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9
Restaurant 308. 레벨 업 시스템의 비밀
[보상으로 레벨 업 시스템이 최종 형태로 레벨 업 됩니다.]
강지한이 그 메시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러다 한순간 시야가 먹먹해지더니 사위는 어둠으로 물들었다.
‘뭐지?’
방금 전까지 시끄럽게 울려 퍼지던 주방의 모든 소리들이 차단되고 적막이 감돌았다.
주변을 살피는 강지한의 앞에 하얀색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설윤진의 기억을 재생합니다.]
설윤진.
강지한의 엄마였다.
‘엄마의…… 기억?’
메시지가 사라지고 어둠 속에 무수히 많은 별들이 떠올랐다.
마치 우주와도 같은 공간 속에서 반짝이던 별들 중 하나가 유난히 강렬한 빛을 발했다.
그것은 곧 강지한을 끌어당기더니 자신의 안으로 집어삼켰다.
‘윽!’
놀란 강지한이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한데 주변 광경이 바뀌어 있었다.
‘여긴…….’
강지한의 눈에 낯선 천장이 보였다.
이곳이 어딘가 싶어 고민하던 그는 곧 보육원이라는 걸 알았다.
‘이름이…… 햇살, 햇살 보육원.’
마치 어딘가에서 정보가 흘러들어오듯 자연스러운 사고가 일어났다.
밑에서 시끌벅적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지한이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가 있는 곳은 보육원의 식당이었다.
강지한의 형태는 존재치 않았고 의식만 공기처럼 두둥실 떠서 부유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식당에 오순도순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안에는 이제 겨우 일곱 살이 된 설윤진의 모습도 보였다.
‘엄마.’
강지한은 어린 시절의 엄마를 대번에 알아봤다.
설윤진은 열심히 밥을 먹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반찬 하나하나를 신중히 맛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데 그때였다.
그녀의 생각이 고스란히 강지한에게 전해졌다.
‘계란말이는 너무 짜! 김치는 감칠맛이 부족하고. 돈까스는 그냥 밀가루 튀김 수준이잖아. 냉이된장국은 엄~청 싱거워.’
놀랍게도 설윤진은 그 어린 나이에 음식에 대한 평가를 정확히 내리고 있었다.
또래의 아이들은 보통 맛이 없으면 맛없다고만 할 뿐이지, 저 정도로 맛이 이렇다 저렇다 분석하지 못한다.
설윤진은 뛰어난 미각을 타고 난 아이였다.
휘이이이-
바람 한 줄기가 조용히 불어오더니 강지한의 의식이 공간을 빠져나왔다.
그는 다시 넓은 우주 한복판에 서 있었다.
이번에는 또 다른 별빛이 강지한을 삼켰다.
주변의 광경이 마법처럼 변했다.
이번엔 보육원의 마당이었다.
아이들이 정신없이 뛰어노는 와중 열두 살의 설윤진은 한정신과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걸 나 주려고 만들었다고?”
한정신의 손에는 핫바가 들려 있었다.
마당에서 뛰어노는 다른 아이들의 손에도 전부 핫바가 들려 있었다.
“네!”
설윤진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보육원 아이들 간식 만들다가 남아서 주는 거 아니고?”
“아니요~ 선생님 주려고 만드는 김에 친구들 것도 만든 거예요.”
“하하하. 그렇구나. 어디.”
한정신이 핫바를 한입 크게 물었다.
설윤진은 그런 한정신의 반응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핫바를 꼭꼭 씹어 꿀꺽 넘긴 한정신이 화색을 지으며 말했다.
“정말 맛있구나. 아주 잘 만들었어.”
“정말요?”
“그럼.”
설윤진은 기뻐하고 있었다.
그녀는 한정신을 좋아했다.
원체 요리에 관심이 많은 아이였으니 한정식의 대가라 불리는 그에게 호감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한정신 역시 설윤진을 매우 아꼈다.
두 사람 사이엔 날이 갈수록 끈끈한 정이 생겨났다.
한정신이 설윤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계속해서 핫바를 먹었다.
열두 살의 아이가 만들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놀라운 요리였다.
설윤진도 본인의 실력이 여느 어른들보다 낫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남들과 달랐다.
요리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이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되어 있었다.
허공에서 설윤진을 바라보는 강지한에게 그런 사실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엄마는 애초에 출발 선 부터가 앞서 있던 사람이었어.’
그야말로 천재였다.
다시 사위가 어두워지며 드넓은 우주 속으로 들어왔다.
이번에도 다른 빛이 번쩍이며 강지한을 끌어당겼다.
그제야 강지한은 알 수 있었다.
우주 속에서 빛나고 있는 수많은 별들은 전부 설윤진이 가지고 있던 기억의 조각이라는 것을.
그는 지금 설윤진의 지난 세월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있었다.
그것을 이해하는 순간 무수히 많은 엄마의 기억들이 물밀 듯이 밀려 들어왔다.
한데 그 기억들은 전부 요리에 관련된 것들뿐이었다.
설윤진은 요리에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혀는 한 번 먹어본 식재료의 맛을 정확히 기억했으며, 음식을 먹으면 그 안에 어떠한 재료가 들어갔는지 대번에 파악했다.
그녀의 코는 백 미터 밖에서 슬쩍 맡아지는 냄새 한 번으로 어떤 요리를 만들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났다.
그녀의 손은 예리한 감각으로 저울이 필요 없이 정확한 계량을 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런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 요리를 즐기기까지 했다.
경험이라는 건 타고난 재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설윤진은 의사소통이 가능해지면서부터 툭하면 주방을 드나들었다.
항상 주방 일에 관심을 가지고 영양사가 만드는 요리에 갖은 참견을 다 했다.
일반적인 보육원이었다면 아이의 이런 행동을 사전에 차단했겠지만 이곳은 달랐다.
선생과 원장은 하나같이 좋은 사람들이었고 아이들을 끔찍이 사랑했다.
그래서 설윤진이 위험하지 않은 선에서 주방의 간섭을 허락해 주었다.
아울러 원장과 깊은 친분이 있는 한정신이 매년 상당한 금액을 기부해 주고 있었기에 아이들의 식단이 매우 좋았다.
덕분에 설윤진은 부족하지 않은 식사를 해나가면서 여러 가지 요리와 식재료들을 접할 수 있었다.
이렇다 보니 설윤진의 요리 경험이란 또래 아이들보다 늘 몇 년이나 앞서 있었다.
즐기는 천재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설윤진은 한정신을 따라 신선정에서 살게 되었을 때도 자신의 존재감을 톡톡히 드러냈다.
그에 당시엔 어렸던 한남선과 한돈선 형제의 시샘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설윤진은 신경 쓰지 않았다.
남의 눈치를 보느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못하기는 싫었다.
그런데 머리가 조금씩 커질수록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는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모든 고난은 3대 신선숙수가 된 한남선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강지한이 보게 된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그는 다시 어두운 공간 속에 서 있었다.
‘엄마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었어.’
그 온화한 한돈선조차 어린 시절 잠깐이나마 시샘할 정도로.
지금껏 강지한은 설윤진에 대해 반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강지한님은 설윤진님의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받았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요리에 천부적인 실력을 자랑하며 각종 대회의 상을 휩쓸었었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시스템 메시지를 강지한이 멍하니 읽었다.
메시지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강지한님께서는 현재 본인의 요리실력이 레벨 업 시스템으로 인해 얻게 된 것이라 생각하고 계시겠지요. 그래서 의식적으로 레벨 업 시스템을 멀리하려 했었을 겁니다.]
맞는 말이었다.
강지한은 레벨 업 시스템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 때를 대비해서 그 모든 능력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잘못 알고 계신 겁니다. 레벨 업 시스템은 봉인되어 있던 강지한님의 실력을 다시 개화시켜 준 것일 뿐. 실상 모두 강지한님의 안에 존재했던 능력입니다.]
[레벨 업 시스템의 목적은 ‘강지한님의 트라우마 극복’입니다.]
[트라우마를 극복해서 스스로 봉인해 버린 요리의 천재적 능력들을 다시 깨어나게 하는 것.]
[시스템의 초반엔 만족도라는 수치를 강지한님에게 투자하며 미각을 강화시키고 요리 실력을 높이는 것처럼 느껴졌을 테지만, 사실 레벨 업 시스템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럴 듯한 수치를 보여주고 그것을 스스로에게 투자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 봉인된 요리의 재능을 끄집어 내주었던 것뿐입니다.]
[하지만 레벨 업 시스템의 도움을 받은 부분은 분명히 있습니다. 이를테면 외모라던가 지한 분식의 여러 가지 실내 디자인, 가구들의 레벨 업, 영어 마스터 패치권 등이 그렇습니다.]
[분명한 것은 강지한님의 요리 실력은 포인트의 투자나 시스템의 도움으로 향상된 것이 아니라, 잠재되어 있던 것이 깨어나 성장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많은 경험을 통해 계속해서 발전해 나갔습니다.]
공간을 빽빽하게 채우며 나타나는 메시지들을 빠르게 읽어나간 강지한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레벨 업 시스템의 효과로 발전했다 믿었던 요리 실력이 실은 원래 자신의 것이었다니.
게다가 레벨 업 시스템의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강지한의 트라우마 극복이었다.
[강지한님은 모든 트라우마를 극복하셨습니다. 레벨 업 시스템은 최종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레벨 업 시스템의 최종 레벨 업을 시작합니다.]
[레벨 업 시스템이 최종적으로 레벨 업 되어 사라집니다.]
‘뭐?’
레벨 업 시스템의 최종 레벨 업 형태.
그것은 시스템의 소멸이었다.
이런 건 강지한으로서는 짐작조차 못했던 전개였다.
순간 불현 듯 궁금한 것이 있어 강지한이 물었다.
“잠깐만! 그럼 이 시스템은 누가 만든 거야? 어떻게 내게 이런 시스템이 오게 된 건데?”
다급한 질문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하지만 메시지는 안정적이지 못했다.
메시지에 치지거리며 화이트노이즈가 일어났다.
[우주는 강지한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넓습니다. 레벨 업 시스템은 당신과는 다른 행성, 다른 차원, 다른 시간에 사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는 원래 단명할 운명이었습니다. 그들의 종족은 스스로의 운명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초연하게 자신의 비극을 받아들이려는 와중, 어떤 이유에서인지 운명을 거스르게 되었고 행복한 나날이 오래도록 지속되었습니다.]
[하지만 본인에게 허락되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이 마음에 걸린 그는 이 기묘한 현상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습니다. 결국 강지한님과 부모님이 자신이 겪어야 할 불행을 전부 안고 가버렸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어째서……? 왜 그 사람의 불행을 우리 가족이 가져가게 된 건데?”
[강지한님이 머무르는 그 행성엔 강력한 주술의 힘을 종이 한 장에 담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것을 부적이라고 부릅니다. 누군가를 제거하려 했던 이가 사주쟁이에게 저주의 기운이 가득 담긴 부적을 만들어 달라 부탁했습니다. 사주쟁이는 본인의 영력을 이용해 불운한 기운을 부적에 담으려 했습니다. 그때, 죽을 운명이었던 다른 행성, 다른 차원, 다른 시간에 살고 있던 그의 불운이 부적에 담겼습니다.]
“뭐……? 다른 행성, 다른 차원, 다른 시간에 사는 사람의 불운이 어떻게 그 부적에 담긴다는 건지…….”
[현재를 사는 지구인들의 논리와 과학의 수준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그 사람의 불운을 우리 가족이 대신 짊어지게 되었다는 거야? 부적 한 장 때문에?”
[부적의 힘과 사람의 힘이 더해져서 벌어진 불행입니다. 그로 인해 뒤늦게야 죄책감에 힘들어하던 다른 행성, 다른 차원, 다른 시간에 살고 있는 그는 강지한님이 잃어버린 것에 대해 최대한의 보상을 해주고자 레벨 업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레벨 업 시스템의 최종 레벨 업이 무사히 끝났습니다.]
“잠깐만! 아직 묻고 싶은 게……!”
[수고하셨습니다. 시스템을 종료합니다.]
팟!
“헉!”
강지한이 헛숨을 들이켰다.
그는 어느새 지한 정식의 주방으로 돌아와 있었다.
제법 오랜 시간을 어딘지 모를 공간 속에서 보낸 것 같았는데, 막상 현실에서의 시간은 몇 초 밖에 흐르지 않은 상태였다.
“대표님, 괜찮으세요?”
강지한의 안색이 좋지 않자 주방직원 한 명이 걱정스레 물어왔다.
“응? 아… 응.”
강지한은 대답을 하면서 그 주방직원의 상태창을 확인하려 했다.
그런데,
“…….”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정말로 레벨 업 시스템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한데 강지한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하기도 전, 무언가가 떠올랐다.
레벨 업 시스템이 그가 충격을 받을까 봐 계속 봉인해 두었던 마지막 한 가지 기억.
그것이 떠올랐다.
‘……맙소사.’
강지한이 비틀거리며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