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305화 (305/330)

# 305

Restaurant 304. 행복한 눈물

설탕이 온다의 리메이크 버전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2주 만에 끝이 났다.

그동안 강지한은 매일같이 밥차를 끌고 가 촬영팀의 식사를 책임져 주었다.

거기에 대한 식비는 일체 받지 않았다.

전부 주연 배우 설탕이가 쏘는 것으로 해서 무료 지급했다.

덕분에 촬영팀의 사기는 날이 갈수록 올라갔다.

배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낯선 이국땅에 와서도 향수(鄕愁)에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촬영의 마지막이 다가올수록 아쉬움이 커져 갔다.

강지한의 음식을 더 맛볼 수 없다는 것과 설탕이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강지한은 마지막 촬영이 있는 날, 처음으로 양식이 아닌 한식, 중식, 일식의 음식들로 메뉴를 꾸려 밥차에 실어갔었다.

이제 강지한에 대한 믿음이 크게 자라난 이들은 그가 무얼 만들어 오든지 무조건 대환영이었다.

문제는 찰리였다.

본토의 음식이 아니라면 일단 거부하고 보는지라 아무리 강지한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연 그것을 먹을까 싶었다.

그런데 마법이 또 한 번 일어났다.

찰리가 다른 나라의 요리들을 너무나도 맛있게 섭취하는 게 아닌가.

그만큼 찰리의 마음속에 자라난 강지한에 대한 믿음은 오랜 세월을 살아온 고목나무처럼 크고 단단해졌다.

어쩌면 그동안 찰리는 ‘제대로 된 타국의 음식’을 맛보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강지한이 수준 높은 타국의 음식들을 가져다주니 걸신들린 사람처럼 흡입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자신이 몰랐던 맛이 이렇게나 많이 있었을 줄이야.

이토록 매력적인 맛이 본토의 음식 말고도 존재했었을 줄이야.

찰리는 식사를 하는 내내 그레이트와 판타스틱을 외쳐대며 강지한을 극찬했다.

그렇게 마지막 식사를 마치고서 촬영까지 끝낸 이들은 다음 날 오전 중으로 춘천을 떠났다.

강지한은 미니버스에 오르는 그들을 설탕이와 함께 배웅해 주었다.

그렇게 하나의 큰일이 끝났다.

하지만 더 큰일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은 어찌 보면 강지한 일생일대 가장 사이즈가 어마어마한 사건이 될 수도 있었다.

바로 예소린과의 결혼이었다.

* * *

2020년 3월 29일, 일요일.

드디어 그날이 왔다.

어젯밤부터 강지한은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서 잔뜩 긴장해 있었다.

처음 분식집을 오픈했을 때도, 배틀 셰프에 출연했을 때도 이렇게까지 떨리지는 않았다.

반면 예소린은 너무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지한 씨 잘 잤어?”

강지한과 한 이불을 덮고서 눈을 뜬 예소린이 기지개를 쫙 켜고 물었다.

두 사람은 일주일 전부터 살림을 합쳤다.

강지한의 집이 대단히 넓은 데 비해 살림살이는 요리에 관련된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여기저기 텅텅 비는 공간이 많았다.

때문에 예소린은 신혼집을 따로 구하지 않고 강지한의 집에 자신의 살림을 들여와 살기로 했다.

예경천도 그것에 딱히 딴지를 걸지 않았다.

자기 품에 있을 때야 싸고돌아야 하는 새끼였지만, 출가외인이 되는 순간부터는 알아서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리고 강지한이라는 사람을 그는 사위로서 매우 신용했다.

자신의 딸도 현명하니 두 사람은 살아가면서 선택의 순간에 놓였을 때 언제나 현명한 결론을 내릴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두 남녀의 주거공간이 합쳐 지면서 예소린이 기르던 강아지들도 모두 강지한의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나 강지한은 요리를 하는 사람인만큼 강아지와 사람 사이에 공간 분리는 필요했다.

당장은 식당 주방에 서지 않는다고 하지만, 언젠가 또 주방에 서게 될지 모르는 일이기에.

해서 설탕이와 소금이를 제외한 모든 강아지들은 별채를 통째로 이용하게 됐다.

별채 역시 본채 못지않을 만큼 넓은지라 강아지들에게 부족한 공간은 아니었다.

아울러 별채를 이용한다고 해도 잠만 거기서 잔다 뿐이지, 아침부터 밤까지 예소린과 함께 카페에서 지내게 되니 강아지들도 불만은 없어 보였다.

가끔 강아지들 중 몇 마리가 불안해 보이면 그때는 설탕이가 알아서 별채로 찾아가고는 했다.

물론 스스로 문을 열고 닫고 할 수는 없으니 강지한의 바짓단을 물어 별채 쪽으로 끌고 가는 것으로 의사 표현을 했다.

그렇게 새로운 가족들을 받아들이고서 그 생활이 익숙해져 가던 와중 드디어 혼인을 올리는 날의 아침이 밝았다.

강지한은 이불에 얼굴을 반쯤 파묻고서 미동이 없었다.

“자기 밤샜어?”

예소린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강지한.

“어머, 이렇게까지 긴장할 줄은 몰랐네. 그냥 자기랑 나랑 한 가족이 되어서 잘살겠다는 걸 보여주는 행사 같은 거야. 긴장할 필요 없어.”

강지한이 부러운 눈으로 예소린을 바라봤다.

‘대체 소린 씨의 담은 얼마나 큰 거야?’라고 물어보려다 관뒀다.

그녀의 과거를 상기해 보면 그런 질문은 의미가 없는 것일 테니.

시간을 확인하니 아침 7시.

식이 12시부터 시작이니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빨리 씻고 나가자. 웨딩샵에서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면 시간 금방 간대.”

예소린의 부추김에 강지한은 화장실로 들어갔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는 와중에도 자신이 정말 결혼을 하는 것인지 얼떨떨한 강지한이었다.

* * *

스드메.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을 줄여서 일컫는 말이다.

전부 웨딩샵에서 패키지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스튜디오 촬영은 결혼 앨범을 남기기 위한 작업이다.

이미 세 달 전에, 두 사람은 촬영을 마쳤다.

그들이 계약한 웨딩업체가 원주의 거대 스튜디오와 거래를 하고 있었기에 그쪽에 가서 하루 동안 촬영을 깔끔하게 끝냈다.

촬영을 하는 당시 두 사람의 비주얼에 촬영 감독이 브라보를 몇 번이나 외쳤는지 모른다.

심지어는 두 사람의 웨딩 사진을 광고용으로 걸어놓아도 되겠느냐 묻기까지 했다.

강지한과 예소린을 이를 허락했고 보답으로 초대형 결혼액자 하나를 추가 서비스받게 되었다.

오전 9시.

춘천의 웨딩샵에서 예소린은 미리 정해놓았던 드레스를 입었다.

순백의 드레스는 아름다운 그녀의 미모를 더 돋보이게 만들어 주었다.

흡사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를 보는 것처럼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웨딩샵 관계자들도 그런 예소린의 모습을 극찬했다.

“저희가 지금 여기서만 10년째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신부님은 처음이에요.”

그것은 가식이 전혀 담기지 않은 웨딩샵 원장의 짐신 어린 말이었다.

“그러니까요. 어쩜 메이크업이랑 헤어는 하지도 않았는데 다 해놓은 것 같네.”

옆에 있던 부원장도 거들었다.

사람이 워낙 예쁘다 보니 질투가 나는 게 아니라 경외심이 들었다.

이윽고 메이크업과 헤어까지 마친 예소린은 그야말로 절세미인이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한데 예소린의 얼굴을 보며 감탄하던 원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네.”

“뭐가요?”

부원장이 물었다.

“신부님 얼굴에서 전미라 씨 젊은 시절이 계속 보이네.”

“어머, 정말.”

전미라는 지금도 예쁘지만 젊은 시절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미모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다 작품을 잘못 잡아 결국 반짝하고 잊혀졌지만, 그럼에도 두고두고 그녀의 미모가 회자될 정도로 역대급을 자랑하는 배우였다.

잠시 공백기를 가진 그녀는 서른 중반에 다시 연예계에 복귀했다.

복귀 당시에도 다시금 미모로 온갖 화제를 몰고 다니더니 쉰 중반이 된 지금은 A급에 준하는 배우가 되었다.

세월의 거친 바람 때문인지 전미라의 미모는 청순하다기보다는 날카롭고 차가우면서도 세련된 쪽으로 많이 바뀌어 있었다.

그래서 예소린을 보는 사람들이 선뜻 현재의 전미라를 떠올리지는 못했다.

한데 예전의 전미라를 기억하는 이들은 예소린에게서 그녀의 얼굴을 찾아내곤 했다.

원장과 부원장은 칭찬이랍시고 전미라를 거론했는데 예소린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어머, 전미라 안 좋아하나 봐요.”

“네.”

예소린이 딱 잘라 대답했다.

그녀는 전미라가 싫었다.

배우로서도, 엄마로서도, 사람으로서도.

예소린의 반응에 원장이 얼른 상황을 수습했다.

“막 그렇게 닮았다는 게 아니고 그만큼 예쁘다는 의미였어요. 호호.”

전미라는 예소린에게 잊고 싶은 사람이었고,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이었다.

* * *

결혼식은 야외 웨딩으로 진행되었다.

강지한은 예식장을 대관하지 않았다. 넓은 정원을 갖춘 카페를 통으로 빌렸다.

3층이나 되는 카페의 본 건물에 강지한 측에서 마련한 야외석까지 합하면 하객 천 명은 족히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예식은 정원에서 이루어지며 주례는 없었다.

식 진행은 강지한의 고등학교 절친인 최영진이 봐주기로 했다.

식이 올라가는 시각은 12시.

11시가 조금 넘어가면서부터 사람들이 대거 카페로 들어서고 있었다.

아울러 식을 진행하는 동안 사람들에게 제공될 연회 음식들도 세팅이 되었다.

연회 음식은 지한 푸드 직원들이 힘을 써서 만들었다.

카페 내부와 야외 정원의 음식 테이블에는 지한 분식부터 시작해서, 지한 김치, 지한 김치전골, 지한 식당, 지한 만두, 지한 반찬, 지한 레스토랑, 지한 객잔, 지한 일식의 음식들이 종류별로 푸짐하게 세팅되었다.

11시 40분이 되었을 무렵.

강지한측 하객들이 물밀 듯 몰려오기 시작했다.

한데 그들의 면면이 상당히 화려했다.

영화배우 좌경우와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윤선아, 드라마 히트메이커 송만대 감독, INTV 예능국 관계자들, 도그앤라이프 서브 디렉터 로버트 정, 배틀 셰프 출연자들과 노영철 피디, 한돈선, 레이먼 박, 최현식 등의 요리 대가들, 레토르트 식품 업체의 1인자 신장호 사장, 도그 푸드 홍보팀장 이중견을 비롯한 회사 관계자들, ‘설탕이 온다’ 촬영 감독인 김상수와 출연배우들, 국민배우 손현중, 안방극장의 여왕 은하수, 월드클래스 작가 김두찬, 인경홈쇼핑 관계자들과 세진 그룹의 백진목 회장, 마지막으로 신사 진상명까지.

그 외에도 일일이 거론하지 못한 수많은 이들이 강지한의 결혼식을 축하해 주기 위해 자리를 빛냈고, 그 하객수가 무려 팔백에 가까웠다.

예소린 측에서도 하객이 이백은 들었으니 총 천 명 정도 되는 하객들이 모여든 것.

사람들은 저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담아 테이블에 가져와서 맛있게 즐기며 담화를 나누었다.

그때 정장을 말끔하게 빼 입은 최영진이 마이크를 잡고 식의 진행을 알렸다.

“오늘 자리를 빛내주신 하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강지한 대표의 동창이자 절친한 친구인 최영진이라고 합니다. 이미 들어오면서부터 느끼셨겠지만 오늘 결혼식은 딱히 정해진 틀 같은 게 없습니다. 그저 파티를 즐긴다는 심정으로 마음껏 먹고 마시고 떠들다 가시면 되겠습니다. 그럼에도 오늘의 주인공 두 사람에게 스포트라이트는 떨어져야 하니 입장 한 번만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최영진의 말에 하객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신랑 신부, 입장!”

신호에 맞춰 예경천이 먼저 앞장서 나왔다.

그 뒤를 강지한과 예소린이 따라서 움직였다.

봄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며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가운데 등장한 두 사람의 모습은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도저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몇몇 하객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예경천도 훌쩍이며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정원의 중심에서 멈춰 선 예경천이 뒤돌아서서 가족이 될 사위와 세상 가장 어여쁜 자신의 딸을 바라보았다.

강지한은 예경천에게 정중히 절을 올렸고, 예소린은 아빠의 품에 안겨 진한 포옹을 했다.

이어 예경천이 두 사람의 손을 한쪽씩 잡아끌어 예쁘게 포개 놓고서는 자리를 피해주었다.

그가 지한 푸드 가족들이 마련해 놓은 자리에 앉아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이제 인생에서 제일 큰 산 넘었네. 축하해요.”

이향숙의 엄마 김숙자가 예경천을 위로했다.

그녀와 예경천은 건물주 카페의 회원으로 평소에도 친분이 두터웠다.

“내가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고맙고 서럽고 시원하고 섭섭하고 야속하다가도 행복하고…… 진짜 모르겠어.”

“다 그렇지 뭐.”

김숙자가 예경천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러자 예경천은 저도 모르게 김숙자의 품에 얼굴을 묻고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그것이 또 다른 사랑의 씨앗이 될 줄은 그땐 아무도 몰랐다.

신부와 신랑이 하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고 퇴장하는 것으로 예식은 마무리가 되었다.

잠시 후, 드레스와 턱시도를 벗고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강지한과 예소린은 하객들 사이에서 함께 어울렸다.

넓은 정원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두 사람의 축복을 바라는 음성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 사이에서 강지한의 콧잔등이 시큰해져 왔다.

그가 잠시 입을 닫고 주변을 가만히 돌아보았다.

셀 수도 없는 반가운 얼굴들이 하나 된 마음으로 자신을 축하해 주고 있었다.

3년 전만 해도 외톨이나 다름없던 그는 이런 상황을 꿈에도 그리지 못했었다.

결국 참고 참으려 했던 눈물이 왈칵 터지고 말았다.

강지한의 생에 가장 행복한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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