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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43화 (43/609)

00043  사업가 새내기?  =========================================================================

IBM의 대형컴퓨터, 메인프레임은 그간 은행, 증권, 공사, 공공기관 등 대형 기관을 상대로 쓰여 왔다. 견고한 구조에 높은 안정성, 그리고 압도적인 보안 수준은 기관 관계자들의 오랜 신뢰를 얻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큰 사이즈와 높은 구입비, 과다한 유지보수 비용, 그리고 시대의 변화에 뒤쳐지는 폐쇄성 때문에 큰 불만이 쌓이기도 했다.

특히 사용이 간편하고 개방성이 높은 유닉스의 공세로 IBM의 메인프레임은 점점 밀려나다가, 끝내는 벼랑까지 몰리고 말았다.

그래서 IBM은 버렸다.

TX 인더스트리라는 새 계열사를 만들고, 메인프레임 사업을 따로 분리시켰다.

―우리는 쓰레기통에 지나지 않아.

술만 먹으면 토니는 한탄처럼 그런 말을 하곤 했다. 칼 루이스는 그를 최고 적격자로 꼽은 이유이기도 했다.

“이 변두리까지 쫓겨난 뒤에도, 그래도 이를 악물고 Z7 프로젝트를 마저 완성했는데…… 그 빌어먹을 놈의 스티브가 모든 걸 망쳐 버렸어!”

Z7. 세심한 다운사이징 작업을 거친, 최신형 IBM 메인프레임의 모델명.

토니는 Z7에 메인프레임의 부활을 걸고 있었다. 그러나 스티브 루저스 이사가 모든 걸 망쳐 버렸다. 홍보를 위해 한국에 Z7을 팔러 갔다가 오히려 Z7이 망신만 당하고 돌아온 것이다.

―요즘 누가 그렇게 무식하게 크기만 하고 융통성은 하나도 없는 서버를 씁니까? 지금 시대가 얼마나 빨리 빨리 변하고 있는데.

한국 IBK은행의 이름 모를 책임자가 비웃으며 했다는 말을 들은 토니는 그날 죽자고 술만 마셨다.

그렇게 좌절 속에서 지냈던 그가 지금 눈동자에서 생기를 빛내고 있었다.

“칼, 이런 괴물을 대체 어떻게 만든 건가? 설마 맥플은 아닐 테고.”

“토니, 그 전에 여기 이 동양인 청년이 누군지 알겠나?”

“모르지. 처음 보는 얼굴인데. 엔지니어 실습생 같지는 않군.”

“이 청년이 비글의 개발자네. 그것도 단독 개발자지.”

“뭐라고! 그게 정말인가?”

토니는 눈을 번쩍 뜨며 놀랐다. 거짓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놀라운 이야기다.

하루아침에 전 세계 CPU계를 평정한 비글은 그 흉악한 이름답게 비맥플 생태계를 ‘압살’하는 중이다. 금세 대항마를 내놓을 줄 알았던 윈텔은 신제품 출시를 차일피일 미뤘고, 맥플은 이 기회에 윈텔 CPU에 치명상을 입히는 것까지 고려하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단독 개발자라니, 어떻게 사람이 비글을 혼자 만든단 말인가?”

“하지만 사실이야. 내가 한국 H반도체까지 가서 직접 확인했어. 아, 그렇지만 이 일은 비밀로 해주게. H반도체 경영진조차 이 사실은 모른다네.”

“그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가?”

“왜냐하면, 그 회사는 고작 3천만 불로 비글의 모든 권리를 가져왔거든.”

“……오늘 들은 이야기 중 제일 말이 안 되는 거군.”

토니는 이제 완전히 처음의 여유를 되찾고 있었다.

“비글 개발자라면 이런 괴물이 어느 정도 납득이 되는군. 지금 바로 Z7을 보여주지. 따라오게.”

칼 루이스는 씩 웃으며 한서진을 돌아보았다.

일이 쉽게 풀렸다.

케이스가 활짝 개방된 메인프레임 Z7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리 지시를 받은 직원들이 열심히 CPU를 분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동안 한서진은 슈나우저를 따로 테스트했다. 물론 통찰안으로 한 것이다.

‘문제없다.’

슈나우저는 전부 아무 이상 없이 최고의 상태로 찍혀 나왔다. 한서진은 든든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이리 가져 오시오.”

한서진은 끄덕이고는, Z7을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메인프레임 컴퓨터.

말은 참 많이 들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이렇게 큰 컴퓨터가 존재한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반도체 종사자가 이런 생각을 품는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겠지만.

“이 아이 이름이 슈나우저라고 했나요?”

아이? 기껏해야 컴퓨터 부품인데, 아이처럼 여기는 건 조금 민망했다. 하지만 토니의 표정은 진지했다.

“네. 그렇습니다.”

“확실히 비글보다 더 사납고 용맹한 아이더군요.”

한서진은 처음으로 자신만만한 웃음을 흘렸다.

“제대로 난동을 피우는 걸 보실 겁니다.”

뚜렷한 자신감이었다. 토니도 그걸 보고 기분 좋게 웃었다. 그리고 그는 직원들을 돌아봤다.

“시작하지.”

Z7의 전원이 올라갔다.

우웅 하는 나지막한 구동음이 울리며, 수백 개의 구획이 동시에 가동하기 시작했다. 수없이 많은 램프에 불이 들어오며 냉각 시스템 역시 움직였다.

“일단 안정적으로 작동하는군.”

토니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슈나우저의 성능은 이미 확인했지만, 혹시 호환이 안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다행히 변환 커넥터가 제 역할을 해준 모양이다.

“시스템 안정, 트랜잭션 확인합니다.”

“데이터 처리지수 증가합니다.”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가벼운 안도와 탄성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한서진에게 이미 주변은 들리지 않았다.

정적 속에 홀로 던져진 듯이, 그는 우두커니 선 채로 Z7을 감싼 거대한 폭풍의 흐름에 시선을 빼앗겼다.

‘아! 보인다, 보여! 저것이 바로……!’

주먹이 불끈 쥐어지며, 어깨가 환희로 떨렸다.

통찰안을 통해 똑똑히 보인다. 수백 개의 슈나우저가 일제히 숨을 뿜으며 만들어내는 에테르의 폭풍이. 푸르스름한 불꽃이 파동 치는 모습은,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을 만큼 아름다웠다.

지구상에서 오로지 그만이 볼 수 있는, 신비하고 황홀한 에너지의 폭발.

성능 테스트는 며칠 동안 쉬지 않고 이뤄졌다.

자체적으로 최대 성능과 출력을 측정했을 뿐 아니라, 다른 서버를 이용해서 수많은 가상 단말기를 형성해 Z7에 접속시켰다. 그리하여 대량 정보 처리를 어떻게 해내는지 살핀 것이다.

최종 결과는 말할 것도 없었다. 토니의 표정이 모든 걸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정말 괴물이 만들어졌어.”

범용성과 특별성 등 Z7은 모든 것을 갖추었다.

대량의 정보 교차 작업을 안정적으로 처리해내는 것은 물론, 특수한 작업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능력도 탁월했다.

“이건 메인프레임의 껍데기를 덮어쓴 수퍼컴퓨터가 아닌가? 텐허-2도 이 녀석한테는 전혀 미치지 못할 거야.”

단순히 초당 연산 속도가 높은 게 전부가 아니다. 범용성, 안정화, 속도, 다양성 등 모든 영역에서 압도적인 성능을 보인다. 심지어 소비하는 전력도 매우 적다. 나무랄 데가 없다.

칼 루이스는 그제야 본론을 꺼냈다.

“메인프레임은 사실 시작에 지나지 않네. 얼굴 마담인 셈이지. 내가 진짜로 노리는 건 전 세계 모든 중앙연산장치를 슈나우저가 차지하는 거야.”

“슈나우저라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보네.”

“첫 단추를 잘 꿰기 위해서 Z7이 충분한 역할을 해줘야 하네.”

“하고도 남지. 걱정하지 말게.”

“그리고 IBM과의 관계는 정리할 필요가 있어.”

“…….”

토니의 얼굴이 잠시 굳어졌다.

TX인더스트리는 IBM의 메인프레임 사업을 떼어서 만든 것, 즉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다. 칼 루이스는 지금 그 관계를 끊으라고 말하는 것이다.

“거절한다면 슈나우저와 앞으로 인연이 없겠군.”

“IBM이 자네한테 한 짓을 생각하게.”

“……그리 말 안 해도 알고 있네. 이게 우리 TX인더스트리에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토니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한서진은 오늘 이 자리에 없었다. 첫날, Z7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확인한 뒤 바로 귀국해버린 것이다. 모든 것을 칼 루이스에게 일임한 채로.

“하나만 묻지. 자네, 맥플에서 독립하려고 생각 중인가?”

“원래는 잠깐 시간을 내어 거들 생각이었네. 하지만 이제는 온몸을 던지기로 마음을 바꿨지.”

“나도 함께 할 수 있나?”

“물론이지. 대신 지분 관계는 확실히 매듭지어야 하네.”

“슈나우저 앞에서 어찌 배짱을 튕기겠나? 자네가 원하는 걸 말하게.”

“TX인더스트리를 한서진한테 넘기게. 자네에게는 5%의 지분을 보장하지.”

토니는 순간 멈칫했지만, 그뿐이었다.

슈나우저가 국제 반도체 시장에 몰고 올 태풍을 생각하면 5%의 지분도 엄청난 것이다. 앞으로는 슈나우저의 독주 시대가 열릴 테니까. 개인 PC와 모바일, 메인프레임, 수퍼컴퓨터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말이다.

“자네도 알 걸세. 앞으로 슈나우저가 모든 반도체 시장을 지배할 거야. 5%의 지분도 후하게 쳐준 걸세.”

“……알겠네. 그리 하지.”

토니는 마침내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칼 루이스는 곧바로 토니를 내세워 IBM과 협상에 나섰다. 맥플의 부사장인 그가 나섰다가는 모양새가 이상해지기 때문이다.

IBM은 오랫동안 해온 메인프레임 사업을 완전히 매각해야 한다는 것에 본질적인 망설임을 느끼면서도, 만년 적자 사업을 처분해야 한다는 일부 경영진의 의견을 억누르진 못했다.

IBM이 보유 중이던 TX인더스트리 지분은 전량 ‘동양인 투자자’에게 넘어갔다.

TX인더스트리의 총 가치는 약 1억 200만 달러. 250억으로는 턱도 없이 모자랐지만, 칼 루이스가 수완을 발휘해서 8,000만 불이 넘는 투자금을 끌어왔다.

한서진은 놀라워했다.

“어디서 그 많은 돈을 가져오신 거예요?”

「이래봬도 제 말 한 마디에 몇 억 달러쯤 흔쾌히 투자해줄 사람들은 널렸습니다.」

한서진은 입을 다물었다. 세계 1위 기업의 부사장의 인맥과 신용은 과연 남다르구나, 하면서.

「지분 정리를 마쳤습니다. 토니가 5%, 제가 10%, 한 사장님은 85%입니다. 혹시 지분 관계에 불만이 있으시다면…….」

“아니에요. 그 정도만 해도 저는 과하다고 생각합니다.”

「과하다니요, 너무 욕심이 없으시군요.」

수화기 너머 칼 루이스는 나지막하게 웃었다.

「특허 심사 완료까지는 아직 몇 개월 남았습니다. 일단 메인프레임과 수퍼컴퓨터 시장을 먼저 공략할 생각입니다. 그 뒤에 개인 컴퓨터 시장에 진출하는 게 마케팅 측면에서 효과적일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워낙 큰 사업이라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당분간은 참아주시길.」

“잘 부탁할게요.”

통화가 끝났다.

옆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정지원이 입을 열었다.

“합이 15%……. 슈나우저의 가치를 생각하면 정말 아깝지만 어쩔 수 없다. 사업을 빨리 궤도에 올리려면 TX인더스트리가 필요한데, 그 회사를 온전히 살 돈이 없으니까.”

“네, 저도 이해합니다. 아니, 오히려 얼떨떨해요. 제가 그런 회사의 지분을 85%나 가지게 되다니…….”

“그래봐야 당분간은 스톡푸어다.”

“그러네요. 달라진 건 없네요. 오히려 300억의 현금까지 몽땅 꼴아 박았으니…….”

“1년만 참아. 그럼 모든 게 달라져 있을 거다.”

1년.

사업을 본 궤도에 올리기까지 걸릴 시간이다. 특허 심사도 완료되어야 하고, 특허 방어 작업도 마쳐야 하며, 수퍼컴퓨터와 메인프레임 점령을 포석으로 하여 개인 모바일 시장을 장악하는데 그쯤 걸릴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정지원이 갑자기 피식 웃었다.

“내가 전에 한 부탁 기억 나냐?”

“그럼요. 당연히 기억하죠.”

“그때는 나름대로 5년, 10년 뒤를 내다보고 한 부탁이었는데…… 이렇게 빨리 그런 날이 찾아올 줄은 몰랐다. 참 사람 일은 모르는 것 같아. 너 정말 대단해.”

“팀장님이 잘 이끌어주신 덕분입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아니다. 네가 잘난 덕분이지, 난 네가 아직 사회경험이 적어서 모르는 것만 살짝살짝 짚어줬을 뿐인데.”

정지원은 감회가 새롭다는 듯이 웃다가 진지하게 표정을 잡고 말했다.

“회사에 이만 사표를 낼까 해.”

“미국으로 가시려고요?”

“그래야지.”

한서진은 알겠다는 듯이 끄덕였다.

“저 대신 슈나우저를 잘 부탁합니다.”

혹시라도 슈나우저를 뺏길 것은 걱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실력과 정지원의 인품을 믿는 자신감에서 나온 여유.

정지원도 그걸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 더, 슈나우저는 한서진에게 있어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스톡푸어가 되었습니다,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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