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5 다이아몬드 수저 =========================================================================
슈나우저 공개 후, 맥플은 전면적인 변화 태세를 취했다.
즉시 비글을 포기했을 뿐만 아니라, SJ인더스트리와 접촉하여 스마트폰용 슈나우저를 공급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기울인 것이다.
맥플 CEO 크리스 로저스는 스마트폰 완제품 시장만큼은 반드시 지켜내겠다는 각오로 협상에 임했다. 그는 자신의 오른팔이었던 칼 루이스를 대할 때도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
지고의 노력 끝에 맥플은 스마트폰용 슈나우저의 우선 공급권을 따낼 수 있었다.
“하지만 당장은 생산 물량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우리 쪽 공정라인은 대부분이 컴퓨터용 슈나우저 개발에 한창이라서요.”
“생산라인은 언제쯤 증설하는 겁니까?”
한 달에 겨우 몇 십만 개 남짓 찍어내는 생산 속도로는 세계 시장을 제패하기에 어림도 없다. 당장 맥플폰만 해도 일 년에 2억 개씩 팔려 나간다.
“우리는 앞으로 출시하는 모든 맥플폰에 슈나우저가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최소 연간 2억 5천만 개 이상은 공급받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사실 우리 회사의 생산량은 현재 연간 2, 300만 개 정도가 한계입니다.”
맥플폰 뿐만이 아니다. 다른 대형 스마트폰 제조사들도 하나같이 슈나우저 탑재를 원했다. 성능도 성능이지만, 슈나우저를 착용할 경우 배터리 사용 시간이 50% 이상 늘어나기 때문이다.
여기에 컴퓨터 제조사들도 PC와 워크스테이션, 대형컴퓨터를 가리지 않고 슈나우저를 장착하기 위해 아우성이었다.
유수의 수퍼컴퓨터 제조사들도 슈나우저를 원했고, 심지어 대량의 데이터센터를 운용하는 구글 같은 인터넷 서비스 회사들도 슈나우저가 들어간 서버를 희망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SJ인더스트리의 생산능력은 연간 2, 300만 개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SJ인더스트리로서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에 봉착한 것이다.
“공장을 확장하든가, 위탁생산을 맡기던가, 아니면 생산설비를 갖춘 공장을 인수하든가. 셋 중에 하나는 골라야 합니다.”
다인종으로 이뤄진 임원회의의 분위기는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칼 루이스가 말했다.
“1번은 투자비용과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차후 품질 관리와 기술 보호에는 유리합니다. 2번은 투입 자본이 적고 당장 생산이 가능한 반면, 수익성이 다소 떨어지고 기술 유출에 아무래도 불안한 점이 있습니다. 3번은 1번과 2번의 장점을 동시에 취할 수 있지만, 돈이 제일 많이 들죠.”
“지금까지는 3번, 타회사 인수 쪽으로 추진해왔지만 아무래도 문제점이 많습니다. 일단 윈텔이 인수에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은 편입니다.”
“윈텔이 무슨 배짱을 부리는 겁니까?”
“우리의 생산능력이 아직 매우 부족한 점을 노리는 거죠. 지금 시장이 윈텔 CPU를 외면하고 있지만, 시장의 수요를 충족하지 않는 한은 버틸 수 있다는 자신감인 것 같습니다. 현재 윈텔의 사내 유보금은 200억 달러가 넘습니다.”
“버티겠다는 건가요.”
정지원은 탁자를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에도 이사들은 자유롭게 경영 방침에 관해 토의를 나누었다.
문득 정지원이 고개를 들었다.
“세 가지를 동시에 추진하는 걸로 하죠.”
“예?”
“공장 확장, 파운더리, 기업 인수, 모두 동시에 추진하는 걸로 합시다. 그리고 생산능력이 충분하다고 판단되는 시점이 오면 그때 파운더리를 중지하면 그만이죠.”
“음…… 그렇게 되면 회사 규모가 너무 방대해져서, 자칫 독점법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때 가서 반도체 제조업으로 주영역을 한정지으면 됩니다. 서버나 컴퓨터 제조업은…… 차후 독점법에 걸릴 때를 대비한 보험으로 합시다.”
“알겠습니다.”
세 가지 방안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으로 신속하게 결정이 났다.
“윈텔 인수는 서두를 것 없습니다. 녀석들은 결국 CPU 제조 부문을 넘길 수밖에 없을 겁니다. 파운더리는 대만 쪽에 맡기는 것으로 하고, 바로 SJ인더스트리의 공장 확장을 시작하죠. 그리고 진성전자와 H반도체는…….”
정지원은 여기서 잠시 말을 멈췄다.
명실공히 세계 1위의 반도체 제조회사였던 진성전자는 그 타이틀을 빼앗겼다. 메모리와 AP 분야의 강자였던 그들은 가장 큰 무기 두 개를 잃었다.
진성전자가 이제 반도체 부문에서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자체 스마트폰 라인업에 들어가는 AP뿐이다.
흑인 이사가 발언했다.
“진성전자는 반도체 제조업이 아니더라도 충분한 강자입니다. 특히 스마트폰 완제품과 LCD TV에서 세계적인 레벨이죠. 제가 진성전자 경영자라면 반도체 제조업을 과감히 포기하고, 그 외의 영역을 지키는데 힘을 집중할 겁니다.”
“맥플처럼, 말입니까?”
“그게 합리적인 판단입니다.”
SJ인더스트리는 슈나우저 하나로 비메모리 반도체의 황제로 등극했다. 이제 메모리 반도체인 코카 스패니얼을 출시하면, 명실공히 절대 권력자로 등극할 것이다.
정지원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진성전자는 반도체 제조업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니, 포기 못합니다. 절대로.”
“…….”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확고함에 이사들은 순간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따라서 우리는 진성전자가 마지막까지 발버둥 친다고 가정하고 일을 추진해야 할 겁니다.”
“혹시 인수를 생각하십니까?”
“겨우 10억 불짜리 회사가 3,000억 불짜리 회사를 당장 인수할 수는 없겠죠. 일단 진성전자는 두고 봅시다.”
SJ인더스트리의 기업가치는 10억 불로 평가받고 있지만, 이는 TX인더스트리를 인수할 때 3억불이었다는 점, 대주주가 페이퍼 컴퍼니라는 점, 그리고 장외 주식이 전혀 없다는 점이 반영된 결과다.
투자자들은 SJ인더스트리가 상장되기만 하면 총 기업가치가 4,000억 불도 거뜬히 넘어설 거라 예측하고 있었다. 현재 SJ인더스트리의 주주는 토니 제나인, 크렘, 그리고 한서진 명의의 페이퍼 컴퍼니, 이렇게 셋뿐이었다.
“그리고 H반도체는…….”
정지원은 잠시 말을 흐렸다. 이사들은 차분히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철저히 무너뜨리고, 그 후에 헐값으로 인수하는 것으로 합시다.”
칼 루이스가 피식거리며 말을 받았다.
“어렵지 않을 겁니다. 애초에 100% 반도체 제조업에 몰두해온 회사였으니까요.”
반도체 시장이 붕괴한 지금, 반도체 제조업에 올인한 회사를 무너뜨리는 것은 매우 손쉬운 일이었다.
“정말 차 사줄 거야?”
“한번만 더 귀찮게 하면 안 사준다.”
“아니, 믿어지지 않아서 그렇지.”
조수석에 앉은 한지혜는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세상에, 오빠가 차를 사주겠다니.
“근데 무슨 차 사줄 건데?”
“글쎄, 중고차?”
“너무해! ……가 아니고, 중고차도 감지덕지지. 그래도 안전한 걸로 사주라. 침수 차량은 싫어.”
“농담이다. 튼튼한 새 차로 사줄게.”
“정말이지?”
새 차라는 말에 한지혜는 좋아서 들떴다.
어느덧 포르쉐는 청담동 근처로 진입했다. 한지혜는 주변 풍경을 보고 슬슬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청담동? 여기는 왜? 우리 차 사러 온 거 아니야?”
“차 매장이 이 근처에 있어서. 어디 보자. 이제 거의 다 왔네.”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한서진은 차량을 돌렸다. 넓은 사거리에 위치한 깨끗한 빌딩이 보였다. 주차장으로 진입하자 한지혜는 의아해서 갸웃거렸다.
“랜드로버? 혹시 신발 먼저 사려고?”
“……그냥 내리자. 매장 안에서 신발 얘기는 하지 말고.”
“신기하다. 랜드로버가 자동차도 파는구나. 몰랐네.”
“…….”
10억 포르쉐는 역시 위엄이 넘쳤다. 차를 주차하자 정장 차림의 직원이 웃는 얼굴로 마중을 나왔다.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고객님.”
“부탁할게요.”
한서진은 자연스럽게 직원의 안내를 받았다. 한지혜는 으리으리한 매장의 분위기에 다소 기가 눌린 듯했다. 그녀는 오빠의 팔을 잡고 조그맣게 말했다.
“오빠, 진짜 신발은 하나도 안 보여.”
“……여기 신발 매장 아니야. 차 사러 온 거야.”
“진짜 랜드로버가 언제부터 자동차도 팔았어? 그거 위험하지 않을까? 신발 팔던 회사가 만든 자동차면, 아무래도 경험이나 안전성에서 조금…….”
“이름만 같지, 전혀 다른 회사야. 그러니까 안심해.”
“아, 정말?”
원형 테이블 앞에 앉아 기다리고 있으니, 직원이 고급스러운 책자로 꾸며진 카탈로그를 가져왔다. 그리고 친절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실례지만 어떤 분께서 사용하실 차량을 생각하십니까?”
“이쪽, 제 동생이요. 안전하고 튼튼한 SUV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시다면 2015년 레인지로버 컨버터블 모델이 있는데요. 소형 모델이지만 여성분들이 주로 선호하시는 모델입니다.”
“아니요, 차는 무조건 커야 해요.”
갑자기 한지혜가 끼어들었다. 그녀는 언제 주눅이 들었냐는 듯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차는 커야 운전하는 맛이 나요. 그러니까 중형 모델로 보여주시면 안 될까요?”
“중형?”
“……아니, 오빠가 부담된다면 소형도 괜찮고. 근데 기왕이면 컸으면 좋겠어.”
“하긴, 너 원래부터 큰 차 갖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지.”
“그러시다면……. 이 모델은 어떻습니까?”
직원이 친절하게 카탈로그에서 어느 모델을 보여주자 한지혜는 관심 있게 살피고는 흡족한 감정을 드러냈다.
“이거 마음에 든다. 크고 튼튼하게 생겼어.”
“이번에 새로 출시한 신형 모델입니다. 마침 근처 시승센터에 준비되어 있는데, 시승을 해보시겠어요?”
“어, 시승도 가능해요?”
“예, 원래는 예약을 하고 대기하셔야 하지만 이 모델은 마침 준비되어 있어서요. 원하신다면 지금 바로 제가 두 분을 모시겠습니다.”
직원은 매장 차량에 둘을 태워 시승센터로 향했다. 한지혜는 튼튼한 오프로드형 SUV 차량의 실물을 보고 우와 하며 감탄했다. 남자들이 더 좋아할 디자인에 열광하는 게 신기해 보이긴 했지만…….
30분 정도 시승을 하고 난 한지혜는 무척 만족스러워 했다.
“오빠, 나 이거 마음에 들어.”
“이걸로 계약하죠.”
“감사합니다.”
이제는 처음의 어색함은 많이 지워졌는지, 계약이 진행되는 동안 한지혜는 느긋하게 매장을 구경했다.
“마침 국내에 재고가 확인된 관계로, 일주일 내로 배송이 될 예정입니다.”
“네, 수고하세요.”
“감사합니다.”
직원은 매장을 빠져 나오는 포르쉐를 웃는 얼굴로 끝까지 따라 나오며 배웅했다.
차안에서 신나하던 한지혜가 문득 물었다.
“근데 오빠, 이거 차 얼마야?”
“조금 비싸.”
“비싼 건 나도 알아. 척 보기에도 비싼 거 알겠던데. 그래서 얼마야? 4천? 5천?”
“……됐어. 가격은 알아서 뭐해.”
“쳇, 친구들한테 자랑하려고 그러지. 오빠가 비싼 자동차 사줬다고.”
밝아진 동생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이렇게 즐겁게 대화를 나눠본 적이 얼마만일까. 손에 꼽기도 힘들 것 같다.
‘돈이면 우애도 살 수 있구나.’
새삼 피부로 와 닿는 차가운 현실. 그러나 그 현실에 발을 디딘 입장에서는, 씁쓸하긴 해도 기분 좋은 승리감이 강했다.
이 현실에 발을 들이지 못한 이들은 더러운 세상이라며 한탄하겠지만. 자신도 작년까지만 해도 발을 들이지 못한 처지가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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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지수
거하려
고왔습
니다쌰
장님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