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59화 (59/609)

00059  미스릴과 에테르  =========================================================================

세미나는 속행되었다.

다만 주제는 니트론 교수의 스코브리아늄 성질 실증 실험으로 바뀌었다. 장소도 대강의실에서 제1물리실험실로 바뀌었다.

물론 모든 이들이 실험실에 입장한 건 아니었다. 학생들은 대강의실에 그대로 남아, 원격으로 전송하는 영상을 통해 실험에 간접적으로 참여했다.

학생들은 실험실에서 원격으로 흘러나오는 니트론 교수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정확히 1g의 스코브리아늄 덩어리를 정육각형으로 정확히 배치합니다. 중요한 것은 무게와 위치 모두 정확해야 한다는 겁니다.」

정육각형의 중심에는 커다란 영구 자석이 놓여 있었다.

로봇팔이 여섯 개의 스코브리아늄 덩어리를 정확한 지점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하나 더, 스코브리아늄 덩어리는 구체 형상으로 고정시켜야만 합니다. 완전한 구체에 가까울수록 좋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로봇팔이 구체 형태의 스코브리아늄을 정확히 내려놓는 순간, 대강의실에서는 탄성이 튀어나왔다.

“어? 저게 뭐야?”

자기장 측정 그래프의 수치가 한순간에 0으로 변했다.

기존 물리법칙을 초월하는 현상에 학생들은 물론이고, 세미나에 참여한 교수들까지 놀라서 웅성거렸다.

니트론 교수의 음성이 덤덤하게 흘러나왔다.

「단지 정확히 1그램의 구체 형상 스코브리아늄 덩어리를 정육각형으로 정확히 배치했다는 것만으로, 그 내부의 모든 자기장이 사라졌습니다.」

“……!”

「이와 같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저는 수많은 시간 동안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Z7을 통해 제가 세운 가설을 검증할 수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 외에도 미지의 제5의 힘이 존재한다고 말입니다.」

찬물을 끼얹은 듯이 고요해졌다.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그들은 우수한 학생들이었다. 니트론 교수의 강연이 의미하는 심오한 무게를 깨닫고, 입을 다문 것이다.

어떤 이들은 심각하게 인상을 쓰며, 종이에 대고 갖가지 계산 공식을 휘갈기기도 했다. 또 어떤 이들은 팔짱을 낀 채 머릿속으로 암산을 거듭했다.

자연계에 알려지지 않은 제5의 힘이 존재한다?

물리학계 전체가 들고 일어설 발표였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런 대발표가 이런 자그마한 세미나에서 이뤄진 것이다.

그것도 평범한 과학자가 아닌, 노벨수상자의 입에서.

“질문이 있습니다.”

어느 용감한 학생이 가장 먼저 고요를 깼다. 그것을 기점으로, 폭발처럼 질문과 항의, 반박이 터져 나왔다.

그 역동적인 흐름 속에 한서진은 홀로 비껴 서 있었다.

그는 얼어붙은 자세 그대로, 육각형으로 배치된 미스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저건……?’

비록 영상이지만, 그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통찰안이 분명히 보여주고 있었다. 저 신비한 배치가 감추고 있는 진실을.

“Clar ssedno.”

“네? 형? 뭐라고 하신 거예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한서진은 미스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을 얼버무렸다.

Clar ssedno.

통찰안이 보여주는, 미스릴 여섯 개의 배치가 의미하는 단위.

저것은 바로 에테르 언어, 즉 에테르를 통제하는 힘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였던 것이다.

슈나우저 회로에 복잡하게 새겨 넣은 에테르 언어와 본질적으로 같다. 정확히는 Clar ssedno가 수없이 모여서 슈나우저의 에테르 언어를 구성하는 원리다.

즉 슈나우저에 새긴 에테르 언어가 ‘완성된 프로그램’이라면, Clar ssedno은 bit, 즉 1과 0의 단위에 해당한다.

니트론 교수는 에테르 언어의 가장 기초적인 수준에 해당하는 단위를 스스로 밝혀내고, 재현한 것이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듯 보이지만, 실로 위대한 한 걸음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아주 기초적이고 간단한 실험이지만, 그래서 그 증명 효과는 대단했다. 단지 스코브리아늄을 일정한 법칙에 따라 나열한 것만으로, 일정 범위의 자기장을 완전히 사라지게 했으니.

실험에 사용된 영구 자석은 자기장 반응이 완전히 소실했으나, 놀랍게도 스코브리아늄 배치를 흐트러뜨리는 것만으로 다시 자기장 반응이 돌아왔다.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학생들은 흥분했고, 니트론 교수에게 질문 폭탄을 퍼부었다.

수없이 쏟아지는 질문의 홍수를 겨우 벗어나 무대 뒤로 돌아온 니트론 교수는, 자신을 기다리던 남자에게 덤덤히 물었다.

“이제 됐습니까?”

“충분합니다.”

“약속은 지키시오.”

“물론입니다. 이번에 생산되는 Z7을 스탠포드에 가장 먼저 공급하겠습니다.”

그제야 지친 듯이 만족하는 니트론 교수를 지켜보며, 칼 루이스는 조용히 씩 웃었다.

SJ인더스트리는 처음부터 스탠포드에 Z7을 공급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니트론 교수가 Z7을 이용해 검증한 이론 체계를 확인하고는 전략을 바꿨다. 그는 지속적인 연구를 위해 Z7이 절실히 필요한 입장이었고, 칼 루이스는 Z7을 미끼로 그를 흔들었다.

결국 그는 연구 성과를 발표하면서, 덤으로 Z7의 놀라운 연산 능력을 제대로 홍보해주었다.

‘됐다, 계획대로.’

니트론 교수는 초당 100경에 달하는 Z7의 연산 속도를 제대로 언급해 주었다. SJ인더스트리 직원이 그의 설명을 놓치지 않고 생생하게 촬영했다.

오늘 이 발표가 세상을 흔들어놓을 때, Z7의 연산 능력을 설명하는 장면은 UCC로 편집되어 널리 퍼져 나갈 것이다.

오케스트라는 끝났고, 커튼콜의 차례가 왔다.

이제는 후원자가 나서서 감사를 표시할 때, 칼 루이스는 넥타이를 다듬고는 무대로 나섰다.

“안녕하십니까. 최고의 수퍼컴퓨터 Z7을 제작한 SJ인더스트리의 이사 칼 루이스라고 합니다.”

한국대 반도체공학부의 스탠포드 행사는 모든 일정이 일그러지고 말았다.

둘째 날에 니트론 교수가 학계에 엄청난 핵폭탄을 투하해버렸기 때문이다. 전 세계 물리학계가 들고 일어나 맹공을 퍼부었고, 학계는 혼잡했다.

심지어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마저 그 흐름에 합세한 상태니, 일정이 완전히 엉망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싫어하는 이는 없었다. 오히려 역사적인 장소와 순간에 있을 수 있음에 모두들 기뻐하고, 흥분했다.

미국 전역, 그리고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과학의 권위자들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그러나 자신만만하게 달려온 그들은 스코브리아늄이 보이는 미지의 현상에 큰 충격을 받았다.

“믿을 수가 없소.”

“정말 미지의 제5의 힘이 존재하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인데…… 그래도 이건 말이 안 돼!”

혼란과 부정, 경악은 곧 스코브리아늄의 재조명으로 이어졌다.

“도대체 이 물질은 어떤 원소인가?”

“설령 제5의 힘이 정말로 존재한다 치더라도, 왜 무게와 형태, 위치를 일정하게 정확히 배치하는 것만으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거지?”

전 세계의 권위자들이 모인 스탠포드는 지식에 대한 탐구욕으로 뜨거웠다. 과학자들은 국적이나 나이, 출신 대학을 가리지 않고 자유롭게 토의했다. 맹목적인 반박은 있어도 품격 없는 비방은 없었다.

그리고 그 열기의 중심에서 Z7은 톡톡히 홍보 효과를 누렸다.

“허, 이게 정녕 초당 100경의 연산이 가능한 수퍼컴퓨터란 말이오?”

“이렇게나 작은데 어찌…….”

세계 최고의 수퍼컴퓨터인 타이탄의 경우, 가로세로 수십 미터에 달하는 면적을 차지한다. 그러나 Z7은 겨우 가정용 대형 냉장고만 한 사이즈일 뿐이다.

부피는 물론이거니와 소모 전력, 발열 역시 비교가 될 수 없을 만큼 낮다. 그런데 성능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득한 격차를 자랑한다.

제5의 힘의 존재를 놓고 스탠포드를 중심으로 전 세계 학계가 달궈진 와중에, Z7이 가진 성능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과학자들도 넘쳐났다.

칼 루이스는 자신만만하게 그들을 상대했다.

“Z7의 놀라운 성능은 바로 이 특수한 ‘종합처리장치’ 덕분입니다.”

“종합처리장치?”

“이 손톱만 한 칩 안에 메인보드와 CPU, GPU 등 컴퓨터의 핵심 부품이 모두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중앙처리장치가 아닌 종합처리장치라 부릅니다.”

“호오.”

과학자들은 탄성을 지르며 놀라워했다. 일반 CPU만 한 크기도 아닌, AP만한 크기의 저 칩에 그 부품들이 다 집약되어 있단 말인가?

“Z7에는 이 TPU(종합처리장치)가 약 500개 정도 들어갑니다.”

“……그렇게나 적은 수로 그런 연산 능력이 가능하단 말인가.”

과학자들은 신음했다. Z7의 크기를 보면 500개의 TPU가 들어간다는 말이 사실이지만, 여전히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미국 최고의 수퍼컴퓨터 타이탄B에 들어가는 CPU의 개수는 무려 수백 만 개가 넘는다. 그런데 겨우 500개의 연산코어로 1,000페타플롭스의 성능을 낼 수 있다니.

칼 루이스는 슈나우저가 더욱 잘 보이게 들어 올리고는 빙그레 웃었다.

“이 TPU는 내부에 10개의 코어와 20개의 쓰레드의 구성을 갖추고 있으며, 통상적인 냉각 하에서 8GHz의 성능을 자랑합니다. 그야말로 괴물이죠.”

“뭐라고요? 그게 정말입니까!”

“단순히 작동 클럭수만 높은 게 아니라 그에 따른 연산 능력의 최적화도 이루었습니다. 이 TPU 하나하나가 개인용 워크스테이션 컴퓨터에 버금가는 성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녀석은 집단으로 묶어놓았을 때 더 놀라운 성능을 발휘합니다. 수가 늘어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성능이 증가하는 거죠.”

어느 과학자가 물었다.

“그 TPU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칼 루이스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질문이 나온 것이다.

“슈나우저라고 불러 주십시오.”

세미나는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이어졌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과학자들은 모든 국경과 장애를 넘어 자유롭게 토론했다. 그들은 나이 어린 학생이라 해서 학술적 토론을 배척하지 않았고, 그에 용기를 얻은 한국대 학생들도 자유롭게 그들 사이에 뛰어 들었다.

권위를 탈피한 순수한 과학토론의 장, 그 흐름을 맞이한 학생들은 자신도 몰랐던 놀라운 성장을 이룰 것이다.

그 흐름의 중심에는 니트론 교수가 있었다. 해수에서 스코브리아늄이라는 신원소를 발견하여 추출하고, 또 그로 인해 제5의 힘으로 추정되는 힘을 발견한 그는,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의 영웅이었다.

한서진은 용광로 같은 그 분위기에 끼지 못했다.

경계선 밖의 사람처럼 크게 한 발자국을 비켜난 채, 내부에서 벌어지는 용광로 같은 흐름을 주시했다.

‘니트론 교수님…….’

그는 놀랍게도 Clar ssedno, 에테르 언어를 구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단위를 스스로 깨달았다.

하지만 Clar ssedno라는 개념을 알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에테르 언어의 존재를 알지 못하니까.

‘그래서 더 대단해.’

한서진은 인정했다.

자신은 통찰안이 보여준 덕분에 에테르와 그것을 통제하는 언어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니트론 교수는 통찰안의 도움 없이 에테르 언어의 가장 기본 단위를 깨달은 것이다.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한서진은 가슴이 터질 듯이 두근거렸다.

‘만약, 저 교수님의 지성과 내 통찰안을 하나로 합치면?’

과연 어떤 결과가 벌어질까. 감히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한서진은 용기를 내어 니트론 교수에게 다가갔다. 이 흥분된 마음을 어떻게든 그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그러나…….

“Hello, excuse me. I'm fine thank…….”

영어의 장벽은 높았다.

============================ 작품 후기 ============================

이러려고 정지원 미국 보낸 겁니다.

다~아 제 설계입니다ㅋ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