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1
Restaurant 320. 축복이 내리는 3월
근 보름 동안 강지한의 이름은 인터넷 사이트 포털 검색어 순위에서 수시로 오르내렸다.
한돈선, 한남선 형제의 파렴치한 악행이 세상에 드러났기 때문.
홍정학의 양심 고백으로 16년 전, 사고사로 처리되었던 강지한 부모님의 죽음은 청부살인으로 전환되었다.
사건이 전혀 다른 케이스로 전환됨에 따라 한돈선의 행위는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았다.
오랜 시간을 숨겨왔던 범행인 만큼 한돈선이 발뺌을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검찰의 생각이었다.
한데 한돈선은 모든 사실을 순순히 자백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한편, 한돈선보다 먼저 법정에서 싸움을 하고 있는 한남선은 여전히 자신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 이리저리 피해갈 구멍만 살피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그럴수록 점점 더 스스로의 형량이 무거워져 가고 있다는 것을.
한남선이 싸워야 하는 건 눈앞의 법이 아니었다.
그 뒤에서 모든 상황을 관망하고 있는 진상명이었다.
한돈선 역시 진상명의 손아귀에 놓여 있다는 걸 알았다.
강지한을 은인으로 모시는 그였다.
때문에 강지한 본인과 가족들에게 용서받지 못할 짓을 저지른 두 형제를 절대 용서할 리 없었다.
어쩌면 한돈선은 이를 이미 알고서 자포자기한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두 사람의 범행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난 뒤엔 강지한이 할 일이 크게 없었다.
그저 피해자이자 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기억을 가진 증인으로서 법정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전부였다.
아울러 강지한을 대하는 경찰공무원들의 태도는 대단히 공손했다. 그의 뒤에 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이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상황.
때문에 자연스레 언행이 조심스러워졌다.
어찌 되었든 한씨 가문의 두 형제로 인해 많은 불행을 겪어야 했던 강지한은 비로소 그 대가를 받아낼 수 있게 됐다.
한돈선과 한남선에게 드리워진 법의 철퇴는 결코 가볍게 휘둘러지지 않을 터였다.
* * *
칠흑같이 어두운 밤.
차가운 철창 안에서 한돈선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지그시 눈을 감은 그의 앞에는 강지한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한때는 그도 강지한을 진심으로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가 설윤진과 강민태의 자식이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본인의 모든 것을 물려줄 후계자로 점찍었었다.
하지만 몰랐던 진실을 접하면서 한돈선의 마음속에 감추어 두고 있던 야욕이 들끓었다.
그는 강지한과 대화를 하며 몇 번이고 그 야욕과 싸우며 이성을 차리려 했다.
그런데 강지한은 너무나 무섭게 성장해 있었다.
그 속도가 놀랄 정도로 빨랐다.
한돈선의 후계는 고사하고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커버리고 말았다.
이런 강지한을 볼수록 한돈선의 마음속에서는 불안이 싹 텄다.
이미 부모의 비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눈치챈 듯한 상황.
만약 강지한이 신선정의 패권을 이으려 한다면 한돈선이 지금껏 차근차근 쌓아온 노력은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
평소의 성격으로 봤을 때 그럴 일은 없겠으나 인간의 욕심이라는 건 끝간 데를 알 수 없고 어디로 튈지도,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는 법이다.
한돈선은 그때 알았어야 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이는 법이라는 것을.
이를 인지 못하고 혹시 모른다는 불안감과 스스로의 욕망이 한데 뒤섞여 괴물이 되었다.
그는 강지한을 이용하기로 마음먹고 큰 그림을 그렸다.
강지한의 초점이 신선정의 신선숙수를 물려받는 것보다 부모의 원수를 갚은 쪽으로 기울 수 있도록 유도했다.
“부모님은…… 어찌 눈을 감았는지 말해줄 수 있겠니?”
강지한에게서 과거의 비사를 처음 듣던 날 그가 흘렸던 질문이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강지한이 한돈선의 거미줄에 엮이기 시작했던 것이.
하지만 결국 그 거미줄은 강지한이 아닌 한돈선 본인의 목을 졸라왔다.
지금의 잘못과 과거의 잘못 까지 모두 까뒤집어 토해내도록 만들었다.
그로 인해 자신은 세상과 격리 된 공간에서 지은 죗값을 받아야 할 상황에 놓였다.
‘공기가…… 차구나.’
감고 있는 한돈선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더 이상 세상에 그가 설 수 있는 곳은 없었다.
* * *
3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바람은 봄의 기운을 머금었다.
지한 정식이 쉬는 일요일.
강지한은 부모님의 기일이 아님에도 두 분을 모셔놓은 묘로 향했다.
늘 혼자 오곤 했었는데, 오늘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곁엔 단아하게 차려입은 아름다운 여인 예소린이 함께였다.
지난달, 부모님 기일에 묘를 찾았을 땐 한씨 형제와의 일로 인해 심신이 지쳐 있어서 벌초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 다시 찾은 김에 벌초도 할 셈이었다.
그 전에 일단 살아생전 두 분이 가장 좋아했던 음식 한가지씩을 내려놓고 술을 한 잔 따라 절을 올렸다.
설윤진은 강지한이 만든 김밥을 제일 좋아했고, 강민태는 엄마의 잡채를 제일 좋아했다.
그 두 가지의 음식 앞에 놓인 술은 소주였다.
강지한의 부모님은 두 분 다 똑같이 소주를 좋아했었다.
절을 마친 강지한이 소주를 두 개의 묘에 뿌리고서는 챙겨온 예초기를 들었다.
그런데 하얗고 기다란 손이 그것을 빼앗아 가려 했다.
“이리줘, 지한 씨. 내가 할게.”
예소린이었다.
“응? 아냐, 됐어.”
“줘. 나도 지한 씨 부모님한테 효도할 기회 한 번은 줘야지.”
“아니, 괜찮…….”
강지한이 그런 예소린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
하지만,
툭.
“윽.”
예소린이 한 번 힘을 주자 예초기가 강지한의 두 손에서 그냥 빠져나갔다.
“나 예초기 처음이야.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줘.”
“응.”
강지한은 예소린에게 예초기의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운동신경이 뛰어나고 머리가 좋은 예소린은 예초기를 금세 능숙히 다뤘다.
순식간에 벌초를 끝낸 예소린은 이마에 흐른 땀을 한 번 슥 닦았다.
성인 남성이 하기에도 쉽지 않은 작업인데 그녀는 숨조차 헐떡이지를 않았다.
강지한이 그런 그녀를 가만히 보고 있으니 그제야 비틀 거리며 엄살을 피웠다.
“앗. 지한 씨, 나 너무 무리한 거 같아. 어지럽네.”
“……너무 늦은 거 알지?”
“좀 속아주지. 매정한 사람.”
예소린이 배시시 웃으면서 강지한의 곁에 다가왔다.
두 사람은 한 동안 주고받는 말없이 동그란 묘 두 개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이제 가볼까?”
강지한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갑자기 예소린이 입을 열었다.
“어머님. 아버님. 실은 오늘 여기에 우리 두 사람만 온 게 아니에요.”
“응?”
그 말에 강지한이 주변을 둘러봤다.
이곳저곳을 살펴도 둘 말고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어수룩한 강지한의 모습을 보면서 예소린이 픽 웃었다.
“하여튼 눈치도 없고. 요리 말고는 다 젬병이라니까.”
“어?”
여전히 강지한이 모르겠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자 예소린이 자신의 배를 살살 어루만졌다.
그제야 강지한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소린 씨, 혹시…….”
예소린이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응. 나 임신했어, 지한 씨. 쌍둥이래.”
“쌍둥이?”
“응. 좋지?”
강지한은 대답할 수 없었다.
벅차오르는 심정을 말로 표현하기도 전에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와 입을 틀어막았다.
“지한 씨, 울어?”
“아니… 그게, 어, ……진짜 임신이래? 쌍둥이?”
겨우겨우 입밖으로 흘러나오는 강지한의 음성은 물기에 푹 젖어 있었다.
두 뺨을 타고 줄줄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열심히 훔쳤다.
소용없었다.
눈물은 멈추지 않고 한 여름 장맛비처럼 계속해서 쏟아졌다.
예소린이 그런 강지한의 앞에 서서 그의 눈물을 같이 닦아주었다.
“응. 나도 어제 병원 가서 알았어. 두 달 전부터 몸이 이상하기에 혹시나 하고 가봤는데, 벌써 3개월이래.”
“그렇구나. 여기에 우리 아이가…….”
강지한이 말을 하다 말고 놀라 입을 쩍 벌렸다.
“그런데 벌초를 한 거야?”
“에이, 그거 해봤자 힘 얼마나 든다고.”
예소린의 무한 체력과 어마어마한 괴력을 아는 강지한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힘든 일을 일부러 맡기지는 않았다.
힘쓰는 일은 어지간해서는 본인이 하려 하는 그였다.
예소린이 아무리 화려한 과거를 가지고 있고 어지간한 남성은 간단하게 제압해 버리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강지한이 볼 때는 지켜줘야 하는 자신의 아내였다.
그런 아내가 무려 쌍둥이를 임신했는데 아무 생각 없이 벌초를 하도록 두었다니.
순간 스스로가 너무 못나 보였다.
“지한 씨, 지금 그 표정 나 알아! 자책하기 없기.”
이제는 강지한의 얼굴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내는 예소린은 얼른 그를 제지했다.
“알았어, 소린 씨. 앞으로는 절대 힘쓰는 일 하지 마. 내가 다 할 테니까 집에서 편안하게 있어. 애견 카페도 당분간은 직원들에게 맡기고.”
“호호호. 알았어. 그렇게 할게. 걱정하지 말아요.”
그때쯤 겨우 눈물을 그친 강지한이 부모님의 묘를 바라보았다.
지금껏 자신이 왔던 중 가장 큰 선물을 가지고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두 사람의 모습을 부모님이 살아서 봐주셨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퍽 서글펐다.
“소린 씨.”
“응?”
“고마워, 정말.”
“뭐가 고마워. 나 혼자 노력했나? 우리 둘이 밤마다 노력해서 맺은 결실인데.”
“…….”
갑자기 훅 치고 돌아온 멘트에 강지한의 귀가 붉어졌다.
“이그. 이런 농담에도 굳어버리고. 너무 쑥맥이야, 자기는. 실전에서는 한 한달 굶은 짐승 같으면서.”
“저, 저기 부모님 계시는 자리니까 다른 얘기 하자.”
강지한의 반응이 귀여워서 한참을 웃은 예소린이 갑자기 생각난 것을 물었다.
“만약에 말야, 지한 씨. 부모님께서 날 보셨다면 마음에 들어 하셨을까?”
거기에 돌아온 강지한의 대답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응. 정말 좋아하셨을 거야.”
“어떻게 장담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부모님이랑 나랑 사람 보는 눈이 비슷했거든. 호감 가는 타입도 비슷했고.”
예소린이 강지한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꿈에서라도 좋으니까 한 번 꼭 뵈었으면 좋겠다. 지한 씨 부모님.”
“……그러게. 정미 혼자 강아지들 돌보느라 힘들겠다. 그만 가자.”
“응.”
두 사람은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종류를 알 수 없는 신비한 나비 한 쌍이 나풀나풀 날아와 살포시 내려앉았다.
* * *
부모님을 뵈러 갔다가 돌아온 강지한과 예소린을 설탕이와 다른 강아지들이 격하게 반겨주었다.
강지한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그런 설탕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설탕아. 좋은 소식이 있어. 이제 너한테 동생이 생길 거야. 아니, 작은 주인이라고 해야 하나?”
예소린이 강지한과 같은 모양으로 쪼그려 앉아 설탕이게게 물었다.
“우리 아기 설탕이가 많이 예뻐해 줄 수 있지?”
왕왕!
설탕이가 당연하다는 듯 크게 짖어 대답했다.
이 광경을 유정미가 멀리서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그런데 앵글 앞으로 아름다운 나비 한 쌍이 춤을 추듯 날아들었다.
‘예쁘다.’
유정미는 처음 보는 신비한 색감의 날개를 가진 나비들이었다.
어느새 강아지들은 세 사람의 주변을 마구 뛰어다니며 해맑게 노닐었다.
넓은 마당에 있는 모두의 머리 위로 따듯한 볕이 내렸다.
강지한과 예소린에게 축복이 내려온 3월의 어느 날이었다.
<完>
*지금까지 ‘레벨 업! 하는 식당’과 함께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