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미트리스 드림-40화 (40/609)

00040  에테르 반도체  =========================================================================

회사 몰래 맥플에 보여주기 위한 시제품을 만들었다. 그런데 시제품의 성능이 예상했던 것과 크게 오차가 있다. 안 좋은 쪽이 아니라, 성능이 너무 월등한 것이다.

“단순 클럭이 이미 비글에 맞먹어.”

정지원이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CPU인 비글과 AP가 클럭 수에서 맞먹는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갖고 있다. AP는 중앙연산장치인 CPU의 기능 외에 메모리, 그래픽 등의 기능도 포함된, 통합형 처리장치이기 때문이다.

연산 분야에만 특화된 놈, 그리고 그것 외에도 여러 분야에 특화된 놈이 있다. 그런데 후자가 연산 분야에서도 전자에 버금가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면?

비글은 성능만 보면 서버용 CPU로 쓰이기에 충분했다. 쓰레드 개수가 부족하고, 또 맥플이 비글을 개발한 목적상 개인용 컴퓨터 CPU로 쓰이고 있을 뿐이다.

“확실히 성능만 보면 서버용 CPU로 써도 좋을 것 같긴 하네요. 근데 맥플은 CPU 제조사가 아니잖아요.”

맥플의 주력 상품은 맥플폰, 맥플북, 맥플패드 등 개인용 모바일기기다. CPU와 AP를 개발하는 것도 자사 제품에 들어갈 모델을 생산하기 위해서다.

“넌 괴물을 만들어놓고 참 태연하구나.”

“아하하…….”

한서진은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태연한 건 아니다. 자신도 크게 놀라고 있었다. 다만 정지원의 격렬한 반응에 무슨 태도를 보여야 할지 아리송했을 뿐이다.

“이해가 안 돼.”

정지원은 살짝 일그러진 얼굴로, 곱씹듯이 중얼거렸다.

“있을 수가 없어.”

“……왜 그러시죠?”

“이 놀라운 연산 능력…… 우리 회사 나노공정설비가 낼 수 있는 한계를 넘었어. 단지 설계를 최적화했다 해서 나올 수 있는 값이 아니야. 한 차원 높은 차세대 공정기술이 적용된 설비로 제작한 게 아닌 이상.”

CPU와 AP칩은 그 크기부터 다르다. 공정설비도 기존의 것을 사용했다.

그런데 이만한 성능 차이가, 과연 ‘물리적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일까?

‘설계가 아무리 뛰어나도, 이런 게 가능해?’

정지원이 가진 물리화학, 그리고 전자공학적 지식에서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아무튼 마저 테스트를 해보자.”

“네, 팀장님.”

몇 시간에 걸쳐 둘은 테스트를 했다. 성능은 의심할 바가 전혀 없었다.

클럭 성능만 치면 현존하는 최고 CPU인 비글에 버금갔고, 그 밖의 어플리케이션 프로세서로서의 성능도 맥플 최신 AP를 압도하고 있었다.

소모하는 전력이 극단적으로 적었고, 따라서 발열도 기대 이상으로 매우 낮았다.

“어딜 봐도 괴물이다.”

“괴물이라니 뭔가 기분이 묘한데요.”

“넌 정말 대단해.”

정지원은 경이롭다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왠지 부담을 주는 무언의 눈빛, 한서진은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통찰안이 대단한 거지, 내가 대단한 게 아닌데.’

진실을 아는 한서진은 불세출의 천재를 보는 듯한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서진아, 근데 설계 원리가 대체 뭐냐?”

“네?”

“내가 납득이 가지 않아서 그래. 내 전자공학 지식으로…… 이건 상식을 벗어난 결과야. 단지 설계만으로 재료, 공정, 전력 등 물리적 한계치를 이만큼이나 뛰어넘는다는 게 이해가 안 돼.”

“그냥 떠오른 대로 그렸을 뿐인데요? 발상대로, 손 가는 대로요.”

“…….”

어때요, 참 쉽죠? 라는 목소리가 어디선가 울리는 듯하다.

잠시 굳어 있던 정지원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너, 그럼 혹시 데카코어도 혹시 가능하겠어?”

“데카코어요?”

한서진은 어이가 없었다. 가로세로 14mm짜리 칩에 대체 코어를 몇 개나 쑤셔 넣으려고?

“우리 공정설비로는 안 되지 않아요? 아니, 지금 세계에 그런 게 가능한 설비가 있겠어요? 일반 CPU도 아니고 AP에 코어를 어떻게 10개나 우겨 넣어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 번 해봐. 아니, 내가 기본 설계를 가져올 테니 그걸 가지고 한 번 해봐. 이대로 맥플에 넘겨주기에는 너무 아깝다.”

물리적으로 가능할까? 지금 나노 공정 수준으로?

한서진은 회의감이 들었으나 진지한 정지원의 표정에 해보지도 않겠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해볼게요.”

정지원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는 며칠 후 저녁, 한서진의 오피스텔로 자신이 1차적으로 만든 설계를 갖다 주었다. 그는 회사에서 작업하는 건 곤란하다고 적극 주장했다.

“회사에서 작업하는 건 아무래도 기록이 남기 쉬워. 이건 맥플 AP칩 수정과는 비교도 안 되는 건이야. 아무리 조심해서 모자랄 건 없어.”

“그렇군요.”

“우리는 반도체 개발자들이라, 사사로이 개발한 반도체를 가지고 회사가 소유권이 있다고 주장하면 곤란해.”

“그건 정말 문제가 없는 거지요?”

“법리적으로는. 회사의 프로젝트를 이용한 것도 아니고 네가 따로 생각한 거잖아. 물론 회사가 억지를 부리면 골치 아프겠다만, 잘만 되면 그런 억지도 충분히 물리칠 수 있어.”

정지원은 다음으로 설계 원안에 관해서 설명했다.

“기본 바탕은 A-3002 칩이다. 지금은 생산 중단된, 전 세대 맥플의 AP 설계도에 내가 나름대로 데카코어를 집어넣어 봤어. 기본적인 연산 오류 검증은 했지만 억지로 우겨넣은 거라 제대로 작동하긴 힘들 거다.”

“왜 하필 전 세대 모델이죠?”

“지금은 생산이 중단된 모델이다. 돈만 내면 아예 특허를 살 수도 있어. 비싸봐야 100억도 채 들지 않을 거다.”

정지원은 진지하게 말했다.

“저번의 그 설계 수정 원리를 여기에 응용해보자.”

“……절 너무 막 다루시는 거 아니에요?”

“해보자.”

정지원은 진지하게 말했고, 한서진은 투덜거리면서도 그가 가져온 설계 원안을 살폈다.

‘이거 문제투성이잖아.’

A-3002 칩 설계는 비록 구세대이긴 하지만, 그 자체로 최적화된 모델이다. 여기에 억지로 서버용 AP로 전환시키기 위해 우겨넣은 10개의 코어와 각종 변환, 그에 따라 나름대로 정지원이 추가한 최적화 시도가 맞물려, 도저히 상용 가능한 제품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통찰안을 발휘하자 문제점과 해결책을 향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다.

‘온통 오류투성이네.’

한서진은 투덜거리면서도, 14mm 칩을 운동장보다 크게 확대한 도면에 쭉쭉 선을 그어나가기 시작했다.

뒤에서 유심히 보던 정지원이 물었다.

“여기 회로와 이 회로는 무슨 의미야?”

“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래. 이거, 논리 버스와 아무 연관이 없는 것 같은데?”

“어…….”

한서진은 멈칫 했다.

반도체공학 지식은 있다지만, 그는 그저 통찰안이 알려주는 대로 그어나갈 뿐이었다. 헌데 정지원의 말을 듣고, 자신의 지식을 총동원해서 생각하니 확실히 ‘거슬렸다.’

“……일단 작업부터 마칠게요.”

“…….”

한서진은 작업에 몰두했다.

설계를 수정하는 데는 꼬박 사흘이 걸렸다.

이번에는 수정 과정이 조금 달랐다. 예전처럼 무턱대고 통찰안을 따라가는 게 아닌, 위화감이 느껴지는 선을 따로 체크해서 백업본을 만들었다.

“끝났다.”

마침내 끝난 수정, 하지만 진정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한서진은 백업본을 확인했다. 백업본에는 ‘어울리지 않는’ 회로를 황금색으로 표시해두었다. 그런 황금색 선은 설계 전체에 빽빽하게 박혀 있었다.

축구운동장 만한 종이에 회로를 그리고, 다시 그 위에 워드 10포인트 크기의 문양으로 빽빽하게 전체를 뒤덮은 형상이랄까.

한서진은 그 불규칙한 이물을 뚫어져라 살폈다.

글자라고 할 수 없는 기괴한 문양. 하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이 강하게 밀려온다.

‘잠깐, 이건 설마 예전의 그?’

불현듯 커다란 충격이 그를 덮쳤다.

통찰안으로 암을 치료하는 방법을 찾을 때, 처음으로 나타났던 그 기괴한 문자. 이 세상의 것이 아는 듯하다던 한국대 언어학자의 말이 또렷이 생각났다.

‘아니야, 그거와는 달라.’

문양에서 흘러나오는 느낌은 찍어낸 듯 흡사하지만, 그때의 문자와는 완전히 달랐다.

이건 문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어떤 규칙성도 찾아볼 수 없다. 어느 누가 봐도 그냥 의미 없는 낙서를 해놓은 것이라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한서진에게는 보였다.

기괴한 문양의 집합이 담고 있는 규칙성이, 그 안에 담긴 어떤 거대한 힘의 흐름이.

저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Kerrzllierp kaip ccer puallchcho chir vayne midd n zungl…….”

알 수 없는 의미를 담은 문자. 그러나 한서진은 놀랍게도 정확히 그것을 발음했다. 그것은 지구상의 어떤 언어와도 닮지 않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의지를 다스리는 힘이었다.

그 힘의 이름은 바로…….

“에테르.”

한서진은 멍하니 설계도를 바라봤다.

자신이 아까 무슨 말을 했는지 알지 못했다. 회로 설계에 암호처럼 빼곡히 담긴 언어가 무슨 뜻을 담은지도 몰랐다.

“에테르……. 에테르…….”

파도처럼 거세게 밀려오는 예감이 있었다. 그것은 마치 본능처럼,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스스로 깨달을 수 있었다. 주문과도 같은 저 문자들은, ‘에테르’라는 무언가를 다스리는 힘을 담고 있다고.

한서진은 이 녀석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정했다.

“에테르 반도체.”

“…….”

노신하는 수척한 왕의 얼굴을 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폐하, 용안이 매우 어둡습니다. 저주 속 세상에서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꿈속의 짐이 드디어 에테르의 존재를 인식했소.”

“그렇습니까? 아아, 다행입니다.”

노신하는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 것처럼 기뻐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에테르.

세상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차원을 구성하는 가장 근원적인 힘이자, 에너지.

마법사의 마력도, 사제의 신성력도, 세상의 그 어떤 힘도 근원을 파고들어보면 에테르에 의해 구성되고, 제어되며, 작용한다.

그런 놀라운 힘이지만 또한 다루기도 매우 어렵다. 최고급 사제나 마법사가 아니고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 이하의 마법사나 사제들은 마력과 신성력을 다루지, 에테르 그 자체를 직접적으로 제어하지는 못한다.

“잘하면 ‘진언’을 문자 형태로나마 일단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소.”

“구술의 형태로는 불가능하겠습니까?”

“……노예에게 많은 것을 바라지 마시오.”

진언, 진실의 언어. 바로 에테르를 제어하는 주문을 지칭하는 말이다.

노신하는 그게 어디냐는 듯이 끄덕거렸다.

“문자 형태로 사용하는 것만 해도 어디입니까. 진언을 쓸 수 있다는 것만 해도 한시름 놓았습니다. 저주를 극복할 날이 머지않은 듯하군요.”

“……아니, 전혀 그렇지는 않은 것 같소만.”

“……왜 그러십니까, 폐하?”

“경도 잘 알지 않소. 에테르가 어떤 힘이오? 그리고 진언은 어떤 능력이고?”

“……폐하, 대관절 왜 그러시는지요.”

대사제들은 진언을 거대하고 값진 보석에 새겨 대규모의 에테를 통제한다. 이런 에테르 보석 기둥을 만드는 목적은 수확물의 풍작, 자연재해 방지, 나아가 역병을 물리치는 것 등이 있다.

그야말로 대규모의 행복과 안락을 추구하기 위해 진언을 새겨 에테르를 통제하고, 사용한다.

“진언, 신이 선물해주신 그 경이로운 언어를 이용해 한다는 게 뭔지 아시오?”

“…….”

“최하급 마력석을 만들고 있더군.”

============================ 작품 후기 ============================

대학생의 로망은 폼나는 직장에 취업하는 것.

고급차를 끌고 등하교를 하는 것.

수업을 안 들고 놀러다녀도 학점이 나오고.

교수와 동기, 선배와 후배 등 모든 이들의 인정을 받고.

그리고 직장인의 로망은 역시 학창 시절로 돌아가는 거죠.

근데 월급도 주네?

근데 출근도 맘대로 하라네?

회장이 학교 다니느라 불편할까봐 자전거도 뽑아주고.

뭐 그런 대학생과 직장인들의 로망을 담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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