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62화 (62/609)

00062  수퍼반도체, 초수퍼컴퓨터  =========================================================================

500의 한계.

슈나우저는 500개에 도달했을 때 가장 높은 성능을 내며, 그 뒤는 개체를 추가해도 성능의 증가가 없다.

한서진이 물었다.

“그럼 Z7을 병렬로 묶어서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건 어떤가요?”

“시범적으로 Z7 두 대를 묶은 네트워크를 구축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경우 유의미한 성능의 증가는 있었습니다. 딱 Z7을 추가한 만큼, 우리가 예상한 수준의 증가폭이었지요.”

“아.”

한서진은 그 말뜻을 알아듣고 안타까운 소리를 냈다.

슈나우저는 2개가 모이면 2배가 아닌, 그 이상의 성능을 낸다. 최대치인 500개가 모이면 3만 배의 성능을 낸다.

그러나 Z7의 경우에는 그런 상승효과가 없었다는 것이다. 딱 개체를 추가한 만큼의 기대 상승만 있었다는 의미다.

내심 크게 아쉬웠지만, 그래도 한서진은 기대감을 완전히 지우지는 않았다.

“슈나우저를 500개 이상 묶는 것은 의미가 없지만, Z7을 병렬로 묶어서 성능 증가를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요? 슈나우저를 묶는 것만큼은 아니라 하더라도, 상승효과는 있을 거예요.”

“아마 그럴 겁니다. 하지만 당분간은 단일 Z7 시스템만 제공할 생각입니다.”

“이유가 뭐죠?”

“Z7이 단일 개체로 세계 최고의 수퍼컴퓨터를 능가한다는 이미지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서지요. 기존의 수퍼컴퓨터와는 차원이 다르다, 하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칼 루이스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노리는 소비시장은 개인 컴퓨터 시장이니까요.”

Z7.

그전의 모델과는 비교조차 안 되는 최고의 초수퍼컴퓨터.

그 Z7에 사용된 수퍼반도체가 들어간 개인 컴퓨터가 출시된다면? 컴퓨터뿐만이 아니라 스마트폰, 태블릿 등등 개인용 모바일 기기에도 들어간다면?

최고 중의 최고라는 이미지로 대중을 휘어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Z7을 공개한 진정한 목적이었다.

“내년에는 세계 시장에서 돈을 쓸어 담을 수 있을 겁니다.”

“아직 완전하지도 않은 연구 결과를 발표해야 하다니.”

니트론 교수는 땅을 치며 안타까워했다. 옆에서 보는 사람이 가슴이 미어질 정도다. 누가 보면 친한 사람이 죽었나 하는 생각이 들 만큼, 그는 온몸으로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래도 Z7을 받기로 했으니까.”

니트론 교수는 그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Z7이 있으면 컴퓨터의 성능 부족으로 진척이 없었던 연구 분야를 개척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아, 역시 기술의 발전이란! 위대하고, 또 위대하도다.

총장 교수가 그를 달래주려는 듯 나섰다.

“니트론 교수, 너무 아쉬워하지 마시오. 결과적으로 SJ인더스트리와 니트론 교수, 모두가 윈윈한 거 아니오?”

SJ인더스트리는 스코브리아늄 연구에 있어 Z7을 이용해 얻은 결과를 공표하길 원했고, 대신 Z7을 니트론 교수 전용으로 제공해주기로 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윈윈.

추가로, 스탠포드는 국제적으로 예상을 넘어선 관심을 받고 있는 중이다. 저 둘만 윈윈이 아니라, 스탠포드도 함께 이긴 것이다.

“총장, 그 점은 나도 압니다. 그래서 아쉬울지언정 불만은 없는 거고요.”

“정말 다행입니다. 하하.”

총장은 껄껄 웃으며 기뻐했다.

연구와 예산에 있어서만은 깐깐하기 그지없는 니트론 교수가 불만은 없다니. 이런 경우는 좀처럼 흔치 않다. 대학 측으로서는 최상의 결과였다.

“SJ인더스트리가 Z7을 지속적으로 제공해주기로 했으니, 앞으로 니트론 교수의 연구도 더 많은 성과가 있을 겁니다. 학교 측에서도 더 크게 신경을 써주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그래서 이번 분기 예산은?”

“아, 그건…….”

“이만큼 대학의 이름을 널리 알렸는데 당연히 올려주겠지요?”

“일단 그건 예산심의회와 논의를 한 후에…….”

“이봐요, 총장! 설마 저번처럼 또 말로만 칭찬하고 끝낼 셈은 아니겠죠?”

총장은 조금 억울했다.

“사실 니트론 교수 랩이 다른 랩에 비해 몇 년째 압도적으로 많은 예산을 받고 있으니, 예산심의회를 설득할 명분이 약한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건 내가 알 바 아니고, 예산은요?”

“……노력해보리다.”

총장은 마지막까지 괴롭힘을 당하다가, 결국 확답을 해주고서야 벗어날 수 있었다.

니트론 교수는 냉수를 벌컥벌컥 마신 후 빈 컵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심의회 놈들은 하여간, 그깟 예산이 얼마나 된다고 아까워하는 거야. 스코브리아늄 연구만 끝내면 아주 그냥 돈을 쓸어 담고도 남을 텐데.”

“그러게 말이에요, 교수님.”

“학교 측도 너무해요. 우리 교수님 랩이 가장 많은 예산을 타가는 건 원래 당연한 거고, 지금 받는 게 부족해서 더 달라는 건데 왜 이렇게 난리들인지.”

연구실 제자들이 맞장구를 치자 니트론 교수는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때였다.

“교수님, SJ인더스트리 칼 루이스 부사장님이 찾아오셨어요.”

“내가 곧 나가마.”

니트론 교수는 급히 가운을 챙겨 입고 나갔다. 칼 루이스를 보는 그의 얼굴은 활짝 웃고 있었다.

“오, 칼 이사님. 이런 누추한 곳까지 직접 발걸음을 하셨구려. 연락을 미리 주시고 오셨으면 좀 더 준비를 했을 텐데요.”

“하하, 죄송합니다. 꼭 니트론 교수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분이 계셔서요.”

“나를 말이오?”

니트론 교수는 의아해서 칼 루이스와 동행한 청년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어디서 본 얼굴 같긴 했다.

“네, 아마 교수님도 흡족해할 만남이 될 겁니다. 이 분은 한국의 한국대라는 곳에서 왔습니다. 바로 슈나우저의 개발자 되시는 분이죠.”

“슈나우저!”

니트론 교수는 눈을 부릅떴다.

슈나우저, 어찌 그 이름을 모르겠는가. 자신이 애지중지 하는 Z7의 핵심이자 전부이며, 세계 반도체 시장에 투하될 핵폭탄.

그는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젊은 청년이 슈나우저의 개발자라고? 설마 단독 개발자는 아니겠지요?”

“단독개발자입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슈나우저를 설계하신 분이죠.”

“……아.”

니트론 교수는 멍하게 입을 벌렸다.

이렇게 젊은 청년이 벌써부터 이런 성과를 내는 동안, 자신은 무얼 했는가 하는 자책감이 피어올랐다.

“미스터 한, 이 분이 바로 니트론 교수입니다. 이미 구면이라 얼굴은 아시겠죠.”

칼 루이스가 웃으며 소개를 마무리했다.

“제가 통역을 하겠습니다. 서로 묻고 싶은 게 많을 테니, 편히 이야기하시죠.”

‘미스릴의 비밀을 스스로 밝혀내신 이분이라면…… 어쩌면?’

통역을 거치긴 하지만, 니트론 교수와 직접 대화하게 된 한서진은 가슴이 떨렸다. 백철중 회장을 만났을 때와는 다른 종류의 뿌듯함이었다.

반도체에 있어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자, 그런 사람과 제한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대체 어떻게 이런 젊은 청년이…….’

마찬가지로 니트론 교수도 환희에 떨었다.

Z7을 처음 보고 그 성능에 얼마나 경악했던가. 특히 회로 최적화 설계만으로 8GHz의 스펙을 구축한 슈나우저는 그의 눈에 있어서 괴물 그 자체였다.

지금 그 괴물을 탄생시켰다는 자가 눈앞에 있는 것이다. 심지어 혼자서 만들었단다.

“회로 최적화만으로 지금의 슈나우저를 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소. 실리콘을 기반으로 한, 기존 반도체 제작 소재들은 이미 물리적인 한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오.”

윈텔도 4GHz 이상의 반도체를 제작할 순 있다.

다만 액체 질소로 냉각하지 않으면 주위 회로와 부품이 녹아버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뿐이다. 그런 반도체는 실험실 외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처음에는 스코브리아늄의 공정 방법을 누군가가 찾아낸 건가 생각하고, 허탈했지. 그게 아니고는 그런 성능이 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오. 헌데 단지 회로 설계만으로 그런 게 가능할 줄은 몰랐소.”

니트론 교수는 아낌없는 찬사를 퍼부었다.

“귀하는 정말로 천재요.”

통역을 통해 그 말을 들은 한서진은 민망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었다. 천재가 아니라 그저 통찰안 능력자일 뿐인데, 세계적인 과학자에게서까지 저런 말을 듣다니.

“과찬이십니다. 저야말로 스코브리아늄을 발견하고, 제5의 힘이 존재한다는 것까지 밝혀내신 니트론 교수님의 학식에 그저 감탄할 뿐입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길을 혼자 개척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귀하 같은 천재가 칭찬해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소.”

두 천재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을 보며, 칼 루이스는 흐뭇한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둘의 대화를 통역했다는 것만으로, 잊지 못할 영광으로 남을 것이다.

“문득 그런 상상을 해봤소. 만약 스코브리아늄과 귀하의 설계 능력을 결합시킬 수 있다면?”

니트론 교수는 주먹을 불끈 쥐 채 부르르 떨었다. 상상만으로도 온몸에서 환희가 피어났다.

“기술문명의 역사를 새로 쓰는 거요. 실로 대단하지 않소?”

“저, 저는 그 정도까지는…….”

“호오, 귀하는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계시는군. 하긴, 슈나우저의 아버지라면 능히 그럴 만도 하오. 오늘 귀하 같은 인물을 만나게 돼서 정말 기쁩니다.”

한서진이 니트론 교수의 페이스에 다소 끌려가긴 했지만, 그래도 서로에게 몹시 유익한 대화였다.

어느덧 세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세 사람은 시간이 그렇게 지났는지도 몰랐다.

헤어지기 전 니트론 교수는 굳게 약속했다.

“최고의 설계를 위해서, 반드시 스코브리아늄 공정을 완성하도록 하겠소. 자가 공정의 성질을 이용하면 머지않아 반드시 알아낼 수 있을 거요.”

“기대하겠습니다.”

칼 루이스는 그것을 보며 몹시 기꺼워했다.

한서진은 회로 설계에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었고, 니트론 교수는 소재 연구의 권위자였다. 저 둘은 경쟁하는 관계가 아닌 서로 협력하는 관계였던 것이다.

둘의 만남이 반도체 시장에 어떤 태풍을 몰아올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즐거웠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자주 연락하시오.”

둘은 전화번호와 이메일까지 교환했다. 니트론 교수는 오랜 지기와 헤어지는 것처럼 아쉬워했다.

그리고 혼자가 된 순간, 그의 표정이 살짝 심각해졌다.

“한 교수, 스코브리아늄에 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였는데…….”

한국대에서 왔으니 당연히 교수일 것이다. 니트론 교수는 멋대로 그렇게 생각했다.

“젊은 나이에 정말 대단해.”

중의적인 의미였다. 젊은 나이에 슈나우저를 제작한 것도 그렇고, 대학 교수까지 된 것도 그렇고. 왜 여태 그런 천재에 관해서 들어보지 못했을까?

“설마 칼 이사 앞이라서 제대로 말을 못했던 건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슈나우저와 Z7을 보면 SJ인더스트리와 ‘한서진 교수’는 협력 관계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공유할 순 없는 법, 제3자 앞에서 중대한 연구 토론을 섣불리 꺼내기는 부담스러웠으리라.

“한국대, 한국대라. 일단 다음 학기까지 급한 것만 끝내놓고 한국대를 한 번 찾아가봐야겠어. 그나저나 한 교수, 아무래도 영어는 잘 못하는 것 같군. 어떡한다?”

연구 주제를 가지고 둘만의 대화를 나누고 싶다.

하지만 한 교수는 영어를 못한다.

그렇다면?

“제임스, 너 한국에서 유학 왔다고 했지?”

“예, 교수님. 왜 그러십니까?”

“한국어 좀 가르쳐다오. 방학 끝나기 전까지 배워놔야겠다.”

내가 한국어를 배운다.

Profit!

============================ 작품 후기 ============================

다음 혹은 다다음 챕터 예고?

"여기 대학에 한서진 교수라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양반 어딨소?"

"네? 그런 교수는 없는데요."

"그럴리가 없어! 빨리 한서진 교수 내놔!"

ps :

개인적 사정 때문에 일시적으로 연재가 늦었습니다. 점심 연재로 바뀐 게 아닙니다.

3시간 안에 한편 더 써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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