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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99화 (99/609)

00099  특허 전투  =========================================================================

“생각보다 작군.”

10층도 안 될 듯한 자그마한 빌딩을 보며 이용무는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재벌의 후계자인 그의 눈에는 영 수준에 차지 않는 건물이었다.

두 명의 경호원과 황 실장을 거느리고, 이용무는 빌딩 안으로 들어섰다. 빌딩을 오고가던 이들 중 몇 몇이 그를 알아본 듯이 힐끔거렸다. 그는 모른 체 했다.

사무소는 아무런 간판이 붙어 있지 않았다. 이용무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여기가 맞나?”

“예, 이 호실이 분명 맞습니다. 제가 눌러보겠습니다.”

황 실장이 벨을 눌렀다. 잠시 후 슬리퍼 끄는 소리가 다가오는가 싶더니 문이 열렸다. 그리고 평범하게 생긴 젊은 여자가 내다보며 갸웃거렸다.

“누구세요?”

“여기 사무소 대표님이 한서진 씨 되시죠? 그 분을 만나러 왔습니다만.”

“잠시만요.”

여직원은 ‘어디서 본 것 같은데?’라고 갸웃거리며 몸을 잠시 뺐다. 안에서 잠시 수군거리는 듯 싶더니, 여직원 대신 다른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녕하세요. 대표님을 만나러 오셨다고…….”

하정태는 말을 잇다 말고 멈췄다. 이용무는 다소 거만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이제야 알아보느냐, 라는 위압감이 묻어나오는 얼굴이다.

“저, 혹시 진성그룹의…….”

“네, 이용무라고 합니다. 부회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어, 어서 들어오십시오!”

크게 당황한 하정태는 문을 활짝 열어서 그들을 직접 안으로 맞아들였다. 이 나라 사실상의 대통령이라 할 수 있는 존재가 이런 조그만 사무실을 직접 찾아오다니.

안에 들어선 이용무는 가볍게 주변을 훑었다. 작업용 책상은 겨우 세 개, 참으로 작은 사무소다.

가장 안쪽에는 그도 아는 얼굴이 모니터를 씹어 먹을 듯한 기세로 집중하고 있었다. 헤드셋을 끼고 있다 보니 아직 방문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하정태가 급히 한서진의 옆으로 다가가서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헤드셋을 빼며 고개를 돌리던 그는 그제야 이용무 일행을 발견하고 흠칫했다.

눈이 마주치자 이용무는 여유 있는 미소를 물었다.

“안녕하신가.”

“부회장님? 여기는 어떻게?”

자리에서 일어난 한서진은 놀란 얼굴로 다가왔다. 이용무는 느긋하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저 배우는 학생인 줄만 알았는데, 이제 보니 어엿한 회사 대표였군.”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한서진은 머뭇거리며 악수를 받았다. 자신을 지극히 어려워하는 듯한 분위기, 이용무는 조금 만족스러운 느낌을 받았다.

“시간을 좀 내줄 수 있나?”

“물론입니다. 여기 앉으시지요.”

이용무는 사무소를 힐끔 둘러보며 말했다.

“조금 민감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괜찮겠나?”

“직원분들이라면 괜찮습니다.”

“내가 괜찮지 않아서 말일세.”

남의 사무소에 갑작스럽게 방문한 것이지만, 마치 자기 집에 온 듯한 당당함이다. 한서진은 잠시 말이 없다가 하정태에게 얼굴을 돌렸다.

“선배님, 수진씨랑 이만 퇴근하시지요.”

“그, 그래도 될까?”

“물론입니다.”

조용히 눈치를 보던 박수진이 얼른 일어났다. 그녀는 흥분으로 얼굴이 귀밑까지 빨개져 있었다. 세상에나! 어디서 봤나 했더니, 진성그룹의 후계자였어!

하정태와 박수진이 서둘러 퇴근하고, 사무실에는 이용무와 한서진, 그리고 황 실장과 두 명의 경호원만이 남았다.

두 경호원은 자연스럽게 사무소 밖으로 나갔다. 안에는 이제 세 명만이 남았다.

이용무와 한서진이 마주 보고 앉고, 황 실장이 이용무의 뒤에 똑바로 섰다.

“보다시피 사무소가 변변치 않아서 대접할 게 마땅치가 않습니다.”

“괜찮네. 뭘 얻어먹으러 온 건 아니니.”

이용무는 차분히 한서진을 살폈다. 마치 먹이를 먹기 전에 얼마나 살이 쪘나 감별하는 듯한 맹수의 시선이다.

“자네 이야기는 대강 들었네. 수석으로 한국대 반도체공학부에 입학을 했다지? 박효산 교수가 제일 아끼는 수제자란 이야기도 들었네.”

“과찬이십니다. 수제자라고 할 정도는 아닙니다.”

“박 교수는 자네가 최연소 교수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자랑했는데 말이야.”

“저는 교수를 할 마음은 없어서요.”

“그럼 향후 진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뭐, 보시면 알겠지만 반도체 설계에 흥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작지만 벤처부터 차근차근 시작하려 합니다.”

“학부 1년생인데 열정이 참으로 대단해. 우리 직원들도 그 점을 본받았으면 하는데 말이야.”

“아닙니다. 오히려 진성전자 직원들이야말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자네가 그걸 어찌 아나?”

이용무는 의례처럼 대수롭지 않게 던진 말이었는데, 전혀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제가 작년까지 진성전자에 근무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랬나?”

이용무의 눈썹이 순간 꿈틀했다. 뒤에 시립한 황 실장도 표정의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한서진이 진성전자 출신이었다니. 그들에게는 상상도 못한 사실이었다.

표정을 다스린 이용무가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그럼 우리 인연이 참 보통이 아니군.”

“그럴 수도 있겠군요.”

“허참, 그럼 저번에 연구실에서 마주쳤을 때 왜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혹시 뭐 우리 회사가 서운하게라도 했었나?”

이용무는 가볍게,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다. 그 순간 한서진이 의미심장하게 표정을 다잡았다. 안 좋은 말을 직감한 이용무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좋게 퇴사한 건 아니었지요.”

“……그랬군.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겠나?”

다른 이였다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사육하기 위해 온 자리가 아닌가. 이용무의 눈빛이 날카로워졌고, 황 실장은 더욱 동요했다.

“저는 원래 고졸이었습니다.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진성전자에 입사해서 수원공장에서 생산직으로 일을 했습니다. 작년 초까지, 그러니까 4년 간 일을 했습니다.”

“참 오래 일을 했군. 어쩌다가 퇴사를 했나? 상사와 알력이 있었나?”

“그건 아닙니다. 암에 걸렸거든요. 당시 시한부 선고까지 받았었습니다.”

암이라는 말에 이용무는 흠칫했다. 현재까지도 근무 환경 때문에 암과 백혈병을 얻었다고 지긋지긋하게 시위해대는 퇴사자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연히 그의 표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거 참 유감이로군.”

“네, 그래서 4년 간 몸담은 직장에서 쫓겨나듯이 나와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소송을 걸지 않겠다는 서약까지 받고서요.”

“근무 환경 때문에 암에 걸렸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글쎄요. 한때는 별 생각을 다했습니다만, 지금은 큰 생각이 없습니다. 기적이 일어나서 완치되었으니까요.”

“완치라니, 정말 다행이로군.”

둘의 대화를 들으며, 황 실장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대로 돌아가면 그룹 전체에 이용무의 분노가 몰아칠 것이다. 사실관계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한서진의 말 때문에 이용무의 심기가 상했고, 누군가는 그 분노를 받아내야 한다는 것. 하지만 한서진이 그 상대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룹의 부회장으로서 미안하게 생각하네. 자네에게 그런 아픔이 있는 줄은 몰랐네.”

“서운하고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지만, 그렇다고 질질 문제 삼을 정도는 아닙니다. 저는 다 잊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한서진의 표정은 쾌활해 보였다. 그러나 이용무는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말 다 잊은 거라면, 굳이 자신의 앞에서 저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테니. 그는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불쾌했던 과거를 짚고 넘어간 것이다.

“그 부분은 내가 돌아가는 대로 철저히 알아보고, 그만한 보상을 해주겠네. 관계자들에게도 엄한 처벌을 약속하지.”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황 실장은 직감했다. 그룹에 한 차례 피바람이 불 것임을.

한서진을 박하게 대한 것 때문이 아니라, 이용무 부회장의 입에서 사죄의 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황태자의 매우 비싼 자존심에 흠결이 난 이상, 누군가는 그 분노를 받아내야만 하리라.

대화는 길어졌다. 이용무는 마치 한서진을 시험이라도 하듯이 다양한 주제를 던졌다. 벌써 한 시간 가까이 대화가 길어지고 있었지만, 황 실장은 전혀 지루한 기색 없이 꼿꼿하게 서 있었다.

드디어 이용무는 본론을 꺼냈다.

“사실은 내가 들은 이야기가 있네.”

“무슨 이야기를 말씀하시는지……?”

“자네가 대단히 특출한 특허를 출원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네.”

“얼마 전 특허 신청을 한 건 사실입니다만…… 어, 혹시 설마 그게 새어나간 건가…….”

그의 중얼거림에 이용무는 여유 있게 말을 이었다.

“오해는 안 했으면 좋겠군. 그냥 우연히 소문을 들었을 뿐일세. 대단히 획기적인 반도체 공정기술 특허가 진행 중이라고. 그래서 이리저리 알아본 끝에 자네가 출원인인 걸 알았네.”

“그러셨군요.”

이용무 입장에서는 다행스럽게도, 한서진은 어떻게 보안이 새어나갔는지 더 문제 삼지 않았다. 역시 새파란 애송이였다.

그는 모른 체 하고 떠보았다.

“혹시 해외에도 특허 신청을 했는가?”

“아닙니다. 아직…….”

“저런, 중요한 특허라면 해외 주요국에도 동시에 특허를 출원해야 하는 법일세.”

“아무래도 비용 때문에…….”

“허어, 겨우 비용 때문에 특허를 못 내고 있었다니. 참으로 안타깝군.”

이용무는 안 됐다는 듯이 혀를 끌끌 차다가 나지막이 물었다.

“혹시 어떠한 특허인지 내가 좀 알 수 있겠나?”

“네?”

“오해는 말게. 획기적인 반도체 공정기술이라는 건 얼핏 들었는데, 정말 그런 건지 궁금해서 그런 것이니. 나는 그저 자네를 돕고 싶어서 이러는 것뿐이니까.”

“저를 돕고 싶으시다고요?”

“자네도 알겠지만, 진성전자는 세계 최고의 반도체 제조회사일세. 그 어느 기업보다 뛰어난 인재들을 많이 보유하고, 그들을 보호하고 있지. 나 역시 인재들에게 무척 관심이 많은 사람일세.”

“…….”

“나는 자네 같은 가치 있는 인재한테 크게 투자하고 싶네. 이 나라, 아니 국제 특허 무대에서는 개인의 역량으로 할 수 있는 건 무척 제한적이야. 하지만 진성전자를 등에 업고 있다면 전혀 다르지.”

황 실장은 조마조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진성그룹의 후계자가 이 누추한 사무소까지 찾아와서 직접 이렇게까지 말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감격해서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할 것이다.

예상대로 한서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스코브리아늄의 반응성을 이용한 실리콘 반도체의 5nm공정기술에 관한 특허입니다. 실은 얼마 전에 우연히 그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우연히? 대단하군.”

“아, 생각보다 원리 자체는 참 간단해서요. 아마 실제로 들으시면 이렇게나 간단한 방법이구나 하고 깜짝 놀라실 겁니다. 어떤 방식이냐면…….”

말을 하다 말고 한서진은 멈칫했다. 그리고 어색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거기까지는 곤란하네요. 특허의 주요 내용이라.”

이용무는 안타까운 마음을 속으로 억눌렀다. 쉽게 넘어올 수 있었는데.

하지만 괜찮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그는 목소리를 차분히 깔고 말했다.

“혹시 그 특허를 진성전자에 팔 마음은 없나?”

“특허를 팔라니요?”

“지금 국제무대는 첨예한 기술다툼으로 얼룩져 있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그 소유주가 개인이라면 제대로 지켜내지 못해. 하지만 우리 진성전자라면 다르지.”

이용무는 절대로 거절하지 않을,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조건을 제시했다. 아주 자신만만하게.

“계약금 천억에 순이익 1%, 어떤가?”

============================ 작품 후기 ============================

초복에 몸보신을 못했더니 기력이 많이 약해져서..ㅜㅜ

여러분 이 노예가 이렇게 허약합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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