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301화 (301/330)

# 301

Restaurant 300. 한남선의 치욕

신선정에는 VIP실과 VVIP실이 따로 존재한다.

본래는 없었던 것이다.

제2대 신선숙수 한정신 때까지는 전부 똑같이 통일된 테이블과 똑같이 꾸며진 방만 있었다.

방과 테이블 역시 누구든 취향대로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남선이 3대 신선숙수로 앉고 나서부터 방에 테이블에 격차가 생겼다.

방은 VIP급 이상의 손님들만 이용이 가능했다.

그만큼 음식의 가격에 프리미엄이 붙었고 나오는 반찬과 요리들이 조금 더 좋아졌다.

VVIP만 이용할 수 있는 방은 크기부터 달랐다.

음식의 가격은 일반인이 엄두도 내지 못할 수준이었다.

1인 정식이 무려 100만 원을 호가했다.

상에 올려지는 음식들은 하나같이 보양에 좋으면서 각 지역의 특산물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아울러 이 상에 올라가는 음식들은 한남선이 직접 만들어 냈다.

본래 한남선이 주방에서 하는 일은 자신의 레시피대로 주방 직원들이 잘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지휘만 하는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은 역할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나 VVIP가 찾아오면 직접 가서 인사를 드리고 손수 요리를 시작한다.

그런 정성을 보여야 다음에도 다시 찾아오기 때문이다.

식당을 찾는 모든 손님들에게 평등했던 신선정은 더 이상 존재치 않았다.

신선정의 주방.

한남선은 그 중심에서 날카로운 시선으로 만들어지는 요리들을 검수하고 있었다.

그때, 홀매니저가 들어와 한남선에게 말을 전했다.

“VVIP께서 오셨습니다.”

“누구?”

“진상명이라는 분이십니다.”

그 이름을 들은 한남선의 눈이 번쩍 뜨였다.

“방금 진상명이라고 했어?”

“네.”

단 한 번도 마주한 적은 없었으나 그에 대한 소문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터였다.

정재계를 통틀어 가장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사람.

통칭 신사라고 불리지만 그것은 실상 사신이라는 별명을 본인이 싫어하기에 돌려 표현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에게 밉보이고 정재계 바닥에서 살아남은 이가 없다는 일화 또한 익히 알고 있었다.

감히 대통령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이 진상명이었으며, 거목 중의 거목이었다.

기실 신선정이라고 하면 대한민국에서 방귀 좀 뀐다는 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한식당이었다.

한데 어쩐 이유에서인지 진상명은 한남선이 신선숙수로 있는 동안 단 한 번도 걸음을 하지 않았다.

그랬던 신사가 드디어 신선정에 걸음을 했다.

한남선은 이번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수많은 이들을 골로 보냈다는 건, 죽을 지경에 놓인 사람을 살릴 수 있는 힘 또한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훌륭한 음식을 대접해서 연을 잘 맺어 놓으면 필시 나중에 도움이 될 인물이었다.

“직접 인사 가도록 하지. 안내해.”

“네.”

홀매니저가 앞장서서 주방을 나서려는 순간, 한남선이 말을 바꿨다.

“아니, 잠깐. 인사는 나중에 하는 게 좋겠다.”

우선은 자신의 요리들로 흥을 돋워놓은 뒤 인사를 하러 가는 것이 더욱 드라마틱 하지 않겠는가.

맛있는 음식을 접한 다음에는 기분이 훨씬 좋아져 있을테니 말이다.

“조리 들어갈 테니 네가 방문 앞에 딱 붙어서 최대한 신경 써서 모셔. 진상명이 필요한 걸 말하기 전에 눈치 빠르게 먼저 움직여.”

한마디로 조금의 불편함도 없도록 극진히 대접하라는 말이었다.

“알겠습니다.”

홀매니저가 주방을 나서자 한남선이 두 팔을 걷어붙였다.

최고의 손님을 대접하기 위한 요리가 그의 두 손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 * *

진상명은 먹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늘 바쁘게 살아왔다.

전쟁터와 다름없는 정치판에서 남들을 밟고 일어서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고 쉴 틈 없이 움직였다.

음식은 그저 에너지를 축적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런 그가 식도락의 진정한 맛을 깨우친 건 강지한 덕분이었다.

이제는 조금 맛있는 음식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신선정에서 내온 요리들이 상당한 수준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여태껏 어디가서 맛보지 못한 한식들이었다.

그만큼 수준이 높고 화려했다.

하지만,

‘이 음식들에는 하나같이 뭔가가 결여되어 있어.’

진상명이 강지한의 음식을 좋아하는 건 맛도 맛이지만 그 안에 따듯함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한데 신성정의 음식에는 그런 게 없었다.

맛으로만 따지면 강지한이 만든 음식보다 한 수 위였다. 그러나 맛있다는 느낌만 있을 뿐, 기분 좋게 먹었다는 느낌은 없었다.

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그저 가격만큼이나 화려한 기교와 기술만 가득했다.

진상명이 그의 경호원 둘과 식사를 마치고 나니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르신, 한남선입니다. 제가 인사를 올리고 싶어 찾아뵈었는데,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는지요.”

진상명이 신선정에 온 것은 음식을 먹기 위해서가 아니다. 한남선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였다.

식사를 하고 나서도 나타나지 않으면 직접 호출하려 했는데, 제 발로 찾아와주니 고마웠다.

“들어오세요.”

허락이 떨어지자 한남선이 만들어진 미소를 머금고 방 안에 들어섰다.

그러고는 두 손을 공손히 모아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넸다.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어르신. 신선정의 제3대 신선숙수 한남선이라고 합니다.”

“진상명입니다. 앉으시죠.”

“네.”

한남선이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진상명의 뒤로는 함께 식사했던 두 명의 경호원이 시립해 있었다.

그들의 맞은편에 한남선이 자리했다.

“음식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진상명이 인사차 말했다.

“입에 잘 맞으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워낙 존귀하신 분께서 오셨다 하여 평소보다 더욱 신경을 썼습니다.”

“평소보다 더 신경을 썼단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한남선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진상명이 고개를 살짝 모로 꺾었다.

“그럼 신선정을 찾는 사람의 급에 따라 요리에 들어가는 정성 자체가 달라진다 이 말입니까?”

“…….”

한남선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신선정을 찾은 이들 중 이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대부분은 한남선의 아부 섞인 발언에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자신을 치켜세워 주는데 싫어할 이가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그런 그의 말을 진지하게 듣고 따지는 경우 또한 없었다.

한데 진상명은 이걸 잡고 늘어졌다.

뭔가 상대하기 쉽지 않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하, 제가 말실수를 했군요. 요리에 들어가는 정성이야 다 똑같습니다. 늘 최선을 다해서 내놓지요. 그저 귀빈을 모시는 제 마음이 결코 작지 않음을 알아 달라며 너스레를 조금 떤 것 일진데, 그것이 혹 귀에 걸렸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한남선이 능숙한 말솜씨로 이 상황을 모면하려 했다.

하지만 진상명은 그의 장단에 맞춰줄 생각이 없었다.

“혹시 능구렁이로 만든 음식이 있습니까?”

“그런 음식은 왜 찾으시는지……?”

“대가님께서 족히 백 마리 정도는 잡아 잡수신 것 같아 여쭤봤습니다.”

한남선이 능구렁이 같다는 말을 한 것이다.

순간적으로 그의 가슴 속에서 울컥하고 화가 올라왔으나 티 내지 않고 웃어넘겼다.

“하하하.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어르신.”

“지나치다……. 겨우 이 정도 가지고 지나치다고 하시니 내가 진짜 지나친 게 뭔지 보여드려야겠군.”

한남선은 그제야 알았다.

진상명이 애초부터 적의를 품고 찾아왔음을.

‘뭐지?’

한남선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는 진상명과 척질 만한 일을 벌인 적이 없었다.

때문에 명백한 그의 적의의 근원이 무엇인지 의아했다.

“내가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이군요.”

“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꾸짖어 주시지요. 바로 고쳐먹도록 하겠습니다.”

한남선은 자존심을 버리고 납작 엎드렸다.

사신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그의 앞에서 자존심을 지키려다가는 모든 걸 잃고 주저앉게 된다’고.

허투루 나도는 말이 아님을 한남선은 알았다.

그래서 기분이 언짢아도 꾹 참고 상대의 기분을 맞춰주었다.

한데 그것이 더 진상명의 심기를 건드렸다.

“마음에도 없는 짓을 하고 앉아있군.”

순간 진상명에게서 무서운 냉기가 흘러나왔다. 주변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내려앉으며 한남선의 몸이 저도 모르게 벌벌 떨려왔다.

‘대체 이 위압감은…….’

신선숙수의 자리에 앉은 이후 누구 앞에서도 진심으로 겁을 먹은 적이 없는 그였다.

그만큼 신선정의 위용은 대단했고, 개인적인 인맥 또한 든든했기 때문이다.

한데 진상명은 그런 것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다.

오랜 역사가 담긴 신선정의 위용보다 진상명의 위용이 드높았다.

한남선의 인맥이 대단하지만, 진상명은 위에서 그들을 수족처럼 부린다.

부딪히게 되면 무조건 잡아먹힌다.

진상명은 대한민국 최상위 포식자였다.

그런 사람이 한남선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잘못하다간 갈가리 찢긴다.’

냉정한 현실이 피부로 다가오자 한남선의 기가 완전히 짓눌렸다.

“어르신……. 제가 멍청한 농간을 부려 죄송합니다. 한데 무엇이 어르신의 심기를 건드린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습니다. 제 무지를 꾸짖어 주십시오.”

한남선이 진심으로 말하니, 그제야 진상명은 실마리를 내놓았다.

“강지한 선생님을 건드리려 했더군.”

“……!”

한남선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지며 심장이 철렁했다.

진상명이 강지한 때문에 찾아왔다는 것과, 그를 선생이라 지칭하는 것이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빙빙 돌리는 건 잘 못하는 성미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강 선생님은 내가 은인으로 모시는 분이야. 한데 그런 분을 건드리려 했다지?”

“…….”

어지간한 한남선도 지금은 할 말을 찾기가 힘들었다.

뇌가 회전을 해야 하는데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멈춰 버린 것 같았다.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혔고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자네가 일을 사주한 곽진묵이는 오늘 새벽에 얼굴을 좀 보고 왔네. 알아서 의원직을 내려놓겠다 약조했지. 지금쯤이면 공식적으로 정계 은퇴 선언을 했을 거야. 하지만 거기서 끝날까? 강 선생님은 조선족들의 칼에 목숨을 잃을 뻔했는데. 경찰 조사가 들어갈 거야. 진묵이가 모든 사실을 시인하겠지.”

“어, 어르신!”

관진묵이 모든 걸 토로하면 한남선의 이름까지 나오게 된다.

깜짝 놀란 한남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성질 같아서는 이번 기회에 자네 명줄도 끊어버리고 싶은데…… 일단은 안심해. 진묵이의 입에서 자네 이름이 언급되는 일은 없을 테니.”

“가, 감사합니다, 어르신!”

“감사를 표하고 싶다면 강 선생님께 하도록 해. 그분께서 자네를 짓밟지 말라 하는 바람에 참아 넘기는 중이니. 자네의 죄까지 전부 곽진묵이 떠안게 되겠지.”

“……네?”

한남선은 강지한이 왜 자신을 감싸준 것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얼떨떨한 그를 보며 진상명이 혀를 찼다.

“쯧쯧. 자네의 알량한 깜냥으로는 강 선생님의 하해와 같은 마음이며 생각의 깊이를 이해 못 할 테지. 아무튼 내가 오늘 신선정을 찾은 이유는 하나야.”

진상명의 말이 끝나는 순간 경호원 한 명이 한남선의 뒤로 다가가 몸을 찍어 눌렀다. 그러자 다른 한 명이 앞에서 오른팔을 잡아당겨 상 위에 놓고 칼을 꺼내 손목에 지그시 갖다 댔다.

“흐읍!”

놀란 한남선이 숨을 크게 들이켰다.

이 방은 VVIP들만 모시는 곳.

그들의 은밀한 사생활을 위해 CCTV 같은 것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진상명도 그런 것을 이미 파악해 둔 터였다.

“앞으로 한 번만 더 강 선생님의 신변에 위협이 될 만한 일을 저지른다면, 그 손모가지가 잘릴 거야. 알아들어?”

진상명의 말에 칼날이 한남선의 살을 살짝 파고 들어갔다.

“흐으으! 네, 네!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어르신!”

한남선이 살짝 흘러내리는 피를 보고 기겁해서 소리쳤다.

“그 말을 내가 정말 믿어도 되겠어?”

“믿어주십시오! 저, 절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강지한의 근처에도 가지 않……!”

뻐억!

말을 하던 한남선의 눈앞에 별이 번쩍했다.

진상명이 상 위에 있던 반찬 그릇을 들어 한남선의 뺨을 냅다 후려친 것.

“어억……!”

고통에 정신이 반쯤 나간 한남선의 귀로 호랑이의 기개가 담긴 음성이 들려왔다.

“내가 선생님이라 부르는 분을 감히 내 앞에서 이름으로만 불러?”

“죄, 죄송합니다, 어르신. 가, 강지한 선생님의 근처에도 가지 않겠습니다. 끄으…….”

한남선이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눈물과 함께 입과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맞은 게 억울하니? 지금 네 꼴이 분하니?”

“아, 아닙니다.”

“억울하고 분하면 네 잘난 인맥 이용해서 싸움 걸어봐. 아니면 고소를 넣던가. 다만, 그때는 모든 것을 다 잃을 각오로 덤벼야 한다는 거 잊지 말고.”

“아닙니다, 어르신. 절대로 그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약속하는 거야?”

“약속드립니다.”

“그럼 나도 약속 하나 하지. 내년 봄 신선정의 후계자 경합에 난 아무런 관여도 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 정정당당한 경합이 될 수 있도록 힘써주게. 알겠나?”

“그리하겠습니다.”

“믿어보겠어.”

진상명이 경호원들에게 눈짓을 했다.

그제야 경호원들은 한남선을 풀어주었다.

“가보도록 하지. 어지간하면 나와 다시 마주치는 일이 없기를 바라겠네.”

진상명이 경호원들과 함께 방을 나갔다.

그러자 밖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던 직원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명인님! 괜찮으십니까?”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당장 경찰 부르겠습니다!”

직원들의 호들갑에 한남선이 소리쳤다.

“그만둬! 그만…….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야. 다들 소란 피우지 마.”

한남선은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눈물을 닦고 피를 훔쳤다.

그 모습을 문밖에서 지켜보며 거친 숨을 내뱉는 이가 있었으니 한민국이었다.

“아버지, 내년 경합에서 반드시 이기겠습니다.”

그 짤막한 말만 내뱉고서 한민국은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이 치욕을 갚아주기 위해서는 경합에 이기는 수밖에 없었다.

믿음직한 장남의 장담에 한남선의 마음이 그나마 누그러졌다. 하지만 진상명에게 느꼈던 공포는 평생을 두고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강지한을 경합 전에 어찌해야겠다는 생각은 이미 저 멀리 지워 버린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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