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61화 (61/609)

00061  수퍼반도체, 초수퍼컴퓨터  =========================================================================

“슈나우저는 그룹으로 묶을 때 더 놀라운 성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괴물이죠.”

“아, 그 이야기는 정 팀장님한테 언뜻 들었습니다. 검증이 완료되면 자세히 설명해주시겠다고 하셨어요.”

말을 꺼낸 것을 보면 검증이 이제 끝난 모양이다. 하긴, 그러니 스탠포드에도 공급하고 공개적으로 홍보도 하는 것이겠지만.

“일반적으로 병렬 수퍼컴퓨터를 제작할 때 다량의 CPU를 연결함으로써 각각의 성능을 합한 것보다 더 좋은 성능이 나오는 건 당연합니다. 그런데 슈나우저의 경우는…….”

칼 루이스는 노골적으로 뜸을 들였다. 한서진은 애가 타서 마른 침을 꼴깍 삼켰다.

“그 상승치가 예측범위를 아득히 뛰어넘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나요?”

“Z7에는 총 500개의 슈나우저가 들어갔습니다. 각각의 성능 수치를 1이라고 가정했을 때, 토니는 최소 800 이상의 성능을 보일 거라 예상했습니다. 500개의 그룹으로 묶으면 300의 성능 증가가 있을 거라 예상한 거죠. 그대로 됐으면 Z7은 보급형 수퍼컴퓨터에 준하는 성능을 가진 괴물 메인프레임이 됐을 겁니다.”

메인프레임은 수퍼컴퓨터보다 한 단계 낮은 대형컴퓨터를 말한다. 그리고 Z7은 본래 메인프레임의 틀로 제작되었다.

한서진은 의아해서 물었다.

“하지만 Z7은 지금 타이탄을 넘어선 성능을 보이고 있잖아요?”

“그렇습니다. 800% 정도라 예상했는데, 3만%의 성능을 보이고 있지요.”

“…….”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습니다. 마치 각각의 슈나우저가 혼자일 땐 자신의 힘을 온전히 보이지 않다가, 동료들과 협력을 할 때면 모든 잠재력을 토해내는 것 같았어요. 바보 같지만 엔지니어 중에는 이렇게 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칼 루이스는 목소리에 가득 힘을 주고, 말했다.

“슈나우저는 동료와 함께 있을 때 더욱 강해지는, 사회적인 반도체라고요.”

“하하…… 그럴듯한 공상이네요.”

한서진은 억지로 웃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칼 루이스, 아니 이건 SJ인더스트리 임직원 전체의 예측이다.

그리고 그것은 틀리지 않았다.

슈나우저는 에테르 반도체. 각각의 슈나우저는 전자 회선 외에도 에테르로 연결되어, 한층 더 상승된 성능을 낸다.

혼자일 때도 이미 강하지만, 함께 하고 있을 때는 더욱 강해진다. 슈나우저는 그런 반도체였던 것이다.

“그래서 겨우 500개의 슈나우저를 연결하는 것만으로 1,000페타플롭스의 성능을 낼 수 있었지요. 대형 빌딩 두 개 층을 통째로 차지하는 타이탄이 고작 35페타플롭스인데, 겨우 냉장고만 한 크기에서 이만한 성능이 나오는 겁니다.”

“수퍼컴퓨터가 필요한 모든 곳에서 군침을 흘리겠는데요.”

“그리고 컴퓨터를 사용하는 모든 곳에서 슈나우저를 탐낼 겁니다.”

칼 루이스는 씩 웃으며 덧붙였다.

“동시 작업 수행 능력뿐만이 아닙니다. 단일 작업의 처리 속도 역시 비교가 안 되지요. 뭐니 뭐니 해도, 데카코어가 들어 간 8GHz짜리 TPU 아닙니까.”

성능이면 성능, 부피면 부피, 발열이면 발열, 그리고 낮은 전력 소모까지. 그야말로 결점이 없는 수퍼컴퓨터다.

유일하게 결점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가격은 어느 정도나 하실 생각이죠?”

“제대로 받아야 한다면, 10억 불보다 낮게 받아선 안 되겠죠.”

“그럴 마음이 없으시군요.”

“그렇습니다.”

칼 루이스는 여유 있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당분간은 Z7을 팔지 않을 생각입니다. 대신 시스템 리소스를 저렴한 비용, 혹은 무료로 공급할 생각입니다. 물론 신뢰할 만한 공공연구소나 학술단체에 한해서입니다.”

“그것도 괜찮네요.”

공급자가 허락한다면 굳이 비싼 돈을 들여 Z7을 살 필요가 없다. 원격으로 연산 데이터를 입력하고, 그 처리 결과 역시 원격으로 받아보면 그만인 것이다. 보안을 매우 신경 써야겠지만.

“다만 문제는 있습니다. 물론 지금 슈나우저의 수준으로 볼 땐 적어도 10년 간은 아무 위협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네? 무슨 문제인데요?”

“슈나우저의 문제, 아니 한계가 발견되었습니다.”

한서진은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그야 반도체니 만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죠. 애초에 8GHz 짜리로 만들어진 놈이 그 이상의 성능을 낼 순 없잖아요?”

“그런 단일 스펙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집단으로서의 한계를 말합니다.”

“그게 무슨……?”

그제야 한서진도 심상치 않은 낌새를 느끼고 멈칫했다. 칼 루이스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왜 Z7에 슈나우저를 500개만 장착했는지 아십니까? 더 많이 장착하면 더 높은 성능을 낼 수 있을 텐데요.”

“글쎄요. 슬롯이 부족했나요?”

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었다. 증가할수록 성능 강화 폭이 커진다면, 왜 500개 밖에 장착하지 않았는가. 천개, 만 개를 장착하면 훨씬 더 뛰어난 성능을 낼 수 있을 텐데.

“500개가 한계였습니다.”

“네? 잠깐, 설마 그 말뜻은…….”

“천 개, 이천 개를 장착해도 종합 성능은 500개일 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조금의 증가폭도 없었죠.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만, 이게 슈나우저의 집단으로서의 한계인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신기한 문명인 것은 확실하오.”

불현듯 왕이 꺼낸 말에 노신하는 가만히 용안을 살폈다. 다른 시대의 왕국에서는 왕의 용안을 똑바로 쳐다보는 게 불경한 짓이라 했지만, 자비로운 레노지안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떤 점이 그리도 신기하십니까, 폐하.”

그간 왕의 입을 통해 들은, 그 지구라는 곳은 문명이든 사회든 관습이든 미개하기 그지없었다.

사회 구성원이 착취당하는 신분이고, 그렇게 착취당한 자원은 소수에게 집중된다. 믿음은 허황되고, 책임은 공허하며, 거짓이 진실로 둔갑한다. 시민 의식은 두말할 것 없이 낮으며, 다스리는 자는 치세보다는 사욕에 열중한다.

마법사와 신관도 존재하지 않으며, 만능의 힘 에테르가 뭔지도 알지 못하는, 그야말로 미개한 야만의 세상이다. 저주가 만들어낸 세상이기에 저렇듯 혼란으로 가득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곳에도 우리 레노지안과 마찬가지로 기술문명이 있소.”

“그렇다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레노지안의 기술문명보다는 수준이 조금 떨어진다고 하셨습니다.”

레노지안에도 제법 발달한 기술문명이 존재한다. 하지만 에테르 문명 앞에서 기술문명은 효용이 적다. 그래서 기술문명의 발전도는 에테르 문명에 비해 극도로 낮다.

“기술의 발달 수준 자체는 분명히 낮소. 하지만 크고 작은, 거의 모든 사회 영역에 기술문명이 보급돼 있소. 창고에서 잠자는 기술이 대부분인 우리 레노지안과는 기술 보급 수준이 비교조차 되지 않을 거요.”

레노지안의 기술 수준은 상당히 발달해 있지만, 대부분 심심한 마도사들이 취미로 연구한 결과물인지라 창고에 잠자고 있다.

에테르 문명으로 활짝 개화한 세상이니, 바퀴와 도르래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술들은 전부 창고로 갈 수밖에.

“얼마 전에 꿈속에서 짐이 진언으로 하급 마력석을 만들었다고 했을 거요.”

“들었습니다.”

진언, 에테르를 움직이는 신비의 주문.

그 신의 선물로 고작 하급 마력석을 만들고 있다는 말에는 노신하 자신도 얼마나 기함을 했던가.

왕은 진중했다.

“만약 경이라면, 하급 마력석 500개로 에고 주얼을 만들 수 있겠소?”

“……에고 주얼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노신하는 경악해서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에고 주얼. 최소한의 의사 능력을 가진 보석. 지역 순찰 등 단순한 행정업무에 주로 사용하는 녀석이지만, 그 몸값은 상당히 비싸다. 바로 에고 주얼을 만들기 위해서는 미스릴 도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소.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하급 마력석 500개를 서로 연결하여 에테르 공명 현상을 조장하고, 그것을 복잡하게 통제하여 에고 주얼을 만들어냈소. 아니, 에고 주얼과 흡사한 다른 물품이라 해야 할 테지만, 어쨌든 그에 준하는 물품을 만들어냈다는 게 놀랍소.”

왕은 침중하게 강조했다.

“겨우 하급 마력석 500개를 가지고 말이오.”

“500개는커녕 오천만 개가 있어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급 마력석은 하급 마력석일 뿐입니다. 에고 주얼과는 애초에……!”

노신하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반박했지만,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왕이 거짓을 말할 리가 없다는 것을.

“0과 1이었나. 아주 간단한 두 가지 신호를 수도 없이 복잡하게 얽어 무한에 가까운 패턴을 구상하는 기술이 있소.”

“우리에게는 그보다 월등한 신의 언어, 그리고 마법 주문이 있습니다.”

“복잡성만으로 따지면 차원이 다르오. 500페이지의 책 1억 권으로 구성된 마법 주문이 어떠할지 상상이 가시오?”

“…….”

“심지어 그 1억 권에 쓰인 것은 단 하나의 마법 주문이오.”

“그런 주문이 실행 가능할 리가 없습니다. 주문을 영창하는 데만 해도 1억 시간 이상이 걸릴 겁니다.”

500페이지를 1시간에 읽는다 했을 때 가정한 시간이다. 1억 시간의 영창 시간을 갖는 주문, 그런 게 존재할 수가 없다.

왕은 희미하게 조소했다. 그것은 노신하를 향한 게 아니었다.

“걱정 마시오. 인간이 하지 않소.”

“하오면……?”

“그들이 만든 에고 주얼이 실행하지. 그 주문을 실행하는데 단 1초도 걸리지 않소.”

“……그게 정녕 에고 주얼이란 말씀이십니까?”

에고 주얼은 간단한 규모지만 자기만의 자아를 갖고 있다.

Z7이라고 했던가. 500개의 슈나우저를 엮어 만든 그 금속 물체는 충분히 에고 주얼에 비견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러나 레노지안의 에고 주얼이라 해도 500페이지의 책 1억 권을 단 1초 만에 낭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니, 한 권의 책도 1초 만에 낭독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의 주문은 월등하고 고차원적이오. 반면 그들이 창안한 기술 문법은…… 겨우 0과 1, 이 두 가지뿐이오.”

“…….”

“그들은 이 간단한 신호를 무한에 가깝게 엮어 많은 것들을 가능케 했소. 단순함을 복잡함으로 승화시키는 기술만큼은, 적어도 우리 레노지안보다는 낫소.”

그 순간 왕이 별안간 쿡쿡 하고 웃었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노신하는 의아해서 물었다.

“폐하, 어이하여 그리 즐거워하십니까?”

“아, 잠시 재미있는 일이 생각났소. 들어보시오. 방금 말한 대로, 그들은 단순한 신호를 끝없이 엮어 복잡한 패턴을 실행하는데 탁월한 기술 수준을 이루었소. 헌데 오히려 그것이 그들의 목을 조르고 있더군.”

“어떤……?”

“그들의 에고 주얼은 하급 마력석 500개를 감응시켜 만들어낸 것이오. 그리고 에고 주얼의 의사 능력을 더 강화시키겠다고, 하급 마력석을 더욱 더 많이 연결했지.”

“아…….”

그제야 왕이 웃는 이유를 알아차리고, 노신하도 큭큭 웃었다.

그들이 보기에는 멍청하기 그지없는 시도였기 때문이다.

“하급 마력석의 순환 주기 한계치는 1서큐레이션이지요. 한계에 도달한 것도 모르고 무작정 개수를 늘려 다음 순환 주기에 도달하려 하다니…… 하긴, 거짓된 세상에서는 마법이 존재하지 않으니 그런 어리석은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겠군요.”

“지금 짐에게 어리석다고 한거요?”

“……폐하, 꿈에 너무 심취하지 말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미안하오. 하도 수치스러워서 그만 잠깐.”

왕은 사과했다.

============================ 작품 후기 ============================

“어째서 혼자일 때보다 여럿일 때 더 강해지나요?”

―우리는 신성한 에테르를 통해, 모든 클럭과, 모든 비트를, 함께 나누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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