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0
Restaurant 309. 오른쪽 팔의 반점
강지한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니, 요리에 대한 기억을 스스로 봉인해 둔 것처럼 ‘그것’에 대한 기억도 봉인을 해버린 것이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아프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살아나가기 위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날 당시 설윤진의 뱃속엔 6개월 된 아이가 있었다.
당시 강지한의 나이 열여섯이었으니 상당한 늦둥이였다.
사실 크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친동생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강지한은 너무나 좋았다.
설윤진과 강민태도 한참 늦어진 선물에 행복해했다.
4개월 후면 태어날 막둥이를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강지한의 가족은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존재 자체로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어 주니 막둥이는 필시 달달한 성격을 가진 아이일 터였다.
그래서 설윤진과 강민태는 막둥이의 태명을 ‘설탕이’라고 지었었다.
우리 가족의 설탕 같은 존재라고.
하지만 그 아이는 결국 세상에 빛도 보지 못한 채 떠나고 말았다.
‘이제 전부…… 생각났어.’
아니 어쩌면 은연중에 알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동생이 생길 뻔했다는 것을.
그 가련한 영혼이 제대로 가족 품에 안길 기회도 갖지 못하고서 이슬이 되었다는 것을.
부모님의 사고사를 접하게 된 날.
강지한은 밤새도록 울었다.
그 울음 속엔 태어나지 못한 동생에 대한 아픔도 가득 담겨 있었다.
그래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찾아온 강아지의 이름을 ‘설탕이’라고 지은 것이.
강지한은 오래도록 동생을 잃은 아픔을 간직하고 있었고, 그것이 무의식중에 발현된 것이다.
결국 강지한은 아직까지도 과거의 아픔 속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었다.
아직 한쪽 발은 부모와 동생을 잃어버린 그때에 걸쳐 놓고 있었다.
하지만,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거잖아.’
과거가 없이는 현재도 없다.
과거는 지금의 나를 지탱해 주는 기둥이다.
누구나 지나간 기억에 한쪽 발을 걸쳐 놓고 살아간다.
강지한도 그 사람들과 다를 것 없이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다만 마주 바라볼 용기가 없어서 외면하고 억지로 발을 빼려 했던 것.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강지한은 모든 것을 안고 갈 용기가 생겼다.
트라우마로 남았던 어린 날의 상처를 품어줄 수 있었다.
불현듯, 강지한의 시야에 지난날의 환상이 펼쳐졌다.
장례식장에서 서럽게 울고 있는 아이의 외로운 등이 보였다.
누구도 아이를 위로해 주지 않았다.
아니, 위로해 줄 수가 없었다.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어버린 아이의 아픔을 어찌 달래줄 것인가.
결국 자신의 아픔을 달래줄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었다.
강지한이 아이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려 주었다.
그제야 비로소 아이의 울음이 그쳤다.
강지한은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과거의 아픔을 포용하고 상처투성이였던 어린 시절의 본인을 이해하며 안아주었다.
지나간 과거와 지금이 겨우 하나가 되었다.
* * *
레벨 업 시스템이 사라졌다는 걸 강지한은 며칠이 더 지나서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사람에게서는 상태창이 보이지 않았고 요리의 레벨을 알 수 없었으며 식재료의 품질 등급이 나타나지 않았다.
강지한 본인의 레벨 업 현황창 역시 몇 번이나 오픈해 봐도 헛수고였다.
하지만 강지한은 레벨 업 시스템이 없어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음식을 맛보면 그것이 어느 정도 레벨의 음식인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었다.
식재료들 또한 대충 한 번 슥 보면 원산지가 어디이며 얼마나 싱싱한지를 바로 맞췄다.
새로운 레시피를 만들어 음식을 조리할 때도 레시피에 적힌 각 재료의 양이나 조미료의 그람수를 따로 재지 않았다.
계량기 없이 손의 감각으로만 모든 계량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었다.
요리 실력 또한 전과 다름없이 훌륭했다.
혀의 감각은 더욱 예민해져서 타인이 만든 요리를 섭취할 경우 그 안에 들어간 재료들이 무엇인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전부 맞추는 게 가능했다.
그야말로 요리에 관해서는 천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것은 설윤진에게 물려받아서 강지한이 당연히 타고난 재능이었다.
사람들을 보는 안목도 생겨서 상대방이 어떤 성정인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어느 정도 꿰뚫는 게 가능했다.
안목은 물려받은 게 아니었다.
폭넓어진 인간관계 속에서 이런저런 경험을 많이 하다 보니 절로 늘어난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강지한은 레벨 업 시스템의 소멸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다.
다만 뭔지 모를 아쉬움과 섭섭함은 마음 한편에 쿡 박혀 사라지질 않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의 의문이 계속 그를 따라다녔다.
‘부적을 만들어 우리 가족을 저주한 사람은 대체 누굴까.’
지금으로서는 가장 유력한 후보가 한남선밖에 없었다.
강지한은 자신의 부모님이 트럭 사고로 돌아가신 것도 한남선의 사주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가정일 뿐이지만, 부모님이 사고를 당한 시기가 한남선에게 맞서려고 마음먹었던 때였는지라 너무나 공교로웠다.
그때 불현듯 솟구치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가만 부적이라면 혹시……?’
강지한의 머릿속에 하경춘의 얼굴이 떠올랐다.
* * *
하경춘은 요즘 지한 푸드 계열의 식당을 방문하지 않았다.
벌써 걸음을 끊은 지 세 달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지한 푸드의 음식들이 자다가도 꿈에 나올 지경이었다.
하경춘에게 강지한의 요리는 마약이나 다름없었다.
아쉬운대로 하루에 두 끼 정도는 꼭 신푸드의 레토르트 식품을 이용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식당에 가서 먹는 그 맛을 이길 수는 없는 법.
특히 지한 정식이 그렇게 맛있다고 소문이 난 상황이었는데, 먹으러 갈 수 없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가끔 식욕이 이성을 제어 못하고 지한 정식의 앞까지 다가섰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하경춘은 끝내 문턱을 넘지 않고 되돌아왔다.
도저히 강지한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지도 모를 사람한테 써줬던 그 부적이 강 대표에게 큰 불행을 안겨준 거야.’
확실한 것도 없으면서 하경춘은 그렇게 믿었다.
그것은 신기가 강한 하경춘의 어떤 느낌 같은 것이었다.
그 인과로 하경춘은 강지한의 목숨을 한 번 구해주게 되었다.
그러나 겨우 그 정도로 자신의 잘못을 퉁칠수는 없었다.
하경춘은 불길한 꿈을 꾼 이후 강지한이 등장하는 방송 프로그램이며, 그에 관한 기사들을 전부 찾아 읽어보았다.
예상했던 대로 강지한은 어린 시절 부모님을 잃고 혹독한 삶을 견뎌내 왔다.
한데 그의 어머님이 돌아가신 시기가 하경춘이 저주의 부적을 만들었던 시기와 딱 들어맞는 게 아닌가.
빼도 박도 못했다.
이건 자신의 부적이 제대로 효력을 발휘했다는 뜻이었다.
‘그럼 그 인간은 누구야. 왜 우리 강 대표 인생을 그따위로 짓밟아 놓으려고 했던 거야? 아니지……. 당시에 강 대표는 어렸을 텐데, 그 정도로 큰 원한을 질 사람이 없었겠지. 그럼 부적은 강 대표가 아니라 강 대표의 가족을 노렸던 건가?’
하경춘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였다.
띠리리리리-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왔다.
스마트폰 액정엔 강지한 대표라는 글이 떠 있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하경춘은 그 전화를 받을까 말까 망설였다.
강지한이 이런 식으로 먼저 전화를 하는 법은 거의 없었다.
분명 무언가를 알아낸 게 틀림없었다.
“후우. 언젠가는 부딪혀야 할 일이다, 경춘아. 네 업보다. 피하지 말고 받아들여라.”
스스로를 달랜 하경춘이 전화를 받았다.
“네, 강 대표님. 오밤중에 무슨 일이세요?”
-죄송한데 지금 잠깐 만나뵐 수 있을까요?
역시나.
올 것이 왔다.
* * *
하경춘의 집 근처 편의점.
그 앞에 놓인 간이 테이블에 두 사람은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차가운 캔커피 하나씩을 마시며 하경춘은 모든 것을 강지한에게 털어 놓았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강지한이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하 도사님은 제게 일어난 모든 불행이 그때 그 부적 때문이라고 생각하신다는 거죠?”
“……그렇지.”
하경춘의 말은 레벨 업 시스템이 강지한에게 들려줬던 이야기와 퍼즐처럼 맞아 들어갔다.
레벨 업 시스템은 누군가가 부적에 저주의 기운을 담으려 했고, 그로 인해 다른 행성, 다른 시간, 다른 차원에 살던 존재의 불운이 부적에 고스란히 담겼다고 했다.
그 부적을 만든 사람이 하경춘인 것이다.
과학적으로 설명되는 일은 아니었으나 하경춘은 귀신을 보는 사주쟁이다.
그녀에겐 신비한 힘이 존재했다.
그러니 이러한 상황을 이해 못할 거도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하경춘보다 레벨 업 시스템을 이용했던 강지한 본인이 더 신비한 힘을 경험한 것이기에.
“그럼 그 사람이 누군지 혹시 기억 나세요?”
“그것이…… 도통 기억나지 않아요. 생긴 것도 그렇고 목소리도. 워낙 오래전의 일이라…….”
하경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다 뭔가 떠오른 듯 눈을 크게 떴다.
“아아! 맞다! 그게 있었네!”
“네? 뭐가요?”
“그 사람……. 오른쪽 팔. 오른쪽 팔에 동그랗고 푸르스름한 반점이 있었어요.”
“확실해요?”
“응. 확실히 기억나. 내가 돈뭉치 받으면서 똑똑히 봤어. 팔목보다 조금 더 올라간 부분에 분명히 있었다고.”
드디어 하나의 단서를 얻었다.
오른쪽 팔에 동그랗고 푸르스름한 반점을 가진 사람은 흔하지 않을 터.
아울러 강지한의 부모 중 누군가와 악연으로 엮인 사람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두 가지 단서로 바운드리를 좁혀나가다 보면 분명 범인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감사해요, 하 도사님. 하 도사님의 얘기가 많은 도움이 됐어요.”
강지한의 말에 하경춘은 씁쓸하게 고개를 저었다.
“도움이 되었다니. 내가 아니었으면 애초에 겪지도 않았을 일들이었을텐데.”
“하 도사님이 이렇게 될 줄 알고서 부적을 만든 건 아니잖아요. 물론 그런 부적을 만들어 판 건 잘못이지만…… 충분히 반성하고 계시니까 됐어요. 무엇보다 제 목숨을 구해주시기도 했고요.”
“아니야. 아니야. 고작 그 정도로 죄가 씻겼다고 할 수는 없어. 한 번 저지른 죄는 결코 씻겨 나가는 게 아니야. 평생토록 흔적이 남아 따라다니는 법이야.”
하경춘이 자신의 머리를 탁탁 때리며 스스로를 책망했다.
그녀의 뺨을 타고 통한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정말 미안해요, 강 대표. 내가 너무 미안해.”
“하 도사님, 전 이제 괜찮아요. 다 지난 일이에요. 무엇보다 솔직하게 얘기해 주시고 미안하다 해주셔서 고마워요.”
“강 대표…….”
하경춘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들어 강지한을 바라보았다.
강지한이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그녀에게 말했다.
“앞으로는 괜히 저 피하지 마시고 식당에 오셔서 공짜 밥 많이 먹고 가세요. 아셨죠?”
그 따뜻한 말이 하경춘의 심금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다.
하경춘의 눈에서 더 많은 눈물이 주륵주륵 흘러내렸다.
그녀가 강지한의 손을 꼭 잡고 끅끅대며 말했다.
“자네는 정말…… 사람이 너무 좋아.”
* * *
하경춘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온 강지한은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선 계속해서 한 가지 문장이 맴돌았다.
‘오른쪽 팔에 동그랗고 푸르스름한 반점을 가진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