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8
Restaurant 307. 마지막 목표
지난 2020년 6월 하순.
설탕이 온다의 미국 리메이크작이 개봉했다.
리메이크판의 제목은 ‘슈가(Sugar)’였다.
슈가는 개봉하자마자 그야말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대번에 헐리우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우선은 각색된 스토리라인이 아주 좋았고, 감독의 연출이 환상적이었다.
매 컷마다 심혈을 기울여 뽑아낸 영상미 또한 최고였다.
슈가는 마치 감동적인 한 편의 환상동화를 보는 것 같은 영화였다.
거기에 배우들의 열연도 톡톡히 한몫을 했다.
특히 찰리는 이번 연도 남우주연상을 이 작품 하나로 거머쥐게 될 것이 틀림없다는 극찬까지 들었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대부분 9점 이상의 높은 점수를 책정했다.
평론가들 또한 이번 연도 최고의 가족 영화가 탄생했다며 박수를 보냈다.
어느 한 명, 영화를 깎아내리는 이가 없었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두루 갖춘 가족 영화의 탄생에 미국 전역이 열광했다.
이 열기는 곧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영화가 상영되는 족족 그 나라에서 박스오피스 탑 3안에는 랭크되었다.
슈가는 한국에서도 개봉이 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첫 주에 랭킹 1위를 가로채더니 이후로 한 달이 넘도록 내려올 줄을 몰랐다.
기존 설탕이 온다의 기록을 무섭게 갈아치우며 흥행 고공행진을 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이런 반응은 당연했다.
슈가는 한국에서 이미 원작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개봉이 되었다.
그러니 과연 리메이크작이 어찌 변했을지 궁금했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게 됐다.
한데 영화가 기대 이상으로 잘 만들어졌으니 입소문이 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한국의 평론가들도 미국의 평론가들처럼 슈가를 극찬했다.
설탕이의 매니저 유정미는 오늘도 강지한의 집에서 설탕이를 돌봐주며 이러한 상황을 즐겼다.
그러다 문득 입을 쩍 벌리더니 손뼉을 짝! 소리 나도록 마주쳤다.
“그러고 보니 설탕이 너! 러닝 개런티 계약도 맺었었잖아!”
설탕이는 당시 몸값을 낮추는 대신 손익분기점이 넘으면 이익의 0.1프로를 러닝 개런티로 받기로 했었다.
“지한 오빠 대박 터졌다. 네가 복덩이야, 설탕아.”
조만간 강지한의 통장으로는 어마어마한 금액이 꽂힐 예정이었다.
* * *
무더운 여름이 기승을 부리는 7월 말.
점점 숨이 막혀가는 날씨와 달리 강지한의 인생은 지금 평온함과 쾌적 그 자체였다.
요즘은 아침마다 눈을 뜨는 게 즐거운 그였다.
지한 정식의 주방은 지금껏 그가 거쳐 왔던 그 어떤 주방보다 일하는 것이 즐거웠다.
매달 그때그때 가장 좋은 재료들을 공수해서 거기에 따라 코스 메뉴의 일부를 수정해 내놓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고 재미있었다.
새로운 레시피로 요리를 창조해낸다는 것이 그에게는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오히려 하나의 놀이와 같았다.
어떤 음식을 만들어 내놓으면 손님들이 더 놀랄까, 더 좋아할까, 더 맛있게 먹을까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해서 신메뉴를 서비스할 때면 언제나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 강지한의 쉼 없는 노력과 연구 정신은 지한 정식의 격을 점점 더 높여만 갔다.
지한 정식은 오픈한 지 네 달 만에 춘천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이 되었다.
춘천에 놀러오면 다른 곳은 못 가보더라도 지한 정식만큼은 가야 한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이제 주말 예약은 한 달 전에 해놓지 않으면 엄두도 낼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평일 식사 역시 무조건 예약이 필수였다.
그냥 오게 되면 빈 룸이 없어 소박맞고 돌아가야 했다.
지한 정식이 잘되는 것만큼 설탕이의 인기와 몸값도 하늘 높이 치솟는 중이었다.
슈가의 폭발적인 흥행으로 인해 설탕이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아지가 되었다.
하루에도 각국의 나라에서 설탕이와 인터뷰를 요청하는 메일이 수십 통씩 날아들었다.
유정미는 그것들을 관리하기 위해 잠시 놓고 있던 영어 공부를 다시 할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유정미 개인 폰으로도 전화가 메시지가 빗발쳤다.
각종 매체들은 국내스타에서 월드스타가 되어버린 설탕이를 단 한 번이라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몸이 달았다.
이렇듯 강지한과 설탕이는 그들의 인생에서 최정점에 선 하루하루를 만끽하고 있었다.
혹자는 마냥 승승장구하는 강지한에게 그럴수록 한 번 삐끗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수가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봄날이 영원할 것 같지만 언젠가는 가는 법이라는 말도 함께였다.
봄날은 간다.
영원히 봄날일 수는 없다.
하지만 결국 봄날은 갔다가도 다시 돌아오는 법이다.
강지한은 인생의 마지막 길 끝에 섰을 때 결국은 봄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믿었다.
* * *
미슐랭가이드 인스펙터.
그들은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 오랜 시간 근무하며 출중한 경력을 쌓은 이들 중에서 선출이 된다.
이쪽 일에 아무런 지식도 없는 사람이 달려든다고 해서 그냥 얻을 수 있는 직책이 아니었다.
이들에게 가장 우선시 되는 규칙은 바로 익명성이다.
인스펙터들은 레스토랑의 로비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기 위해 방문하는 레스토랑마다 매번 다른 가명 및 전화번호를 사용한다.
아울러 제대로 된 맛 평가를 위해 스스로도 보통의 손님처럼 행동한다.
혹자는 인스펙터들이 레스토랑의 서비스 수준을 알아보기 위해서 일부러 포크를 떨어뜨린다거나 음료를 흘리곤 한다는데, 인스펙터들은 그런 티 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와서 맛있게 식사를 하고 계산을 마친 뒤 나갈 뿐이다.
이때 지불한 식사값 역시 회사에서 지불해 주는 게 아니다.
무조건 자신의 돈으로 계산을 해야 한다.
만약 회사에서 레스토랑 평가를 위한 식대를 대준다고 한다면 이들은 정확하고 냉정한 평가를 내리기 힘들어질 것이다.
자신의 돈이 나가야, 그 가격이 합당한 음식이었는지, 그만큼의 서비스가 충분히 되었는지, 직원들의 태도와 식당 내부의 분위기는 어땠는지 등등을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이 가능했다.
인스펙터들은 본인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벽히 수행해내기 위해 호텔 학교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는다.
그들이 레스토랑을 평가하는 기준은 총 다섯 가지였다.
첫째는 요리 재료의 수준이다.
기본 중의 기본이고 레스토랑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하는 항목이었다.
요리 재료는 언제나 싱싱해야 했고 되도록 맛 좋은 특산품을 사용하는 것이 좋았다.
둘째는 요리법과 풍미의 완벽성이다.
레스토랑의 음식들은 결국 어떤 방식으로 요리를 해서 풍미를 더욱 완벽하게 살렸느냐의 싸움이랄 수 있었다.
셋째는 요리에 대한 셰프의 개성과 창의성이다.
조금 이름 있는 레스토랑이라면 그곳의 시그니처라 할 수 있는 메뉴가 반드시 하나 정도는 존재한다.
그것은 레스토랑의 자존심이며 품격을 알려주는 가치의 기준이기도 했다.
넷째는 가격에 합당한 가치다.
나오는 식사들의 퀄리티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책정해 받는다면 결국 찝찝한 기분으로 레스토랑을 나서게 될 것이다.
이것은 곧 셰프가 자신의 수준을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느냐는 척도가 될 수 있었다.
스스로의 실력에 너무 자만해 버리면 더는 발전이 없다.
본인의 현주소를 제대로 알고 있는 셰프라면 자신이 만든 요리에 합당한 가격을 책정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다섯째는 전체 메뉴의 통일성과 언제 방문해도 변함없는 일관성을 본다.
아무리 각각의 메뉴들이 맛있다고 해도 그것들을 관통하는 큰 주제가 없으면 안 되면 결국 중구난방이 될 뿐이다.
단 음식이 좋다고 그것만 계속 먹으면 나중에는 단맛을 잘 느끼지 못할뿐더러 질려 버리고 만다.
코스요리는 모든 음식들의 조화를 중시하는 만큼 강렬하게 혀를 농락하다가도 편안하게 쉬어갈 틈이 있어야 하는 법.
즉 음식의 강약조절이 필요한 것이다.
비단 맛뿐만이 아니다.
식감과 향, 그리고 겹치는 재료로 요리된 음식이 없는지에 대해서도 신중을 기해야 했다.
그리고 언제 방문해도 요리의 수준이 들쑥날쑥하지 않고 변함이 없어야만 셰프가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올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인스펙터들은 어느 레스토랑을 평가할 때 최소한 두 번은 방문을 하곤 했다.
장루이와 홍지니도 지한 정식을 세 번이나 방문했다.
장루이는 개인적으로 지한 정식이 미슐랭가이드에서 중요시 하는 다섯 가지의 조건을 전부 충족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홍지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지 않았지만 같은 마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마지막 세 번째 식사를 하고서 지한 정식을 나서는 길.
홍지니의 차 안에서 장루이가 푸념을 했다.
“이제 이 일도 슬슬 접어야 할 것 같네요.”
“그런가요.”
홍지니는 웃으며 그리 말할 뿐 다른 얘기는 덧붙이지 않았다.
전세계를 다니며 레스토랑을 평가하는 인스펙터의 삶에 막연한 동경을 갖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하지만 인스펙터의 삶은 화려하지 않다. 동경할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들은 해마다 30,00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누비며 세계 각국의 레스토랑에서 250끼가 넘는 식사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집에서의 편안한 잠자리도 기대할 수 없다.
일 년의 반 이상은 외딴 지역의 호텔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그러니 보통 사람들의 일상적인 생활은 기대조차 하기 힘들었다.
장루이는 이제 그 생활에 지쳐가고 있었다.
인스펙터로 살아가다 보니 여태 변변한 가정도 이루지 못했다.
아니, 가정을 만든 적이 있었다.
영원히 한 여자와 함께 살아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파국으로 끝이 났다.
인스펙터로서의 그의 삶은 평범한 가정을 이루는 것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떠돌이 생활에 신물이 나서 이제는 정착을 하고 싶었다.
홍지니는 장루이의 얼굴에 깊이 내려앉은 고독을 보았다.
그러나 애써 모른 척하며 다른 걸 물었다.
“다음엔 어느 나라로 갈 건가요.”
“글쎄요.”
대답을 던져놓고 한참을 생각하던 장루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당분간은 여기에 조금 있고 싶네요.”
“뭐가 당신을 여기 있고 싶게 만들었죠?”
“여러 가지가 있죠. 심신이 휴식을 바란다는 것과 지한 정식의 훌륭한 음식을 조금 더 접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장루이가 운전을 하는 홍지니의 얼굴을 흘끗 바라보았다가 얼른 시선을 돌렸다.
“뭐 그 정도겠죠.”
홍지니는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녀도 장루이처럼 가정을 이루었다가 파경을 맞아 홀로 세월을 쌓아가는 여인이었다.
* * *
2020년 8월.
강지한은 모르고 있었지만 지한 정식에는 장루이를 비롯, 여러 명의 미슐랭가이드 인스펙터들이 다녀갔다.
그리고 그들은 은밀한 회의를 시작했다.
지한 정식이 내년 미슐랭가이드에 올릴 만한 식당인지에 대한 주제로 열띤 의견이 오갔다.
평가를 내놓는 사람들이 의견이 만장일치가 되어야 지한 정식은 미슐랭스타를 받을 수 있었다.
단 한 명이라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면 미슐랭가이드에 선정될 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모든 인스펙터가 지한 정식을 좋게 평가했다.
이로써 미슐랭가이드에 이름을 올릴 충분한 조건이 성립되었다.
남은 건 몇 개의 별을 주느냐 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대한 회의는 생각보다 길어졌으나 결론은 나왔다.
회의를 마친 장루이는 지한 정식의 음식들을 떠올리며 뺨을 긁적였다.
“그 정도면…… 적당한 거겠지?”
* * *
2020년 8월의 마지막 날.
새로운 한 주의 시작이기도 한 그날도 강지한은 지한 정식의 주방에서 바쁘게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팡파레가 울리며 폭죽이 터졌다.
펑! 퍼펑!
빰빠밤빰빠! 빰빠밤빰빠!
[축하합니다. Last Stage. 지한 객잔의 목표를 완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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