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6
Restaurant 305. 새로운 시작, 지한 정식!
강지한과 예소린이 택한 신혼여행지는 미식의 나라 프랑스였다.
정말 강지한다운 선택이었다.
예소린도 프랑스는 꼭 가보고 싶었던 나라였기에 강지한의 뜻에 적극 찬성했다.
두 사람은 패키지여행이 아닌, 자유 여행을 떠났다.
예소린은 여행길에 오르기 전 인터넷으로 좋은 호텔을 잡아 놓고 각 지역의 유명한 식당과 명소까지 전부 알아둔 터였다.
항공권은 이미 여행지 이야기가 나오던 두 달 전에 전부 예매를 해놓았다.
인터넷 백치인 강지한과 달리 예소린은 이런 것에 빠삭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6박 7일 동안 프랑스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각각의 명소와 맛집을 탐방했다.
프랑스는 가는 곳마다 지상낙원이었다.
눈에 담는 모든 광경이 아름다웠고 입에 들어가는 음식들은 전부 맛있었다.
행복한 시간은 구름처럼 흘러갔다.
이제 내일이면 다시 한국으로 복귀해야 했다.
이른 시간부터 비행기에 타야 하는지라 오늘 저녁이 마지막 식사가 될 터.
두 사람은 파리의 샤를드골 국제공항에서 11시 40분 비행기를 타야 했다.
그래서 프랑스 여행의 마지막 맛집은 파리에 있는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르 씨엘(Le ciel)이었다.
르 씨엘은 파리의 유서 깊은 호텔이 품고 있는 곳으로 1층 로비를 지나 오른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나온다.
평일에도 워낙 사람으로 붐비는 곳이기에 하루 전에 미리 예약을 해놓는 편이 좋았다.
두 사람은 예약된 자리로 안내받았다.
디너 코스 또한 미리 예약을 해놓은 터라 웨이터는 따로 필요한 것이 더 있는지에 대한 질문만 간략히 하고서 사라졌다.
르 씨엘은 아름답게 꾸며진 넓은 정원에서도 식사가 가능했다.
하지만 강지한이 전화상으로 예약을 하려 했을 때, 그 자리는 이미 다 차 있었다.
아쉬운 대로 홀에서 식사를 하게 됐지만, 내부 장식이나 분위기도 정원 못지않게 아름다웠고 고풍스런 멋이 있었다.
마지막 만찬을 기대하는 두 사람 앞에 우선 아페리티프(Aperitif:식전주)로 로얄 키어가 나왔다.
로얄 키어는 샴페인에 크렘 드 카시스(Crème de cassis:설탕이 다량 첨가된 카시스 열매 담금주)를 섞은 것으로 무난하고 일반적인 식전주였다.
그것을 시작으로 총 10코스의 음식들이 하나하나 서빙되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나온 음식은 차가운 전채요리였다.
전채요리를 다 먹고 나니 수프가 나왔고 본격적인 메인으로 생선과 육류로 만든 요리가 서빙되었다.
메인을 먹은 뒤엔 잠시 쉬어가면서 입가심을 하는 의미로 소르베와 샐러드가 나왔다.
다음 코스는 특이하게도 치즈였다.
프랑스에서는 치즈를 하나의 독립된 코스로 내놓고는 했다.
그 이후에 비로소 디저트를 맛볼 수 있었다.
그리고 코스의 마무리는 커피였다.
“아, 배불러.”
예소린이 배를 살짝 어루만지며 만족스럽게 말했다.
“몇 점이야?”
“음……. 85점?”
그녀는 자신의 솔직한 평가점수를 내놓았다.
미슐랭 3스타의 엄청난 레스토랑이었지만 그녀의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도 몇 가지가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맛의 밸런스가 아주 좋았고 창의적인 요리들이 많았기에 점수를 많이 깎지는 않았다.
“자기는?”
“나는 95점.”
“와아, 여기 진짜 음식 잘하는 곳이구나.”
여태 여행을 다닌 곳 중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준 강지한이었다.
강지한은 이 레스토랑에서 접한 모든 음식들이 하나같이 고급스럽고 우아하게 다가왔다.
일반적인 기술로는 결코 흉내낼 수 없는 맛의 정수를 잡아냈다.
요리에 들어간 각 재료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은 조리법이나 곁들이는 재료들도 완벽하게 잡아 버리는 기술이 일품이었다.
아울러 창의력이 대단했다.
메인을 제외한 코스 메뉴의 음식 대부분이 본래의 형태를 파괴하고 다른 형태의 질감으로 재탄생되어 나왔다.
조약돌인 줄 알고 건드리지도 않았던 건 알고 보니 고체 소스였고 상큼한 자두 모양으로 꾸며낸 음식은 색소가 들어간 설탕으로 겉을 굳히고 속에 주스를 넣은 핑거푸드였다.
뿐만 아니라 흙더미 위에 핀 새싹 하나를 재현한 음식은 너무 그럴싸해서 이걸 정말 먹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흙과 새싹 모두 식재료로 만들어진 것이었는데 흙은 빵과 쿠키로 만들었고 새싹은 먹어보니 민트 초콜릿이었다.
호수 위 떠다니는 낙엽 한 장을 구현한 음식 또한 재미있었다.
만약 모양만 화려하고 맛이 별로면 그것은 시답잖은 기교가 된다. 그러나 맛 또한 완벽하니 디너 코스 자체는 완벽한 예술 작품처럼 다가왔다.
“그럼 나갈까?”
“응.”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이 레스토랑을 나섰다.
한데 그런 그들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는 한 남자가 있었다.
“강지한 셰프를 이런 곳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하하.”
테이블에 홀로 앉아 디저트를 즐기고 있는 그는 미슐랭가이드의 인스펙터, 장루이 바로였다.
그는 강지한의 인튜브 동영상을 접하게 되면서부터 그가 운영하는 식당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었다.
한데 이런 식으로 우연히 만나게 되다니.
장루이 바로는 자신과 강지한 사이에 연결된 운명의 끈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 *
신혼여행에서 프랑스의 식당들을 둘러보며 강지한은 한 가지 목표를 세웠다.
그것은 제대로 된 코스로 서비스하는 한정식 식당을 차리는 것.
지한 푸드 계열에서 미니 한정식을 서비스하는 지한 식당은 있지만 풀코스를 다루는 한정식 식당은 아직 없었다.
강지한은 스스로 그런 식당을 만들어보고자 마음먹었다.
언제나 그랬지만 마음을 정하면 무섭게 밀어붙이는 것이 강지한의 특기였다.
그는 신혼의 달콤함에 만끽할 새도 없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은 한정식 코스를 선보일 식당의 이름부터 정했다.
‘지한 정식.’
언제나 그래왔듯 이번에도 강지한 본인의 이름을 넣었다.
그리고 장인어른 예경천의 도움을 받아 구봉산 쪽에 있는 2층짜리 넓은 식당 건물을 하나 매수했다.
건물은 매수하자마자 바로 리모델링 작업에 들어갔다.
원래는 양식을 팔던 레스토랑이었는데 강지한은 거기서 한식을 팔아야 하니 어울리는 톤으로 내부를 싹 뜯어고쳐야 했다.
외관은 딱히 양식당 같은 분위기는 아니고 그냥 음식을 파는 식당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해서 그대로 두고 간판만 크게 바꿔 달면 될 듯했다.
식당이 새로운 옷을 입는 동안 강지한은 한정식 코스의 메뉴를 연구했다.
한정식 코스라는 것이 특별히 꽉 짜여진 틀 같은 건 없었다.
보통은 주전부리로 시작해서 입맛을 돋워줄 간단한 전식 몇 가지가 나가고 본식 하나, 밥과 국, 반찬이 나오는 반상, 그리고 차와 다과로 마무리된다.
점심보다는 저녁상 코스를 더 푸짐하게 준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강지한은 점심을 5코스와 6코스의 메뉴로, 저녁을 7코스와 9코스의 메뉴로 만들었다.
각 코스의 이름은 심플하게 지었다.
점심 5코스와 6코스는 각각 점심상과 푸짐 점심상으로, 저녁 7코스와 9코스는 각각 저녁상과 푸짐 저녁상으로 정했다.
사실 한정식 코스의 메뉴가 만들어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코스는 생각보다 빨리 완성됐다.
모든 메뉴를 짜는데 고작 보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간 강지한이 레시피 노트를 꾸준히 작성해 온 덕이었다.
코스 메뉴가 완성됐으니 이제는 사람들에게 심사를 받아볼 차례.
강지한은 지한 푸드 계열 식당들이 쉬는 일요일, 모든 식당의 점주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 * *
일요일 저녁.
강지한의 집을 찾은 사람은 용성우, 김숙자, 한지민, 강지영, 조정호, 독고진, 도근한, 하정운, 허이숙, 김정훈으로 총 10명이었다.
그들 앞에는 지한 정식에서 서비스되는 모든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이게 다 뭐야?”
강지영이 입을 쩍 벌리고서는 음식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우선 주전부리로는 다시마부각과 대추를 말려 만든 과자가 있었다.
다시마부각은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이었지만 대추 과자는 흔하지 않았다.
다들 주전부리부터 하나씩 맛을 보는데 여기저기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다시마부각은 아삭한 식감과 고소하게 퍼지는 바다의 깊은 향, 은은한 감칠맛이 일품이었다.
대추 과자 또한 쫀득하면서 씹을수록 배어 나오는 단맛이 이런 별미가 따로 없었다.
다음으로는 식전에 나오는 간단한 음식들을 시식할 차례였다.
강지한이 준비한 건 구절판과 멧돼지맥적, 잡채, 게살냉채, 육회, 전복구이였다.
구절판은 소고기, 표고버섯, 당근, 오이, 숙주, 목이버섯, 계란 흰자 지단, 노른자 지단의 여덟 가지 속 재료를 각각 따로 요리해서 얇게 구운 밀전병에 넣고 특제 소스를 뿌려 싸먹는 음식이다.
그만큼 손이 많이 가는데, 구절판의 맛을 좌우하는 건 단연 재료들의 신선도가 첫째, 그것들을 어찌 손질하느냐가 둘째, 마지막으로 소스의 맛이 셋째다.
이 삼박자가 두루 갖추어져야 제대로 된 구절판의 맛을 느낄 수 있었는데 강지한은 이를 훌륭하게 만들어냈다.
멧돼지맥적은 강지한이 만든 특제 된장 소스를 여러 번 발라가며 저온으로 구워낸 것으로 육질이 야들야들하면서도 육즙을 가득 품고 있었다.
게살냉채와 잡채, 육회, 전복구이 또한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음식들이지만 재료의 손질과 조리법을 달리하고 다른 식당에서 들어가지 않는 재료들을 첨가했다.
거기에 강지한의 음식에서만 맛볼 수 있는 비법 소스가 추가되며 아주 특별한 요리로 재해석되어 나왔다.
사람들은 아직 메인 음식까지 가지도 않았는데 식전 음식에서 이미 완전히 감동한 표정들이 되었다.
이제 메인으로 넘어가기 전 입가심 음식을 맛볼 차례였다.
입가심 음식은 들깨탕과 백김치, 오리엔탈 소스를 곁들인 민들레 샐러드가 있었다.
다들 입가심 음식에서는 너무 진을 빼지 말고 가볍게 즐기자고 마음먹었다.
메인을 먹기도 전에 지쳐서는 안 되기 때문.
하나 그럴 수가 없었다.
입가심 음식들이 전부 강력했다.
각각의 맛 자체가 화려한 건 아니었다.
상당히 절제되고 투박한 맛을 자랑했는데, 그것이 또 어마어마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강지한은 손님들의 반응에 흡족해하며 드디어 메인 요리를 내놓았다.
메인은 금태찜, 한우 떡갈비, 갈비찜, 채끝 등심 석쇠구이가 있었다.
하나같이 영롱한 자태를 뽐내는 요리들은 과연 메인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렸다.
보기에도 맛깔스럽게 조리된 것들이 플레이팅도 과하도록 예쁘고 화려하게 되어 있었다.
열 명의 시식단으로 초대된 손님들은 너도나도 수저를 바쁘게 놀렸다.
전식을 먹을 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이런저런 말을 뱉으며 의견을 주고받느라 바빴다.
그런데 메인 요리를 먹을 때는 말을 잊어버린 듯 적막 속에 음식을 씹고 삼키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말을 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먹고 말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자세들이었다.
메인 요리는 제일 많이 준비했음에도 가장 단시간에 사라졌다.
그제야 사람들이 입에서 잊혔던 말이 튀어나왔다.
“아니, 강 대표. 나는 이런 금태찜은 세상 처음 먹어보네? 조리법이 대체 어떻게 되는 거야?”
김숙자의 말이었다.
“대표님, 존경스럽습니다! 요새 요리가 많이 늘었다고 자만했던 저 스스로를 반성해 봅니다! 단언컨대 제가 태어나서 먹어본 갈비찜 중에 제일 맛있었습니다! 고기가 입안에서 솜사탕처럼 녹아 사라졌습니다!”
눈에 과한 열정을 담아 소리치는 이는 용성우였다.
그 뒤로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강지한의 요리를 찬양했다.
메인을 맛본 뒤에는 반상이 이어졌다.
반상의 메뉴는 전복돌솥밥, 성게알 비빔밥, 육회비빔밥이 있었는데 곁들일 국의 종류는 그날그날 들여오는 신선한 재료에 따라 바뀌는 식이었다.
오늘 준비한 건 황태육수를 진하게 내서 상급의 소고기 양지살을 넣고 푹 끓인 무국과 지한 식당의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인 된장찌개를 조금 개선해서 연하게 내놓은 된장국이었다.
곁들이는 반찬들은 매실 장아찌, 전호나물, 열무김치, 배추더덕겉절이, 오징어 젓갈이었다.
반찬 역시 그때그때 바뀔 예정이었다.
반상까지 전부 먹고 나니 남은 건 후식이었다.
한데 후식으로 쟁반 위에 담겨져 나온 건 웬 작은 숲이었다.
다들 그게 뭔지 몰라 눈만 껌뻑였다.
쟁반 위에는 이끼 섞인 흙과 돌멩이들이 바닥에 깔려 있었고 그 위로 조금 큰 현무암 느낌의 바윗덩이가 놓여 있었다.
바위의 곁엔 둥치만 남은 나무와 그 옆으로 쓰러져서 반이 쪼개진 나무 기둥이 보였다.
그 위로 하얀 입자들이 눈처럼 군데군데 쌓여 있는 것이 마치 숲속에 눈이 내린 것 같은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앙증맞은 눈사람이 중앙에 주인공처럼 자리를 하고 있었다.
“이게 뭐야, 지한아?”
성격 급한 강지영이 바로 물었다.
그에 강지한은 자신의 작품을 천천히 설명해 주었다.
“디저트야. 흙이랑 돌멩이는 내가 만든 쿠키 가루로 질감을 표현했고 여기 바위랑 나무 둥치는 빵이야. 그리고 쓰러진 나무 기둥은 초콜릿. 마지막으로 여기 눈사람은 레몬 셔벗이야. 아, 전체적으로 뿌려진 하얀 가루는 슈가 파우더.”
“대박!”
짝짝짝!
강지영이 저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진짜 이건 후식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다.
먹는 게 아까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눈으로만 볼 위인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후식을 맛있게 나눠 먹었다.
플레이팅도 예술이었지만 맛은 더더욱 엄청났다.
눈 깜짝할 새 눈 내린 작은 숲을 담고 있던 접시가 텅 비었다.
강지한은 마무리로 간단한 다과와 메밀차를 내어주었다.
전투적으로 시식을 한 손님들은 그제야 겨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진짜 환상적이었어요.”
“그러니까요. 되게 특이한 게 우리가 알고 있는 요리들인데 플레이팅을 색다르게 해놓으니까 완전히 낯선 음식을 먹는 것 같더라고요.”
“맞아요. 꼭 무슨 작품전을 보는 것 같았어요.”
시식단의 입에서는 단 한마디의 불평도 나오지 않았다.
아주 성공적인 시식회였고 강지한은 이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이거면 됐어.’
강지한의 새로운 도전, 지한 정식의 첫걸음이 순조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