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327화 (327/330)

# 327

Side dish 6. 이리나의 사정

강지한의 손 위에는 붉은색의 단약 같은 것이 놓여 있었다.

시스템 보상으로 얻은 위령환이었다.

그것의 정보를 자세히 살폈다.

[위령환: 하경춘에게 붙어 있는 혼령을 달래주는 환. 하경춘이 복용하면 혼령의 기운이 약해져 그녀가 받는 고통이 사라진다.]

역시나 레벨 업 시스템.

적재적소, 필요할 때 가장 원하는 것을 내어준다.

문제는 아무런 예고 없이 갑자기 줘버리니 그 전까지는 이 문제를 어찌 해결해야 하나 발 동동 구르게 될 때가 조금 있었다.

지금처럼.

강지한이 하경춘에게 전화를 걸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깨어있을 거라 생각했다.

낮에 있었던 통화에서 하경춘은 혼령의 기운 때문에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잔다고 했으니.

역시나 신호음이 몇 번 가기도 전에 하경춘이 전화를 받았다.

-강 대표! 뭔가 진전이 있었어요?

“네. 완벽하게 해답이 나온 건 아닌데, 하 도사님의 고통을 조금 줄여줄 수는 있을 것 같아요.”

-그것만 해도 감지덕지지. 내가 어떻게 하면 돼? 말만 해.

“크게 어려울 건 없어요. 근데 얼굴을 좀 뵈어야 하는데 지금 뵈러 가도 될까요?”

-그럼요. 무조건 괜찮지.

“그럼 바로 출발할게요.”

* * *

하경춘은 강지한이 대민 붉은색 단약을 받아들고 물었다.

“이게 뭐래요?”

“위령환이라는 건데, 먹으면 혼령한테 받는 압박이 사라진대요.”

“에이, 그런 거 다 거짓말인데. 어디서 비싼 돈 주고 사온 건지 모르겠지만 다시 물러.”

“사온 게 아니고 만든 거예요.”

“으잉? 어떻게?”

“일단 드셔보세요.”

“그, 그럴게요.”

하경춘이 위령환을 입에 넣고 씹었다.

으레 이런 약들이 다 그렇듯이 씁쓸하고 맛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어마어마하게 맛있었다.

은은한 단맛 속에서 고소함이 팍 터지더니 입안을 가득 채웠다.

약은 무슨 초콜릿처럼 스르르 녹아 사라졌다.

“어머나. 너무 맛있네. 이거 정말 약 맞아요?”

“그렇게 맛있어요?”

강지한도 맛은 본 게 아니어서 놀라 물었다.

“응. 아니 본인이 만들었다면서 그런 것도 몰라? 강 대표답지 않은 말이네.”

“하하. 그러게요. 좀 어때요?”

“응? 어라? 그러고 보니 이제 아무렇지도 않네?”

스스로의 상태를 관조해 본 하경춘이 깜짝 놀랐다.

위령환을 먹자마자 정말로 오한이 싹 가시며 심신이 편안해졌다.

조금 전까지 풍기던 혼령의 무서운 기운이 완전히 가라앉은 덕분이었다.

“히야. 그것참 신통하네. 아니 강 대표. 이거 어떻게 만드는 거래요? 나 좀 알려줘 봐. 장사 잘될 것 같은데.”

시스템 보상으로 얻은 것이니 만드는 법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강지한은 그냥 대충 둘러댔다.

“꿈속에서 갑자기 어머니가 나와서 알려준 레시피대로 만든 건데요. 한 번 만들고 났더니 어찌 만든 건지 거짓말처럼 잊어버렸어요.”

“세상에나. 강 대표 어머니께서 나 살려주려고 도움 주셨나 봐.”

“정말 그런가 보네요. 하하.”

사실 보통 사람이 들었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타박이나 놓았을 법한 변명이었다.

그런데 그 대상이 하경춘이라 강지한의 변명은 쉽게 먹혀들었다.

“강 대표한테 내가 정말 미안해하고, 고마워하고 있는 거 알죠? 늘 염치 없는 부탁만 해대서 면목이 없어요.”

“그런 생각 하지 마시라니까요. 아무튼 괜찮아지신 것 봤으니 그만 가볼게요.”

“그래요. 밤늦게 나 땜에 여기까지 찾아와주고…… 내가 언젠가는 강 대표한테 받은 거 한 번에 다 갚을 거야.”

“일전에 목숨 한 번 살려주신 걸로 됐어요. 그럼 오늘 밤은 편히 주무세요.”

인사를 건넨 강지한은 차를 몰아 빠르게 멀어져 갔다.

그런 강지한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하경춘이 허공에 대고 말을 흘렸다.

“어때요. 우리 강 대표 보면 볼수록 든든하죠? 응? 그렇지. 감격스러우시겠지. 나도 댁 같은 입장이면 그럴 것 같네요. 두고 보슈. 댁이 바라는 게 뭔지 몰라도 강 대표가 분명히 해결해 줄 테니.”

* * *

하경춘의 일을 해결해 놓고 집으로 돌아온 강지한은 일기장을 다시 폈다.

거기에 기억의 잉크 하나를 투자하니 이후의 내용이 조금 더 나타났다.

1990년 6월 27일.

갈수록 지한이의 발길질이 심해진다.

.

.

.

우리 지한이, 나중에 떡볶이 장사해서 대성하려고 이러나?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오빠는 떡볶이보다는 조금 더 제대로 된 음식을 팔아서 대성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 한다.

떡볶이가 뭐 어때서? 하여튼 민태 오빤 다 좋은데 이상한 요리 자부심이 있다니까.

그 부분은 아무래도 남선 오빠 영향을 좀 받은 것 같다.

민태 오빠가 처음 신선정에 들어와 돌아가는 분위기를 잘 모를 때 남선 오빠와 조금 붙어 다녔다.

나중에야 멀어졌지만, 남선 오빠 특유의 귀족 음식 사상 같은 게 비집고 들어온 모양이다.

장남이라는 사람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 대가님 속이 썩어 들어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더 이해간다.

대가님께서 걱정하시는 일.

[이후의 내용이 잠겨 있습니다.]

[기억의 잉크를 투자할 때마다 내용이 조금씩 드러납니다.]

1990년 6월 27일의 일기에는 여러 가지 내용이 중구난방으로 담겨 있었다.

한데 그 중심을 관통하는 큰 줄기는 한정신 대가의 걱정이었다.

그게 무언지는 아직 확연하게 밝히지 않은 상태였다.

아마 일기의 마지막에 거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타나지 않을까 싶었다.

“하 도사님 일을 해결했으니 평소처럼 느긋하게 문제를 풀어나가도 되겠지.”

강지한은 내일의 즐거움을 기대하며 일기장을 장롱에 넣었다.

* * *

쾅쾅쾅!

누군가 대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강지한의 눈이 번쩍 뜨였다.

“으음…….”

아직 잠이 남아 있는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혹시 잠결에 뭘 잘못 들은 건 아닌가 싶었다.

쾅쾅!

아니었다.

분명히 누군가 대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강지한이 스마트폰 액정을 확인했다.

새벽 세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이 시간에 누구지?’

문 앞으로 다가간 강지한이 물었다.

“누구세요?”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공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이었다.

“대표님, 저 성웁니다!”

“성우?”

강지한이 문을 열었다.

그러자 얼굴이 붉게 물들어 눈이 완전히 풀린 용성우가 비틀거리며 헤죽 웃었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그래도 대표님이 너무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용성우의 입에서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 혀도 상당히 풀려 있었다.

고주망태가 되도록 마신 모양이었다.

“일단 들어와라.”

강지한은 일단 그런 용성우를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거실에 마주 앉자마자 용성우가 한숨을 푹 쉬었다.

“후우우우. 대표님. 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대표님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네?”

“성우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차근차근 얘기해 봐.”

“리나가 부모님이랑 몇 년 동안 연락 한 번 하지 않았을 정도로 사이가 안 좋다는 거 모르시죠?”

“……리나가?”

“네에에! 푸후우. 부모님이랑 엄청나게 싸우고 춘천 내려온 거랍니다. 근데 저는 리나랑 결혼을 하고 싶습니다. 리나도 저랑 결혼하고 싶어합니다. 문제는요. 리나는 양가 부모님의 축복을 받으면서 결혼하고 싶대요. 그러려면 리나가 부모님이랑 화해를 해야 한단 말입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왜냐!”

탕!

용성우가 주먹으로 바닥을 때렸다.

그러고는 눈물을 그렁거리며 말했다.

“이리나가 사람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뭐?”

강지한의 눈이 홉떠졌다.

리나가 사람을 죽였다니?

용성우가 아무리 취했어도 술주정으로 헛소리를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놀란 강지한의 가슴이 평소보다 조금 빠른 템포로 뛰었다.

그런 와중에도 리나가 사람을 죽인 것과 부모님을 볼 수 없는 것 사이에 어떠한 연관점이 있는 건지 궁금했다.

그에 대해 물어보니 용성우가 바로 대답했다.

“리나가 죽인 게…… 리나가 죽인 사람이요! 그 사람이 누구냐면요. 흐윽. 리나의…… 막내 동생이래요. 흐으윽!”

대단히 충격적인 말을 뱉고 나서 용성우는 한참을 울었다.

강지한은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놀랐지만 일단은 우는 용성우를 차분히 달래주었다.

강지한의 따듯한 손길에 겨우 진정을 한 용성우가 다시 천천히 상황을 정리했다.

“근데요. 리나가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거든요. 부모님은 맞벌이하시고 막내동생은 늦둥이라 겨우 네 살밖에 먹지 않아서 당시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리나가 돌봐야 했대요. 둘 사이에 남동생이 하나 더 있는데, 그 녀석은 중학생인데다 사춘기가 와서 가족 일엔 나 몰라라 했답니다! 허구한 날 게임방에서 살았대요. 그 녀석만 집안일을 좀 도와줬으면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용성우가 울분을 토했다.

뒤에 이어진 용성우의 설명은 이러했다.

여느 날처럼 이리나는 막내 이정훈을 집에서 혼자 돌보고 있었다.

한데 그날은 코감기가 심하게 와서 영 컨디션이 좋지 않아 유난히 힘들었다.

평소 같으면 막내를 계속 곁에서 케어해 줬을 텐데 그럴 여력이 없어서 침대에 누워 있었더니, 막내는 집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혼자 놀게 됐다.

그러다 막내가 배고프다고 하는 소리에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이리나가 막내에게 주로 먹이는 건 구운 햄이었다.

막내는 누나가 힘들어하는 모습에 평소 보았던 걸 기억하고서 먼저 주방으로 나가 가스레인지 점화 손잡이를 돌렸다.

딴에는 누나를 도와주겠다고 한 행동이었다.

한데 그 순간 쾅! 하는 굉음과 함께 폭발이 일어나며 주방에 불이 붙었다.

한참 전에 혼자 놀던 막내가 가스레인지의 점화 손잡이를 돌려 열어 놓았던 것이다.

때문에 가스가 새며 그 인근이 가스로 가득 찬 상황이었다.

그 상태로 점화 손잡이를 다시 돌려 버렸으니 가스 폭발이 일어나는 건 당연한 일.

만약 이리나가 코감기에 걸리지 않았다면 냄새라도 맡고서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그녀가 놀라 뛰쳐나갔을 땐 거실은 불바다였고 멀리 날아간 동생은 처참한 몰골로 의식이 없었다.

급하게 그런 동생을 안고 집 밖으로 뛰쳐나와 119에 신고를 했으나 너무 늦어버리고 말았다.

집은 완전히 타서 사람이 제 기능을 상실했고 막내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이리나의 부모님은 일의 책임을 전부 이리나에게 돌렸다.

그것이 이리나가 부모님과 멀어지게 된 계기였다.

이후로 이리나는 가족들과의 관계가 몹시 서먹해졌다. 이사 간 집에서는 늘 죄책감에 짓눌려 살아야 했다.

그게 힘들어서 집을 나와 춘천으로 내려온 것이다.

한껏 이리나의 사정을 털어놓은 용성우가 눈물을 펑펑 흘리며 강지한에게 물었다.

“대표님, 이런 상황에서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리나한테 도움을 줄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리나가 부모님과 화해할 수 있습니까? 저는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아무것도…….”

용성우가 상체를 이리저리 비틀거리더니 옆으로 픽 쓰러져 잠이 들었다.

강지한은 그런 용성우를 보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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