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1
Restaurant 310. 매운 아귀찜과 오징어볶음
강지한에게는 요즘 버릇이 하나 생겼다.
저도 모르게 만나는 사람들의 오른팔을 힐끔거리는 것.
그렇다 보니 어머니의 일에 조금도 연관이 없는 사람들의 팔까지 관찰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상대방에게는 이런 행동이 불쾌할 수도 있기에 강지한은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이 버릇을 자제하려 노력 중이었다.
슬슬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10월 초.
지한 푸드의 모든 직원들은 늘 그렇듯 자신의 위치에서 언제나 최선을 다해주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빛을 발하는 사람은 용성우였다.
그는 지한 분식의 주방을 책임지고 있다.
강지한 대신 주방장으로서의 역할을 맡게 된 이후 용성우는 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더더욱 요리 공부에 매진했다.
언젠가는 꼭 강지한 대표님처럼 되리라 마음먹고 밤낮없이 노력했다.
늘 신메뉴를 고민하고 기존의 메뉴들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맛을 끌어낼 수 있을지 연구했다.
그 결과 지한 분식의 음식들은 강지한의 도움 없이도 그 맛이 아주 조금씩이나마 좋아지고 있었다.
강지한은 그런 용성우의 노력을 높이 샀다.
그는 지한 분식에 들어오고 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열정을 내려놓은 적이 없었다.
가장 탄탄하게 초심을 이어가는 사람이었다.
저런 열정이라면 언젠가는 꼭 좋은 사고 한 번 치게 되리라 강지한은 믿었다.
그러다 결국 용성우가 사고를 치고 말았다.
한가한 주말.
강지한은 용성우가 좀 뵈러 가도 되느냐는 물음에 흔쾌히 찾아오라 했다.
강지한의 집을 찾은 용성우의 손에는 음식이 담긴 1회 용기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이를 본 예소린이 얼른 큰 상을 펼쳤다.
그에 용성우가 장난 섞인 농담을 던졌다.
“강 대표님~ 이런 건 힘 좋은 남자가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하하하!”
그에 강지한이 용성우에게만 들리도록 작게 한마디 했다.
“……잘 모르면 말하지 마.”
“네?”
“……아니야.”
용성우가 들고 있던 1회 용기 두 개를 상에 내려놨다.
강지한이 얼른 수저와 앞 접시를 가지러 간 사이 예소린이 살갑게 말을 건넸다.
“성우 씨~ 잘 지내고 계시죠?”
“그럼요.”
“리나 씨랑도 문제없고요?”
“네. 깨 볶고 있습니다.”
“어머나~ 좋겠다. 근데 오늘은 왜 같이 오지 않았어요?”
“리나가 평소에 못 자는 잠을 주말에 몰아서 자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혼자 왔어요.”
“정말? 배려심 많네, 성우 씨.”
“강 대표님만 하겠습니까? 하하하.”
그때 강지한이 가져온 수저와 앞 접시를 상에 놓았다.
“자! 세팅 끝났다. 뚜껑 열어봐.”
“넵.”
용성우가 두 용기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이는 새빨간 비주얼의 음식 두 개가 나타났다.
하나는 아귀찜이었고, 다른 하나는 오징어볶음이었다.
“이 두 가지가 네가 말한 신메뉴야?”
“네.”
용성우가 오늘 강지한을 찾은 건 신메뉴에 대한 평가를 받기 위함이었다.
“제가 매운맛을 좋아하기도 하고, 사람들도 맛있는 매운맛을 찾아다니며 먹지 않습니까. 그래서 맵게 만들어 봤습니다.”
“와~ 어서 먹어보자, 지한 씨.”
“응.”
강지한과 예소린이 아귀찜과 오징어볶음을 신중하게 맛봤다.
그런 두 사람의 반응을 용성우가 잔뜩 긴장한 채 살폈다.
용성우의 말대로 두 음식 모두 입이 얼얼할 만큼 매웠다.
그런데 중요한 건 확실히 맛있다는 사실이었다.
“스읍~ 진짜 맵다. 근데 엄청 맛있어요, 성우 씨.”
“정말요?”
“네. 지한 씨는 어때?”
강지한은 말없이 음식을 한 번 더 먹어본 다음 빙그레 미소 지었다.
“성우야, 진짜 맛있게 나왔다. 잘 만들었어.”
“저, 정말입니까?”
“응.”
“와아아아아!”
용성우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 자세를 취했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만들어낸 음식이 강지한에게 인정을 받았다.
그는 마치 수능 만점을 맞은 학생처럼 좋아했다.
강지한은 용성우의 음식들을 다시 맛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레벨 5 정도 수준은 충분히 되겠는데.’
여기서 몇 가지만 개선해 주면 충분히 레벨6 정도의 수준까지도 노려볼 만했다.
하지만 강지한은 용성우에게 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여기까지 해냈으니 앞으로도 홀로 잘 해나갈 것이라 믿었다.
“성우야, 이거 메뉴에 올릴 거야?”
“네?”
감히 그런 생각도 안 하고 있던 질문에 용성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용성우는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고 싶었을 뿐이다.
새로 만든 음식을 메뉴에 걸 마음은 없었다.
“아직 그런 계획까지는…….”
“메뉴에 걸자. 생각해보니까 여태 지한 푸드에서 화끈하게 매운 음식은 내놓은 적이 없었잖아.”
“그, 그렇죠. 한데 분식집에서 팔기에는 메뉴가 좀 붕 뜨는 느낌이 듭니다.”
“분식집에서는 못 팔지. 이거, 지한 전골에서 파는 걸로 하자.”
“지한 전골에서요?”
“응. 똑같이 빨간 음식 파는 곳이니까 아귀찜이랑 오징어볶음을 슬쩍 끼워 넣어도 이상하지 않을 거야. 안 그래도 전골집은 메뉴가 너무 한정적이어서 뭔가 좀 늘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어.”
“아, 그렇네요.”
“성우 네가 숙자 아주머니한테 레시피랑 만드는 법 전수해 드려. 그리고 두 가지 음식의 판매량에 따라 너한테 따로 인센티브 넣어줄게.”
“어? 안 그러셔도 됩니다! 저는 제 요리가 메뉴에 올라간다는 것만으로도 좋습니다. 헤헤.”
“그건 내가 마음이 불편해서 안 돼. 그러니까 그냥 받도록 해.”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예소린은 아귀찜과 오징어볶음을 부지런히 집어 먹고 있었다.
“스흡. 하아. 하. 이거 되게 매운데 엄청 맛있네. 계속 손이 가요, 성우 씨.”
“감사합니다, 형수님!”
이로써 지한 김치 전골에는 용성우의 메뉴 두 가지가 걸리게 되었다.
* * *
박혜령, 박혜미 자매는 올해 스물하나, 스물이 된 연년생으로 춘천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고향은 춘천이 아니었다.
언니와 동생이 이번 년도에 나란히 강림대에 입학하며 춘천에서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두 자매는 매운 음식을 몹시도 좋아한다.
한데 그들의 입맛을 만족시키는 매운 음식은 춘천에서 도통 찾아볼 수가 없었다.
좀 맵다고 해서 가보면 하나같이 매운 자극에만 초점을 맞추고 제대로 된 맛이 나질 않았다.
‘맛있게 매운 음식’이 자매가 원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한 김치 전골에서 오징어볶음과 아귀찜을 파는데 그 메뉴들이 그렇게 맵고 맛있다는 소문을 접하게 됐다.
그에 박 자매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박혜령의 최애 메뉴는 오징어볶음이고 박혜미의 최애 메뉴는 아귀찜이었기 때문!
박 자매는 그다음 날로 지한 김치 전골을 방문했다.
예전부터 맛집이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와본 건 처음이었다.
역시 맛집답게 식당 내부엔 거의 모든 테이블이 가득 차 있었다.
박 자매가 빈 테이블로 자리를 안내받았다.
두 여인은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바로 아귀찜과 오징어볶음을 주문했다.
주문이 들어가고 15분이 지나기 전에 매운 기운을 팍팍 풍기는 아귀찜과 오징어볶음이 나왔다.
박혜령은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부터 맡았다.
“흐음. 냄새는 합격인데?”
“오징어볶음에서 불향이 기가 막히게 나, 언니.”
“그럼…… 시작하자, 혜미야.”
“응.”
박 자매가 흡사 요리대회의 심사위원이라도 된 것마냥 비장한 얼굴로 아귀찜부터 시식했다.
박혜미는 두툼하고 쫄깃쫄깃한 아귀살 한 점에 양념을 범벅한 뒤, 콩나물을 한가득 올려 입에 넣었다.
쫄깃한 아귀살과 아삭한 콩나물이 상반된 식감을 동시에 안겨주며 큰 만족감을 주었다.
그리고 입안에 쫙 퍼지는 알싸한 매운맛이 정말 좋았다.
단순히 맵기만 한 게 아니었다.
정말이지 이건 박혜미가 원했던 ‘맛있게 매운맛’이었다.
“언니, 나 지금 눈물 날 것 같아. 너무 맛있어. 내가 찾던 게 이거야.”
“그치? 나도 목이 멘다. 켁켁.”
농담을 주고받으며 까르르 웃어버린 박 자매가 이번에는 오징어볶음을 공략했다.
아까부터 불향을 한껏 풍기며 존재감을 자랑하는 오징어볶음은 박혜령이 가장 사랑하는 음식이다.
그녀가 기다랗게 썰린 오징어 몸통살 한 점과 다리살 한 점에, 붉은 옷을 먹음직스럽게 빼 입은 야채들을 크게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으음~!”
박혜령의 입에서 바로 진리의 신음이 흘러나왔다.
오징어 살은 야들야들 부드러우면서 고소했고 야채들은 센 불에 빠르게 볶아내서 숨이 죽지 않아 아삭아삭했다.
양념맛은 또 어떤가?
아귀찜에 결코 뒤지지 않는 맵기와 입에 쫙 퍼지는 감칠맛이 그만이었다.
음식을 다 먹고 난 뒤, 비강을 통해 전해지는 불향은 오징어볶음에 자꾸만 손이 가도록 만들었다.
“와 오늘 진짜 행복하다.”
“아무래도 한 병 까야겠는데?”
동생의 제안에 언니가 바로 소주를 주문했다.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 즐거운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주문한 음식은 동이 나 있었다.
적당히 기분 좋게 취한 박 자매가 막잔을 들어 올렸다.
“혜미야, 우리 나중에도 지금처럼 친하게 지내자.”
“언니만 변하지 않으면 그럴 수 있겠지?”
“너나 잘하세요. 그래야 나이 오십 넘어서도 이렇게 얼굴 보고 매운 음식 먹으러 다니지.”
“좋아. 결정했다. 우리 30년 뒤에도 여기 와서 꼭 이 음식 또 먹자. 먹으면서 또 30년 뒤에 여기 다시 오자고 약속하는 거야. 어때?”
“오글거리는 소리 하고 있네.”
“싫어?”
“그러시든가. 다 먹었지? 나가자.”
박 자매는 들어온 순간부터 끝까지 즐겁게 떠들며 식당을 나섰다.
그렇게 지한 김치 전골은 매운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성지로 떠오르게 되었다.
* * *
11월의 어느 날.
지한 푸드는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미슐랭에서 2021년 미슐랭가이드에 실릴 한국 식당을 발표했는데, 그 리스트에 지한 정식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지한 정식은 무려 3스타를 받게 되었다.
미슐랭에서 발급하는 별의 개수에는 각각의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
별이 하나인 경우는 지나가다 멈춰서 식사할 만한 곳이라는 뜻이다.
두 개는 찾아가서 음식을 맛볼 가치가 있는 곳임을 뜻한다.
마지막 별 세 개는 그 레스토랑을 가기 위해 여행을 떠날 만하다는 걸 의미한다.
한마디로 강지한의 지한 정식은 미슐랭가이드에서 최고점을 받은 것이다.
그로 인해 강지한은 물론이고 지한 푸드 계열의 식당들이 연일 화제에 오르는 중이었다.
덕분에 춘천을 찾는 관광객의 수가 더 늘었고, 급기야 강지한은 춘천시청으로부터 춘천홍보대사로서의 책임까지 안게 되었다.
연일 꿈같은 일이 벌어지는 가운데 어느 날, 강지한의 앞으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한데 편지에는 받는 이의 대한 정보만 적혀 있을 뿐, 보내는 이가 누군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강지한이 편지를 뜯어보니 안에는 한 장의 서류가 세 번 접혀 들어 있었다.
그것을 꺼내 읽어본 강지한의 얼굴에 뭐라 표현하기 힘든 표정이 나타났다.
편지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신선정 제 4대 신선숙수 후계자 경합 외부인 후보 강지한. 그의 식당을 잠행단 10인이 1년간 5번의 방문으로 재점검해 본 바. 만장일치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는 의견이 나왔으므로 2차 합격했음을 통보함.
* * *
콰악!
한남선이 편지를 와락 구겼다.
그도 강지한과 같은 내용이 담긴 편지를 받았다.
“강지한…… 넌 절대 민국이를 넘어서지 못한다.”
한남선의 두 눈이 악으로 가득 차 이글거리며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