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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81화 (81/609)

00081  에테르 언어  =========================================================================

생각만큼 박효산 교수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큰 충격을 받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덤덤했던 것이다. 오히려 그런 차분한 모습에 하정태가 더욱 놀랐다.

“교수님? 설마 알고 계셨어요?”

“아니, 내가 점쟁이도 아니고 그걸 무슨 재주로 알아?”

“그런데 별로 안 놀라시네요.”

“원래 진성전자 의뢰로 스코브리아늄 관련 프로젝트 하나 진행하던 게 있었는데, 서진이 덕분에 순식간에 해결한 적이 있다. 그때부터 범상치 않은 놈이란 건 알아봤지.”

“…….”

박효산 교수가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자 한서진은 민망해서 시선을 피했다.

“그래도 슈나우저 개발자라는 건 좀 쇼크구나. 설마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개발한 건 아니겠지?”

“……맞습니다.”

“잠깐, 그럼 혹시 비글도……?”

“그것도 서진이가 개발한 겁니다. 혼자서.”

하정태가 대신 대답했고, 박효산 교수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허어.”

박효산 교수는 몇 번이나 의미모를 탄식을 뱉었다. 그건 좀 충격이 큰 모양이었다. 반도체 제품 하나를 혼자 힘으로만 설계한다는 게 얼마나 불가능에 가까운지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지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교수님 약주하시면 비밀이 없는 분인데, 이거 골치 아파지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도 언젠가는 말씀드려야겠다 싶었습니다. 명색이 교수님 제자인데, 뻔히 숨기는 게 마음이 영 불편해서요. 오히려 지금은 속이 시원한데요.”

“무슨 뜻인지는 알겠다. 네가 결정한 거니 내가 더 이상 뭐라 할 수는 없지.”

정지원의 말이 기분 나빴는지 박효산 교수가 얼굴을 찡그렸다.

“지원이 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누가 들으면 내가 술만 먹으면 입을 나불거리는 그런 사람인 줄 알겠다.”

“교수님, 틀린 말은 아니잖아요. 술 때문에 프로젝트 비밀 유지 몇 번 망친 적 있잖습니까.”

“남한테 피해 준 적은 없었어!”

“덕분에 본인만 손해 많이 보셨죠.”

박효산은 잠시 주춤했으나 곧 반박했다.

“아무튼 남의 비밀 나불댄 적은 없다. 그건 인정해야지.”

“……뭐, 그렇죠.”

“서진이 너도 걱정마라. 내가 술 먹으면 입이 좀 가볍긴 해도 이런 걸 떠들고 다닐 만큼 경박한 사람은 아니다.”

한서진은 얼른 고개를 꾸벅 숙였다.

“예, 걱정은 안 합니다.”

“그나저나 이거…… 세완이가 알면 장난 아니겠는데? 자칫 산업스파이로 고소당할 수도 있는 문제야. 절대 가만 있지 않을 텐데.”

정지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안 그래도 H그룹 분노를 제가 다 받아내는 중입니다. 다행히 저는 미국인이라서 괜찮지만, 서진이가 알려지면 골치 아파져요. 그러니 교수님, 비밀 꼭 지켜주셔야 합니다.”

“걱정하지 말래도.”

한서진은 문득 백철중 회장을 떠올렸다.

만약 자신이 슈나우저의 개발자이자 SJ인더스트리의 실제 주인이라는 걸 알면 그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배신감을 느낄까, 아니면 역시 그럴 줄 알았다며 호탕하게 웃을까.

‘백 실장님은 어떠려나.’

잠깐 백세완의 반응을 상상하자 위통이 밀려왔다. 그래서 그쪽은 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난 회포를 대강 풀자 전문가들의 만남답게 진지한 연구 주제로 대화가 이어졌다.

“SJ인더스트리와 스코브리아늄 연구를 협업했으면 하는데. 스코브리아늄 버전 슈나우저가 탄생하면 어떨지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구나.”

“이미 그건 H반도체와 협업하기로 된 거 아닙니까?”

“그거야 서진이가 슈나우저 특허권자라는 걸 몰랐을 때 이야기고, 이제는 상황이 다르지. 가만, 그럼 서진이 너 SJ인더스트리 지분이 얼마나 있는 거냐? 사명까지 네 이니셜로 할 정도면 최대주주일 것 같은데.”

“……있을 만큼은 있습니다.”

박효산은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봤다.

“있을 만큼이라니. 그게 더 무서운데. 막 51% 이렇게 갖고 있는 거 아니냐?”

“그 정도까진 아닙니다.”

엉겁결에 그렇게 대답했다. ‘그 정도로 적진 않다’라는 의미로 한 말인데, 상대는 본심과는 다르게 전혀 반대 의미로 받아들였다.

“뭐, 51%가 아니어도 최대주주인 건 사실일 테고, 특허 로열티도 따로 받을 테니 판매 수익은 거의 쓸어 담겠구나. 사업 상황은 어때?”

한서진은 굳이 85%라고 말하는 것도 자랑하는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고, 정지원이 대신 대답했다.

“생산라인이 아직 부족해서 지금 데스크톱과 노트북 시장만 겨우 커버하는 중입니다.”

“근데 서진이 넌 미국 왜 안 갔냐?”

역시 박효산 교수도 그 점을 물어본다. 한서진은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교수님 밑에서 아직 배울 것도 많고, 영어도 못하는데 미국에서 살 자신도 없어서요.”

“기특한 녀석.”

아직 배울 게 많다는 말에 박효산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본심과 거리가 멀다 해도, 말이라도 예쁘게 하지 않는가.

정지원이 방향성을 정리했다.

“H반도체와 하는 연구협동은 그대로 진행하시고요, 따로 저희 회사에서도 공문을 보내겠습니다. 굳이 한쪽을 버릴 이유는 없을 것 같네요.”

“알겠다. 부탁하마.”

그 뒤로 반도체 시장의 전망성에 대해서 한 시간이 넘도록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눈 후, 셋은 연구실을 나왔다.

“오랜만에 후배들 얼굴이나 봐야겠네. 현석이도 잘 지내고 있는지 보고 싶다.

그렇게 학생회로 목적지가 정해졌다.

정지원의 인기는 대단했다. 2학년 이상의 학생들은 하나같이 그를 알아봤다. 설령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 신입생들도 그를 알아보고 반가워하며 다가왔다.

“선배님! 아니, 언제 모교에 오셨습니까?”

“바쁘신 분이 이렇게 시간까지 내시고…….”

초대학생회장으로 꾸준히 모교 인맥을 관리해온 정지원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다. 학생부터 교수까지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정지원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학교 밖에 있던 조현석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아니, 대선배님. 발걸음을 주셨으면 저한테 연락이라도 해주셔야지요. 이거 서운합니다.”

“아아, 갑자기 찾아온 거라서.”

“이럴 때가 아니지. 야, 모든 재학생들한테 단체로 문자 돌려! 정지원 선배님 오셨으니 간이 강연이라도 열어야지!”

“인마, 진정해. 그냥 오랜만에 학교 보고 싶어서 온 것뿐이니 소란 떨지 마.”

“죄송합니다만 그건 안 되겠습니다. 미국까지 가서 출세한 화석으로서 자라나는 새순들에게 도리를 다하셔야죠.”

결국 한 시간 만에 정지원을 중심으로 한 긴급 강연이 열렸고, 수백 명이 넘는 학생들이 참가하는 기염을 토했다.

왜 이렇게 많이 왔나 했더니 반도체공학부뿐만 아니라 전자공학계열 타학과 학생들도 참가했다고 한다.

급작스러운 이벤트였지만, 정지원은 별로 어렵지 않게 태연하게 40여 분에 걸쳐 강연을 마쳤다.

“……지금까지 40분 동안 지겹게 떠든 내용은 사실 단 두 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실리콘밸리, 아니 미국은 여전히 실력 있는 공돌이들에게는 기회의 땅입니다. 그러니 자기 실력을 열심히 키우고, 기술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큰 박수가 터져 나왔고, 정지원은 낯빛 하나 바뀌지 않은 채 태연히 강당을 내려왔다.

한서진이 진심으로 감탄한 얼굴로 바라봤다.

“강연 굉장히 잘하시던데요. 갑자기 떠밀린 거라 버벅거리실 줄 알았는데, 되게 능숙하시네요.”

“이래봬도 모교 강단에는 제법 서봤거든. 이왕 모교 온 김에 쓸 만한 인재들이나 탐색해볼까.”

즐거운 표정으로 한 말인데, 왠지 묘한 한기가 느껴진다.

‘에테르 언어……. 그리고 이 이상한 언어…….’

한서진은 두 개의 언어를 뚫어지듯이 비교하며 바라봤다.

하나는 통찰안이 처음 알려준 암 치료에 관한 언어. 다른 하나는 슈나우저에 적용된 에테르 언어였다.

그전까지 그는 두 개가 전혀 별개라고 생각했다. 아무런 연관성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현진국 교수를 우연히 맞닥뜨린 이후, 이 두 개의 언어는 틀림없이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란 예감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그 꿈은 대체 뭐지?’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얼마 전에 꾸었던 꿈을 떠올렸다.

‘그 노인…… 나보고 폐하라고 했어.’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인데도, 익숙함이 느껴지던 그 노인.

무릎을 꿇은 채 피를 토하듯이 고하던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문득 작년, 엘릭서를 제조하던 때의 일이 떠올랐다.

통찰안이 보여준 세 개의 화합물 분자 구조식. 그리고 그 셋을 하나로 묶는 촉매제, 왕의 피.

한서진은 그때 자신의 피로 엘릭서를 완성했고, 덕분에 암을 치료할 수 있었다. 그때는 살았다는 기쁨, 그리고 통찰안의 효능에 취해 더 이상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근래 들어 그때 느꼈던 의문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정말로 내가 왕?’

말도 안 되는 억측이다.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왕 같은 것이 존재한단 말인가. 집안 가계도에 왕족이 있었다는 말 같은 것도 들어보지 못했다.

‘모두 우연이 아니라고?’

통찰안. 미지의 언어. 엘릭서. 에테르 언어. 에테르. 미스릴.

그리고 그 의문의 꿈.

그 모든 게 각각 독립된 게 아니라, 하나의 연관성을 갖추고 있는 것이라면?

‘적어도 개꿈은 아니야. 그럴 수가 없어.’

한서진은 확신했다. 통찰안, 에테르, 미스릴 등의 신비함은 이미 실존하고 있고, 또 자신만이 알고 있다. 그것들과 연관이 있는 꿈이라면 결코 헛된 환각은 아니리라.

자신만이 아는 비밀, 그것은 분명히 실존한다. 통찰안을 통해 그 존위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비밀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한서진은 미지의 언어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에테르 언어는 언어나 문자보다는 기호에 가깝다. 구술적 의미가 담겨있으리라고는 상상되지 않는다.

반면 현진국 교수에게 맡겼던 미지의 언어는 지적 존재가 사용했던 문자의 일종으로 보인다.

‘만약 이걸 해독할 수만 있다면…….’

문득 상상하자 몸이 부르르 떨린다.

통찰안을 지금보다 더 수월하게 다루고, 에테르 언어나 미스릴 등의 근원을 파헤치는 것도 훨씬 쉬우리라. 나아가 그 신비한 꿈이 가진 비밀도 알아낼 수 있으리라.

한서진은 결심을 굳혔다.

“찾아가보자.”

현진국 교수는 근래 들어 모처럼 즐거웠다. 박효산 교수와 학술적 교류를 나누는 시간이 유익했다.

언어학자인 그가 반도체공학 교수와 학술적 교류를 가지게 될 줄 과연 누가 알았겠는가.

‘이 언어에 담긴 비밀을 해독할 수만 있다면……!’

상상만으로 가슴이 떨린다.

미지의 언어를 수퍼컴퓨터로 재해석한 패턴은 스코브리아늄의 본질과 지독하게 유사했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어떤 초월적인 지적 힘이 닿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신이든, 외계인이든 간에.

“진실을 탐구하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보람차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현진국 교수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때 그 청년에게 몇 번이나 문자를 보냈지만 답장은 없었다. 전화를 걸어도 그는 받지 않았다.

일부러 연락을 피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 사이 번호가 바뀌기라도 한 것인가. 현진국 교수는 차라리 전자이기를 바랐다. 후자라면 이제 연락이 닿기가 어려울 테니.

“교수님,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손님? 누구?”

“스코브리아늄과 닮은 패턴의 언어 때문이라고 하면 아마 아실 거라고 하던데요.”

그 순간 현진국 교수는 튕겨지듯이 일어났다.

============================ 작품 후기 ============================

싸쟝님들 넘후 나파요.

맨알 1만 하라고 구박케요.

넘후 나파요. 엉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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