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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103화 (103/609)

00103  특허 전투  =========================================================================

“컥……!”

백세완은 ‘한서진’의 손목을 두 팔로 붙들며 버둥거렸다. 건장한 성인 남자를 한손으로 들어 올렸는데도 전혀 흐트러지지 않는 힘이다.

뒤늦게 상황을 깨달은 네 명의 경호원들이 재빨리 달려왔다.

“이 자식! 당장 실장님을 내려놔라!”

왕은 그들을 흘끗 돌아보고는 조소했다.

“너희들도 같은 패거리로구나.”

왕은 쥐고 있던 백세완을 가볍게 그들에게 던졌다. 말 그대로 가벼운 힘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샌드백을 던진 듯한 충격이었다. 백세완을 받으려던 그들은 우당탕 넘어졌다.

“크윽…….”

백세완은 비틀거리며 일어나려고 했다. 그 순간, 누군가의 발이 그의 등을 짓눌렀다.

수십 톤의 무게가 실린 듯 압도적인 압박감이 덮치자, 그는 제대로 저항도 못한 채 엎어졌다.

바닥에 얼굴이 닿은 그는 이를 갈며 상대를 올려다보다가, 눈이 마주친 순간 온몸이 얼어붙었다.

냉엄한 포식자의 시선이다.

저런 눈빛을 그도 알고 있다. 자신을 바라볼 때의 백철중 회장의 눈빛이 저랬다. 까마득히 높이서 사람을 내려다보는 시선. 아니, 저것은 그보다 훨씬 높은 곳에서 자신을 주시하는 눈빛이다.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지금 저게, 한서진이라고?

저것이, 어디가?

“불쾌하구나. 시선을 거두어라.”

그 순간, 지잉 하고 머릿속이 울렸다. 날카로운 고통이 머릿속을 뚫고 지나갔다. 항거할 수 없는 힘에 부딪친 백세완은 눈을 질끈 감으며, 시선을 떨어뜨렸다.

“크윽!”

“아악! 갑자기 머리가……!”

경호원들의 비명이 들렸다. 그들이 이리저리 발버둥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들도 방금 자신이 겪은 두통을 겪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래도 제법이구나. 가진 자의 방계답다.”

백세완은 억지로 눈을 떴다. ‘한서진’을 바라보려고 했다. 그러나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순간, 머리를 갉아먹을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조금 전, ‘한서진’이 내린 명령. 시선을 거두라는 것. 그것이 마치 각인처럼 두뇌에 새겨진 것처럼,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에서부터 거부 반응이 밀려왔다.

눈을 마주쳐선 안 된다고. 시선을 피해야 한다고.

그 명령에 따라야 한다고.

왕은 잠시 비틀거리며 이마를 짚었다. 얼마나 심한 폭력을 휘둘렀는지, 온몸 구석구석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잠시 책상에 몸을 기댄 왕은 혀를 찼다.

“귀족이 어찌 노예를 이리 구타할 수 있는가. 귀족으로의 품격을 교육받지 못한 아이는 아닌 듯하고, 이곳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로다.”

왕은 ‘이 세상’을 이해하지 않기로 했다. 이곳에서는 이런 게 당연한 관습인지도 모른다.

“야만인에게는 야만의 방식으로 돌려주는 것이 올바른 법도겠지.”

조금 전 왕은, 말에 왕의 권능을 담아 명령했다.

저들에게는 생소한 경험이었으리라. 처음 걸린 질병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듯이 끙끙대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시간이 부족하다.’

왕은 조급함을 느꼈다.

미스릴과 오리할콘을 모아 노신하가 시전한 대마법주문, 그것은 성공적으로 왕의 의식을 꿈에 옮겨 놓았다. 그러나 의식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잠깐뿐이다.

모래시계의 모래알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는 게 느껴진다. 의식 유지가 가능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가축만도 못한 것들을 오래 상대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감히 왕의 몸에 손을 댄 벌은 내려야 했다.

왕은 그들을 지그시 주시한 채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짐승이니, 지금부터 짐승처럼 서로 물어뜯어라. 그리고 오늘 일을 잊어라.”

그 순간, 다섯 명의 눈빛이 변했다. 그들은 광기에 휩싸인 채, 자신의 안위를 도외시하고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흡사 약에 취해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왕은 느꼈다.

‘역시.’

권능을 발현하는 순간, 모래시계의 모래알이 뭉텅이로 떨어져 내렸다. 아까 역시 그랬었다.

왕은 깨달았다. 권능을 소비하면 소비할수록, 의식을 유지할 시간 역시 비례해서 줄어든다는 것을.

“치료는…….”

왕은 몸을 몇 번 움직여 보았다. 타박상 투성이였지만 치명적인 손상은 없다.

“할 여유가 없군.”

왕은 문을 열며,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조그만 힘의 파동을 복도 내에 널리 퍼트려 나갔다.

그 순간 근처에 있는 모든 CCTV가 부서졌다. 본체를 건드린 게 아니라, CCTV를 가동시키는 내부회로의 조그만 부속을 녹여버린 것이다. 겉으로 봐서는 운 없이 회로 수명이 다 했다고 판단할 것이다.

지켜보는 눈은 이제 사라졌다. 왕은 계단을 통해 그곳을 빠져 나왔다.

‘시간이 정말 없다.’

모든 마법 보물을 아낌없이 써서 대마법까지 발현했지만 겨우 한 시간도 의식을 유지할 수 없다니. 과연 금단의 저주라며, 왕은 속으로 신음했다.

한서진의 자동차를 찾은 왕은 운전석에 앉았다. 그리고 능숙하게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켰다.

H반도체 사옥을 어느 정도 벗어났을 무렵, 왕은 길가에 차를 대고 정지했다.

영혼의 모래알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왕은 이를 갈았다. 때가 너무 나빴던 것이다. 하필이면 이런 시기라니.

좀 더 여유로운 다른 때였으면, 꿈속의 자신에게 더 자세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었을 텐데.

왕은 급히 노트를 찢어 펜으로 휘갈겨 썼다. 막 문장을 완성하기 직전, 왕은 또다시 주변이 암흑으로 꺼지는 것을 느꼈다.

“돌아오셨군요.”

노신하가 덤덤히 말했다. 왕은 허탈한 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법진은 새카맣게 그을린 채 죽어 있었다. 온전히 힘을 발휘하고 소멸한 것이다.

“끝이오? 겨우 이것으로?”

“폐하의 뜻은 잘 전달하셨는지요.”

“그럴 겨를이 없었소. 하필 상황이 최악이었소.”

“너무 걱정하지 마소서.”

노신하가 차분히 말을 이었다.

“대마법, Cliacr는 그 발동이 엄격히 까다롭지만 가장 큰 저주의 저항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리미트리스 드림이 최악의 저주이긴 하나, 조그마한 빈틈을 만들 위력은 됩니다.”

“그럼?”

“앞으로 또다시 폐하의 의식을 꿈에서 발현할 수 있을 때가 올 겁니다. 그게 언제가 될지, 얼마나 될지, 몇 번이나 가능할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만.”

“아직 희망을 잃지 않아도 된다는 거군.”

“하나 더, 어떠한 권능이든 꿈에서 폐하의 힘을 발휘하시면 그만큼 의식을 유지하는 시간이 줄어듭니다. 폐하가 힘을 발휘할 때마다 저주의 세상이 폐하를 인식하고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최대한 힘의 발휘는 자제하소서.”

“그건 짐도 느꼈소. 지금 생각하니 정말 안타깝군. 만약 언령과 마법을 쓰지 않았더라면 더 오래 머무를 수 있었을 텐데…….”

왕은 잠시 생각했다.

한서진을 상처 입힌 그들에게 짐승처럼 서로 물어뜯게 한 것, 괜히 한 짓이었나 싶었다. 그러나 곧 왕은 고개를 저었다.

‘꿈속 나의 안전을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었다.’

확실하게 짓밟아서, 누가 위이고 누가 아래인지 명확히 깨우치게 해야 한다. 그리하지 않으면 더 큰 피해를 야기할 뿐이다.

“어차피 꿈속의 폐하께서 본인이 누구인지를 스스로 깨닫는 순간 그런 제약은 사라집니다. 그러니 불시에 꿈속에서 의식을 발현하더라도, 권능의 사용은 자제하십시오.”

노신하는 차분히 조언했다.

“다른 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곳이 거짓된 꿈임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폐하께서 이루셔야 할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으으…….”

한서진은 지독한 통증 속에서 겨우 눈을 떴다.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가슴, 얼굴, 등, 다리, 그리고 심지어 머리까지.

특히 머리가 가장 아팠다.

맞아서 생긴 통증이 아니었다. 마치 머릿속에 종양이라도 들어찬 것처럼 살을 도려내는 통증이 올라오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던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긴…… 내 차?”

불현듯 백세완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순간, 몸속 깊은 곳에서 강한 거부반응이 올라왔다. 즐기는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휘두르던 그의 눈빛이 떠올랐다.

“그 자식! 그 빌어먹을 자식! 망할 자식!”

그는 분을 참지 못하고 핸들을 거칠게 내리쳤다. 온몸이 욱신거리며 아팠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분이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대학 동문이고, 나름 오래 같이 얼굴을 봐왔다. 겉으로나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기 뜻에 들지 않는다고, 이렇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다니. 사람의 자존감이 완전히 박살날 정도로 말이다.

“흐, 흐으, 흐으으…….”

한서진은 흐느낌인지 저주인지 알지 못할 소리를 냈다.

백철중 회장. 그것이 백세완의 역린이었다. 회장의 눈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는 재벌로서의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을 테니.

그것을 슬쩍 건드렸을 뿐인데, 반응은 자신의 상상 이상으로 크게 되돌아왔다. 그렇게 무자비하게 때릴 줄은 조금도 짐작하지 못했다.

‘진짜 날 죽이려고 했나?’

잠시 생각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적어도 백세완은 살인 의도까지는 없어 보였다.

‘……맞아, 교육을 시킨다고 했었지.’

한서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뒷일 생각 않고 저지른 폭력이 아니다. 오히려 철저히 계산된 ‘무력행사’였다.

어려서부터 맞고 자란 어린 코끼리는 성체가 돼서도 사육사의 채찍을 무서워하는 법이다. 이미 자신은 그 사육사를 받아넘길 힘이 있음에도, 누적된 공포에 사로잡혀 반항할 마음조차 품지 못한다.

백세완이 노린 것 역시 그와 같으리라.

사람의 공포심은 뼈와 세포에 새겨지는 법. 철저한 폭력을 통해, 절대 무너지지 않을 서열 관계를 자신의 온몸에 낙인찍으려 한 것이다.

역린을 건드린 ‘벌레’를 처단해 분노를 해소하면서, 동시에 깔끔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 철저히 계산된 행동으로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 한 것이다.

‘여기다가 버려놓았군.’

아마 실컷 때리다가 의식을 잃으니, 자신의 차에 실어서 여기다 가져다 놓은 것이리라. 위치를 확인하니 H반도체 사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신고한다 해도 누구도 믿어주지 않을 게 뻔했다. 증거 따위는 없을 테니. 백세완에게 맞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한서진은 곧바로 전화를 꺼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고, 정지원이 전화를 받았다.

「어, 전화 받았다.」

“……정 팀장님.”

이빨 사이로 새어나오는 듯한 기괴한 음성이었다. 정지원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온갖 감정이 복받치듯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정지원의 목소리도 차분해졌다.

「무슨 일이야? 목소리는 왜 그래?」

“백세완 그 새끼…… 그 개새끼 말입니다.”

「…….」

“그 새끼 죽이고 싶어요. 다 필요 없고, 그냥 죽도록 팬 다음에 죽이고 싶습니다. 그 새끼가 하루에도 몇 번씩 자살만 생각할 정도로 괴롭혀주다가 죽여 버리고 싶습니다. 그 새끼, 그렇게 만들려면 어떡해야 합니까?”

「……무슨 일이 있었구나.」

“말해주세요. 그 새끼 어떡하면 죽일 수 있나요? 그 개새끼를 못 죽이면, 제가 정말…….”

「목소리가 많이 안 좋은데, 일단 쉬어. 내가 너 자는 동안 계획을 세워볼게.」

“팀장님, 할 수 있겠죠? 그 새끼 진짜로…….”

「물론이다.」

정지원은 부드럽게 위로했다.

「네 의지, 내가 반드시 관철시킬 테니 아무 염려하지 말고 푹 쉬어라. SJ인더스트리는 충분히 그럴 힘이 있고, 넌 SJ인더스트리의 주인이야.」

“……고맙습니다. 그 새끼, 꼭 죽여주세요.”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라.」

전화를 끊자, 한결 마음이 차분해진다. 정지원에게 분노를 털어놓은 것만으로도 심신이 가라앉았다.

한서진은 지그시 눈을 감고, 즐기며 폭력을 휘두르던 백세완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까처럼 머리를 녹일 듯이 뜨거운 분노 대신, 차갑게 정제된 증오가 피어올랐다.

눈을 뜬 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다가 문득 앞에 놓인 찢어진 노트 페이지를 발견했다.

“이게 뭐지?”

설마 백세완이 남긴 조롱의 편지, 뭐 그런 건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확인한 그는 눈을 크게 떴다. 종이에 적힌 필체는 분명 자신의 것이었다.

그런데 그 내용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저런 글귀를 적은 기억이 전혀 없었다.

―기억해라. 나는 한서진이 아니고, 이곳의 모든 것은 꿈이다. 저주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가 왕이라는 것을 인

글귀는 거기서 끊어져 있었다.

============================ 작품 후기 ============================

트라우마를 새겨주려던 백세완은 왕의 권능에 반사 데미지를 입고 오히려 자신이 트라우마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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