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4 새내기는 화석 =========================================================================
“같이 가자고?”
한서진은 당황해서 물었다. 같이 갔다가는 포르쉐를 보게 될 텐데, 그래도 괜찮은가?
“네, 저 태워주시면 안 돼요? 어차피 지금 곧 다들 출발한다는데요.”
“어, 그게 좀 좁아서…….”
“괜찮아요. 차 좁다고 놀리거나 이상하게 보거나 하지 않을 게요. 걱정 마세요. 제가 그 정도 개념은 있어요.”
“그게, 좁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스포츠카 특성상 공간이 쾌적하지는 않다. 게다가 2인승, 당연히 4인승에 비해서는 내부 공간이 좁은 편이다.
“모르겠다. 알았어, 태워줄게.”
“네, 감사합니다.”
차 보고 놀라면 안 돼, 라는 말을 할까 하다가 관두었다. 괜히 잘난 체 한다는 느낌을 받으면 곤란하지 않은가.
한서진은 조유정과 나란히 주차장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차 주변에는 여러 명의 학생들이 모여서 신기한 듯 구경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폰을 들이대고 사진을 찍는 이도 있었다.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조유정도 포르쉐 919를 발견했다. 그녀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감탄했다.
“와, 오빠. 지금 저 차 보셨어요? 대박, 완전 대박. 누가 학교에 저런 차를 타고 왔지? 교수님이나 교직원은 아닐 테고, 설마 학생이?”
삑삑.
한서진은 아무 소리 않고 리모컨을 꺼내 시동을 켰다. 라이트가 켜지며 차가 으르렁대듯이 엔진음을 냈고, 구경하던 이들이 놀라서 몇 걸음씩 물러났다.
조유정은 놀라서 두 손으로 입을 막은 채 한서진을 보았다. 눈빛에는 ‘설마?’하는 불신이 가득했다.
“오, 오빠?”
“……타자.”
일부러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시크하게 말하느라고 표정 관리에 죽을힘을 다해야 했다. 한서진은 운전석을 열고 차에 탔다.
조유정은 그때까지 멍하게 굳어 있다가 얼른 조수석 문을 열고 탔다. 그녀의 표정은 붉게 상기돼 있었다.
“오빠 차가 포르쉐였어요?”
“뭐, 그래.”
“와, 이거 엄청 비싸 보이는데. 그냥 일반 보급 모델은 아닌 거 같은데요?”
날카로운 눈썰미였다. 이 아이, 은근 볼 줄 아는구나.
한서진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다잡느라 애썼다. 대수롭지 않은 척 목소리에도 힘을 뺐다.
“글쎄, 뭐 그래. 환영회 장소가 어디야?”
“제가 내비 찍어드릴게요. 이거 어떻게 켜요?”
“켜줄게.”
한서진은 디스플레이를 터치해서 내비게이션을 켰다. 조유정은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목적지를 입력했다. 순식간에 검색을 마치고 내비게이션에 경로가 나타났다.
“안전벨트 매야지.”
“아, 맞다. 깜박했어요.”
한서진은 피식 웃으며 엑셀을 밟았다.
부드럽게 차가 출발했고, 조유정은 신기한 것을 타본 사람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와, 저 포르쉐는 처음 타 봐요. 제가 태어나서 이런 차 타볼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진짜 승차감 장난 아니네요.”
“승차감은 확실히 괜찮더라.”
“오빠, 완전 멋있다. H반도체 개발팀에, 수석 입학에, 포르쉐까지 끌고 다니고. 진짜 멋있어요.”
“고, 고맙다.”
멋있다니?
그런 말에는 면역력이 없는지라 하마터면 겨우 유지하던 냉정이 깨질 뻔했다.
한서진은 시크한 표정이 깨지려는 걸 겨우 억눌렀다. 그는 일부러 조유정을 돌아보지 않았다. 어떤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을지 확인하는 것조차 창피했다.
예약 장소에는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한서진은 일부러 조금 떨어진 유료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주차장 관리인의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애써 모른 체 했다.
“왜 여기에 주차하세요?”
“아, 괜히 긁히거나 하면 골치 아파서. 일반 음식점 주차장에는 애들도 많고 그렇잖아.”
“아, 하긴 그렇겠다.”
실은 교수와 동기들 앞에서 10억짜리 포르쉐를 타고 내리는 모습을 보이기 민망해서지만.
‘앞으로 타고 다니지 말까?’
그런 생각을 해봤지만, 동시에 회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등하교에 쓰라고 선물한 것을 묵혀놓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 회장님보다는 회장님의 충신들이 더 아니꼽게 보지 않을까?
감히 우리 회장님이 하사하신 선물을 썩히다니, 하면서.
‘으…… 천천히 익숙해지자.’
사실 오늘 입학식에 포르쉐를 타고 오면서, 은근히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차를 타고 오는 내내 조유정이 감탄을 연발하는 바람에 심리적 저항력이 약해졌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보다 창피한 마음이 더 강해진 것이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과시도 해본 놈이 자연스럽게 잘하지, 남들은 구경하기도 힘든 포르쉐가 생겼는데도 이래서야 원…….
“박효산 교수님 성함으로 예약했는데요.”
“아, 이쪽으로 오세요.”
4층으로 된 빌딩은 고기집이 모든 층을 쓰고 있었다.
“여기입니다. 3, 4층 모두 예약석입니다.
예약석은 3층과 4층이었다. 학과에서 두 개 층을 통째로 예약한 것이다. 사장의 얼굴에는 벌써부터 웃음이 걸려 있었다.
한서진과 조유정은 아무 자리나 골라서 앉았다. 텅 빈 넓은 테이블에서 둘이서만 앉아 있으니 조금 어색했다.
“저어, 오빠.”
“응?”
“비글 개발에 참여했다고 하셨잖아요.”
“……어, 그랬지.”
“저 자세한 과정 좀 들려주세요. 궁금해 미치겠어요.”
“그거라면 아까 말했잖아.”
“아이, 아까는 대강 곁다리로 몇 가지 작업만 거들었다고 말씀하시고 넘어갔잖아요. 자세하게, 비글이 어떻게 개발됐는지 그 과정을 듣고 싶어요. 맥플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준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요.”
난처한 질문이었다. 비글은 자신이 혼자서, 그것도 통찰안의 힘을 빌려서 개발한 거니까. 사실 그도 비글의 구체적인 회로 원리는 잘 모른다.
“음……작업은 정지원 팀장님께서 주도한 거라 나도 자세히는 몰라. 난 그저 시키는 것만 했으니까.”
정지원의 이름을 팔며, 그는 속으로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팀장님. 지금 팀장님은 동문에서 전설이 되고 있습니다.’
“와아, 역시 정지원 선배님은 대단하세요.”
“너도 팀장님을 잘 아나 보네.”
“그럼요. 정지원 선배님은 아무리 못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우리 학과에 오시거든요.”
“초대 동문회장이라 책임감이 투철하신가 보구나.”
“그런 것도 있지만, 어디 낚을 만한 인재가 없나 미리 점검하러 오시는 거래요. 선배님 말씀으로는 수질 확인도 하고 고기도 낚고, 뭐 그런 거죠.”
조유정은 쿡 웃었다.
한서진은 정지원이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회사뿐만이 아니라 학교, 그것도 오래 전에 졸업한 학과에서도 인망이 두텁지 않은가.
역시 그를 믿기로 한 것은 잘한 결정이었다.
그때 아래층이 소란스러운가 싶더니 신입생들이 우르르 밀려 올라왔다. 그들은 왁자지껄 떠들며 구석부터 차근차근 앉았다.
“자자! 신입생 학우 여러분들! 자리가 이게 뭡니까! 여자, 남자, 여자, 남자, 이렇게 번갈아 앉아야죠. 왜 재미없게 남자끼리 여자끼리 앉고 그래요.”
“모처럼 대학에 왔는데 연애 안 할 겁니까? 오늘은 학과 공식 집단 소개팅 자리입니다!”
순식간에 빈 테이블이 가득 메워졌고, 어느새 친해진 학생들끼리 재잘거리고 있었다. 종업원들은 쉴 새 없이 고기와 반찬을 날랐고, 빈 잔에는 어느덧 술이 가득 채워졌다.
마지막으로 교수들도 도착해서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았다.
박효산 교수가 잔을 높이 들어올리며 외쳤다.
“자, 16학번 신입생들을 위하여, 건배!”
“한서진이. 내가 인마, 너 면접 때 봤을 때부터 딱! 하고 감이 왔다니까. 인마, 너 인마, 크게 될 놈이야, 너 인마. 응, 알았냐, 인마?”
“가, 감사합니다. 교수님.”
“이놈이 진짜…… 어떻게 그 문제를 맞혔느냔 말이야. 그거 박사 과정 애들도 어려워하는 건데…… 끅!”
“요행이었습니다, 교수님.”
“암튼! 내가 너 눈여겨 볼 거야! 알았어, 인마?”
“네, 감사합니다. 교수님.”
거하게 취한 박효산 교수는 한서진의 옆에 앉아, 아예 어깨동무까지 한 채로 술을 부어댔다. 한서진은 난처해서 어쩔 줄 몰랐지만 아무도 그를 구해주지 않았다.
“너 인마, 대학원까지 갈 거지?”
“예? 대학원이요?”
“그래, 인마!”
“교수님. 저 오늘 입학했습니다.”
“오늘 입학하면 어떻고! 내일 입학하면 어때! 너 같은 놈이 대학원을 와야 해. 이재준이 고넘처럼 멍청한 것들은 대학원에 오면 안 된다고!”
이재준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어지간히 눈 밖에 났나 보다.
한서진은 쩔쩔 매면서도 공손하게 박효산의 술 상대를 해주었다.
이미 신입생들 중 취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테이블은 하나같이 지저분했고, 불판에는 먹다 만 고기들이 그을려 있었다.
그때 박효산이 정신을 조금 차린 듯 머리를 들고는 소리쳤다.
“이봐, 조현석이!”
“예, 교수님!”
학생회장의 근성이라고 해야 하나. 거나하게 술이 취해서 신입생 여학우들과 시시덕거리던 조현석은 교수의 부름에 벌떡 일어나서 대답했다.
“2차 가라, 2차 가!”
“알겠습니다! 자, 학우 여러분! 우리 2차 갑시다!”
“긁고 내일 반납해.”
박효산은 취한 채로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조현석에게 휙 하고 던졌다. 조현석은 허공에서 카드를 재빨리 낚아챘다. 한두 번이 아닌지 매우 능숙한 인터셉트였다.
“교수님은…….”
“내가 언제 학생들 2차 끼는 거 봤냐?”
“택시 잡아 드리겠습니다, 교수님.”
“됐어, 이놈하고 같이 갈 거야.”
그러면서 박효산이 자신을 가리키자 한서진은 당황해서 벌떡 일어났다. 술이 확 깨는 기분이다.
“네?”
“너 인마, 나랑 같이 2차 가자고.”
“저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럼 너 말고 누가 있어?”
“아, 형님께서 교수님 모시기로 하셨구나. 예,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입구까지 두 분을 모시겠습니다. 교수님, 이리 오시죠.”
조현석은 거하게 취한 박효산을 부축하며 자연스럽게 한서진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의미심장하게 눈을 찡긋했다. 얼굴은 시뻘건데 하는 짓이나 표정을 보면 하나도 안 취한 것 같다.
저게 학생회장의 주도인가. 한서진은 어떤 의미로 순수하게 감탄했다.
‘영업이나 접대는 진짜 잘하겠는데.’
자신에게는 없는 재능, 하지만 부럽지는 않았다. 왜일까.
“오빠, 얼른 따라가서 모셔요. 교수님 눈에 들 기회예요. 오빠 엄청 마음에 들어 하시는데.”
조유정이 얼른 다가와서 낮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얘도 얼굴은 빨간데 판단은 제법 냉철하다.
한서진은 급히 재킷을 들었다.
“알고 있어. 간다.”
“네, 파이팅!”
“학점을 위하여.”
한서진은 짧게 그 말을 남기고는, 급히 박효산과 조현석의 뒤를 따라 내려갔다.
이래봬도 사회인이다. 지금 이 순간이 다시없을 기회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형님, 그럼 교수님 잘 좀 부탁드립니다.”
“염려 마라. 교수님, 가시죠.”
이왕 2차를 모시기로 한 거, 한서진은 적극적으로 박효산의 어깨를 잡고 부축했다.
“술도 깰 겸 저기나 가자.”
“노래방이요?”
교수가 가리킨 곳은 어느 노래방이었다. 일반노래방, 퇴폐 영업을 하는 장소는 아니다. 한서진은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다.
“너, 노래 좀 하냐?”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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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신 교수의 눈의 꽃, 야생화, 애상 트리플 콤보에 처발린 우리 국왕 폐하의 좌절.
(본 후기에는 오타가 존재하지 않스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