”

잔잔한 미소가 송하나의 입가에 걸렸다. 가방을 내려놓고, 그녀는 간병인 의자에 앉았다. 1인 특실이다 보니 조용하면서도 쾌적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아쉽네요. 지혜 언니 오랜만에 보고 싶었는데.”

“그러게. 지혜도 많이 아쉬워하더라고. 일이 왜 갑자기 생겨가지고는…….”

“많이 아프세요? 아직도 열나요?”

“아니, 지금은 열 많이 내렸어.”

“어디 한 번 봐요.”

송하나는 상체를 슬쩍 일으키며 손을 뻗었다. 이마에 지그시 손바닥을 기대고는 체온을 가늠했다.

덕분에 한서진은 그녀의 사정없는 볼륨감을 바로 코앞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별로 안 뜨거운 거 같아요. 그래도 병원에서 쉬라고 했으니까, 꼼짝 말고 더 쉬셔야 해요. 알았죠?”

송하나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며 배시시 웃었다.

한서진은 왠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아, 방금 전이 딱 좋았었는데.

“매우 약하더군.”

왕의 권능, 왕명.

불특정 군중을 상대로, 의지만으로 왕의 지침을 관철시키는 광범위한 권능.

한서진은 우발적이긴 하지만 훌륭히 왕명을 사용했다. 그러나 진짜 권능의 위력에 비하면 부족한 점이 많았다.

“자주 사용하기는 어렵겠소. 그 정도 의지를 발현한 것만으로 하룻밤을 아무것도 못하고 뻗다니.”

“그래도 왕명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크나큰 다행입니다. 폐하의 말씀을 들어보면, 그 세계에서는 오히려 마법이나 무력보다 더 유용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건 인정하오.”

왕은 수긍한다는 듯이 끄덕였다.

왕명은 다수의 군중을 상대로 왕의 뜻을 관철시킨다. 이 뜻은 각 개인에게 해로운 행위일 수도, 이로운 행위일 수도 있다.

그것이 각자에게 해로운 행위일시에는 개개인의 저항력에 부딪친다. 이때 권능을 발하는 의지가 얼마나 거대한지가, 그 저항력을 상쇄시키는 요인이 된다.

한서진의 의지는 본신인 왕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낮다. 또한 권능을 소모하는데 필요한 원기도 비교할 수 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간단한 지침을 왕명에 실어 퍼트린 것만으로도, 하룻밤을 꼼짝없이 끙끙 앓아야 했던 것이다. 심지어 그 효능은 몇 시간도 유지되지 않았다.

왕이 직접 발휘했다면 뉴월드백화점이 망하거나 혹은 왕이 직접 철회할 때까지, 그 어떤 손님도 뉴월드백화점을 찾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가벼운 피로감을 느끼는 선에서 끝났을 것이다.

“유지 시간도 짧고, 자주 사용할 만한 체력도 안 되고, 그 효력 역시 약하지만……. 그래도 그 세계에서는 쓸 만한 힘이겠지.”

============================ 작품 후기 ============================

왕명으로 궁극기명을 변경했습니다. 오해 없으시길.

왕명의 위력

= [(왕명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시전자의 의지 크기 -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드는 노력의 크기) / 명령에 대한 군중의 저항력] X <왕이 보유한 원기>

왕명의 지속 시간

= (왕명의 위력 / 남아 있는 원기 총량) x ( 원기 회복 속도 / 총 원기 크기)

이 공식에 따라 사람들이 뉴월드백화점을 기피한 시간은 약 4시간이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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