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302화 (302/330)

# 302

Restaurant 301. 인과의 법칙

뚜르르르. 뚜르르르.

-전화를 받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됩…….

“빌어먹을!

한남선이 쥐고 있던 스마트폰을 집어 던졌다.

콰직!

바닥에 충돌한 스마트폰이 그대로 박살났다.

“곽진묵 이 개자식이 전화를 안 받아?”

한남선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가 곽진묵에게 강지한의 처리를 부탁한 건 맞다.

한데 목숨을 위협하라고는 하지 않았다.

다만, 오른손을 사용하기 불편할 정도로 망가뜨려 놓으라고 했다.

한데 진상명은 강지한이 생명의 위협까지 받았다며 신선정을 뒤집어 놓았다.

“무슨 일을 이따위로 처리하는 거야!”

한남선이 고함을 빽 질렀다.

어차피 곽진목의 귀에는 들어가지도 않을 테지만.

* * *

한민국은 자신의 방에서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후우우.”

미간에 새겨진 세로줄은 갈수록 깊어졌다.

낮에 보았던 한남선의 얼굴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입과 코에서 피를 줄줄 흘리고 있던 그 모습이 잊히질 않았다.

한민국은 처음부터 문밖에서 얘기를 엿들은 게 아니었다.

큰 소리가 오가고 소란스러워졌을 때쯤 다른 직원들의 언질을 받고 달려간 터였다.

그때 문밖으로 새어 나오던 진상명과 한남선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내년 봄 신선정의 후계자 경합에 난 아무런 관여도 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 정정당당한 경합이 될 수 있도록 힘써주게. 알겠나?”

“그리하겠습니다.”

“믿어보겠어.”

이후 진상명이 떠나고 난 뒤 한민국은 아버지의 처참한 몰골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앞뒤 상황을 제대로 파악 않고 강지한이 인맥을 동원해 괜한 엄포를 놓은 건가 생각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진상명의 얼굴을 똑같이 뭉개놓고 싶었으나 안 될 일이라는 걸 알았다.

그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행동은 한 가지뿐이었다.

“아버지. 내년 경합에서 반드시 이기겠습니다.”

한남선에게 경합에서의 승리를 약속하는 것.

그러고는 바로 자리를 떴다.

처참한 아버지의 몰골을 보고 있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

이후, 한민국은 상황을 모두 알고 있는 직원에게 자세한 사건의 경위를 물었다.

그러자 돌아온 대답이 충격적이었다.

“명인님께서 강지한 대표의 신변에 위협을 가한 모양입니다. 진상명은 강지한 대표를 은인으로 생각하는 입장이라 찾아와서 일을 벌인 것 같습니다.”

한민국은 참담함을 느끼며 눈을 질끈 감았다.

결국 그가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강지한과 정정당당하게 붙어 실력으로 이기는 걸 바랐다. 한남선이 손을 써서 찝찝함을 남기기 싫었다.

그런데 결국 자신의 아버지는 강지한에게 마수를 뻗쳤고 그것이 재앙이 되어 돌아왔다.

“후우우.”

낮의 일을 되새긴 한민국의 입에서 또 한 번 한숨이 흘러나왔다.

자신의 가문에서 먼저 잘못을 저지른 것이니 이제는 강지한을 원망할 수도 없었다.

오히려 부끄러워 낯을 들기 힘들 지경이었다.

‘대체 왜 그러신 겁니까. 편한 길을 두고 어렵게 돌아가지 말라는 겁니까? 아니면 제 실력이 못 미더운 겁니까?’

당장에라도 한남선을 찾아가 그렇게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물론 답은 알고 있었다.

한남선은 전자였다 답할 것이다.

한데 지금은 정말 그것 외에 다른 이유가 없는 건지 의심이 들었다.

자신의 실력을 철썩같이 믿는다면 강지한은 불안요소가 될 수 없었다.

‘분명 아버지는 강지한의 김치를 먹고 흔들린 것이다.’

결국 한남선은 한민국이 경합에서 이길 것이라고 백 퍼센트 장담 못 한다는 얘기와 같았다.

저도 모르게 꽉 쥔 한민국의 주먹이 파르르 떨려왔다.

결국 아버지는 자신에게 더할 나위 없는 치욕을 안겨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요리 실력에서만큼은 누구보다 높은 프라이드를 갖고 있는 한민국이었다.

그만큼 열심히 노력했다. 지금도 자만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솜씨를 갈고닦는 중이다.

그런 프라이드를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가 짓밟고 말았다.

“내년 경합에서 반드시 이겨 보이겠습니다. 아버지.”

한남선의 앞에서 이미 한 번 했던 말이었다.

한데 말에 담긴 늬앙스가 달랐다.

한민국이 방에서 나와 주방으로 향해 칼을 잡았다.

* * *

2월 중순.

지한 일식도 이제 자리가 잡히고 있었다.

김정훈의 뒤를 받쳐줄 실력 있는 일식 요리사 한 명을 더 들였기 때문.

그 말인즉, 강지한이 일식 주방에서 슬슬 발을 빼도 될 타이밍이라는 것이다.

해서 요즘 강지한은 주방으로 출근만 하고 요리를 직접 만들지는 않았다.

뒤에서 지켜보며 때때로 조언을 해주는 것이 전부였다.

아무리 바빠도 절대 끼어들지 않고 직원들끼리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이제 다음 주부터는 나오지 않아도 되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홀 직원이 다가와 강지한을 찾았다.

“대표님, 손님께서 대표님을 좀 뵙고 싶다 하시는데요?”

“응? 어디?”

“5번 테이블이요.”

강지한이 바로 시선을 돌리니, 하경춘이 보였다.

“하 도사님, 언제 오셨어요?”

홀로 나온 강지한이 하경춘을 반갑게 맞이했다.

“아까부터 와서 2인분이나 해치웠는데 몰랐어?”

“하하, 그랬어요?”

“하여튼. 강 대표 내가 항상 지니고 다니라던 부적은 어떻게 됐어? 지금 갖고 있는 거 맞아요?”

“그럼요.”

“근데 왜 기운이 안 느껴지지? 어디 봐요.”

강지한이 스마트폰 케이스를 열어 그 안에 접혀 있던 부적을 꺼내주었다.

부적을 건네받은 하경춘이 그것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고는 놀란 눈으로 강지한을 쳐다봤다.

“강 대표, 혹시 최근에 죽을 뻔한 적 있어요?”

“네? 그게 무슨…….”

“부적에 깃들어 있던 영험한 기운이 전부 빠져나갔어. 여기 봐봐. 왼쪽 귀퉁이의 문양이 꼭 물 닿은 것처럼 뭉그러지면서 퍼져 있지? 이건 흉살(凶殺) 당할 뻔했던 걸 바꿔 놓았다는 뜻이야.”

“흉살이 뭔가요?”

“참혹하게 죽임을 당한다는 거지. 그걸 부적의 힘이 막아준 거라 이 말이에요.”

그 말을 듣자마자 강지한은 지난달 밤, 자신을 습격했던 세 명의 괴한이 떠올랐다.

하경춘의 말마따나 그때 강지한은 꼼짝없이 죽임을 당할 판이었다.

그런데 운 좋게 나타난 예소린으로 인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이러한 얘기를 다 듣고 난 하경춘은 고개를 끄덕였다.

“부적이 그 여인을 불렀구만.”

“그런 건가요?”

“그런 겁니다.”

듣고 보니 우연이라고 하기엔 예소린이 등장한 타이밍이 너무 절묘했다.

그녀가 매일같이 강지한의 집을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일이 끝날 시간에 맞춰서 그를 기다리는 스타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런데 그날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강지한을 마중 나왔다가 상황을 정리하게 됐다.

부적의 효능이 범상치 않음을 느낀 강지한은 하경춘에게 부탁했다.

“이런 부적 하나 더 써주세요. 돈은 얼마든지 드릴게요.”

아무리 돈이 좋다 한들 목숨보다 비쌀 순 없는 법.

하지만 하경춘은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그때 말했죠? 그 부적은 내가 파는 부적 중에 가장 비싼 거라고.”

“네.”

“돈으로는 살 수 없어요. 내 수명을 갈아 넣어 만든 것이니까. 세상에 목숨보다 비싼 게 있겠어? 그래서 그 부적이 가장 비싼 거라고. 나도 태어나서 평생 딱 한 장 그려서는 귀인에게 주어야겠다 마음먹고 지니고 다니던 걸 줬던 거예요. 아무리 생각해도 내 인생에 강 대표 이상의 귀인이 없었거든.”

그 말을 듣고 난 강지한이 깜짝 놀랐다.

“그럼 도사님의 목숨값으로 절 살리신 겁니까?”

“목숨이 아니고 생명. 부적에 담긴 내 생명의 일부가 강 대표님을 살린 거지. 그리고 이건 천운을 거스르는 일인 만큼 더 이상 사용해서는 안 돼요.”

“그렇군요. 그 정도로 귀한 것일 줄은 몰랐네요. 그런 걸 제가 그렇게 선뜻 받았어도 됐던 걸까 싶어요.”

“아마 처음부터 강 대표에게 주려고 만들었던 걸 거야. 내 느낌이 그래.”

“왜죠?”

“몰라요, 나도. 과거에 내가 강 대표에게 죽을 만큼 몹쓸 짓을 했었나 보지. 세상에는 그냥 벌어지는 일이란 없어요. 다 인과의 법칙을 따라가는 거라고. 그러니까 내가 기억 못 하는 와중에 뭔가 그쪽한테 해가 되는 일을 했던 게 아닌가 싶어. 그게 내 목숨을 갉아서라도 갚아야 할 만큼 큰일이었나 봐요.”

“하하. 도사님이 그랬을 리가 있겠어요.”

“……하여튼 사람이 너무 좋아. 잘 먹었습니다.”

하경춘이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향하려 하자 강지한이 만류했다.

“앞으로 하 도사님은 우리 식당에서 돈 내지 말고 드세요.”

“으잉? 평생 무전취식하라고?”

“절 살려주신 분인데 그 정도는 당연하죠.”

“그거 다 인과 때문이라니까. 나중에 우리 둘 사이의 처절한 악연 같은 게 밝혀져도 난 몰라요?”

“알겠습니다.”

생글생글 웃고 있는 강지한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하경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필요 이상으로 사람이 좋아. 잘 먹었수다.”

하경춘은 강지한의 배웅을 받으며 식당을 나섰다.

* * *

그날 밤.

하경춘을 꿈을 꿨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의 일이었다.

10년 전…… 아니, 15년 전의 일이었나?

그녀는 대학로 길거리 천막에서 사람들의 사주를 봐주며 부적을 팔고 있었다.

장사는 안 되고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시절이었다.

유명한 사주쟁이들, 점쟁이들은 궁궐 같은 집에서 삼시세끼 고기반찬에 외제차 끌고 다닌다는데 내 삶은 왜 이러나 싶었다.

나름 신발 좀 받았는데.

추우면 추운 데서 일하고 더우면 더운 데서 일하는 길거리 신세가 서러웠다.

그러던 와중 누군가가 사주를 보겠다며 찾아 들어왔다.

얼굴은 기억나지 않고 목소리만 어렴풋이 떠오르는데 그마저도 확실하지 않았다.

그는 사주는 보지 않고 농담처럼 물었다.

“부적도 그리시나 봅니다? 그럼…… 사람을 저주하는 부적도 그릴 수 있나요?”

남자는 제법 부유해 보였다.

그러면 안 되는 일이지만 하경춘은 그의 돈을 탐하며 되물었다.

“얼마나 저주하고 싶으신지?”

“어느 정도까지 강력한 부적을 만들어 주실 수 있을까요?”

“돈을 많이 주시면 주시는 대로 강력해져요.”

사내는 크게 웃으며 백만 원이나 되는 돈을 내놓았다.

눈이 돌아간 하경춘은 자신의 신력을 있는 대로 발휘해 저주의 부적을 만들어 주었다.

“내가 이런 거 잘 안 믿는데 이번엔 좀 큰일을 해야 해서 위안 삼아 가져가려 합니다.”

마치 복권이 당첨되지 않을 것을 알지만 발표를 기다리는 일주일간의 희망을 즐기려는 사람 같은 말투였다.

사내가 부적을 가지고 나간 뒤 하경춘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내가 어쩌자고 그런 걸!’

여태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저주하는 부적은 그리지 않았었다.

한데 돈에 눈이 멀어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하경춘이 백만 원을 들고 밖으로 뛰쳐나갔지만 이미 사내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허억!”

꿈을 꾸고 있던 하경춘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녀가 상반신을 용수철처럼 튕겨 일으키고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허억!”

머리맡에 놔두었던 물 한 잔을 마시고서 겨우 진정을 한 하경춘이 불길함에 몸을 떨었다.

강지한에게 인과의 법칙에 대한 얘기를 하고 나서 이런 꿈을 꾼 것이 영 이상했다.

“설마…… 그게 강 대표의 생에 해를 끼쳤단 말인가.”

하경춘은 부적을 사갔던 남자의 얼굴을 계속해서 떠올리려 노력했다. 그러나 끝내 떠오르지 않았다.

대체 부적을 사간 남자가 누구였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