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0 다이아몬드 수저 =========================================================================
여기 전체가 자기 집이란다. 한서진은 하마터면 펄쩍 뛸 뻔했다. 대체 크렘 회장에게 ‘숙소’란 어떤 개념인 거야?
“안내하겠습니다. 이리 오시지요.”
“아, 네.”
한지혜는 다소 기가 죽은 듯이 얌전히 따라갔다. 영화에서나 놀 법한 이런 대저택 앞에서는 어떤 쌈닭이라도 얌전해질 수밖에 없으리라. 물론 그녀가 쌈닭이라는 것은 아니다.
“이 저택은 본래 도심 공원이었습니다. 시에서 예산 부족으로 내놓은 것을 일본의 어떤 투자자가 사들여 도심 속 휴양지로 꾸미려고 했죠. 그러나 사업이 중간에 좌초되는 바람에 결국 개인 별장으로 꾸몄고, 그것을 벅스 해서웨이에서 사들인 것입니다.”
“아, 그랬군요.”
고개를 끄덕이는 한서진과 달리, 한지혜는 어둑어둑한 대저택의 이곳저곳을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녀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이게 정말 한 개인이 사는 집이란 말이야?
“부지는 약 41만 평방미터로, 세대수 약 7,000의 아파트 단지를 조성할 수 있는 면적입니다.”
“우, 우와! 그게 정말이에요?”
한지혜는 주먹을 불끈 쥐며 놀랐다. 세대수 7,000이라니, 그 어마어마한 숫자에서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이 왔다.
“총 10개의 건물 시설이 있으며, 그 중 하나는 두 분이 머무르실 주거 공간입니다.”
“그럼 나머지 건물 시설은 뭐예요?”
어느 정도 진정되었는지 한지혜가 코치코치 캐물었다. 관리소장은 막힘없이 대답했다.
“아트 갤러리, 실내 종합스포츠시설, 지인을 초대해서 즐기기 위한 휴양시설, 저택 관리인들이 상시 체류하는 숙소,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와아.”
“인공 호수와 인공 암벽 체험장, 축구장과 농구장, 실내 스케이트장 등의 편의장소도 갖춰져 있습니다. 날이 밝으면 천천히 둘러보시지요.”
“네!”
설명을 듣다 보니 어느덧 저택에 도착했다.
의외로 저택의 규모는 전체 면적에 비하면 소박했다.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는 지상 5층의 건물이었다.
“1층은 응접시설 등 주로 손님 접객용 방으로 되어 있습니다. 두 분께서는 4층과 5층을 쓰시면 됩니다.”
“4층에서 아무 방이나 고르면 되는 거예요?”
“아닙니다. 4층 전체를 한 분이 쓰는 방 하나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론 욕실이나 거실 등이 따로 벽으로 구분이 되어 있습니다만.”
결국 한서진이 5층, 한지혜가 4층을 쓰기로 했다.
방문을 연 순간, 한지혜는 흡사 영화에서나 보던 펜트하우스 같은 방 풍경에 할 말을 잃었다. 호화로운 거실과 안락하고 넓은 침실, 대리석 욕조가 갖춰진 대형 욕실, 그리고 거실 한쪽에 돌로 만들어진 인공 하천…….
대재벌들이나 살 것 같은 방의 모습에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굳어 있었다. 한서진이 걱정이 돼서 물었다.
“지혜야?”
“……오빠.”
그녀가 천천히 돌아봤다. 눈시울이 살짝 붉어진 모습에 한서진도 말문이 막혔다.
“여기가…… 정말 내 방이라고?”
“그, 그렇다고 하시네.”
“말도 안 돼. 내가 어떻게 이런 방을…… 오빠, 정말 어떻게 된 거야? 회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기에 이런 대저택을 선뜻 집으로 주고 그러는 거야? 이거 회사에서 빌려주는 거야, 아니면 오빠 소유인 거야? 응?”
한지혜는 내내 묻고 싶었던 말을 속사포처럼 뱉어냈다.
“자세한 소유권 내역은 나도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일단은 실질적으로 내 소유로 되어 있을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한지혜는 언뜻 이해하지 못했지만, 말 그대로였다. 권리명의를 워낙 우회해놔서 말이지. 이 저택 소유권이 직접 한서진의 명의로 되어 있는지, SJ인더스트리의 명의로 되어 있는지, 아니면 SJ인더스트리의 지분 85%를 소유하는 페이퍼 컴퍼니로 되어 있는지는 그도 확인을 해봐야 안다.
한지혜는 감격한 듯이 주먹을 꾹 쥐고,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오빠…… 정말 내가 상상도 못할 만큼 크게 출세했구나. 그치, 맞지?”
“……인정해.”
“이거 깜짝 선물하려고 그동안 말 안 한 거구나? 그치?”
“……응. 아마도.”
사실은 회사와 학교 다니고, 통찰안과 미스릴의 비밀에 관해서 고민하는 등 심적인 여유가 없었던 거지만. 꿈보다 해몽이라고 한서진은 좋게 둘러대기로 했다.
한지혜는 자기 방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가구를 만져보고, 홈 시어팅을 작동해보고, 욕실의 물을 틀어보고 즐거워하기도 했다. 어린아이 같은 그 모습에 한서진은 자신도 기분이 좋아졌다.
문득 한지혜가 그를 돌아보았다.
“근데 오빠. 입주 조건이 아까 뭐라고 했지?”
“청소…….”
말을 하다 말고 한서진은 멈췄다. 눈이 마주친 둘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아무 말도 못했다. 41만 평방미터를 어느 세월에 청소한단 말인가?
“그, 그냥 니 방만 알아서 해.”
“고, 고마워. 나도 설마 정말 다 시키면 어쩌나 하고 괜히 걱정했네.”
“내가 그렇게 악독한 사람이 아니야.”
“열 살 때 오빠 과자 훔쳐 먹었다고 온 집안 구석구석 다 쓸고 닦게 했잖아. 내가 힘들어서 울고불어도 눈 하나 깜짝 않고 감시했으면서.”
“야, 언제적 일을 지금 말하냐!”
한지혜는 곧장 이사를 결심했다. 이사는 어렵지 않았다. 숙소에는 상시 체류 중인 관리 인력이 있었으니까.
남매는 남직원 세 명을 데리고 한지혜의 원룸으로 향했다. 사실 짐이라고 할 것도 별로 없었다. 의류나 화장품, 책 등 개인 소지품 위주로만 챙겼다. 냉장고와 전기밥솥, 화장대 등은 전부 붙박이였다.
“나머지는 전부 버려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처음 저택을 안내했던 관리소장 최수한이 공손히 대답했다.
한지혜는 트럭에 실리는 짐을 속이 시원하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지긋지긋한 이 원룸도 드디어 안녕이구나.”
“어지간히 안 좋았나 보네.”
“나 없을 때 주인아저씨가 허락 없이 문 따고 들어와서 수도 수리한다고 난리지, 옆집에는 음침한 남자 살지, 주말이면 잡상인과 전도사들이 찾아오지, 하여튼 최악이었어.”
“……근데 어떻게 여기서 2년을 살았어?”
“월세가 싸니까. 내가 돈이 어딨어.”
“…….”
동생의 주거환경이 그렇게 열악했구나. 한서진은 가슴 깊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진작 챙겨줄걸.
최수한이 말했다.
“여기 방은 제가 내일 집주인과 연락해서 정리를 짓겠습니다. 임대차 계약서를 나중에 제게 주세요.”
“어머, 그런 일도 해주시는 거예요?”
“물론입니다. 그냥 집사라고 생각하시고, 아무 일이나 편안히 시키시면 됩니다.”
“고맙습니다. 주인아저씨와 직접 얼굴 보기 싫었는데 정말 다행이네요.”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한지혜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
짐을 싣고, 다시 저택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좀 늦었는데도 직원들은 싫은 내색 하나 없이 한지혜의 방까지 짐을 옮겨주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편히 쉬세요.”
직원들이 물러갔다.
감개무량한 듯이 새 방을 둘러보던 한지혜가 문득 물었다.
“그런데 저 분들 월급은 어떻게 되는 거야? 여기 저택 관리 비용도 장난 아닐 것 같은데?”
“그건 나도 확인해봐야겠네.”
한지혜는 눈을 가볍게 흘겼다.
“오빠는 대체 왜 확실히 아는 게 별로 없어?”
둘은 이사를 기념하여 가볍게 술 한 잔 하기로 했다. 본채 앞에는 야외 잔디 정원이 잘 조성되어 있어, 술 한 잔 나누기에는 분위기가 무척 좋았다.
“술을 사러 가신다고요?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근처 편의점에 술을 사러 나간다니까 최수한이 만류하더니, 본채 지하실에서 술 한 병을 꺼내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럽게 생긴 병에 담긴 술이었다.
“그런 게 있었어요?”
“지하에 주류 저장고가 있습니다. 술이 생각나시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구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술이 있습니다.”
“그, 그렇군요.”
최수한은 오픈을 해주고 자리를 비켜 주었다. 한서진은 대충 동생의 잔에 술을 따라주고, 자신의 잔에도 따랐다.
“로얄샬루트?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몰라. 어디서 들어본 듯하면 유명한 술이겠지. 유명하면 좋은 술일 테고. 그럼 마시면 되는 거 아니야?”
“명쾌하다.”
좋은 집에 좋은 술. 어느덧 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곳곳에 가로등이 켜진 넓은 정원의 모습은 시선을 뗄 수 없을 만큼 운치 있었다.
잠시 후 최수한이 간단한 안주를 해왔다. 따뜻한 김이 나는 걸 보니 방금 요리한 것 같았다.
“이러실 필요까진 없는데……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언제든 편히 불러 주십시오.”
둘은 주거니 받거니 술을 마셨다. 술이 거의 다 비워질 무렵, 귀신같이 알고 최수한이 다른 술을 가져왔다. 요리가 거의 다 떨어지자 이번에는 또 다른 요리를 해서 가져왔다.
한지혜가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저 아저씨, 계속 우리 지켜보고 계신 거 같은데.”
“우리가 알아서 해다 먹을 텐데. 주무시지 않고…….”
“솔직히 2억 달러 잘못 입금됐을 때 긴가민가했거든. 근데 지금 확실히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뭐, 뭐가?”
술에 적당히 취한 한지혜는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2억 달러쯤 가볍게 줄 수 있는 사람을 오빠가 후원자로 두고 있다는 거.”
“거짓말은 한 적 없는데.”
“오빠나 나나 별 다를 것 없는 인생이었는데, 어느 날 이렇게 큰 출세를 해버리네. 꼭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달라진 거 없다. 내가 변한 것 같아?”
“응, 조금?”
“내가 어디가?”
한서진은 동생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크게 달라진 것은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동생의 대답은 조금 의외였다.
“이 풍경에서, 오빠의 태도가 되게 자연스러워.”
“…….”
“마치, 당연한 것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자연스러워. 처음 포르쉐를 끌고 나왔을 때도 조금 그런 게 보였는데, 이제는 확실히 느껴져.”
“…….”
“오빠에게는, 이미 이 모든 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거라는 사실이.”
한서진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달라진 게 없다는 점이, 오히려 변했다는 증거로 비치다니. 그런 관점은 상상을 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다행이야. 오빠가 잘 나가고 있으니까, 나도 떳떳하게 빌붙을 수 있잖아. 등에 매달려서 조금 빨아먹어도 티도 안 나겠네. 안 그래?”
“빌붙을 생각 말고 스스로 일어설 생각을 해. 그러라고 대학 보내주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 나도 오빠 이름에 먹칠 안 하게 잘 할 테니까. 대학…… 조금 걱정했었는데, 이제 확실히 마음 놓고 가도 될 것 같아.”
위스키를 한 모금 넘기는 동생의 표정이 어딘지 쓸쓸해 보였다. 한서진은 왠지 동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준석인가, 그 친구 생각해?”
“……미안.”
“집안 반대가 심해서 헤어졌다고 했지? 그럼 그 준석이란 친구하고 네 마음은 그대로겠네?”
“…….”
그는 동생이 무슨 기분인지 알 것 같았다.
아마 이 집을 본다면, 그쪽 집안에서도 함부로 반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잘 풀렸을 수도 있겠지. 동생 입장에서는 그런 안타까움이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지혜는 금방 고개를 저었다.
“다 소용없는 짓이야. 어차피 그분, 내가 며느리로 마음에 안 드셨고, 이미 끝난 인연이니까.”
“…….”
“이제는 걸어도 될 길이라 해도, 어차피 그때는 걸으면 안 되는 길이었어. 그건 사실이니까. 다 끝났어. 미안해, 오빠. 내일부턴 절대로 그 이야기 안 할게. 그냥…… 어머님 때문에 내가 조금 서러워서…….”
중얼거리듯이 말하던 한지혜는 풀썩 테이블에 엎어져 잠이 들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한서진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뉴월드백화점…… 정준석…….”
그는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마음 같아서는 내일 당장이라도 직장을 찾아가서 따지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동생이 싫어할 것이다.
결국 참을 수밖에 없나?
“나중에 걸리기만 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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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심히 1하겟스빈다.
다음 편도 지금 바로 쓰겟스빈다.
1하러 가겟스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