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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87화 (87/609)

00087  코카 스패니얼  =========================================================================

“뭐? 2억 달러?”

급히 웹 문자를 확인한 한서진도 뛸 듯이 놀랐다. 정말로 2억 달러라고 적혀 있었던 것이다.

“모바일뱅킹 켜봐, 빨리.”

“응.”

혹시나 문자 발송 오류는 아닐까? 그러나 확인해본 결과 그게 아니었다. 정말로 2억 달러가 입금된 것이다.

한지혜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물었다.

“오빠, 방금 전화한 분 누구야? 무슨 사이야?”

“…….”

“대체 어떤 사이인데 말 한 마디에 그 자리에서 2억 달러를 쏴줘?”

“자, 잘못 보냈나 봐. 내가 확인해볼게.”

한서진은 급히 일어나서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한지혜가 듣지 못하는 곳에서 정지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팀장님, 어떻게 된 거예요?”

「어, 왜? 아직 입금이 안 됐어?」

“됐죠, 됐으니까 문제죠. 대체 2억 달러가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겁니까?”

「회사 유보 자금이 그 정도는 된다. 아직 크렘 회장한테 배당을 안 했으니까.」

“설마 3억 달러를 벌써 다 깐 건가요?”

「원래 이번 수익을 배당하고 나면 투자금 차감이 다 끝날 예정이었어. 하지만 네가 급히 쓸 데가 있어서 먼저 썼다고 하면 크렘 회장도 이해해줄 거야. 쉽게 찾을 수 있게 일부러 스카이블루 은행 통해서 넣었는데. 한국의 K은행이랑 제휴 관계거든.」

이 사람, 대해에 나가더니 어느새 이렇게 큰 괴어로 진화했지? 한서진은 질린 얼굴로 말했다.

“제가 필요한 건 2억 달러가 아니라 2억 원이었다고요!”

「……뭐? 진짜?」

“네, 제 동생 학비 때문에요! 그런데 2억 달러나 주시면 어떡합니까?”

「아, 난 또 사무소 사옥이라도 지으려는 줄 알았지.」

“사옥을 짓는다고 쳐도 2,000억 원이나 들진 않아요!”

한서진은 답답하다는 듯이 덧붙였다.

“이거 송금 조사 나올 텐데 어떡해요? 수수료나 세금도 장난 아니게 붙을 거라고요!”

「정말 2억 달러 필요 없어?」

“필요 없습니다! 그냥 2억 원이면 돼요!”

「그래도 어차피 네 돈이나 다름없는데 급할 때 쓰려면 한국 통장에도 몇 억 불쯤은 놔두는 게 편하지 않을까?」

“여기서 돈 쓸 일 없어요. 그럴 일 생기면 그때 말씀 드릴 테니까, 빨리 이거 좀 어떻게 해주세요.”

「알았다. 송금은 취소하고 다시 입금할게.」

한서진은 한숨을 푹 쉬었다. 미국으로 보내놨더니, 이 사람 금전 감각이 아주 중동 왕자님처럼 돼버렸어.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을 꾸미고 돌아왔다. 한지혜가 초조하게 바라봤다.

“아, 송금 잘못 하신 거래. 그쪽에서 알아서 다시 돈 빼갈 거라 하더라고.”

“……송금을 어떻게 잘못하면 2,000억 원이 꽂히는 거야?”

2억 달러를 잘못 송금했다. 이는 달리 말하면, 평소에 2억 달러쯤은 통장 잔고로 쌓아두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 사람이 오빠랑 알고 지낸다고? 한지혜는 선뜻 믿어지지가 않았다.

잠시 후 은행에서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한지혜 고객님. 제가 전화를 한 건 다름이 아니라 해외 송금 오류 때문인데요, 미국 기업에서 2억 달러를 잘못 송금한 것으로…… 그래서 동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알겠어요.”

「예,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K은행 김정화였습니다.」

2억 달러는 그렇게 다시 빠져나갔다.

워낙 큰 거액이고 또 해외 송금인만큼 절차상으로 까다로울 테지만, SJ인더스트리에서 알아서 잘 처리했을 것이다. 그쪽은 미국의 대기업이니까.

한지혜는 스치듯이 빠져 나간 2억 달러를 보고 힘이 빠진 듯 다리를 늘어뜨렸다.

“하아…… 일장춘몽이었구나. 2억 달러면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었을 텐데.”

“아까워?”

“아깝기는, 원래 내 돈도 아닌데. 그냥 그런 숫자를 직접 눈으로 보고 나니 뭔가 기분이 묘해지네.”

잠시 후 다시 은행에서 웹 발신 문자가 왔다. 20만 불이 입금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곧이어 은행에서 전화가 왔다.

「지점에 방문하셔서 사유 신고를 하시고, 증빙 신청을 하시면 됩니다. 해당 송금 내역이 국세청에 통지됨을 인지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로 20만 불, 즉 2억 원이 들어왔다.

한지혜는 멍한 눈으로 한서진을 주시했다. 전화 한 통에 2억 원을 즉각 내주는 지인을 두고 있다니. 새삼 오빠가 다르게 보였다.

“오빠, 정말 그 사람 누구야?”

“몰라도 돼.”

“혹시…… 오빠 후원자?”

“비슷해. 그렇게만 알아 둬.”

한지혜는 작은 신음을 내며 끄덕거렸다. 아직도 눈빛에서는 놀람이 가시지 않는 듯했다.

“한국대 들어가더니…… 오빠 완전히 다른 세상 사람이 돼가고 있구나.”

조금은 부러움이 담긴 음색에 한서진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동생의 말은 틀렸다. 한국대에 들어와서 변한 게 아니라, 변했기 때문에 한국대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통찰안의 권능. 그것을 얻은 순간부터 자신의 인생은 완전히 뒤바뀌었으니까.

「4년치 장학금 지급이라고 했으니 국세청에서 특별히 조사가 나오진 않을 거야. 어차피 20만 불 밖에 안 되니, 그쪽도 크게 문제 삼지는 않겠지.」

“그래도 2억 달러는 너무 놀랐다고요.”

「아아, 앞으로는 유의할게.」

SJ인더스트리에서 손을 써준 덕분에 한지혜는 어렵지 않게 돈을 환전할 수 있었다. 환전 수수료를 내긴 했지만, 학비 걱정은 지울 수 있게 된 셈이다.

“코카 스패니얼은 어떻게 돼가고 있나요?”

「특허는 신청 중이고, 지금 생산회사를 알아보고 있어. 그런데 크렘 회장이 그 이야기를 듣고 연락이 왔어. 그 때문에 할 말이 있는데.」

“크렘 회장이요?”

SJ인더스트리는 지금 기업 가치가 100억 달러를 돌파했다. 비상장 기업의 시가총액이 100억 달러. 시가총액 세계 1위인 맥플이 약 7000억 불 남짓한 걸 생각하면, 상당한 수치라고 할 수 있다. SJ인더스트리는 생긴 지 고작 일 년도 되지 않았으니.

「크렘 회장이 널 만나고 싶어 해.」

“저를요?”

한서진은 조금 어리둥절했다. 그가 왜 자신을 만나고 싶어한단 말인가.

「이상할 것 없어. 크렘 회장은 전부터 너와 직접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으니까. 마침 적절한 타이밍이지.」

“하지만 저는 영어를 못하는데.”

「그건 크렘 회장이 알아서 통역을 구하든지 하겠지.」

“음…… 알겠습니다. 그럼 약속을 잡아주세요. 제가 미국으로 가면 될까요?”

「그럴 필요 없다. 크렘 회장이 한국으로 갈 거야.」

정지원은 유쾌한 어조로 덧붙였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지. 안 그래?」

크렘 회장은 정말로 직접 한서진을 찾아왔다. 그것도 무려 다음 날, 전용기를 타고 찾아온 것이다. 비행시간을 고려하면 한서진의 확답을 듣자마자 바로 출발한 것이다.

월가의 큰손으로, 공개 자산만 620억 달러에 달하는 세계 최고의 투자자. 그의 방문에 한국 경제계는 크게 들썩였다. 재벌들은 이 기회에 어떻게든 그와 인맥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공항에서 수많은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그는 짤막하게 한 마디를 했을 뿐이었다.

“투자를 이유로 한국에 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자세한 내용은 일절 밝히지 않겠습니다.”

부드럽지만 단호한 코멘트였다. 기자들은 어떻게든 한 마디라도 듣기 위해 사력을 다했지만, 건장한 그의 경호원들을 이기지 못하고 떠밀려났다.

그리고 그날 저녁, 사무소에서 혼자 기다리던 한서진은 은밀한 방문을 받았다.

“이렇게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미스터 스티브.”

유창한 영어다. 한서진은 대충 반갑다는 의미만 알아듣고, 어색한 미소로 악수를 받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미스터 크렘.”

크렘 회장은 두 명의 경호원과 한 명의 통역만을 대동했다. 경호원은 문 밖에서 지키고 있었고, 사무소 안에는 통역원만을 데리고 들어왔다.

20대쯤 되었을까. 통역은 키가 크고 늘씬한 동양계 미인이었다. 한국 출신이 아닐까 생각이 들 만큼 한국 발음도 유창했다.

통역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은 대화를 시작했다.

“처음 칼 루이스가 슈나우저 설계도를 들고 왔을 때, 사실 조금은 그 전망을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제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은 결과가 나왔더군요. 정말 놀랐습니다. 반쯤은 3억 달러 정도 잃어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투자했거든요. 칼 루이스를 믿는 마음에서였죠.”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감사해야 할 것은 저죠. 그 3억 달러가 불과 일 년도 지나지 않아 13억 달러로 불어났으니까요.”

백발이 성성한 중후한 신사, 크렘 회장은 껄껄 웃었다.

“실은 이럴 줄 알았으면 30억 달러쯤 투자할 걸 하고 지금 크게 후회 중입니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게 흘러갔다.

한서진은 사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개인 자산만 620억 달러가 넘는, 세계 최고의 투자자가 지금 자신의 조그만 사무실에 와 있다니. 그리고 그와 대등한 입장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니.

크렘 회장에 비하면 H그룹은 보름달 앞의 반딧불 같은 존재가 아닌가. 차갑게 경고하던 백세완이 이 광경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갑자기 웃겼다.

“새로운 메모리 반도체를 개발했다고 들었습니다.”

“네, 개발은 완료됐고 지금 특허 출원 진행 중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코카 스패니얼이라고 했던가요. SJ인더스트리가 아닌 다른 회사를 세워서 판매를 하려 한다고요.”

“아, 네.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같은 주주 입장에서 다른 회사를 세워서 생산한다니, 그의 입장에서는 서운할 수 있으리라. 한서진은 그렇게 생각하고 버릇처럼 사과했다.

그러나 크렘 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사과 할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연한 재산권 행사입니다. 누구도 그걸 비난하거나 서운해 할 수 없습니다.”

그의 이해심에 한서진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실은 제가 그 때문에 제안을 할 게 있어서 왔습니다. 귀하에게도 나쁠 것 없는 제안입니다.”

“뭔데요?”

“귀하는 앞으로도 새롭고 놀라운 반도체 제품을 만들어낼 것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회사를 세우고, 생산력을 분산시키는 것은 시간적으로 효율적이지 못합니다.”

“…….”

“코카 스패니얼뿐만 아니라 앞으로 개발하는 반도체 제품을 SJ인더스트리에서 생산했으면 합니다. 단, 그로 인한 이익은 저나 토니 제나인은 가져가지 않겠습니다. 100% 귀하가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의외의 제안에 한서진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사실대로 말하지요. 귀하는 제조공정의 일원화로 시간을 효율적으로 절약할 수 있어서 좋고, 저는 비록 슈나우저 외의 이익은 배당받지 못해도 기업 가치가 증가하기 때문에 좋습니다. 그래서 제안하는 겁니다.”

“음…….”

“100% 귀하 지분으로 새 회사를 세우는 게 귀하의 자산 증식에 당장은 이로울 겁니다. 그러나 나, 투자자 크렘이 투자한 회사라는 타이틀은 월가에서 무시 못 할 무형적 이익입니다. 단지 내가 투자한다는 사실만으로 기업 가치가 최소 30%는 더 증가할 수 있습니다.”

크렘은 온화한 미소로 덧붙였다.

“우리는 충분히 같이 이길 수 있습니다.”

============================ 작품 후기 ============================

해외송금이 국내 송금과 달리 복잡한 절차와 시간이 있다는 건 저도 아는데요.;;;

근데 그걸 그대로 100% 반영하면 연출을 해칩니다. 당위성을 설명한답시고 분량도 쓸데없이 팍팍 늘어나구요.

저는 픽션에서 중요한 건 연출이지 실제 절차 고증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현실 배경 소설이니만큼 실존 절차를 가급적 추구하지만, 그게 전개나 연출에 해가 된다면 허구적 절차로 대체합니다.

뭐 그렇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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