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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트리스 드림-9화 (9/609)

00009  엘릭서  =========================================================================

“일단은 지켜봅시다.”

의사가 차분히 말하자, 한서진은 다소 우려를 담고 물었다.

“그냥 놔둬도 괜찮은 건가요?”

“한 달 만에 아무 조치 없이 말기 암이 완치되었어요. 이건 외부 요인이 아닌, 신체가 지닌 자연 면역력 덕분이죠. 섣불리 약물이나 다른 치료를 시도했다가 그 면역력이 깨지는 더 좋지 않습니다.”

납득이 가는 설명이었고, 한서진은 만족했다.

사실 그는 의사가 다른 치료를 하자고 하면 어떻게 거절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다른 치료가 엘릭서의 효능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일단은 꾸준히 지켜봅시다. 검사도 자주 하고요. 아예 사흘 간격으로 했으면 합니다.”

‘검사를 사흘에 한 번이나? 그럼 돈이 많이 들 텐데.’

복권 당첨금과 퇴직금을 합쳐, 수중에 2억 넘게 남아 있었지만 한서진은 엄살을 부렸다. 죽을병을 고치고 나자 이제 먹고 사는 문제에 신경이 쓰였다.

‘으아, 15억이나 턱 하니 써버리다니. 그냥 5억 정도만 줘도 됐을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하니 그 돈이 몹시 아까웠다. 예전 같았으면 평생을 벌어도 모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거금 아닌가.

죽다 살아나니 이제 그 돈이 아깝다는 생각도 드는구나. 한서진은 픽 하고 웃어버렸다.

그 웃음을 다른 의미로 이해한 의사도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축하합니다.”

“저어, 사흘에 한 번씩 검사하자고 하셨는데 너무 잦은 거 아닌가요? 제가 돈이 없어서 비용이 좀 감당이 안 될 것 같은데…….”

“음……. 오해는 하지 말고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환자분 같은 경우는 대단히 드문, 가히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케이스입니다. 그래서 학술적인 목적으로 연구를 좀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대신 치료비는 일절 받지 않겠습니다.”

“연구라고요? 그건 좀…….”

인체 실험 같은 걸 떠올린 한서진은 다소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말을 흐렸다. 의사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이고, 무슨 상상하는지 알겠습니다만 그런 거 아닙니다. 그저 혈액이나 체액 검사, 조직 채취와 간단한 반응 검사, MRI 촬영 같은 수준입니다. 연구라고 해서 해롭거나 위험한 짓 같은 건 절대 안 합니다. 안심하세요.”

의사의 간곡한 부탁에 한서진은 골똘히 생각했다. 거짓이나 위선은 없어 보이지만 내키지는 않았다.

‘엘릭서를 마시고 사흘 만에 이 정도면 곧 다 낫지 않을까? 만약 다시 악화된다 싶으면 다시 엘릭서 마시면 되고.’

엘릭서는 아직 90% 정도 남아 있었다. 생각을 마친 한서진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그냥 제 돈 내고 검사 받겠습니다.”

“환자분, 그러지 마시고요.”

“병이 다 나으면 복직할 겁니다. 먹고 살려면 일을 해야 해서요. 보아하니 금방 나을 거 같은데 연구 협조한답시고 매달려 있을 순 없잖아요.”

“그럼 완치 될 때까지만이라도 안 되겠습니까?”

“완치 때까지만…… 네, 그럼 저도 좋습니다.”

손해 볼 게 없다고 생각한 한서진은 쾌히 승낙했다. 그도 조금 궁금하긴 했다. 엘릭서가 어떻게 해서 병을 낫게 하는지.

의사는 곧바로 한서진 전담 의료진을 구축했다. 그는 교수였고, 병원 내에서 상당히 영향력이 강한 인물이었다.

“자가 면역 능력이 월등히 뛰어난 것 같은데요. 말기 췌장암이 어떻게 치료 한 번 안 하고 이 정도까지 호전될 수 있죠?”

“이 면역 능력을 규명할 수만 있다면 암 치료에 엄청난 발전이 있을 텐데.”

1인실 특실에 배정받은 한서진은 자신의 옆에서 의료진이 떠드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부분은 전문 의학 용어가 섞여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간호사들이 간간히 주고받는 이야기나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병원 측에서는 그를 위해 온갖 혜택을 제공했다. 최신형 컴퓨터와 각종 비디오 게임 기기, 타이틀, 맛있는 음식 등 돈을 아끼지 않았다. 어떻게든 그의 환심을 사려고 안달을 냈다.

“교수님, 이걸 좀 보시죠.”

“뭔가?”

“한서진 환자의 혈액에서 추출한 물질인데…… 처음 보는 물질입니다. 인체가 저절로 합성한 물질은 아닌 듯합니다.”

“약물?”

김자홍 교수는 미간을 찡그리며 생각했다. 그런 약이 개발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가 없다.

“약물 치료는 한 적 없어. 한서진 환자의 면역 체계가 자체적으로 합성한 저항 효소로 보는 게 타당할 걸세.”

“하지만 이런 건 처음 보는데요.”

“한서진 환자만이 지닌 독특한 면역 체계일 수도 있지. 그래서, 보고할 건 그게 다인가?”

“아닙니다. 엄청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뭔가?”

“다른 환자에서 적출한 암 조직을 시험관에 담고 이 물질을 투여했는데, 놀랍게도 암 조직이 괴사했습니다. 정상 세포는 아무렇지도 않았고요.”

김자홍 교수는 무릎을 탁 치며 일어났다.

“바로 그거야! 그 물질, 얼마나 더 있지?”

“이제 없습니다. 혈액에서 극미량만 겨우 추출한 터라……. 저도 혹시나 하고 암 조직에 섞어 본 겁니다.”

김자홍의 안색도 덩달아 어두워졌다.

“이런……. 일이 힘들어지겠어.”

병원에 입원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한서진은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받았다. 체감으로는 이미 다 나은 것 같은데, 의료진은 아직 암세포가 일부 남아 있다면서 완치 판정을 내리지 않았다.

‘사흘 만에 90% 이상이 소멸했으면서, 일주일 동안 남은 10%가 그대로라고? 이상한데……. 혹시 엘릭서 효능이 다 떨어진 건 아닐까?’

지루함을 참지 못한 한서진은 집에 다녀오기로 하고, 환자복을 갈아입었다. 마침 들어오던 간호사가 깜짝 놀랐다.

“어머, 환자분. 어디 가시려고요?”

“집에 잠깐 다녀올게요.”

“안 돼요. 아직 퇴원하시란 말 못 들었단 말이에요.”

“퇴원이 아니고 잠깐 다녀오는 거예요. 집에서 가져올 게 있어요.”

“그럼 잠시만요. 선생님한테 전달 좀 하고요.”

한서진이 나가려 한다는 말에 그를 처음 진단했던 교수가 득달같이 달려왔다.

교수, 김자홍은 다급히 그를 만류했다.

“아직 함부로 움직일 때가 아닙니다. 완전히 다 나은 게 아니에요.”

“퇴원하겠다는 게 아니고 잠시 집에 다녀오려고요. 챙겨야 할 게 좀 있어요. 금방 갔다올게요.”

“허어, 그래도…….”

마치 한서진이 병원을 나가면 다시 안 돌아올 것 같았는지, 김자홍 교수는 거듭 그를 말렸다. 그러나 끝내 그의 뜻을 꺾지는 못하고 두 손을 들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오후까지는 반드시 돌아오셔야 합니다. 완치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아직 다 나은 게 아니에요.”

“알겠습니다.”

한서진은 만류를 뿌리치고 겨우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열흘 만에 돌아온 원룸은 떠나기 전 그대로였다. 엘릭서도 책상에 그대로 들어 있었다.

“약 효능이 다 떨어진 건가? 적정 용량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가 없으니…….”

한서진은 푸른 사파이어 빛깔의 엘릭서를 잠시 들여다보다가 뚜껑을 열고 컵에 따랐다. 저번에 마셨던 것의 1/3 정도쯤 되는 양이었다.

따뜻한 기운이 식도를 꿀꺽 넘어갔다.

‘……?’

한서진은 이상함을 느끼고 멈칫했다.

‘뭔가 전과는 다른 것 같은데…….’

전에 엘릭서를 마셨을 때는 뱃속에서 뜨거운 기운을 품은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고통스럽지 않고, 기분 좋은 열기로 체내를 가열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감각이 전혀 없다.

“……설마.”

한서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엘릭서를 책상에 잘 넣어둔 채 다시 원룸을 나섰다.

그리고 두 번째로 진단받은 병원을 찾아갔다. 의사가 그를 알아보고 맞이했다.

“처음 진단받은 병원에서 들었는데, 암이 많이 호전됐습니다. 그래서 자세한 검진을 받고 싶어요.”

“호전됐다고요? 정말 다행이군요. 알았어요, 바로 검사를 해봅시다.”

의사는 ‘조금 호전’된 것으로 이해하고, 대수롭지 않게 검사를 진행시켰다. 검사가 진행될수록 그의 얼굴도 덩달아 굳어져만 갔다.

몇 시간에 걸친 검사를 마친 후, 의사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기적이에요. 암이 완치되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건지…….”

“완치라고요?”

“예, 암세포의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완전히 깨끗하게 나았어요. 대체 무슨 치료를 받은 겁니까?”

완치 판정.

김자홍 교수의 다급한 표정을 떠올리는 한서진의 눈빛은 차갑게 내려앉아 있었다.

============================ 작품 후기 ============================

레노지안산 엘릭서는...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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