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4
Restaurant 313. 비장의 한 수
신선정의 넓은 주방.
그곳에는 출입을 허가받은 기자들과 초청된 각 분야의 요리 명인들이 참석해 있었다.
명인들 사이에는 한돈선의 모습도 보였다.
기자들은 아직 대결이 시작된 것도 아닌데 플래시를 터뜨리기 바빴다.
플래시의 집중포화를 받는 사람은 주방에 마련된 커다란 조리대 두 개 앞에 선 강지한과 한민국이었다.
그들의 얼굴엔 이번 대결의 승리를 거머쥐겠다는 각오가 가득 담겨 있었다.
두 사람의 앞으로는 제3대 신선숙수 한남선이 휘황찬란한 의자에 거만함을 풀풀 풍기며 앉아 있었다.
“오늘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참석해 주신 여러 귀빈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한남선이 좌중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저는 여기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신선정의 다음 대를 책임지기에 적격인 신선숙수가 탄생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말을 하는 한남선의 시선이 한민국에게 향했다.
강지한에게도 시선을 주기는 했으나 그것은 찰나일 뿐이었다.
‘출신도 모를 비천한 녀석이 일류의 길만 걸어온 내 아들을 이길 리 없지.’
한남선은 한민국을 무조건적으로 믿고 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칼을 잡았고 주방을 놀이터 삼아 성장했다.
그런데 고작 몇 년 사이에 급격히 성장해서 인기몰이를 한 강지한에게 진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 경합의 목적은 신선정의 후계자를 뽑는 것이다.
한민국은 핏줄부터가 적통이며 신선정의 모든 것을 보아왔다.
‘한 가지 불안 요소가 있긴 하나…….’
바로 이 경합의 심사위원들.
그들은 가면으로 정체를 감춘 채 VVIP룸에 앉아 있는 열 명의 잠행단이었다.
만약 잠행단의 신원을 파악할 방법이 있었다면 한남선은 어떻게든 접선해서 사전에 손을 써두었을 터.
그러나 한남선은 그러지 못했다.
한민국을 백 퍼센트 믿는다면 잠행단에게 손을 써두지 않은 것을 불안해할 필요가 없었다.
아니, 한남선은 지금 장남을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강지한의 손에서 만에 하나 벌어질 변수를 걱정하는 것이었다.
‘민국이를 믿어보자.’
마음을 다스린 한남선이 멘트를 이어나갔다.
“긴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바로 경합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규칙은 이러합니다. 두 명의 제4대 신선숙수 후보자는 주어진 두 시간 동안 구첩반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조리에 필요한 재료들은 주방에 전부 준비되어 있으니 어떤 것을 사용해도 무관합니다. 또한 숙성이 필요한 음식의 경우 각자 미리 준비한 것을 가져와도 괜찮다는 사실을 사전에 미리 공지해 두었습니다. 아울러 장(醬)과 같은 음식의 경우 신선정에서 준비해 둔 비법장을 사용해도 좋고, 본인의 가문, 혹은 식당에서 가져온 장을 사용해도 좋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구첩반상은 VVIP룸에 계신 잠행단 분들께서 공정히 심사를 하게 될 겁니다. 그럼 지금부터 신선정 제4대 신선숙수를 정하기 위한 경합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한남선의 말에 벽에 걸린 거대한 시계의 멈춰 있던 시간이 흘러가며 두 후보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구첩반상이란 과거 민간에서 먹던 밥상 중에 가장 화려한 상을 뜻한다.
그 위에 올리는 음식은 기본과 반찬으로 나뉜다.
기본 음식은 밥과 국이 하나씩에 김치가 두세 종류, 간장, 초간장, 초고추장의 종지 세 개에 찌개 한 그릇과 찜 한 그릇으로 이루어진 조치 두 그릇이다.
반찬은 아홉 가지를 내오는데 생채, 숙채, 구이, 조림, 전, 마른반찬, 젓갈, 장아찌, 그리고 회나 편육 중 하나를 선택해서 올리면 된다.
준비해야 하는 음식들의 가짓수가 상당하니 2시간이 넉넉지 않았다.
강지한과 한민국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쌀을 불리는 것이었다.
이후에 생각해 놓은 음식들을 차례차례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을 지켜보는 명인들과 기자들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단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그 대단한 한돈선도 긴장을 떨쳐내지 못한 채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지한아, 반드시 이겨야 한다.’
한돈선은 간절한 염원을 담아 강지한을 응원했다.
* * *
두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강지한과 한민국은 제한시간을 마지막 1초까지 전부 사용하며 겨우겨우 구첩반상을 완성해 내놓았다.
두 사람의 앞에 놓인 상 위로 기자들의 카메라 앵글이 집중되었다.
찰칵! 찰칵!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터지며 완성된 두 개의 구첩반상을 바쁘게 담아냈다.
강지한은 자신의 음식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조금의 실수도 없었어. 내 기량을 완벽하게 발휘해서 음식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그는 설윤진의 손맛과 어린 시절 신선성에서 맛보았던 한남선의 손맛을 기억해내어 그 장점만을 교합해 완성된 신선정의 맛을 만들어내는 데 중점을 두고 쉼 없이 연습했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 달간 잠도 거의 못 자가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이후에야 겨우겨우 만족스러운 수준의 음식들을 만들어내는 게 가능했다.
한편, 한민국 역시 강지한 못지않게 스스로의 손에서 탄생한 음식들에 자신이 있었다.
한돈선의 시선이 두 사람의 상을 자세히 살폈다.
직접 맛을 볼 수 없어서 그들의 음식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확실히 파악하기는 힘들었다.
하나,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봤으니 어떠한 맛을 담아냈을지 짐작은 가능했다.
‘비슷하겠구나.’
그것이 한돈선의 판단이었다.
한민국은 한남선이 외면해 버린 신선정의 기본을 찾아내어 음식에 담았다.
강지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때문인지 상 위에 놓인 두 사람의 음식은 외관상으로 느껴지는 분위기 또한 비슷했다.
화려함보다는 정갈함이 돋보였고 만든 음식의 종류들 또한 지금의 시류를 잡아내기보다는 옛것의 충실함을 따르고 있었다.
때문에 한돈선으로는 과연 누구의 음식이 우위라고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그는 강지한의 승리를 조심스럽게 예측해 보았다.
강지한에게는 한민국이 흉내 낼 수 없는 비장의 무기가 하나 있었다.
한편 한남선은 한민국이 이길 것이라 믿었다.
자신의 아들은 신선정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장을 사용해 음식들을 만들었다.
그것은 신선정의 유구한 역사가 담긴 맛으로, 한남선도 이 장만큼은 변형시키지 않고 그대로 유지해 왔다.
그러나 강지한은 자신이 직접 준비해 온 장을 사용해 요리를 만들었다.
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장이다.
고작 몇 년간 요식업계에 발 담근 애송이가 만든 장으로 신선정의 장맛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럼 두 후보자의 음식을 심사위원님들께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공정한 심사를 위해 각각의 상이 누구의 것인지는 통보하지 않습니다.”
블라인드 심사였다.
진행요원들은 두 개의 상을 조심스레 들어 VVIP룸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1초가 10년 같이 느껴지는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 * *
예소린은 집에서 강아지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늘은 그녀 혼자가 아니었다. 유정미도 함께였다.
한참 강아지들의 모습을 촬영하던 유정미가 예소린에게 물었다.
“근데 언니. 진짜 안 가봐도 되는 거예요?”
신선숙수의 후계자 경합을 두고 말하는 것이었다.
예소린이 잠시 침묵하다 말을 꺼냈다.
“내가 간다고 달라지는 게 있지는 않을 거야. 게다가 거기는 초대받은 사람들 아니면 입장 불가더라고.”
“아, 그렇구나. 그래도 걱정되지 않아요?”
“걱정되지. 근데…… 그보다는 믿음이 더 커.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해도 늘 믿음을 주는 사람이거든, 지한 씨는.”
“와, 멋져요, 언니. 나도 그렇게 믿음직한 남자 만나보고 싶네요.”
그때 예소린에게 설탕이가 다가왔다.
설탕이는 예소린의 앞에 편안한 자세로 앉아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예소린이 그런 설탕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빙긋 웃었다.
“너도 아빠가 별로 걱정되지 않나 보구나?”
왕!
설탕이가 그렇다는 듯 짖었다.
세상 누구보다 강지한과 강력한 교감을 자랑하는 설탕이었다.
덕분에 예소린은 더더욱 안심할 수가 있었다.
다만 그녀가 걱정하는 건 한 가지였다.
‘지한 씨, 만약 경합에서 이기면…… 그다음은 어쩌려는 걸까.’
경합에서 이기는 사람은 제4대 신선숙수로서 신선정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
하지만 강지한은 신선숙수의 자리에 앉을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과연 그 자리를 어쩌려는 것인지 예소린은 궁금했다.
예소린이 물었으나 강지한은 그저 잔잔한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 * *
홍정학은 요즘 매일같이 악몽에 시달렸다.
악몽 속에서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그러다 승용차 한 대를 들이받는 순간 비명과 함께 눈을 뜨고는 했다.
어젯밤도 마찬가지였다.
꿈에서 깼다고 편한 건 아니었다.
16년 전 그날, 그 사건 이후 홍정학은 단 하루도 맘 편히 지내지 못했다.
감옥에서 7년을 썩으며 죗값을 받았다고 자위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조금도 나아지지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마음의 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 무거움을 조금이라도 씻어보고자 몇 년 전부터 열심히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매일매일 막노동을 뛰며 편치 않은 생활을 하는 그였지만 일주일에 한 번 봉사 활동을 하지 않으면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데 봉사 활동을 하던 곳에서 우연찮게 강지한을 만났다.
얼굴이 낯익어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 했었는데 식사를 하던 와중 그의 과거 얘기를 듣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홍정학이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에 붙잡힌 와중, 사죄를 하고 싶다며 강지한의 부모님 빈소로 찾아갔을 때 자신에게 원망을 토하면서 울던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가 바로 강지한이었다.
‘어떻게 해야 이 죄가 씻겨 나간단 말인가.’
홍정학은 그날 이후 더더욱 괴로워했다.
마음이 병들어 일을 나갈 수도 없었다.
‘당시에는 나도 어쩔 수 없었어. 내겐 선택권이 없었어.’
본심으로 저지른 일이 아니었다.
당시의 그에겐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아내와 두 아이가 있었다. 그리고 병환으로 드러누운 아버지로 인해 병원비 또한 계속해서 갚아나가야 했다.
그 모든 무게를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을 누군가가 은밀히 제안했다.
눈 한 번 질끈 감고 양심을 버리면 전부 해결될 일이었다.
비록 자신은 감옥에 가겠지만 가족이 살 수 있다면 상관없을 거라 여겼다.
해서 저지른 일이었다.
한데 아내는 아이와 함께 범죄자가 된 자신의 곁을 떠나 버렸다.
그가 양심을 팔아 받은 모든 돈을 가지고서.
옥살이를 하던 와중 아버지도 숨을 거두었다.
7년의 형량을 채우고 밖으로 나오니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무거운 죄책감과 허망함이 전신을 짓누를 뿐.
이 마음의 무게를 떨쳐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홍정학은 사실 알고 있었다.
“후우우…….”
그의 퀭한 두 눈에 어떠한 결의가 맺혔다.
* * *
열 명의 잠행단은 두 개의 구첩반상을 신중하게 시식했다.
한남선은 필시 한민국의 음식이 강지한의 음식보다 한 수 위일 것이라 생각했다.
음식에 사용된 장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 달리 두 사람이 만든 음식의 맛과 질은 비등비등했다.
사실 강지한이 사용한 장은 한돈선이 내어준 것이었다.
한돈선은 신선정에서 나온 이후 다른 건 몰라도 장맛만큼은 신선정 고유의 비법으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다.
비록 전체적인 음식의 조리법과 추구하는 방향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장맛은 끝까지 유지해 나갔다.
그 덕에 강지한은 한민국에게 밀리지 않는 음식들을 완성하는 것이 가능했다.
두 사람의 음식 수준이 비슷하니 심사위원들의 입장에서는 어느 쪽에 손을 들어주어야 할지가 참 난감했다.
하지만 두 개의 상에서 확연한 맛의 차이를 자랑하는 음식이 딱 하나가 있었다.
그것을 맛보는 순간 심사위원들의 고민이 말끔히 사라졌다.
“이것이야말로 비장의 한 수로군요.”
“동감합니다.”
심사위원들은 단 하나의 음식으로 인해 한쪽 상에다 몰표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