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66화 (66/609)

00066  소개팅  =========================================================================

“최 회장, 나야.”

「어, 조 회장. 무슨 일인데?」

“너네 학과에 이쁘고 참한 애들 좀 있지?”

「우리 학과야 그런 애들 천지지. 근데 왜?」

“미팅 좀 잡자. 소개팅도 괜찮고.”

「밑도 끝도 없이 미팅 소개팅하면 어쩌라고? 우리 과 학우들 눈이 얼마나 높은지 알아?」

“올해 우리 반공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한 형, 알지? 그 형이 미팅 시장에 나온다.”

「……한서진 오빠? 정말?」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대번에 달라졌다. 조현석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서진이 형이 지금 H반도체 다니는 거 알지?”

「알지. 그거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그 오빠, 10억짜리 포르쉐 끌고 다니는 걸로 유명하던데.」

“이미 학교 명물이시지. 정작 본인 혼자만 모르고 계시지만. 아무튼 이쁘고 참한 애들로 리스트 쫙 뽑아 놔.”

「잠깐, 그 오빠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어떻게 돼?」

“왜, 최 회장 너도 나오게?”

「아니아니, 참고만 하려고 그러는 거지.」

조현석은 눈을 가늘게 떴다.

“최 회장, 넌 안 돼.”

「내가 어디가 어때서!」

“내가 최 회장 연애 경력을 다 아는데 서진이 형님하고 엮어드릴 수가 없지. 만약 서진이 형님한테 꼬리치기만 해봐, 내가 그냥 콱 네 이력서 작성해서 제출해버릴 테니까.”

「치사해서 안 해! 걱정하지 마!」

여름 끝자락에 접어든 캠퍼스의 흔한 풍경이었다.

「형님, 출발하셨어요?」

“아니, 아직. 지금 학교야.”

「천천히 오셔도 됩니다. 너무 늦지만 마시구요. 아참, 차 끌고 오실 겁니까?」

“그냥 놓고 갈까 하는데. 주차하다가 시간 잡아먹을까 봐.”

「무슨 말씀을! 그냥 끌고 오십시오.」

“괜히 불편할까 봐 그러지.”

「괜찮습니다! 그냥 끌고 오십시오!」

불편하게 차는 뭐 하러? 그렇게 생각했지만 조현석이 한사코 끌고 오라는 통에 한서진은 할 수 없이 차를 끌고 나갔다.

10억짜리 포르쉐가 등장하자 이따금씩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진다. 이 지역은 수억 대의 고급 외제차가 별로 지나다니지 않는 지역이라 한층 더 그랬다.

한서진은 약속장소인 카페가 있는 빌딩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올라갔다.

테이블에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도착해 있었다. 남자측은 모두 그가 아는 인물이었다.

“어, 형.”

“형님 오셨습니까?”

“오셨네요, 형.”

한서진은 끄덕이며 인사를 나누고는 잠시 맞은편 테이블을 살폈다. 그리고 속으로 살짝 놀랐다. 하나같이 예쁘고 늘씬한 여대생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학교에 이런 애들이 있었어? 근데 왜 여태까지 한 명도 못 봤지?

‘팀장님, 감사합니다.’

나 믿냐, 하던 그 목소리가 이렇게 듬직하게 느껴질 줄이야. 한서진은 속으로 환호를 외치면서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살짝 숙였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차가 좀 많이 막혀서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뭐.”

세 명의 여대생들은 사근사근한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했다.

주선자를 제외하면 각각 4쌍이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신변 이야기를 나누며 어색한 분위기를 깨뜨려나갔다.

“현재 최고 미세공정은 20nm거든요. 그런데 지금 진성전자가 10nm와 7nm를 동시에 개발 중이에요. 10nm는 거의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던데, 그게 개발되면 슈나우저에 대항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반도체 웨이퍼가 왜 원형인지 아세요? LSI 이상급은 실리콘 웨이퍼 위에 포토 마스크의 투과한 빛에 의한 첨가물 확산으로 만들어지는데…….”

“디지털 회로 설계라는 게 있어요. 아날로그 회로하고는 다르게 VHDL 이나 Verilog 같은 툴로 코딩을 하는 건데요, 제가 이번에…….”

보인다. 여대생들의 표정이 점점 썩어가는 게.

세 녀석들은 그것도 모르고 침을 튀겨가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서진은 그걸 보며 기가 막혔다. 저 녀석들, 정말 저게 여자애들한테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쪽은 아까부터 한 말씀도 안 하시네요.”

맞은편에 앉은, 긴 생머리에 큰 눈망울이 인상적인 여대생이 웃으면서 물었다. 피부도 하얗고 팔다리도 늘씬하게 긴, 상당히 괜찮은 미모의 여자였다.

“혹시 취미가 뭐예요?”

맞은편 여자가 묻자 한서진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뭐라고 대답하면 되지? 저 녀석들처럼 여자애들이 싫어하는 주제를 재밌다고 생각해서 떠들면 안 될 텐데?

엉겁결에 동생, 한지혜를 떠올린 그는 급히 말했다.

“자동차요.”

“…….”

“…….”

짧지만 어색한 침묵. 한서진은 머리를 싸맬 뻔했다. 저 녀석들의 전철만은 밟지 않으려 했는데, 어째서!

‘첫 미팅부터 이런 꼴이라니.’

그는 그렇게 좌절했다.

어찌어찌 시간이 흘러 최종 결정 시간이 다가왔다.

“남자분들이 먼저 마음에 드는 파트너를 지목하고, 여자분이 오케이하면 됩니다. 이상하지도 않고 참 간단하죠?”

결정의 시간.

네 개의 손가락이 각각 마음에 드는 여자를 찾아 골랐다. 다행히도 한서진을 포함한 남자들은 겹치지 않고 짝을 골랐다.

한서진은 가장 우측에 앉은, 건강한 피부색의 키가 가장 큰 여자를 골랐다. 조현석이 그걸 보고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자, 그럼 여자분들이 대답해주실 차례입니다.”

여자들은 자기들끼리 눈빛 교환을 한 뒤 남자측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저는 좋아요.”

한서진이 지목한 여자가 웃으며 먼저 말했다. 그리고 남은 세 여자는 모두 거절했다.

“형님, 어제 어떠셨습니까?”

“그냥 뭐 따로 커피 마시고, 영화 보고, 밥 먹고 그랬지.”

“상대가 별로셨습니까?”

“그건 아닌데, 왜?”

“그쪽 주선자한테서 연락 왔는데, 상대 여자애가 궁금해 하는 눈치더라고요. 오빠가 자기 별로 마음에 안 들었는가 하고.”

“그건 아니야. 이쁘잖아.”

“그럼 왜 연락 안 하셨습니까?”

한서진은 잠시 생각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이상할 것이다. 키도 크고 예뻐서, 길가에서 누구나 한 번쯤 돌아볼 만한 미모의 여자인데. 게다가 학벌도 한국대 아닌가.

“그냥 예쁘고 키도 크고 착한데, 뭔가 안 끌려.”

“아하,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조현석은 다른 학과에서 또 다른 미팅을 물어왔다. 한서진은 거기에 참석했고, 다른 남자애 한 명과 함께 승자가 될 수 있었다.

총 5쌍이 참가한 미팅이었는데, 다른 3명은 한서진과 같은 여자를 지목하는 바람에 탈락하고 말았다.

이번 여자는 키는 살짝 작지만 볼륨감이 높고, 하얀 피부가 매력적인 미인이었다.

다음 날 조현석이 물었다.

“어떠셨습니까?”

“괜찮은 여자애더라.”

“그게 전부입니까?”

“아니, 말 그대로 괜찮은 여자애던데?”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형님. 제게 맡겨 주십시오.”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조현석은 소개팅 자리를 하나 만들었다. 연체대학교 연극영화과 학생이라고 했다. 과연 연극영화과 학생답게 키도 크고 미모도 단연 발군이었다.

성격도 화끈하고 착해서, 한서진도 즐거운 데이트를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형님, 그 여자애는 어떠셨습니까?”

“예쁜 애더라.”

“알겠습니다. 제게 맡겨 주십시오.”

“어, 나 싫다고는 안 했는데?”

“그럼 다른 자리 잡지 말까요?”

“……아니, 잡아 줘.”

한 달 정도 한서진은 하루도 빼먹지 않고 미팅, 소개팅을 가졌다. 따로 데이트한 것만 40명은 족히 되었다. 그것도 하나같이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여대생들이었다.

그러나 한서진은 한 번도 애프터 신청을 하지 않았다. 조현석도 결국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형님 취향을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만나본 애들, 다 마음에 안 드신 건가요?”

“아니, 마음에는 들어. 하나같이 예쁘고 착하잖아.”

“그럼 뭐가 문제입니까?”

“이상하게 안 끌려. 미묘한 거부감이 든달까?”

“으으,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제가 형님의 연애 사업을 위해서 계속 노력해보겠습니다.”

예쁘고 머리 좋은 여자들인데 끌리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한서진에게는 남들에게 말 못할 이유가 있었다.

통찰안.

―부적합.

내 여자친구로 어떨까, 하는 마음을 강하게 품고 통찰안을 발동시켰을 때 떠오른 진실이었다.

통찰안은 사람을 대상으로 발동하는 일이 없다. 그래서 그 사람이 어떠한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는 것 등은 일체 불가능하다.

처음에는 그도 안 될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미팅 상대들에게 통찰안을 써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통찰안이 처음으로 사람에게 발동이 된 것이다.

부적합이란 무슨 의미일까. 어째서 부적합이라는 말이 뜨는 걸까.

여러 모로 고민해봤지만, 그 이상의 답은 얻을 수 없었다. 통찰안은 진실을 보여주기만 할 뿐, 친절하게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이유를 생각하는 걸 포기한 한서진은 대신 믿기로 했다.

통찰안이 보여준, 부적합이란 진실을.

처음에는 통찰안이 즉시 발동하지 않았다. 상대 여자와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고, 익숙해지면서 통찰안이 저절로 발동하곤 했다. 그나마 애프터 신청을 하기 전 발동해서 다행이라고 할까.

“형님, 도대체가 형님 여자 취향을 모르겠습니다.”

“미안하다. 이제 안 소개시켜줘도 돼.”

“아닙니다. 제가 꼭 형님 연애 사업 성사시키고 말 겁니다. 기다려 주십시오. 서울 소재 대학의 모든 여대생과 소개팅을 주선하는 한이 있더라도……!”

본래 유명했던 한서진은 다른 의미에서 또 유명해졌다.

눈이 참 더럽게 높다고.

“근데 사실 그 오빠 정도면 그 정도 눈 높은 건 당연하지.”

그래도 주제도 모르고 눈만 높다는 식의 비방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왕은 꿈에서 깨어났다.

잠시 기억을 회복하던 왕은 이내 꿈속의 일을 떠올리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여인이라…….”

꿈속의 자신을 떠올리며, 왕은 가만히 피식거렸다.

“여인과의 인연이란 결국에는 부질없는 것을, 그래도 꼴에 사내라 이건가.”

그렇게 씁쓸히 상기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노신하가 공손히 들어섰다. 왕은 고개를 들어 노신하를 바라보았다.

“왔소?”

“돌아오셨군요.”

“돌아왔다라…….”

왕은 씁쓸히 웃었다. 그 미소에 섞인 처연함에 노신하는 얼굴을 굳혔다.

“이곳 레노지안보다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기니 요즘 들어서는 꿈에서 깰 때마다 헷갈린다오. 이곳이 레노지안인지, 지구인지. 내가 한서진인지, 군주 아서인지…….”

노신하의 표정이 더욱 심각하게 변했다.

“폐하, 설마 흔들리시는 것입니까?”

“아아, 깨는 순간에만 잠깐 그렇다는 거요. 확고하게 진실을 인지하고 있으니, 그리 두려워할 것은 없소.”

“놀랐습니다. 신을 너무 놀라게 하지 마소서. 늙은 몸으로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하하, 미안하오.”

왕은 유쾌하게 웃었다.

레노지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월등히 짧은 만큼, 꿈에서 깨어날 때 조금 혼란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왕의 영혼은 그렇게 무르지 않다. 어떠한 경우라도 확고하게 진실을 바라보고, 자신을 인식한다.

저주를 극복하는 것은 아직도 먼 일이지만, 그래도 잡아먹히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만큼은 굳건했다.

“아참. 꿈에서 짐은 요즘 여인들을 만나러 다니고 있소. 한 달 사이에 오십 명은 만났던 것 같소.”

“저주 속 세상에는 마음에 드는 여인이 한 명도 없나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폐하가 그렇게 방탕할 리가 없는데 말입니다.”

“그게 아니오. 어리석게도 꿈속의 짐은 통찰안으로 여인들을 검별하고 있소.”

“통찰안으로, 여인들을요?”

노신하도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었다.

“여인을 통찰안으로 검별 한다는 것은, 즉 왕에 어울리는 반려를 찾는 것……. 그런 여인을 과연 어느 세월에 찾을 수 있겠습니까? 폐하께서도 과거 왕비 전하를 만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 송구하옵니다, 폐하.”

말을 잇다 말고 노신하는 급히 머리를 땅에 숙였다. 자신이 큰 잘못을 저질렀음을 깨달은 것이다.

왕비가 언급되었음에도 왕은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속눈썹이 잠깐, 가늘게 흔들리기만 했을 뿐이었다.

“괜찮소.”

============================ 작품 후기 ============================

「띠띠띠. 이 중에 왕비감은 없습니다.」

“난 왕비감을 찾는 게 아니라 여자친구 감을 찾는 거라고!”

「띠띠띠. 이 중에 왕비감은 없습니다.」

“으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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