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58화 (58/609)

00058  미스릴과 에테르  =========================================================================

‘칼 루이스 씨가 왜 여기에?’

‘미스터 한이 어째서 미국에?’

둘은 빠르게 눈빛을 교환했다. 적어도 이 자리는 회포를 풀기에 적당한 곳은 아니다. 칼 루이스는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Z7의 테스트 사용을 원하는 기관이 너무 많아서요. 아시겠지만 이미 두 번이나 대여 기간을 늘려드렸습니다.”

“이번 시뮬레이팅이 끝날 때까지만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스탠포드는 귀하의 모교 아닙니까?”

백발이 성성한 노교수는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두 손을 모았다. 한국대 학생들은 벙쪄서 그 광경을 바라봤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죄송합니다, 교수님. 그럼 이만.”

“미스터 칼! 제발! 안 되오! 이렇게 갈 수 없어! 못 보내!”

칼 루이스는 후다닥 그 자리를 뜨려고 했지만, 니트론 교수는 그의 옷자락을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결국 칼 루이스는 그를 질질 끌면서 도망치듯이 이탈해야 했다.

“…….”

“…….”

“우리가 지금 뭘 본 거야?”

학생들은 멍하니 서서 중얼거렸다.

니트론 교수. 노벨상 수상자이자 실리콘을 대체할 차세대 반도체 물질, 스코브리아늄을 발견한 대과학자.

그런 그가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며 우기는 모습을 보이다니, 그것도 멀리 외국에서 견학 온 학생들 앞에서 말이다.

“자, 자! 저를 따라 오세요! 다음 장소는 우리 스탠포드의 자랑, 반도체 실험 연구실입니다!”

콜베인 교수가 빨개진 얼굴로 급히 나서서 뒷수습을 했다. 겨우 분위기를 전환한 그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니트론 교수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봤다.

‘이런 때만이라도 제발 체통 좀 지키시지.’

끝없는 지식의 탐구. 니트론 교수의 그런 성격은 좋은데 문제는 결정적일 때 체면, 체신을 전혀 안 가린다는 점이다. 바로 아까처럼.

반도체 실험실로 향하면서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근데 아까 Z7 어쩌고 하지 않았어?”

“나 들었어. Z7 대여 끝나서 회수해간다는 말에 랩 전체가 뒤집어졌나 봐. 니트론 교수님은 이번 시뮬레이팅이 끝날 때까지만 대여 연장해달라고 사정하시는 것 같던데?”

Z7은 IBM의 실패작으로, 한국은행에서도 비웃음을 받고 공개 도입에서 탈락된 모델이었다. 심지어 얼마 전 IBM은 메인프레임 사업을 주관하는 자회사를 매각해버렸다.

그런데 스탠포드에서, 그것도 스코브리아늄의 발견자가 대여 연장을 매달린다? 그 정도로 Z7의 컴퓨팅 능력이 뛰어나단 말인가?

‘어떻게 된 거지? Z7은 쓰레기라고 우리나라에서도 퇴짜를 맞았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IBM이 아예 매각을 했고…….’

‘스탠포드에서 더 쓰게 해달라고 매달릴 정도란 말이야?’

일부 학생들이 의문을 품는 동안, 한서진도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 중이었다.

‘몇 몇 기관에 시험 가동용으로 제공한다더니, 그중에 스탠포드도 있었구나. 대단한데.’

스탠포드 같은 최고 명문 대학에 시험 사용으로 제품을 집어넣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하물며 IBM의 메인프레임은 시장에서 퇴출되었는데 말이다.

‘회사에서 다들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구나.’

한서진은 괜히 뿌듯해졌다.

다음 장소는 반도체 실험 연구소였다. 세계 톱클래스 명문대학답게 연구소는 온갖 비싼 설비로 가득했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몰려든 석학들이 한눈을 팔지 않고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스탠포드 전자공학부를 둘러보는 동안 학생들은 위축이 되기도 했고, 자극을 받기도 했으며, 세계무대를 향해서 가슴이 불타기도 했다.

한서진도 그들 사이에 섞여 스탠포드 전자공학부의 위용을 감상하고 있는데, 주머니 속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정 팀장…… 아니, 정 이사님이?’

이제는 SJ인더스트리의 이사인 정지원이 보낸 메시지였다.

―서진아, 방금 칼 이사한테 들었는데 너 지금 미국에 와 있냐? 스탠포드에서 널 봤다는데?

―네, 맞아요. 저 지금 스탠포드 견학 중입니다.

―혹시 한국대 과행사로 온 거냐?

―네, 맞습니다. 아참, 저 니트론 교수라는 분 봤습니다. 그 분이 스코브리아늄을 발견하신 분이라면서요?

정지원은 잠깐 동안 답장이 없었다. 바쁜가, 하고 생각하던 한서진은 문득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너, 설마 여태 그분을 몰랐던 거냐?

―네.

한서진은 창피함으로 범벅이 된 채 답장을 보냈다.

―너는 참…… 아니, 하긴 그럴 수도 있지. 아무튼 이것도 우연이구나. 마침 스탠포드 공대 수퍼컴퓨터 센터에 Z7을 제공하려고 했는데.

―수퍼컴퓨터 센터요?

―그래, 스탠포드가 선택한 수퍼컴퓨터라 하면 엄청난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지. Z7이 한국에서 당한 개망신을 완전히 지워버리고도 남는다.

그래서 Z7을 스탠포드에 테스트 용도로 제공했던 거구나. 한서진은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니트론 교수님이 Z7 대여를 연장해달라고 매달리시던데요.

―들었다. 그 사람이 홀딱 빠졌지. 우리로서는 매우 잘된 일이야. 그 사람이 스탠포드 공대에서 가지는 영향력이 엄청나니까.

―그럼 무난히 입점할 수 있겠군요.

―그렇지.

정지원은 의미심장한 한 마디로 대화의 끝을 맺었다.

―내일 우리 회사가 스탠포드에서 이벤트를 하나 열 거야. 놓치지 말고 꼭 보도록 해.

첫날 일정은 스탠포드 전자공학부 시설을 둘러보는 것으로 그렇게 마쳤다.

그리고 둘째 날이 밝았다.

“오늘은 일정대로 전자공학부에서 반도체 세부 전공 학생들 및 교수들과 간이 세미나를 합니다.”

최유선 교수는 덤덤히 말하며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밤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는지, 학생들은 하나같이 퀭한 눈을 하고 있었다. 세미나를 대비해서 한 자라도 더 외우려고 잠을 설친 모양이다.

세미나 장소는 전자공학부 대강의실이었다. 스탠포드측은 의자를 전부 치우고, 원형 테이블 수십 개를 갖다 놓았다. 세미나 장소가 왜 이러냐니까 자유로운 분위기를 위해서란다.

스탠포드측 학생들은 이미 도착한 상태였다. 한국대 학생들은 잠시 쭈뼛거렸다. 잡종개도 자기 집 안마당에서는 한수 먹고 들어간다는데, 하물며 세계 최고급 순혈 아닌가.

“세미나를 시작하기 전, 멀리 한국에서 우리 스탠포드를 찾아주신 학생 여러분과 재학생 여러분들에게 알려드릴 간단한 발표가 있겠습니다.”

단상에 나선 인물은 니트론 교수였다.

의외의 인물이 올라오자 가벼운 소란이 일었으나, 곧 너나 할 것 없이 그의 연설에 집중했다. 한서진만이 어리둥절해서 옆의 학생들에게 물었다.

“야, 저분이 뭐라고 하시는 거야?”

“뭐 발표하실 게 있나 봐요. 들어보고 말씀드릴게요.”

뭐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으니 영 답답했다. 그렇다고 통역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니트론 교수는 무언가 설명을 시작했다. 스탠포드대, 한국대를 가리지 않고 학생들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이따금씩 오오 하는 함성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한서진은 갑갑해서 죽을 것 같았다. 대체 지금 무슨 내용을 말하고 있는 거야?

‘설마 이게 정 팀장님이 말한 이벤트는 아니겠지?’

아무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SJ인더스트리로 추측되는 직원은 근처에 보이지 않으니.

그때였다.

“우와아아!”

갑자기 대강의실의 모든 학생들이 번쩍 함성을 질렀다. 두 팔을 높이 들어 올리며 환호를 올리자 한서진은 당황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다들 왜 저러는 거야? 나도 좀 알려 줘!

“재혁아, 무슨 일이야? 지금 니트론 교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신 건데?”

“형, 잠시만요. 지금 연설 중이시니까 다 듣고 난 다음에 말씀드릴게요.”

모든 과목에서 A+를 따내며 학과 1등을 찍은 게 불과 얼마 전이건만, 혼자 다른 시간 속에 내동댕이쳐진 듯한 기분이다.

니트론 교수의 연설이 끝을 맺자 김재혁은 흥분한 얼굴로 방방 뛰었다.

“형! 형! 놀라지 마요! 니트론 교수님이 스코브리아늄의 자가 공정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그 시뮬레이션 검증 과정에 관해서 강의를 하셨어요!”

“자가 공정?”

“스코브리아늄은 놀랍게도 자기 스스로 입자를 재배열하는 성질이 있대요! 그런 성질을 찾아내고, 어떤 외부 자극이 그런 변화를 유도하는지 조사를 했는데, 놀랍게도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물리적 힘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거예요! 놀랍죠?”

“뭐야?”

“단순한 추론이 아니라 세계 최고의 수퍼컴퓨터를 동원해서 계산한 결과래요! 이제 실증하는 작업만 남았다고, 오늘 세미나 이후에 그 실증 작업을 이 자리에서 공개하실 거라네요!”

한서진은 흠칫 놀라서 단상 위의 니트론을 바라보았다. 뭔가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주시했다.

‘어떻게 미스릴의 고유 성질을?’

미스릴은 에테르에 반응하여 스스로 형질을 변화시킨다. 일반 과학 상식으로 봤을 때는, 아무런 외부 자극이 없는데도 형질이 변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저 사람은 대체…….’

헌데 니트론 교수의 말을 들어보면, 그는 에테르라는 미지의 힘이 미스릴에 간섭한다는 가설을 세우고, 이론적으로는 확신에 가까운 신뢰를 얻은 듯하다.

관측할 수도, 검출할 수도 없는 미지의 힘, 에테르.

그 존재 가능성에 대해서 의심을 품은 최초의 인물이 나타난 것이다.

‘설마…… 아니야. 에테르 언어는 나 밖에 몰라.’

한서진은 흥분을 가라앉혔다.

에테르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먼저 에테르 언어를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통찰안을 쓸 수 있는 자신만의 특권이다. 제아무리 니트론 교수가 뛰어나도, 그의 사고가 에테르 언어의 존재까지 닿을 수는 없을 것이다.

“스코브리아늄의 비항상적 형질 유동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물리법칙 혹은 그에 해당하는 힘이 존재한다는 가능성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그 힘의 존재를 믿으며, 앞으로 남은 과학자의 인생을 그 힘의 검출과 증명에 쏟아 붓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와아아아! 와아아!”

“니트론! 니트론!”

“교수님, 멋져요!”

니트론 교수는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기의 대발견에 관해서 연설을 했음에도, 그다지 기뻐하는 듯이 보이지 않았다.

“자, 그럼 제가 이런 가설에 도달하고, 또 주관적 확신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준 지원군을 소개하겠습니다. 바로 세계 최고의 수퍼컴퓨터, Z7입니다.”

그 순간 강단의 한쪽 벽이 열리며, 직사각형 모양의 커다란 금속 물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정용 대형 냉장고 정도의 사이즈로 보이는 물체는 어두운 은회색으로 반짝거렸다.

“Z7은 신생 수퍼컴퓨터 제조업체 SJ인더스트리가 심혈을 기울여 탄생한 최고의 수퍼컴퓨터로, 초당 연산 속도가 무려 100경 번에 달합니다. 기존 세계 1위인 타이탄의 초당 3경 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치입니다. 이 놀라운 성능 덕분에, 저는 지난 몇 년 동안 줄곧 실패한 제 가설의 이론적 검증을, 불과 열흘 만에 검토할 수 있었습니다.”

한서진은 속으로 크게 놀랐다. 정지원이 말한 이벤트가 설마 이거였단 말인가?

============================ 작품 후기 ============================

개인적인 사정으로 연참이 어려울 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ㅠㅠ

죄송해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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