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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10화 (10/609)

00010  엘릭서  =========================================================================

“한서진 환자, 아직도 안 돌아왔나?”

저녁이 다 되도록 한서진이 돌아오지 않자 김자홍 및 의료진은 걱정이 태산 같았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염려가 되었다.

“전화라도 해봐, 어서.”

“이미 여러 번 했는데 받질 않아요. 문자까지 남겼습니다만 연락이 되질 않습니다.”

“허어, 이 사람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 아니야?”

김자홍 교수는 답답해 미칠 것 같았다.

한서진의 혈액에서 추출한 미지의 면역 효소만 생각하면 입안이 바짝바짝 말랐다. 성분 조사라도 하고 싶은데 이제는 단 0.01mg도 남아 있지 않으니, 더 애가 탔다.

‘틀림없어. 한서진 환자의 면역 체계가 합성하는 저항 효소가 분명해.’

김자홍 교수는 자신의 가설에 확고한 믿음을 가졌다. 이제 남은 것은 가설을 검증하는 것인데, 중요한 협력자인 한서진이 돌아오질 않으니 답답했다.

“안 되겠어, 직접 찾아가봐야지. 한서진 환자의 주소가 어떻게 되나?”

“네, 교수님? 직접 찾아가시게요? 그건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개인 정보 보호도 걸려 있고…….”

“지금 그런 게 중요한가!”

결국 제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김자홍 교수는 원무과에서 한서진의 주소를 알아내서 병원을 나섰다.

한서진의 집은 병원에서 약 40분 정도 떨어진 원룸 건물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댄 김자홍은 1층 출입문에서 세대를 호출했다.

「누구세요?」

“한서진 씨? 저 담당 주치의입니다.”

「아, 네. 어쩐 일로 오셨어요?」

무심하게 느껴지는 목소리에 김자홍은 좋지 않은 예감을 받았다. 그는 헛기침을 한 뒤 말했다.

“어서 병원에 돌아오셔야지요. 아직 퇴원해서는 안 됩니다. 한서진 씨는…….”

「다른 병원에서 검사하니 완치라고 하던데요.」

“…….”

「왜 숨기셨죠?」

김자홍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연구를 좀 더 하기 위해 완치 사실을 숨긴 것은 사실이었으니.

이윽고 겨우 마음을 추스른 김자홍이 말했다.

“한서진 씨, 오해했다면 죄송합니다. 실은 저도 완치에 매우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혹시 놓친 게 있을까 정밀 검사를 하느라 그랬던 겁니다. 늦어도 하루 이틀 안에는 완치 판정을 내릴 예정이었습니다.”

「…….」

“그 점이 기분 나빴다면 제가 사과하겠습니다. 이럴 게 아니라 직접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하면 안 되겠습니까?”

「내려갈게요.」

그의 대답에 김자홍은 조금 안도했다.

잠시 후 편안한 차림의 한서진이 내려왔다. 한서진은 건물 앞에 있는 편의점으로 데려갔다. 안에서 커피 두 개를 사와서 야외 탁자에 앉기를 권했다.

김자홍은 마음 같아서는 좀 더 제대로 된 곳에서 그를 설득하고 싶었지만, 그런 마음을 꾹 눌렀다.

“오해를 했다면 그 부분은 다시 사과드리겠습니다. 다만 완치 판정은 의사에 따라서 며칠 정도 간격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신중을 기하기 위한 일이니까요.”

“뭐, 알겠습니다. 그런데 왜 직접 보고 이야기를 하자고 하신 건가요?”

오해는 일단 푼 것인가. 김자홍은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부터가 중요했다.

“한서진 씨는 남과 다르게 특별한 면역 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면역이요?”

“어렵게 생각하실 것 없습니다. 면역이란 병을 이겨내는 힘이죠. 면역 능력이 강한 사람은 병에 잘 걸리지 않거나, 걸리더라도 다른 이에 비해 순조롭게 낫습니다. 한서진 씨가 말기 암을 극복한 것도 그런 이유로 보입니다.”

“그래서요?”

“한서진 씨의 혈액에 그 특수한 면역 효소가 섞여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성분을 연구할 수만 있다면 획기적인 암 치료제를 만들 수도 있을 겁니다. 모든 암 환자들의 꿈이 이뤄지는 거죠.”

김자홍은 진심을 담아 설득했다. 할 수만 있다면 무릎이라도 꿇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서진 씨, 부디 도와주십시오.”

아버지뻘 되는 교수가 고개를 깊이 숙이며 간청하니, 한서진은 조금씩 마음이 약해졌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생각한 걸까?’

다른 병원에서 완치 판정을 받고 김자홍 교수를 의심했었다. 다른 목적이 있어서 일부러 말해주지 않은 것은 아닌가 하고.

하지만 하루 이틀 안에 완치 판정을 내릴 예정이었다니, 자신이 과민하게 군 건 아닌가 생각되었던 것이다.

한서진은 김자홍 교수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는 간절한 눈빛으로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신을 집중하고, 눈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통찰안은 발동하지 않았다.

아쉬웠다.

사람의 마음까지 자유자재로 읽을 수만 있다면 참 편리할 텐데. 통찰안의 한계일까, 아니면 자신이 부족해서일까.

통찰안의 도움 없이 오로지 자신이 생각해서 결정을 해야만 했다. 한서진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고, 김자홍은 애타는 눈빛으로 대답을 기다렸다.

“저는…….”

김자홍이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까지 크게 들릴 정도로 사방이 고요했다.

“거절하겠습니다. 죄송해요.”

눈을 뜬 왕은 대견한 마음을 가졌다.

“노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군.”

덜컥 승낙하는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다행히 한서진은 의사의 제의를 거절했다.

한서진과 달리, 아서 왕은 의사의 진심을 꿰뚫어 보았다. 독심 주문 같은 게 아니다. 두터운 인의장벽에 둘러싸인 왕은 그것을 극복하고, 현명한 정치로 대륙을 다스려야 했다. 그런 경험에서 나온 통찰력이었던 것이다.

그 의사가 거짓을 말한 것은 아니다. 다만 올바른 진심을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아픈 자들을 위한 순수한 마음만이 오롯이 존재했다면, 그 간청을 믿어 주었을 것을…….”

왕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시한부 암환자들을 위한 열망. 의사는 분명 그런 마음이 있었지만, 동시에 자신의 성공을 위한 야심도 컸다.

“폐하.”

얇고 나풀거리는 옷을 입은 시녀가 다가와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백성들이 모여 있습니다. 폐하의 건재한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주실 때입니다.”

“알겠다.”

왕이 몸을 일으키자 네 명의 시녀가 옆에 붙어서 옷 입는 것을 도왔다. 금과 은으로 수놓인 옷을 입고, 보석으로 치장한 화려한 관을 머리에 썼다.

왕은 복도로 나섰다. 붉은 수가 놓인 황금색 망토를 펄럭였다. 시종장부터 수십 명이 넘는 수행원이 뒤를 따랐다.

높은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내자 거대한 광장이 보였다.

광장에는 수십만 명이 족히 넘어갈 듯한 시민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왕이 모습을 드러내자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광장까지 들어오지 못하고 외곽에 모인 시민들이 그에 호응하듯 더 큰 함성을 질렀다. 모든 이들이 왕을 부르짖으며, 건재함을 기뻐했다.

“국왕 폐하 만세!”

“킹 아서 만세! 만세!”

왕은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화답하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귀청을 찢을 듯한 함성이 더욱 커졌다.

그때였다. 저 멀리 거대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시민들은 잠시 숨을 죽이고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것은 칠흑빛으로 뒤덮인 거대한 용이었다. 전장 수백 미터가 족히 넘는 전투용은 스치듯이 낮게 날며, 왕이 머물러 있는 발코니 앞에 섰다.

용의 머리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금속으로 감싼 인물이 서 있었다. 그는 왕을 보자마자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국왕 폐하, 건강한 모습을 보니 저희 카딘 기사단도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임무는 완료했는가.”

“예! 크로비스 해역을 어지럽히던 심해어, 퀘이텔을 제압하였습니다. 이제 크로비스 지방의 백성들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왕은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수평선에서 희미한 그림자가 보였다. 그림자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가 아니라 수없이 많은 칠흑빛 용의 군단이었다.

용의 군단 뒤에는 그보다 더 거대한 생명체가 있었다. 둥글고 커다란 머리에 여러 개의 촉수 같은 다리가 달린, 심해에서 기어 올라온 듯한 끔찍한 생명체였다. 그 다리 하나하나가 무려 칠흑빛 용의 두 배가 넘는 길이였다.

생명체는 수없이 묶인 빛의 그물로 용의 군단에게 포박되어 있었다.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듯 간헐적으로 꿈틀거렸지만, 용의 군단은 조금의 빈틈도 용납하지 않았다.

“와아, 괴물 퀘이텔을 잡았다!”

“카딘 기사단 만세! 용의 군단 만세!”

“국왕 폐하 만세! 국왕 폐하 만세!”

수도가 떠나갈 듯 우렁찬 함성이 사방을 뒤흔들었다.

왕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백성들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레노지안의 지배자,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주인.

그것이야말로 감히 부정할 수 없는, 참된 진실이리라.

============================ 작품 후기 ============================

"내가 현실에서는 이렇게 잘 나가는데... 꿈에서는 어휴 진짜 개노답 노예 인생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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