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2 미스릴 네트워크 =========================================================================
‘뭔가 아쉽다.’
미묘한 아쉬움. 가끔 타르타로스를 볼 때 느끼는 감정이었다.
케르베로스의 자체 데이터 처리 속도는 경이로울 만큼 빠르다. 데이터를 로드하고, 연산하고, 저장하는 과정이 순식간에 끝난다.
그러나 서로 다른 케르베로스 간에 정보를 주고받는 속도는 그렇지 않다. 기존 네트워크 회로 속도에 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타르타로스는 개념적으로는 서버 클러스터(여러 서버들을 하나로 묶어 단일 서버처럼 구축한 것)에 가깝다. 일만 개의 케르베로스를 묶어서 구축한 시스템이니.
각 케르베로스를 잇는 네트워크 장비는 기존의 것을 써야 했는데, 그것이 속도 제한을 불러왔던 것이다.
“이러고도 50엑사플롭스인데, OS 제대로 된 거 설치하고 네트워크 장비도 좋은 걸로 갈면 성능이 얼마나 올라갈까?”
프로그래밍 능력은 아직 미흡한 터라, OS 관련해서는 통찰안이 속 시원하게 발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반도체는 다르다. 통찰안을 놓고 보아도, 이미 놀라운 실력을 쌓았다. 그래서 통찰안이 더욱 잘 발동한다.
서버 네트워크 중계 장치 설계도를 들여다보며, 한서진은 정신을 집중했다.
‘자, 어서 보여 줘.’
황금빛 광채가 모니터에 떠올랐다.
그만이 볼 수 있는, 진실로 인도하는 빛이었다.
“누가 보면 여기 연구소가 서진이 네 개인 작업실인 줄 알겠구나.”
이른 아침부터 공정설비를 만지작거리는 것을 보고 박효산이 한 마디 했다. 못마땅한 감정은 없고, 살짝 놀리는 식이다.
한서진도 능청스럽게 대응했다.
“왜요, 제가 그래도 EPR-2 문제 해결해드렸잖아요.”
“그렇긴 한데, 그거 주기로 한 연구비 아직도 못 받고 있다. 그래서 득 본 게 없어.”
“공증까지 했는데 여태 안 줘요? 그게 가능합니까?”
“돈 줘야 할 놈이 안 주고 버티면 어떡하냐. 일단 내년 초부터 반드시 집행한다고 최만재 이사가 사정을 하는데, 아직은 참고 두고 보는 중이다.”
한서진은 자신감 넘치던 이서나의 모습을 떠올렸다. 연구비 지급 집행을 방해하는 것은 그녀이리라.
‘이런다고 진성전자에 득 될 게 없을 텐데.’
그룹을 물려받을 수만 있다면, 그룹에 해가 되어도 상관이 없다는 뜻일까. 한서진은 그녀의 생각이 이해가 안 갔다.
그때 송하나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 하나야. 무슨 일이야?”
「저 지금 방학 했어요.」
“지금?”
오늘이 아니고 지금이라. 방학식이 이제 막 끝났다는 의미인가 보다.
「심심해서요. 오빠는 뭐 하세요?」
“나? 전에 회장님이랑 이야기한 거 시제품 만들고 있어.”
「와, 벌써요? 이틀 밖에 안 됐는데.」
“원래 생각해둔 게 있었거든. 일정을 좀 앞당겼을 뿐이야.”
「그럼 저도 구경해도 돼요?」
“너? 반도체 만드는 거라 재미없을 텐데…….”
「저도 보고 싶어요. 궁금해요.」
굳이 거절을 할 이유는 없는지라 잠시 생각해본 뒤 한서진은 끄덕였다.
“그럼 와. 여기 한국대학교 반도체 연구소거든.”
「바로 갈게요.」
전화를 끊고, 송하나는 40분이 채 지나기 전에 도착했다. 견학 표찰을 단 그녀는 한서진이 배웅을 나오자 배시시 웃었다.
“생각보다 일찍 왔네.”
“차가 별로 안 막혀서요. 와, 여기가 오빠 일하는 곳이구나.”
“아니, 여긴 직장이 아니고 학교 부속 연구소야.”
한서진은 잠시 생각한 뒤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시제품은 전부 여기서 만들고 있네. 거의 작업실처럼 쓰고 있구나.”
여기가 개인 작업실이냐는 박효산의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닌 듯하다. 갑자기 다른 선배들에게 조금 미안해졌다.
송하나를 데리고 박효산 연구실에 들어서자 순식간에 공기가 변했다. 껄렁거리기 좋아하는 안홍철은 물론이고, 그 차분하던 최태규까지 놀란 얼굴로 바라봤다.
“누구냐? 여자친구?”
“그런 거 아니고, 아는 동생이에요.”
“안녕하세요. 송하나라고 해요.”
송하나는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박효산 교수가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서진이 요즘 잘 나가는데? 이런 예쁜 여자친구도 있고 말이야.”
“그러니까 아는 여동생이라니까요.”
“지금이야 그렇겠지. 그렇다고 당사자 앞에서 너무 부정하는 것도 실례야, 인마.”
그 말에 한서진은 괜히 찔려서 슬쩍 돌아봤다. 송하나는 생글거리는 눈으로 바라봤다. 마치 ‘왜요?’라고 되묻는 듯해서 한서진은 살짝 안심했다. 별로 의식하는 건 아니구나, 하고.
“마스크는 다 떴으니까, 이제 바로 웨이퍼 뜰 거야.”
“웨이퍼가 뭐예요?”
“반도체 찍는 판 같은 거. 보통은 실리콘으로 만들거든. 아, 실리콘은 알지?”
“……알아요.”
송하나는 조금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가, 조그맣게 말했다.
“전 그런 거 안 했어요.”
“응?”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멈칫했던 한서진은 그제야 깨닫고 그만 실소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규소를 말하는 거야. 반도체는 규소로 만들거든. 네가 상상하는 그런 게 아니라.”
송하나의 얼굴이 귀밑까지 빨개졌다. 한서진은 그 모습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재료는 실리콘이고 다른 화합물이 첨가되는데, 아무튼 이제 찍어낼 거야. 잘 봐.”
한서진은 원격으로 기계를 가동했다. 송하나는 눈을 빛내며 강화 유리 너머에서 로봇 팔이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봤다.
웨이퍼 기둥을 얇게 자르고, 포토 마스크 위로 레이저를 조사하고, 회로가 그려진 웨이퍼를 절단하고…….
어느새 박효산 교수도 옆에 와서 흥미롭게 지켜봤다.
“연산 장치는 아닌 거 같은데, 뭘 만드는 거냐?”
“네트워크 칩이에요.”
“스코브리아늄, 아니 미스릴은 어디에 쓰려고? 설마 미스릴 반도체를 공개하려는 건 아니지?”
“ADSC하고 특허 라이센스 문제도 얽혀있는데 어떻게 그래요. 미스릴 반도체는 몇 년 간은 공개 안 합니다. 이건 그냥 배선 회로로 쓰려고요.”
“왜? 그냥 금을 쓰지. 그게 더 저항이 낮을 텐데.”
“이유가 있습니다. 보시면 알아요.”
사실은 한서진도 이유는 몰랐다. 그냥 통찰안이 배선 회로로 미스릴을 쓰라고 알려줘서 따라하는 것뿐이다.
‘상식적으로 금이나 구리를 쓰는 게 맞긴 한데.’
왜 미스릴을 쓰라는 거지, 싶지만 통찰안이 시키는 대로 해서 안 좋았던 적이 없으니 군말 없이 따라하는 게 답이다.
그렇게 시제품이 최종 완성됐다. 송하나는 옆에서 보고는 갸웃거렸다.
“되게 작네요.”
“중계 칩이라서 그래.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끝난 게 아니었어요?”
“이제 네트워크 기판을 만들어야지.”
한서진은 다시금 작업에 몰두했다.
그렇게 최종적으로 완성된 것은 보드 형태의 기판이었다. 중심에는 데이터 교류를 위한 통신 중계칩이 박혀 있고, 슈나우저를 꽂는 용도의 전용 슬롯 30개를 달았다.
박효산이 의아한 듯 물었다.
“왜 ‘그게’ 아니고 슈나우저를?”
듣는 귀를 의식해서인지 그는 케르베로스라는 이름은 꺼내지 않았다.
“이건 네트워크 장비로 상용화 해보려고요. 그래서 슈나우저로 시험해보는 겁니다.”
“흠, 성능이 제대로만 나온다면 Z7에 이식해도 좋겠구나.”
한서진은 30개의 슈나우저를 기판에 꽂고, 모니터와 전원을 연결했다. 화면에는 모든 슈나우저의 연결 상태가 떠올랐다.
최적의 결과에 그는 만족했다.
“연결 상태 문제없습니다. 네트워크 속도 측정 할게요.”
작업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송하나는 조금 지루한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다.
30개의 슈나우저는 네트워크 중계칩을 통해 연결된 채, 하나의 단일 연산장치처럼 작동했다. 한서진은 연산 부하를 70%까지 높여 속도를 측정했다.
“어?”
그의 안색이 좋지 않게 변했다. 박효산도 옆에서 의아해하며 물었다.
“별로 썩 좋을 건 없는데? 나쁜 건 아니지만 기존 장비와 크게 다를 것도 없는 것 같다.”
공을 들여 만들었는데 속도 개선이 전혀 없다니. 한서진은 당황했다.
“이거 왜 이러지. 이럴 리가 없는데.”
“혹시 슈나우저가 불량품인 거 아냐? 다른 거 써봐.”
“그래야겠어요.”
슈나우저 30개를 전부 바꿔서 써봤지만 마찬가지였다. 네트워크 동작은 정상적으로 이뤄졌지만, 기존 장비와 동일한 수준의 성능을 보이고 있었다.
“혹시 기판 문제인가?”
한서진은 여분 기판을 가져와서 따로 슈나우저를 꽂고, 모니터와 전원에 연결했다. 그러나 네트워크 속도는 여전히 동일했다.
박효산이 가볍게 어깨를 툭툭 쳤다.
“뭐, 천재도 가끔 실수할 수 있는 법이니까. 그래도 정상적으로 작동하긴 하잖아.”
“이럴 리가 없는데…….”
“미스릴을 써서 그런 거 같다. 금으로 바꿔서 다시 만들어보는 게 어떨까?”
“금이요?”
한서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금으로 바꿔서 다시 만들어야 하나? 하지만 통찰안의 지시를 어기는 설계인데?
‘하나가 틀어지면 죄다 틀어질 텐데.’
통찰안은 에테르의 힘을 빌리는 설계 구조를 알려준다. 설계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더미 회로일 뿐이다. 그래서 윈텔 등 경쟁자들이 슈나우저 회로 설계를 분석하지 못하고 애를 먹고 있는 것이고.
금으로 바꿨다는 이유만으로 설계 자체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품을 하며 지켜보던 송하나가 문득 어느 부분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근데 오빠, 여기 아까는 30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지금은 왜 60이에요?”
“응? 60일 리가. TPU 슬롯이 30개뿐인데.”
그 부분을 확인한 한서진도 당황했다.
모니터에는 슈나우저 60개가 연결되어 있다는 결과가 표시되고 있었던 것이다. 기판에는 30개만 장착했는데?
“이게 무슨 일이지?”
“오류 아니냐?”
“잠시만요. 연산처리 동작을 보면 30개가 낼 수 있는 성능이 아닌데요. 60개가 맞아요.”
네트워크 속도가 일정한 것과 달리, 연산 처리 능력은 60개가 보일 수 있는 성능이 맞았다.
‘이거 혹시 슈나우저의 능력을 두 배로 증가시켜주는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을 하다가 한서진은 다른 기판에 눈이 닿았다. 처음 성능을 측정했던 기판이었다. 거기에 꽂힌 30개의 슈나우저를 본 순간 그는 무릎을 탁 쳤다.
“잠시만요! 알 것 같아요!”
“뭔데? 뭔데?”
“일단 시험해보고요.”
한서진은 여유 기판을 몽땅 가져왔다. 8개의 여유 기판까지 해서 총 10개의 기판에 슈나우저를 모조리 꽂고 전원을 연결했다.
모니터에는 300개의 슈나우저가 잡히고 있었다. 그제야 박효산도 어떻게 된 건지 알아차리고, 경악했다.
“이거 설마 무선 네트워크? 아니, 전파 송수신도 없이? 이런 게 가능해?”
“미스릴로 배선한 게 주요했던 것 같습니다. 전파 송수신 없이, 미스릴 배선이 서로 가상으로 연결되는 거 같아요.”
“헐…… 말도 안 돼.”
무선 연결은 전파를 서로 주고받으며 이뤄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장치가 일절 없는데, 서로 무선으로 연결이 되다니.
물리적으로 말도 되지 않는 현상 아닌가. 이게 세상에 알려지면 뒤집어질 것이다.
“이거 클러스터 구축할 때 엄청 편리하겠어. 전선 케이블을 따로 연결할 필요도 없고, 네트워크 장비 크기가 비약적으로 줄어드는 거 아니냐?”
“네트워크 속도 자체는 그대로지만, 이것만 해도 엄청난 발견이에요. Z7을 더욱 작게 만들 수 있겠어요.”
“안 그래도 수퍼컴퓨터 만들 때 네트워크 장비가 잡아먹는 공간 때문에 애먹었는데, 정말 놀라운 발견이다.”
초대형 규모의 시스템 구축에는 대형 네트워크 설비 연결이 따라온다. 하지만 이 설비를 이용하면 그 규모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건 백프로 노벨상 감이다. 서진아, 네가 드디어 해냈구나.”
“기판을 아예 칩으로 소형화시켜버리면, 타르타로스를 지금보다 더 작게 개조할 수도 있을 거예요.”
노벨상과 설비의 초소형화, 두 사람은 큰 꿈에 부풀었다.
내내 갸웃거리며 지켜보던 송하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어, 오빠.”
“응? 아아, 하나야. 이게 뭔지 어려울 수도 있어. 간단하게 설명을 하자면 이건 컴퓨터의 개별 부품, 혹은 컴퓨터끼리 대량으로 연결할 때…….”
“뭔지 알 것 같은데요. 이거 핸드폰 안테나잖아요.”
“…….”
들떠 있던 교수와 제자는 순식간에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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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칼라의 제조에 성공했습니다.
주파수를 이용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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