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129화 (129/609)

00129  미스릴 반도체 : 케르베로스  =========================================================================

하정태는 조금 걱정스러운 듯했다.

“따지고 보면 H반도체도 네 거긴 하지만, 너 그거 내세우는 거 싫어하지 않았어?”

설계 사무소와 H반도체는 아무 연관이 없다. 사주가 같다는 공통점을 빼고는. H반도체에서 일하는 임직원조차 한서진이 진정한 사주라는 걸 알지 못한다.

“그거야 양해를 구하면 되는 문제죠. 우리 사무소가 H반도체와 협력업체 관계라고 하면 되니까요.”

협력업체. 그 정도만 해도 지원자들은 충분히 납득할 것이다.

다만 어느 쪽이 원청업체이고, 어느 쪽이 하청업체인지를 두고 오해는 하겠지.

“협력업체라…… 뭐, 그렇게 밀어붙이면 되겠다. 이거 H반도체 인사과가 좀 바빠지겠네.”

“아무튼 그렇게 공고 내시면 될 것 같네요. H반도체에는 제가 따로 양해 구해둘게요.”

“아니야. 내가 정 이사님한테 연락하지, 뭐. 대표님한테 그런 잡무를 시킬 순 없잖아.”

“아아, 그럼 부탁할게요.”

하정태는 곧장 미국에 전화를 걸었다. 자세한 사정을 들은 정지원은 흔쾌히 수긍했다.

「알았다. H반도체에는 내가 말해둘게. 협력업체 관계라 하면 되는 거지?」

“네, 그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정 이사님.”

하정태는 곧장 공고를 냈다.

처음에는 잠잠했다. 구직자들이 공고를 놓친 것은 아닐 테고, 아마 거짓 공고가 아닌가 하고 다들 의심하고 있으리라.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조건이 너무 좋았으니까.

추가 수당과 의료비, 교육비 지원은 제쳐두더라도, 기본 연봉 3억에 일일 근무 5시간과 주4일제는, 한국 근로 사회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대우가 아닌가.

간혹 연락이 오긴 했으나 그들은 적극적인 지원 의사보다는 공고 내용이 정말인지 확인하기 위한 조심스러운 탐색이었다.

“모든 건 공고에 올린 그대로입니다. 공고 내용에 빠진 게 있거나 의문스러운 걸 물으시면 몰라도, 공고 내용이 사실이냐고 물으시면 제가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하정태는 다소 쌀쌀맞게 전화를 받았다. 최고 대우를 해주겠다는데 굽실거릴 이유가 어디 있을까.

공고가 올라오고 이틀 뒤, 드디어 처음으로 진지한 연락이 왔다. 의외로 H반도체에서 온 연락이었다.

「하정태? 그리고 이 목소리는…… 설마 하 과장?」

“아, 차 팀장님이군요. 오랜만입니다.”

「뭐야, 그 회사 하 과장이 일하는 곳이었어?」

설계1팀장, 차대웅. H반도체에서 가장 먼저 연락을 한 이는 바로 그였다.

현재 H반도체에서는 최고의 설계 실력자라 할 수 있는 인물. 하정태는 저절로 자세를 고쳐 잡았다.

「참 이런 우연이 있을 줄은 몰랐네. 아, 근데 그 공고 때문에 지금 우리 설계팀이 난리 난 거 알아?」

“왜요? 너무 조건이 좋아서요?”

「협력업체가 원청업체보다 조건과 대우가 더 좋으면 이건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리고 우리는 그런 통보를 받지도 못했다고. 하루아침에 알지도 못하는 협력업체가 생겨서 지금 다들 당황하고 있어.」

“뭐, 그렇게 됐습니다. 이거 경영진과 직접 이야기가 된 건데, 실무팀까지 이야기가 안 내려갔나 보네요.”

「……경영진과 얘기가 됐다고?」

“네, 제가 차 팀장님이니까 살짝 귀띔해드리는 건데 저희 회사, H반도체와는 사실 큰 상관은 없어요. 알겠지만 조건이 너무 좋잖아요? 그래서 지금 차 팀장님도 혹시나 해서 전화한 거 아닙니까?”

「……그래, 맞아.」

“채용 공고를 하는데 회사 인지도가 없어서 H반도체 이름만 살짝 빌린 겁니다. 우리 회사, 그 조건 맞춰줄 능력은 됩니다.”

「그 정도야?」

“고민할 시간에 그냥 면접 한 번 보시는 게 나을 겁니다. 그럼 모든 고민이 해결됩니다. 제가 장담하죠.”

「지금 연차 쓰고 갈게.」

“사표 쓰고 나오셔도 됩니다.”

전화를 끊은 뒤, 하정태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아, 큰 거 하나 건졌고.”

차대웅, 1조 원 이상의 수익을 낸 AP를 설계한 실력자. H반도체에서 섭외 1순위에 당당히 올라가는 인물이다.

차대웅은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사무소에 도착했다.

“아이고,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확실히 사무소는 정말 좋네. 이거 최상층을 통째로 쓰는 거야?”

“보다시피 지금 직원이 저와 살림하는 여직원, 이렇게 둘 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못해도 30명은 더 고용해야 해요.”

“대체 설계 사무소가 무슨 돈이 있어서…….”

차대웅은 사무실 규모에 놀라면서도 좀처럼 믿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하정태가 H반도체를 어떤 이유로 퇴사했는지 자세한 사정은 알지 못했다. 알았다면 납득했을 것이다.

하정태는 사장실 문을 노크하고는, 능청스럽게 보고했다.

“대표님, 첫 지원자가 왔습니다. 면접 보시죠.”

“아, 네. 들어오라 하세요.”

“뭔가 목소리가 익숙한데……?”

의아해하며 들어선 차대웅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이 굳어버렸다.

“너, 너는 한서진?”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서진의 500억 불 대박 이야기는 H반도체에서 지금 모르는 이가 없었으니까. 설마 이 사무소 대표가 한서진이었을 줄이야.

“대표님한테 한서진이 뭡니까?”

옆에서 하정태가 능청맞게 한 마디 했다. 차대웅은 정신을 차리고는 자리에 앉았다.

표정은 물론이고 눈빛이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했다. 그는 씩씩하게 말했다.

“입사 면접 보러 왔습니다, 한서진 대표님.”

“……어서 오세요, 차 팀장님.”

차대웅은 아무렇지 않았지만, 갑작스러운 공대에 오히려 한서진이 어색해했다.

차대웅의 합격은 그가 전화를 한 순간 이미 결정이 났다.

면접은 다만 요식이었을 뿐이다. 오히려 면접 내내 H반도체 사내 분위기가 어떤지 잡담을 하는데 더 시간을 보냈다.

한서진이 기억하는 차대웅은 시크하면서도 표현에 거침이 없는 사람이었다. 당시에는 워낙 회사에 크게 데인 게 있어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다.

H반도체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차대웅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개새끼들이죠. 직원 착취해서 고혈을 빨아먹는. 뭐, 우리나라 기업 중에 안 그런 데가 어디 있겠습니까만은.”

“…….”

백철중이 이 말을 들으면 얼마나 가슴을 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가 개발한 기술로 1조 원 이상 수익을 냈으면서, 저한테는 딸랑 15억 던져주고 끝냈습니다. 짜증나서 독립했더니 이번에는 영업 못하게 온갖 훼방을 하지 않나, 블랙리스트에 올려서 다른 회사도 못 가게 하지 않나, 아무튼 H반도체라 하면 지금도 이가 갈립니다.”

의외로 차대웅은 한서진의 앞에서 깍듯했다. 새 직장 대표로서 예우해주는 것일까. 시크한 그의 모습만 기억하는 한서진은 조금 낯설었다.

“그건 염려 안 해도 돼요. 회사 내규에 기술 로열티 분배 규정이 있습니다. 직원들이 회사에서 개발한 기술로 올린 순이익의 15%를 기여도에 따라 지급한다는 내용입니다.”

“아이고, 시원하십니다. 우리나라 기업 중에서는 가장 통 큰 분이실 겁니다.”

“그럼 언제부터 나오실 수 있습니까?”

“지금 이 순간부터 일하죠, 뭐.”

너무나 쿨한 대답에 한서진은 잠깐 멍해졌다. 아니, 그래도 상도의가 있지.

“전 직장 인수인계는 어떡하고요?”

“알아서 하라고 하죠. 저한테 뜯어먹은 게 얼만데 그깟 인수인계 가지고 뭐라 할 입장이 아닙니다.”

“그, 그래요. 그럼 지금부터 일하세요. 어차피 퇴근 시간 얼마 안 남았지만.”

“근데 정말 하루에 5시간만 일해도 됩니까?”

“저도 회사 다녀봐서 아는데, 제대로 집중해서 일하는 시간은 5시간도 안 되더라고요. 나머지는 그냥 멍 때리거나 일하는 척만 하는 시간이지.”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역시 실무의 현장을 생생하게 아시는 분이군요.”

“제대로 집중해서 5시간 빡세게 일하고, 나머지는 집에서 가족들과 보냅시다. 그게 낫잖아요?”

“이 회사에 뼈를 묻겠습니다.”

차대웅은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를 했고, 하정태는 다소 불안한 눈으로 바라봤다. 이러다가 측근 자리를 위협받는 것은 아니야?

시작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이 있다. 차대웅을 시작으로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속속들이 연락 왔다.

긴가민가하며 면접을 보러 온 이들은 회사 사무실을 보고 몹시 만족했다.

“차대웅 씨도 여기 있었어요? 와, 놀랍네.”

“차대웅 씨까지 있으면 확실하네.”

업계에서 최고로 알아주는 차대웅의 존재는 그들의 미심쩍음을 날려버리는데 도움이 되었다.

심지어 그들 중에는 ‘대표 한서진’이라는 명패만 보고 ‘한국대 500억 달러 사건’을 알아보는 이도 있었다. 워낙 국내 이공계를 뜨겁게 달궈놓은 이벤트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박수진까지 한서진이 500억 불의 자산가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진만 공개되지 않았을 뿐, 학교와 학부, 이름이 공개되었기에 주변 사람이 끝까지 모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채용 철칙은 간단했다.

최고의 인재만 뽑는다. 그리고 최고의 대우를 해준다.

아직 신입을 키울 역량은 되지 않았고, 인재 육성에 시간을 낭비할 생각도 없었다. 사무소는 경력이 쌓인 반도체 전문가와 프로그래머 전문가들로만 인재풀을 구성했다.

가을이 지나가기 전, 한서진은 원하는 인력을 드디어 모두 갖출 수 있었다.

초기 얼마 동안은 회사를 정비하는데 시간을 소요했다. 능력에 따라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한다는 게 이렇게 힘든지, 한서진은 처음 알았다.

차대웅은 하드웨어부서 팀장을 맡았고, 새로 입사한 프로그래머 중 김유빈이란 남자가 소프트웨어부서를 맡았다.

하정태는 총괄부장을 맡았다. 대표 바로 아래 직위로, 두 부서를 조율하는 역할이었다. 아직 회사가 개인사업체를 벗어나지 못한 터라, 이사급 지위는 만들지 않았다.

인사 작업을 끝낸 뒤에는 근무 환경을 갖추었다. 필요한 기자재를 사고, 컴퓨터를 세팅했다.

컴퓨터는 기성품을 사지 않고 슈나우저와 코카 스패니얼을 직접 구매해서 개별 워크스테이션을 구축했다.

컴퓨터 세팅이 끝난 뒤 차대웅이 농담처럼 말했다.

“이참에 고속 서버 체제도 구축하는 게 어떨까요? 업무 특성상 고속 연산이 필요한 컴퓨터 환경이 필요할 텐데.”

“걱정 마세요. 한국대에 있는 Z7의 시스템 리소스 중 일부를 사오기로 이야기 되었습니다.”

“엇, 그게 정말입니까?”

한서진은 사무소에서 타르타로스의 리소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원격 접속 시스템을 갖췄다. 사무소 컴퓨터로 타르타로스에 접속하여 시뮬레이션을 실행할 수 있게 구축한 것이다.

빌딩 인터넷 회선으로는 속도가 턱없이 부족해 기업전용 회선을 따로 10개나 설치해서 연결했다.

“Z7이 좋긴 진짜 정말 좋네요.”

“아무렴, 세계 최고 수퍼컴퓨터라잖아요.”

직원들은 타르타로스를 Z7로 알고 있었다. 한서진이 그렇게 둘러댔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타르타로스의 존재를 아는 건 박효산, 니트론, 그리고 정지원이 전부였다.

인사 배정도 끝냈고, 개별 근무 환경도 갖췄다. 업무에 필요한 수퍼컴퓨터 리소스까지 상시 배정했다. 직원들의 사기는 무척 드높았다.

한서진은 그제야 회사의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했다.

“우리 회사 직원은 얼마 안 됩니다. 하지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서 최고의 실력자들만 모았습니다. 정예 중의 정예라 할 수 있죠.”

이중 한서진이 제일 어리지만, 직원들은 진지하게 그의 말을 경청했다.

“회사가 먼저 수행할 목표는, 최고의 수퍼컴퓨터 커스터마이징입니다.”

일단 기초 운영체제로 돌아가는 타르타로스부터 제대로 세팅하는 게 급선무였다.

============================ 작품 후기 ============================

타르타로스를 깨우기 위한 반도체닦이들이 구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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