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0 명문대 새내기 =========================================================================
포르쉐 919 제네시스.
원화로 10억 정도 한다는 설명에 한서진은 기절초풍했다. 300억이라는 거액이 있지만 아직 묶여 있다 보니 자기 돈이라는 실감은 나지 않았고, 그런 그에게 10억짜리 수퍼카는 감히 영접하는 게 황송스러웠다.
“돈이 있다고 해서 살 수 있는 차가 아닙니다. 대개 이런 초고급 한정 모델은 차주의 사회적 지위를 보고 선별해서 판매합니다. 회장님께서도 취미로 수집하시고 처음 한두 번만 잠깐 탔을 뿐, 그 뒤로는 차고에 모셔두기만 했죠.”
새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기름값을 포함한 모든 유지비는 계속적으로 회사에서 대줄 겁니다. 한서진 님이 회사 소속으로 남아 있는 한은요.”
“정말이요? 감사합니다.”
“감사는 회장님께 드려야죠.”
“꼭 감사하다고 전해 주십시오. 제가 따로 전화하기에는 너무 황송스러워서…….”
“나중에 회장님께서 한 번 직접 연락하실 겁니다. 선물이 마음이 드셨는지 보고 싶어 하실 테니까요.”
비서들은 차량 명의 이전에 필요한 몇 가지 서류에 서명을 받은 뒤, 차에 대해 몇 가지 중요한 점을 설명하고 돌아갔다.
한서진은 멍하니 차를 바라보았다.
미래에서 튀어나온 듯한 유려한 곡선, 화려한 자태. 차를 잘 모르는 이들도 한눈에 대단한 차라는 걸 알아볼 만큼 아름답고, 강렬한 위엄이 있었다.
마치 꿈만 같은 기분, 그는 조심스럽게 운전석을 열고 앉았다.
“이게…… 이제부터 내 차란 말이지?”
자전거를 받고 싶다고 했는데 이런 수퍼카를 받을 줄이야.
‘만약 자동차를 받고 싶다고 했으면 대체 뭘 주셨을까?’
갑자기 든 생각에 한서진은 피식 웃었다. 핸들의 그립감마저 고급스럽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몇 몇 입주민이 호기심 섞인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크라임타워가 인근에서는 비싼 축에 드는 오피스텔 빌딩이지만, 가장 큰 전용면적 40㎡의 매매가가 2억 원이 채 안 된다.
하지만 이 포르쉐의 가격은 무려 10억 원, 주차장에 즐비한 국산 혹은 저렴한 외제차들과는 격을 달리한다. 자꾸 눈이 갈 수밖에 없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낯선 번호를 확인한 한서진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백철중 회장의 개인 번호」
통찰안이 보여준 진실. 그제야 한서진은 전에 받은 황금 명함에서 봤던 번호라는 것을 떠올리고, 허겁지겁 전화를 받았다.
“예, 회장님. 사원 한서진입니다.”
「어, 날세. 내가 보낸 자전거는 마음에 드나?」
한서진은 저도 모르게 차 내부를 둘러봤다. 이게 대체 어딜 봐서 자전거야?
「마음에 드나?」
회장이 재차 묻자 한서진은 아차 싶어서 얼른 대답했다.
“예, 무척 마음에 듭니다. 회장님께서 이렇게 훌륭한 입학 선물을 해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두 발 자전거보다는 네 발이 훨씬 안전할 거야. 한국대는 캠퍼스가 넓어서 이리저리 이동할 때 곤란하니, 끌고 다니면 유용할 걸세.」
“명심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통화가 끝났다.
짧은 통화였음에도 불구하고 온몸의 기력이 빨려 나가는 느낌이었다.
손끝에는 아직도 식은땀이 고여 있었다. 회장이 직접 전화를 걸 줄이야.
회장의 관심을 받는 건 기분 좋지만, 정지원의 당부가 가슴에 걸렸다. 그의 말대로라면 지나치게 눈에 띄는 건 장기적으로 이득이 없는 것 아닌가.
‘내가 반도체 관련 사업체를 차린다라…….’
크게 상상이 되지 않는 미래. 한서진은 두 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정지원이 생각하는 커다란 미래, 과연 이 두 손으로 일궈낼 수 있을까.
‘통찰안만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면…….’
한서진은 입술을 굳게 깨물었다.
다음날.
한서진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학교 갈 준비를 마쳤다. 옷이 너무 튀지는 않는지, 머리가 헝클어지지는 않았는지 면밀한 점검을 마쳤다.
“너무 나이 들어 보이면 곤란한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은 냉정히 말해서 동안이라고 봐주기는 힘들었다. 그렇다고 폭삭 늙은 것은 아니고, 그냥 제 나이 대 남자로 보였다.
‘20살짜리들하고 잘 어울릴 수 있을지…… 아웃사이더는 조금 곤란한대.’
입학식은 오전 11시였다.
한서진은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다. 지하주차장에 들어서는데 웬 남자 둘이 신기한 듯 자신의 차를 쳐다보고 있었다. 한서진은 괜히 쑥스러워서 조심조심 차문을 열었다.
남자 둘이 놀란 듯이 물었다.
“혹시 차주분이세요?”
“아, 네. 그런데요?”
“와, 우리 오피스텔에 이런 차 가진 분이 사시는 줄은 정말 몰랐네요. 차가 너무 신기해서 봤습니다. 혹시 몇 호에 사시죠? 저는 1103호 사는데.”
“저기, 초면에 집을 밝히는 건 좀 그래서요.”
“앗, 죄송합니다.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에 그만…….”
“괜찮습니다.”
“근데 지금 출근하시는 거예요? 아, 옷차림 보니까 외출하시는가 보다.”
“뭐 비슷합니다.”
한서진은 대강 대답하고는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힘이 넘치는 엔진의 마력이 느껴진다. 살짝 밟기만 했는데도 차가 시원하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대로에 진입한 순간, 그는 모세의 기적을 보았다.
‘우와, 차들이 진짜 다 비켜가네.’
그가 달리는 위치의 좌우 라인에는 차가 접근하지 않았다. 근처의 차들이 적당히 거리를 벌린 것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값비싼 수퍼카, 이 지역에서는 거의 보기 불가능한 모델이기에 교통 상황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다들 멀찍이 거리를 두는 것이다.
한서진은 즐거운 마음으로 엑셀을 밟았다. 입학 첫날부터 모처럼 기분이 상쾌했다.
―오빠, 어디로 가면 돼?
여동생한테서 카톡이 왔다. 그는 잠시 정차한 틈을 타서 답장을 보냈다.
―지금 어딘데?
―한국대입구역. 여기서 걸어가면 돼?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태우러 갈게.
―오빠, 차 샀어?
―나중에 말해줄게. 기다리고 있어.
―응.
한지혜가 이 차를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한서진은 내심 기대되면서도 설렜다.
한국대입구역에 도착하자 한서진은 서행을 하며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나 지금 도착했는데, 어디야?”
「3번 출구 앞.」
“그래? 이상하다. 안 보이는데…….”
「분홍색 원피스 입고 있어. 잘 찾아 봐.」
“아, 찾았다.”
분홍색 원피스를 발견한 한서진은 여동생의 뒤태를 보고 저도 모르게 실소했다. 뒤태에서부터 오늘 힘을 단단히 주고 나왔다는 기합이 느껴졌다. 이러니 못 알아봤지.
그는 천장을 오픈하며 천천히 다가가서 경적을 울렸다. 경적 소리에 무심코 돌아본 한지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그녀는 굳은 듯이 잠시 말이 없었다. 한서진과 포르쉐, 둘을 번갈아 쳐다보던 그녀는 마침내 겨우 입을 열었다.
“이 차…… 얼마야?”
“일단 타.”
“오빠, 정신 나간 건 아니지? 설마 할부로 샀어? 대체 얼마짜린데?”
“내 돈 하나도 안 들었으니까 일단 타. 가면서 설명해줄게.”
한지혜는 어쩔 수 없이 차에 올라탔다. 극도로 긴장하는 게 부들부들 떨리는 손끝에서부터 느껴진다.
화사한 분홍빛 원피스에 머리카락도 정성스럽게 공을 들인 게 눈에 보였다. 원래 제법 예쁘장한 편인데 이렇게 꾸미니 친동생이 아닌 것 같았다.
한지혜는 차의 위엄에 짓눌린 듯이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오빠. 이 차…….”
“회사에서 줬어.”
“회사에서? 왜 오빠한테 이런 비싼 차를 줘?”
“내가 한국대 붙었잖아. 그것도 학부 수석으로. 회장님이 기특하다고 주신 거야.”
“회장님? 설마 H그룹 백철중 회장님?”
“응.”
“맙소사.”
한지혜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입을 벌리고 정신없이 그를 바라봤다. 그는 작게 실소했다. 자신도 가끔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데, 동생은 더할 것이다.
“실은 내가 장학근로 제도 혜택으로 공부해서 한국대에 붙었거든. 덕분에 신문에도 나고, 사내에서도 좀 유명해졌어. 그래서 회장님이 기특하다고 이 차를 주신 거야. 학교 다닐 때 타고 다니라고.”
“……말도 안 돼. 이 차, 못해도 이삼억은 되어 보이는데…….”
“10억이래.”
“으아악!”
깜짝 놀란 한지혜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와, 그렇게 잘해준단 말이야? 겨우 한국대, 아니 한국대가 겨우는 아니지. 그것도 수석이면…… 아, 그래. 회장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 사람들한테는 10억은 돈도 아니겠지…….”
마지막에 한지혜는 다소 풀이 죽은 듯 말을 흐렸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듯이 물었다.
“그런데 학교 다니면 회사는 어떡하고?”
“학교 일정이랑 겹치면 회사는 빠져도 돼.”
“세상에, 그래도 월급을 준대?”
“월급만이 아냐. 이 차 유지비도 회사에서 다 줘. 세금이나 보험, 기름값까지 전부.”
“와……. H그룹이 정말 통이 크긴 크구나. 우리 회사와는 차원이 다르네.”
이쯤 되면 회사 직원이 아니라 회사에서 심혈을 기울여 키우는 장학생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한지혜는 질린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근데 옷에 엄청 힘주고 나왔네?”
“사진 찍을 거니까. 그리고 한국대잖아.”
“한국대가 뭐?”
“나 같은 고졸한테는 꿈만 같은 대학이라고. 세상에, 내가 한국대 입학식에 가족으로 참가할 줄이야. 진짜 두고두고 오늘을 못 잊을 거야. 셀카 왕창 찍어야지.”
한지혜는 다른 의미로 감격한 듯이 보였다. 왠지 그 심정이 이해가 가서 한서진은 피식 웃어버렸다.
포르쉐는 어느새 한국대 캠퍼스에 들어섰다. 차가 시원하게 달릴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돌아봤다.
입학식 장소는 본관 1층이었다. 본관 부근은 입학생과 그 가족들이 가득했다. 주차장도 거의 가득 차 있어 한서진은 빈 공간을 찾느라 제법 고생해야 했다.
차를 세우고 내리는데, 주변 사람들이 죄다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한서진은 머쓱해져서 시선을 피했다.
“오빠, 나 좀 찍어줘. 차가 잘 나오게, 알았지?”
“알았어, 알았어.”
대강 사진을 찍고, 본관에 들어섰다.
처음 보는 동기생들 사이에 낀 채, 입학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고 행사를 마쳤다. 입학 선서를 한 이과 전체 수석이 키가 큰 남자애라는 것만 기억이 났다.
“반도체공학부! 반도체공학부! 모두 저희를 따라 오세요! 이쪽입니다! 섞이면 안 돼요!”
“지금부터 학과 수강 신청을 하고 오후에는 환영 행사에 바로 참석할 겁니다!”
과 선배로 보이는 몇 몇 학생들이 팻말을 든 채, 두 팔을 크게 흔들며 학부 신입생들을 인솔했다. 그래봤자 한서진보다 몇 살은 어려 보이는 얼굴들이지만. 그도 얌전히 신입생 틈에 섞여서 이동했다.
―무슨 수강 신청 하고 오후에 환영 행사 한다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어.
―그럼 난 학교 구경이나 하다가 먼저 갈게. 어차피 입학식 다 봤으니까.
―우리 사진 같이 안 찍었잖아? 따로만 찍었는데.
―징그럽게 뭐 하러 같이 찍어. 나 간다.
―ㅇㅇ. 가.
한국대 입학식이라고 별 다를 건 없다고 느꼈는지, 한지혜는 쿨하게 헤어졌다.
선배들의 인솔에 따라 바로 수강 신청을 하고, 여러 관련 설명을 듣고 나니 점심때가 훌쩍 지났다.
“자, 과 환영행사가 있으니 이쪽으로 따라오세요.”
선배들은 어느 야외무대로 신입생들을 안내했다. 신입생들은 어미닭을 쫓는 병아리 떼처럼 졸졸 따라다녔다. 야외무대에는 신입생들을 위한 주문 도시락이 준비돼 있었다.
도시락을 받아들고 풀밭에 털썩 주저앉았다. 신입생들은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며 삼삼오오 모였다. 한서진의 주변에는 아무도 모이지 않았다. 아마 그들보다 연상인 점 때문인 듯했다.
“한서진 학생?”
그때였다. 들어본 적 있는 중후한 목소리가 뒤에서 그를 불렀다. 의아해서 돌아본 한서진의 눈이 커졌다.
“여기 있었군.”
“며, 면접관님?”
“허허, 지도 교수한테 면접관님이 뭔가. 그냥 교수님이라 부르게.”
박효산 교수는 그의 옆에 앉으며 인자하게 웃었다.
============================ 작품 후기 ============================
"면접관님이니 교수님이니 다 갖다 버려. 날 그냥 맷돌이라고 불러주련?"
"왜 맷돌이에요?"
"너를 갈아넣기 위한 맷돌이란다 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