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3
Side dish 2. 일기장의 문제
[Hidden Stage. 설윤진의 일기장]
[목표: 일기장의 비밀을 알아내세요.]
[성공 보상: 령(靈)의 선물.]
“시스템…… 메시지?”
시스템 메시지는 이내 사라졌다.
‘일기장의 비밀을 알아내라고 했었지.’
강지한이 일기장을 빠르게 훑었다.
그것은 설윤진이 성인 될 무렵부터 적어나갔던 일기장이었다.
매일 꾸준히 적어나간 것은 아니었다.
날짜가 상당히 띄엄띄엄한 것이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적고 싶을 때만 적어나간 듯했다.
최초의 일기 작성일은 1986년 1월 1일.
설윤진이 19살이 되던 해였다.
강지한의 시선이 그날의 짧은 일기를 읽어나갔다.
1986년 1월 1일.
날씨 맑으나 내 마음은 흐렸다가 밝았다가 비 내렸다가 추웠다가 따뜻했다가 종잡기 힘들다.
민태 오빠한테 줬던 막대 사탕을 재혁 오빠가 쪽쪽 빨고 있다.
저번에도 그랬다.
아침부터 빚어서 점심에 가져다 준 만두를 민태 오빠는 먹지 않고 남선 오빠가 먹고 있었다.
저저번에도, 저저저번에도, 저저저저번에도.
민태 오빠는 왜 내가 만들어 준 걸 안 먹어?
나한테서 무슨 냄새 나나?
속상한 마음에 나한테 관심이 없나 보다 하고 시무룩해 있으면 또 은근슬쩍 다가와서 사탕 하나씩 쥐어주고 가버린다.
오늘도 그랬다.
내가 이 사탕 하나 때문에 마음 접으려다가도 그게 안 된다.
아으, 약 올라.
그래서 나도 오늘 받은 사탕은 스승님 드렸다.
맛있냐고 여쭤봤더니 계피향이 은은한 게 딱이라신다.
나한테 계피 사탕 준 거였어?
이런 계피 같은.
“풋.”
일기장에서 육성 지원이 되는 것 같았다.
살아생전 엄마의 성격은 즐겁고 유쾌했다.
장난기도 제법 많았고 말투가 참 재미있었다.
생각이 깊었지만 그것을 밖으로 나 표출하지는 않는 스타일이었다.
오히려 행실만 보면 아직 소녀티를 벗지 못한 것 같을 때가 많았다.
“엄마가 아빠를 먼저 좋아했었구나.”
강지한은 여태 아빠가 먼저 엄마를 좋아한 줄로만 알았다.
늘 아빠가 그렇게 말해왔기 때문이다.
한데 일기장을 보니 정반대의 상황이었던 모양이다.
강지한은 이후로 몇 장의 일기를 더 읽어보았다.
대부분이 평온한 일상의 기록이었다.
그러다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건 1987년 2월 2일의 일기에서였다.
1987년 2월 2일.
신선정에서 칼바람이 불고 있다.
다들 날이 서 있어서 어딜 가나 마음이 편하지 않다.
작은오빠와 큰오빠는 며칠째 도끼눈을 하고서 대립하는 중.
작은오빠 말로는 큰오빠가 경합에서 비열한 수작질을 했다고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누구의 말이 맞는 건지.
둘 다 얍삽하기로는 용호상박이니까.
두 사람의 장난이라고 해야 할까, 괴롭힘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그런 짓에 숱하게 놀아난 나로서는 누구도 신뢰할 수가 없다.
갈수록 대가님의 한숨만 늘어난다.
얼마 전, 대가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대가님께서 날 데려오신 건 꼭 요리에 대한 재능 때문만은 아니라고 하셨었다.
대가님은 한식의 발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오신 분이다.
그렇다 보니 집안 돌아가는 꼴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사람들의 입맛은 제대로 잡을 수 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자식들의 인성을 바로잡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라며 괴로워하셨다.
대가님에게는 평생을 두고 가장 아끼는 세 자루의 칼이 있다.
풍운도(風雲刀), 천화도(遷化刀), 신룡도(神龍刀).
어렸을 적 대가님의 이름을 걸고 열린 요리대회에서 내가 우승을 해 신룡도를 상으로 받았다.
대가님의 의중은 두 형제들을 자극시켜 더욱 열심히 요리에 정진하며 정신적인 수양을 갈고 닦으라는 데 있었지만, 웬걸.
그날 이후로 더 날 괴롭히는 데 정진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작은오빠는 나이를 먹으면서 철이 좀 들었다는 정도?
지금은 나한테 친절히 대해주는데 어쩐지 모를 싸늘함이 가슴을 쿡 찌를 때가 있다.
어렸을 적 하도 괴롭힘을 당한 것이 트라우마라도 되었나 보다.
내게 트라우마를 안겨준 작은오빠 나쁜 오빠.
현재진행형으로 날 괴롭히는 큰오빠 죽어라! ……아니, 그냥 길 가다 넘어져서 조금 다쳐라.
지금은 미워할 수 없는 작은오빠.
그렇지만 이 역시 트라우마의 영향인지 난 작은오빠의 말을 백 퍼센트 믿어줄 수가 없어. 미안.
설윤진의 일기 안에는 강지한이 몰랐던 한돈선과 한남선의 과거 모습이 묘사되어 있었다.
아마 이 일기를 미리 봤더라면 강지한은 한돈선을 조금이라도 의심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계속해서 그가 일기장을 살폈다.
이후로는 좋은 내용이 거의 없었다.
한남선이 패권을 잡은 이후 점점 암울해져 가는 신선정의 분위기와 결국 그것을 버티기 힘들어 강민태와 신선정을 나와버린 이야기들이 죽 열거되어 있었다.
일기는 간혹 메모의 형식으로 짧게짧게 적혀 있는 경우도 보였다.
마지막 일기는 강지한이 태어나는 내용으로 마무리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건 뭐지?’
일기 중간에 날짜만 적혀 있고 텅 비어있는 페이지가 보였다.
강지한이 그 페이지를 자세히 살피자 비어 있는 공간에 갑자기 글자가 나타났다.
1990년 6월 27일.
[내용이 잠겨 있습니다.]
[기억의 잉크를 투자할 때마다 내용이 조금씩 드러납니다.]
‘기억의 잉크?’
강지한이 의문을 품자 허공에 다른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기억의 잉크-일기장에 적힌 문제의 답을 알아낼 때마다 한 개씩 얻을 수 있습니다.]
일기장에 적힌 문제라니?
여기엔 그냥 일기만 적혀 있을 뿐, 문제 같은 건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강지한이 혹시나 하며 일기장을 촤르륵 넘겨 뒷부분을 펼쳤다.
그러자 맨 뒷장에 설윤진의 필체로 뭔지 모를 메모 하나가 적혀 있었다.
‘스물두 번째 가장 고고한 자의 효심이 담긴 죽.’
“이걸 말하는 건가?”
그것 말고는 딱히 문제랄 것이 없었다.
스물두 번째 가장 고고한 자의 효심이 담긴 죽.
그게 뜻하는 바가 무언지 강지한은 고민했다.
* * *
다음 날.
지한 분식의 주방 안에 선 용성우와 이리나 사이에는 묘한 기운이 감돌았다.
둘 사이에서 호흡을 맞추며 이를 느낀 고중만이 미간을 구기며 물었다.
“오늘 두 사람 왜 이래? 어제 데이트하다가 싸웠어?”
“아닙니다. 안 싸웠어요.”
“……그런 거 아니에요.”
둘 다 싸우지 않았다고 대답은 하는데 영 표정들이 밝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아무리 바쁘게 일을 하는 와중에도 꽁냥꽁냥하는 시선을 주고 받느라 바빴을 텐데, 지금은 냉기가 흐른다.
“에이, 젠장. 싸웠으면 빨리 화해하고 풀어! 같이 일하는 사람 불편해서 살겠나. 아, 숨 막혀.”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불편하게 해서 죄송해요, 아저씨. 이제부터 긍정여신 이리나로 돌아올게요!”
이리나가 억지로 미소 지으며 고중만을 달랬다.
“젊을 때 연애하다 보면 싸우기도 하고 그러는 거야. 그럴 때 서로 마음 풀고 현명하게 넘어가야지 오래 가면 이별하는 지름길 되는 거라고. 내가 보기엔 둘이 이제 결혼까지 생각해야 할 것 같은데. 안 그래? 서로 이렇게나 잘 맞는 사람 또 만나기가 쉬운 게 아니라니까.”
결혼.
그 단어가 나오자마자 풀리려던 이리나의 얼굴이 다시 경직됐다.
그러더니 어깨를 축 내리고서 비틀비틀거리며 식재료를 꺼내왔다.
“왜, 왜 그래? 내가 뭐 말 잘못한 거야? 용 주방장. 방금 내 발언에 리나 듣기에 거북한 말이 있었어?”
당황한 고중만이 용성우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용성우의 상태는 이리나보다 더 심했다.
“헉.”
곧 죽을 것 같이 퀭해진 얼굴로 넋 나간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모습이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았다.
‘이것들이 대체 왜 이래?’
영문을 알 수 없는 고중만만 둘 사이에서 숨이 턱턱 막혔다.
한편 용성우는 어제 이리나에게 들었던 얘기를 상기하며 속으로 한숨지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리나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거지?’
이리나는 가족의 곁을 떠난 이후 다른 사람에게 단 한 번도 한 적 없는 얘기를 들려준 것이라 했다.
강지한도 자신의 이런 사정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게 리나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리나가 나쁜 마음으로 죽인 것도 아니고.’
용성우가 이리나의 얼굴을 힐끔 살폈다.
어제 ‘그 얘기’를 내놓은 이후 그녀의 표정은 한결같이 무거웠다.
‘어떻게 해야 하지.’
갈수록 고민만 쌓이는 용성우였다.
* * *
지한 정식 주방에 선 강지한은 열심히 들어오는 주문들을 소화해 나가고 있었다.
손님들이 몰려드는 식사시간에는 주방일이 너무 바빠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브레이크 타임이 되고 나서야 생각이라는 걸 할 여유가 주어졌다.
강지한은 직원들과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어제 일기장에서 봤던 문구를 곱씹어 봤다.
‘스물두 번째 가장 고고한 자의 효심이 담긴 죽이라…….’
그런 강지한을 직원들이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수십 쌍의 시선이 따가웠던 강지한은 그제야 사람들의 시선을 알아채고서 물었다.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니요. 그게 아니라. 대표님이 식사시간에 깨작깨작하시는 걸 처음 봐서요.”
강지한은 식사를 할 때마다 앉은 자리에서 기본 5인분은 먹어치우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밥톨을 세고 있으니 이상하게 보일 만도 했다.
“아, 그게 고민이 좀 있어서.”
“뭔데요?”
“내가 수수께끼 하나 낼테니까 맞춰 볼래?”
수수께끼라는 말에 직원들의 얼굴에 호기심이 동했다.
“맞춰볼게요.”
“스물두 번째 가장 고고한 자의 효심이 담긴 죽. 이게 뭘 말하는 걸까?”
강지한이 던진 수수께끼를 직원들의 답을 직원들이 저마다 추리하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며 열띤 논쟁을 벌였다.
그러는 와중 그럴 듯한 해석이 도출되었다.
“스물두 번째 가장 고고한 자라는 게, 제가 보기엔 22대 왕을 뜻하는 것 같은데요?”
“효심이 담긴 죽은 22대 왕이 효심을 담아 만든 죽이라는 뜻이고.”
거기까지 듣고 난 강지한이 테이블을 탁 쳤다.
“삼합미음.”
“삼합…… 미음이요?”
“조선 22대왕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홍씨가 화성에 도착해 잘 적응하지 못하자 기력을 북돋아 줄 음식들을 준비하게 해서 대령했다고 해. 거기서 가장 유명한 음식이 해삼, 소고기, 홍합, 찹쌀로 만든 삼합미음이야. 따로 정조의 효심이 들어간 음식이라고 불리기도 할 정도지.”
“대표님의 해박한 지식에 무릎을 탁 칩니다.”
“근데 그렇게 잘 알고 계실 정도면 굳이 우리한테 물어보지 않아도 답 나오는 거 아니었어요?”
직원 중 한 명의 뼈 때리는 의문에 강지한이 멋쩍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게. 등잔 밑이 어두웠네.”
강지한이 답을 찾아낸 그때,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문제의 답을 맞췄습니다.]
[기억의 잉크 한 개가 지급되었습니다.]
[일기장에 새로운 문제가 추가되었습니다.]
* * *
이향숙은 너무 놀라 영혼이 몸 밖으로 뛰쳐나가려는 것을 겨우 틀어쥔 얼굴로 김숙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 지금 뭐라고 했어? 다시 말해봐.”
김숙자가 양볼이 붉게 물든 채 안절부절하며 시선을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