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55 미스릴과 에테르 =========================================================================
‘에테르가 왜 반응하지 않지?’
한서진은 다른 의미에서 놀랐다. 에테르는 미스릴에 반응하긴 했으나, 그건 미스릴이 가지는 성질에 의거한 통상적인 반응일 뿐이었다.
슈나우저를 무수히 장착한 Z7이 우렁차게 가동했을 때 보였던 에테르의 폭발을 생각하면, 저것 이상으로 활발한 반응을 보여야 정상이다.
헌데 미스릴 반도체가 작동 중임에도 불구하고, 에테르는 그 이상의 작용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분명히 에테르 언어를 제대로 새겼는데?
혹시 회로에 새긴 에테르 언어가 슈나우저와는 다른 내용을 담고 있던 것은 아닐까?
‘내용을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네. 분명히 제대로 새겼는데, 왜 에테르가 다른 작용을 안 하지?’
한편, 한서진과 별개로 박효산 교수는 또 그대로 크게 놀라고 있었다.
“허어, 이게 대체 어떻게 작동하는 거지? 서진아, 넌 뭐 좀 짐작 가는 거 있냐?”
“저, 저도 모르겠습니다.”
“허어, 허어.”
박효산 교수는 연신 혼란 섞인 감탄을 내뱉었다.
일반적인 공정 방법으로는 스코브리아늄 반도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스코브리아늄이 반도체로서 올바르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처리가 필요하다. 그 특수 처리는 막대한 비용이 소모되며, 이는 대량 공정이 불가능함을 뜻한다.
그런데 지금 일반적인 공정 과정을 거친 반도체가 정상 작동하고 있으니, 박효산 교수로서는 미치고 펄쩍 뛸 일이었다. 도대체 잠깐 랩을 비운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일단 테스트, 테스트부터 마저 한다.”
박효산 교수는 두 손으로 뺨을 짝 친 뒤 바로 성능과 안정성 테스트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결과는 몹시 만족스러웠다. 놀랍게도 비글 CPU에 준하는 성능과 안정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안정성 같은 것은 좀 더 테스트를 해봐야겠지만 이 정도 성능이라면…… 충분히 시장성이 있어. 근데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그게, 태규 선배가요.”
“지금 바로 태규 깨워서 물어볼까?”
“…….”
“솔직히 말하지?”
당장이라도 최태규를 걷어차서 깨울 기세라 한서진은 식은땀만 흘렸다. 머뭇거리던 그는 결국 인정했다.
“……제가 만들었습니다.”
“공정 과정이 어떻게 된 거야?”
“그냥 일반 공정으로 했습니다. 다 똑같았어요.”
“그런데 작동한다고? 이게 말이 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그냥 심심해서 정말로 일반 공정으로는 작동이 안 하나 한 번 해본 건데, 이렇게 작동할 줄은 몰랐습니다.”
“…….”
박효산 교수의 표정에 어처구니없다는 감정이 떠올랐다. 지금 저걸 변명이라고 하는 거야?
“내가 그런 말에 납득할 거라고 생각하냐?”
“납득 못하셔도 사실인걸요.”
“많이 노련해졌구나. 학기 초만 해도 풋풋했는데.”
“방학이라서 그렇습니다. 학점이 이미 나왔잖아요.”
“내년에는 내 수업 안 들을 생각이냐? 내가 담당하는 전필 과목이 상당한데.”
“교수님이 감정에 치우친 학점을 주시지는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 감정에 치우신 결정 덕분에 네가 편하게 지난 학기를 다녔다는 생각은 안 해봤냐? 누구 때문에 내가 교수진을 설득해서 B코스를 도입한 건데.”
“아, 그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깍듯하기 그지없는 태도, 아무리 찔러도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것 같다.
조금 전의 난처함을 말끔히 지운 당당한 표정을 보던 박효산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설계도나 가져와 봐.”
“예.”
회로 설계도를 꼼꼼히 확인한 박효산 교수는 의아함을 띤 눈빛으로 그를 돌아봤다.
“이건 KE-013 설계도가 아닌데? 골격은 동일하지만 전체적으로 미묘하게 달라.”
“좀 최적화가 덜 된 것 같아서 제가 손을 조금 봤습니다. 이래봬도 반도체공학기사잖습니까.”
“어차피 실험의 일련이니까 그건 상관없고, 네가 추가한 변경 작업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최적화는커녕 오히려 불필요한 더미만 늘어난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작동은 하고.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저도 막상 설계 수정을 하고 나니 뭔가 전체적으로 이상해서 실패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쇼트나 일어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
“네.”
태연히 대답을 하면서, 한서진은 미스릴 반도체를 흘끔거렸다.
그는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왜?’
분명히 에테르 언어를 회로 전체에 새겼는데, 에테르의 작용은 활성화되지 않았다.
언어가 잘못된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가.
그 내용을 읽을 수가 없으니 한서진은 미치도록 답답했다. 이럴 때는 통찰안의 제한이 아쉬웠다. 그냥 그 미지의 언어도 뜻을 전부 알 수 있게 해주면 안 되나?
‘슈나우저와 저놈의 차이가 대체 뭘까?’
힌트조차 없으니 답답했다. 왜 슈나우저는 실리콘 기반이면서도 에테르 작용이 일어나고, 저건 미스릴 기반이면서도 에테르 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걸까?
표정을 싹 바꾼 박효산 교수가 흐뭇하게 말했다.
“그나저나, 어쨌건 잘했다. 네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든 소 뒷걸음질을 쳐서 쥐를 잡았든, 어쨌든 간에 성공작이라 할 만한 게 나왔구나.”
“성공작이라고 하기에는…….”
“이 정도 성능이면 거의 비글에 준해. 스코브리아늄 반도체를 일반 공정으로 작동하게 만든 것도 대단한데, 연구실 시제품이 비글에 준하다니. 누가 뭐라 해도 비글은 세계 최강 CPU 아니냐.”
“…….”
슈나우저라는 흉폭한 괴물이 지금 비글의 목을 사정없이 물어뜯기 위해 쇠창살이 열리기만을 학수고대 중이라는 걸 알면, 교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슈나우저와 비글은 크기나 성능 차이에서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지금 갓 탄생한 따끈따끈한 저놈도 마찬가지다.
“아무튼 수고했다. 이거 잘하면 CPU 판도가 크게 변할 수도 있겠다.”
그런 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 교수님. 한서진은 그 말이 무심코 나오려는 걸 필사적으로 참았다. 슈나우저는 아직 공개할 수 없는 기밀이었다.
“너 이 녀석, 알고 보니 비글도 혹시 너 혼자 개발하고 그런 거 아니냐?”
“넷?”
“농담인데 뭐 그리 놀라냐. 아무튼 수고했다. 의도한 것이든 실수가 만든 성공이든, 네 덕분인 건 사실이다. 네가 정말 복덩이구나. 대단해.”
진심 어린 칭찬에 한서진은 괜히 멋쩍었다. 한편으로는 기분이 좋고 뿌듯했다.
‘그래, 박 교수님 정도면 정말 천사시지.’
다른 랩에서는 교수가 대학원생을 착취하고, 연구 결과를 뺏어서 자기 걸로 한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그에 비하면 박효산 교수는 어떤가. 매사에 공평하고 합리적이며, 대학원생의 실적을 빼앗지도 않고 정당하게 인정해준다.
연구와 실험을 혹독하게 밀어붙이는 점은 좀 있지만, 한국을 통틀어 봤을 땐 괜찮은 학자다.
빅 데이터 산출에 매몰돼 있다가 헐레벌떡 달려온 안홍철도, 죽은 듯이 자다가 일어난 최태규와 김현진도, 미스릴 반도체가 정상 작동하는 것을 보고 놀라워했다.
“와, 이게 정상 작동하다니…… 서진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본인도 모르겠단다. 그냥 손 가는 대로 선을 그었을 뿐인데 이렇게 됐다는구나. 정말 천재지 않냐?”
“……손 가는 대로 그었다는 말은 한 번도 안 했는데요.”
“아무렴 어때. 천재라는 것은 변하지 않지.”
아무래도 이거 가지고 한몫 단단히 놀리려나 보다. 한서진은 체념을 안고 입을 다물었다.
세 대학원생도 팔을 걷어붙이고 테스트 측정에 나섰다. 시제품은 나무랄 데 없는 성능이었다. 작동 클럭, 안정성, 다중연산 능력 등 뭐 하나 떨어지는 부분이 없었다.
특히 놀라웠던 것은 발열이 거의 없다는 점. 초전도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열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다른 성능은 비글에 준할 만큼 비슷하지만, 발열이 없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이점입니다. 비글은 자기 목을 사정없이 물어뜯길 준비를 해야 할 거예요!”
“스코브리아늄 반도체로 비글의 그 야들야들한 목을 콱 물어버리지 말입니다.”
“진짜 서진이는 대단한 것 같아요. 손 가는 대로 긋기만 하면 작품이 튀어나오나?”
“…….”
아마 한동안은 저 멘트에 시달려야 할 것 같다.
‘그나저나 내가 봐도 미스릴은 신기하네. 초전도체도 아닌데 말이야.’
정확히 말하자면 열이 발생하지 않는 건 아니다. 단지 일정 이상으로 온도가 올라가지 않는 것이다. 최대의 부하를 걸어 30분 이상 작동시켜도 코어 온도가 20도를 넘지 않았다.
비글도 월등한 성능에 비해서 발열이 적긴 하나 이것과는 비교도 안 된다. 이들이 흥분하는 이유였다.
‘이거라면!’
‘이 놈이라면!’
‘비글을!’
충분히 가능하다. CPU계의 독재자, 비글을 처단할 수 있다! 동시에 박효산 랩의 이름을 널리널리 알리고, 유수의 대학들이 사정없이 러브콜을 보내오리라!
한서진은 장밋빛 꿈이 가득한 연구실 선배들을 애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선배님들, 비글은 보신탕에 오를 날만 잡아놓고 있는데요.’
비글의 처형일은 결정되었다. 심지어 비글로 큰 재미를 보고 있는 맥플조차 그 사실을 모른다.
바로 슈나우저가 세상에 데뷔하는 날이다. 그날, 비글은 시장에서 흔적을 감춰야 할 것이며, 전 세계는 슈나우저의 흉악한 성능에 경악하리라.
‘그나저나 에테르가 반응하지 않는 원인을 알아야 할 텐데.’
에테르 언어를 새겨 넣어도 반응이 없다. 이래서야 미스릴로 슈나우저 2.0을 만든다는 원대한 꿈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미스릴과 에테르, 그 둘을 하나로 엮을 수만 있다면 정말 무시무시한 녀석이 탄생할 텐데. 손톱만 한 칩 하나로 수퍼컴퓨터에 버금가는 그런 녀석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좋아, 서진아. 이번에는 다른 설계도를 한 번 수정해 봐라.”
“네?”
“마음 가는 대로, 손 가는 대로 선을 그어보란 말이야. 그래야 이 녀석이랑 비교를 해서 원인을 찾지. 지금 같아서는 어떤 것 때문에 스콥 반도체가 정상 작동을 하는지 짐작도 안 간다.”
“별로 소용없을 것 같은데요. 저 진짜 아무것도 모르고 그은 거라니까요?”
“그 아무것도 모르고 긋는 거, 몇 번 더 해보란 말이야.”
등쌀을 이기지 못한 한서진은 다른 반도체 설계도 몇 개도 손을 댔다. 그의 눈에만 보이는 에테르 언어를 회로 전체에 빼곡하게 각인시켰다.
그러나 반도체는 정상적으로 작동했지만, 에테르 반응은 통상적인 수준이었다. 즉 이 녀석은 슈나우저처럼 주변의 에테르를 흡수해 성능을 강화하지는 못한다는 소리다.
한서진은 그 점이 몹시 안타까웠으나, 교수와 연구생들에게는 달나라 이야기였다. 그들은 스코브리아늄 반도체가 정상적으로, 그것도 비글에 준하는 성능으로 가동한다는 게 그저 기꺼웠을 뿐이었다.
“근데 도대체가 원인을 모르겠네. 분명 어떤 규칙성이 스콥 원소에 관여하는 게 틀림없는데. 수학 교수라도 불러서 공통 규칙이 존재하는지 설계도를 분석해야 하나?”
“교수님, 이 설계도 윈텔에 파는 건 어떻습니까?”
“윈텔?”
“예, 원래 CPU 전통 강자였다가 비글 때문에 완전히 밀려나지 않았습니까. 분명 이를 갈고 있을 텐데, 이 설계도를 비싼 값에 팔 수 있을 겁니다.”
한서진은 속으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안 돼! 그건 엄청난 사기야! 윈텔을 두 번 죽이는 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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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다이아몬드의 뒤를 따르고 있는데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