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300화 (300/330)

# 300

Restaurant 299. 내 연인의 과거

진상명은 강지한에게 조금 전 벌어졌던 일에 대해 간략히 듣고 나서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밤중에 갑작스런 괴한의 습격이라. 대충 넘어가서는 안 될 일이로군요. 그나저나 강 선생님과 반려자 되실 분께서는 다치신 곳이 없으셨는지요?”

진상명이 걱정을 가득 담아 물었다.

“네, 괜찮아요.”

“이 괴한들은 강 선생님께서 제압하셨나 봅니다?”

“그게…….”

강지한이 사실을 말하려 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예소린이 몰래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아, 네……. 어쩌다 보니.”

“요리만 잘하시는 줄 알았는데 무예도 출중하셨군요. 대단하십니다.”

“아닙니다. 하하.”

천성이 거짓말을 하면 불편해지는 강지한이었다.

하지만 예소린이 진실을 감추고 싶어 하니 어쩔 수 없었다.

그에 괴한들은 어처구니없다는 시선으로 예소린을 노려보았다.

진상명은 그런 괴한들의 얼굴을 죽 훑어보고서는 바로 장현송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입을 봉하고 있던 박스테이프를 뜯었다.

순간 장현송이 대뜸 가래침을 뱉었다.

“카악~ 퉤!”

가만히 있다가는 진상명의 얼굴에 침이 튀어버릴 상황.

하나,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탁.

뒤에 서 있던 경호원 중 장신을 자랑하는 이가 손을 뻗어 침을 막았다.

그러자 곰 같은 덩치의 또 다른 경호원이 튀어나와 장현송의 어깨를 걷어찼다.

뻑!

“커헉!”

“버릇이 많이 안 좋은 사람이구만. 아, 찝찝할 텐데 좀 씻고 와요.”

진상명의 말에 가래침을 막아낸 장신 경호원이 마당에 있는 수돗가에서 손을 씻었다.

그러는 사이 진상명은 덩치 경호원에게 명했다.

“입 다시 틀어막고 버릇 좀 고쳐줍시다. 아, 강 선생님. 마당에 피가 좀 튀어도 괜찮을까 모르겠습니다.”

진상명은 온화한 얼굴로 섬뜩한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네? 아……. 괜찮긴 한데 시끄러워지면 경찰이 오지 않을까요.”

“오늘 여기서 날 샐 때까지 고성방가를 해도 경찰은 오지 않을 겁니다.”

진상명이 자신하듯 말했다.

그리고 그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지역 경찰쯤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힘을 지닌 사람이니.

강지한이 수긍하고 넘어가려는데 진상명이 다 못한 말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사람 셋 정도 죽어나가도 아무 문제없을 거고요.”

그의 시선이 괴한 셋을 천천히 훑었다.

순간 괴한들은 등줄기에서 땀이 흥건해지는 걸 느꼈다.

겉보기엔 왜소하기만 한 노인인데 안에서 풍겨지는 기운이 대단히 위압적이었다.

사람을 죽인다는 말을 단순한 협박으로 내뱉는 게 아니었다.

정말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밀려왔다.

“일단 침 뱉은 놈부터 버르장머리를 잡아놔야겠다.”

그러자 손을 씻고 온 장신 경호원이 안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장현송의 귀 한쪽을 잘랐다.

서걱.

“우웁! 우우우우웁!”

깔끔하게 잘린 부위에서 피가 솟구쳤다.

그 광경에 강지한이 경악했고, 예소린은 살짝 놀란 눈치였다.

장신 경호원은 마치 고기를 썰 듯 아무렇지 않게 사람의 귀를 잘라 버렸다.

행동에서는 망설임이 없었고 얼굴에서는 죄책감이 보이지 않았다.

장신 경호원이 이번엔 장현송의 손가락을 부러뜨리려 할 때였다.

“잠깐만.”

진상명이 그를 제지하고서 강지한과 예소린에게 말했다.

“제가 실수했습니다.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광경이 펼쳐질 테니 두 분께서는 안으로 들어가 계시다가 나오시라 하면 나와주세요. 그리고 너무 놀라실 필요 없습니다. 이런 녀석들은 살살 다뤄주면 머리 위에서 놀려고 해요. 더 심하게 다루어주지 않는 이상 누구의 사주로 움직였는지 절대 입을 열지 않을 겁니다. 저에게 있어서는 은인이신 강 선생님의 안위가 가장 중요하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강지한은 고개를 끄덕이고 예소린과 집 안으로 들어왔다.

“시작해.”

닫힌 문 너머로 진상명의 나직한 음성이 들렸다.

이후부터는,

빠직. 뚝. 두득. 서걱. 푹.

“우웁! 우우웁! 으으…… 끄으으으으!”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살이 터져 나가는 소리, 찢어지는 소리.

그리고 억눌린 신음만이 이어졌다.

* * *

“이제 나오셔도 됩니다.”

진상명의 부름에 마당으로 나온 강지한은 입을 틀어막았다.

세 명의 괴한들은 피칠갑이 되어 엉망인 상태로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전부 몸 서너 군데는 기본으로 골절된 상태에서 얼굴은 붓고 멍들어 사람의 몰골이라 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기겁을 한 강지한과 달리 예소린은 그저 눈살을 조금 찌푸릴 뿐이었다.

괴한 한 명은 넋이 나가 입을 벌리고서 신음을 흘렸는데, 그 안에 있어야 할 치아가 반 이상 날아가 있었다.

혀도 엉망진창으로 뭉개진 것 같았다.

입 밖으로는 피가 계속 줄줄 흘러내렸다.

“보기 흉하니 쟤 입 좀 막아라.”

진상명의 말에 덩치 경호원은 손수건을 꺼내서 놈의 입을 틀어막았다.

“우웁…… 웁! 으으…….”

진상명은 장현송을 가리키며 강지한에게 일렀다.

“강 선생님, 저놈이 이 셋 중에서는 가장 머리가 큰 놈이더군요. 셋 다 조선족으로 청부살인을 주로 하는 이들입니다.”

“청부살인…… 이라고요?”

“네.”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 속에서만 벌어지던 일을 실제로 직면하게 되니 머리가 띵했다.

이를 본 예소린의 미간이 와락 구겨졌다.

“정말 죽일 생각으로 왔다는 거네요?”

그녀의 음성에 살벌한 분노가 가득 담겨 있었다.

진상명이 얼른 예소린을 달랬다.

“아닙니다. 두 손만 못 쓰게 하려고 했답니다.”

“요리사의 손을 못 쓰게 만들어요? 그건 요리사로서 죽은 것이나 다름없잖아요. 진짜 악질이네, 이 사람들!”

예소린이 당장에라도 세 사람의 목을 졸라버릴 기세로 팔을 걷어붙였다.

하지만 저기서 더 얻어맞으면 정말 골로 갈지도 모를 상황.

앞으로 성큼성큼 나서는 예소린을 장신 경호원이 막아섰다.

“참으세요, 아가씨.”

“놔요. 한 대만 때릴게요.”

장신 경호원은 계속 괴한들에게 다가가려는 예소린의 어깨를 조심스레 잡고 힘을 주었다.

“손 더럽히는 일은 저희가 할…….”

장신 경호원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앞으로 밀어붙이는 그녀의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마치 황소를 상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에 장신 경호원은 저도 모르게 힘을 주어 예소린을 밀어냈다.

그럼에도 예소린의 힘을 감당하기가 버거웠다.

‘무, 무슨 아가씨 힘이 이렇게 세?’

꾸구국!

예소린이 두 발에 힘을 주고 계속 장신 경호원을 밀어내려 했다.

그때 강지한이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소린 씨, 참아.”

“……알았어.”

강지한의 말에 비로소 예소린이 멈춰 섰다.

장신 경호원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그가 저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아가씨랑 싸우면 내가 질 거 같……. 아니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힘도 힘이었지만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세가 어마어마하게 무서웠다.

그것은 싸움판을 수없이 전전해 본 싸움꾼에게서만 느껴지는 투기였다.

예소린이 진정되고 나자 진상명이 상황 설명에 들어갔다.

“흉한 꼴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한데 이렇게 강압적으로 대하지 않으면 영영 입을 열지 않을 것 같아 어쩔 수 없었네요.”

조금 전, 강지한과 예소린이 들어가고 두 경호원은 괴한들을 무섭게 구타했다.

그런데 그들은 어느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진상명이 본보기를 한 번 보여주어야겠다 생각했다.

“오늘 말을 하지 않을 거라면 평생 벙어리로 살게 해주마. 우선 저 녀석부터.”

진상명의 말에 덩치 경호원이 괴한 한 명의 입을 완전히 뭉개놓았다.

아마 두 번 다시 말을 제대로 하기는 힘들 터였다.

그 무렵 장현송은 마음이 많이 꺾여 있었다.

두 명의 경호원은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그를 고문했고 결국 고통이 정신을 지배했다.

그러던 와중 동생 하나의 입이 뭉개지는 걸 보니 저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이 녀석의 이름은 장현송. 얼마 전까지 가리봉 백청원이 우두머리로 있는 청원파 소속 넘버 쓰리였는데, 내부적인 불화가 생기면서 독립하려고 나왔답니다. 그래서 세를 불리려고 돈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받아 하다가 이번 일도 맡게 되었다고 하네요.”

“사주를 한 사람이 누구죠?”

“동대문을 주름잡고 있는 용두파 우두머리 문경치. 깡다구 좋고 뒷바닥 일 잘하기로 유명한 인간입니다.”

“저는 그 사람을 모르는데요.”

“그럴 겁니다. 아무래도 의뢰인이 정체를 숨기기 위해 몇 다리 건너서 일을 맡긴 모양이네요. 문경치에게 일을 의뢰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야겠습니다.”

“가능합니까?”

“5분만 주시죠.”

진상명이 바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는 잘 알고 지내던 고향 후배를 대하듯 편하게 대화를 시작했다.

“그래, 두산아. 나 진상명이다. 잘 지내냐.”

진상명이 전화를 건 사람은 전국구 조폭 회오리파의 두목 황두산이었다.

그에 대한 악명은 이미 대한민국에서 뒷세계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을 정도였다.

두산이라는 이름이 튀어나오자 장현송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다른 게 아니라 내가 지금 춘천에 은인을 뵈러 왔어. 내게는 목숨을 대신 내놓아도 아깝지 않을 그런 분인데…… 강지한 선생님이라고. 근데 웬 놈들이 내 은인을 작업하려 하더구나. 듣기로는 문경치 그 녀석에게 사주를 받았다는데. 그놈 한때는 네 밑에서 있던 걸로 안다. 교육 좀 시켜라. 그리고 너희 세상 사는 놈들한테 확실히 못 박아둬. 춘천의 강지한 선생님 건드리는 순간 내가 찾아갈 거라고.”

진상명이 전화를 끊었다.

통화를 하는 내내 스마트폰 너머에서는 황두산이 쩔쩔매는 음성만 들려왔다.

잠시 후, 진상명에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하지만 그는 누구인지 알 것 같다는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

“진상명입니다.”

-어르신, 안녕하십니까! 저 동대문의 문경치라고 합니다!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그분께서 어르신의 은인이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한 번만 살려 주십쇼!

“아, 문경치. 그놈 목청 하나는 끝내주는구나. 경치야, 내가 지금 마음 같아서는 너네 식구들 전부 찢어발겨도 시원찮을 것 같다.”

-제가 책임지고 이번 사태 제대로 수습하겠습니다!

“그럼 누구한테 일을 사주받았는지부터 얘기해 볼래?”

-서, 서울의 곽진묵 의원한테 일을 받았습니다!

“오! 곽진묵이? 5년 전에 나한테 얻어터지고 얌전히 지내나 싶었는데 또 돈 냄새 맡으면서 썩은 고기나 찾아 먹고 다니나 보구나. 내가 분명히 얘기했는데. 썩은 고기 먹으면 탈 난다고.”

-아, 아무렴요!

“춘천에 아는 동생들 있지? 지금 얘들 병원 안 데려가면 죽을지도 모른다.”

-있습니다! 당장 전화해서 데려가라 하겠습니다!

“곽진묵이한테는 아무 말도 하지 마. 내가 찾아갈 테니.”

-절대 입도 뻥끗 하지 않겠습니다!

“그래. 혹시라도 다음번에 비슷한 일로 나랑 엮이게 되면 직접 얼굴 보게 될 거다, 경치야.”

-몸 추스르면서 살겠습니다, 어르신!

“쉬어라.”

-감사합니다, 어르신! 너그럽게 이해해 주신 은혜, 절대 잊지 않고……!

문경치가 몇 마디를 더 해댔으나 진상명은 듣지 않고 통화를 끊었다.

진상명은 이번엔 곽진묵한테 전화를 걸었다.

“진묵아, 잘 지냈니?”

-어르신께서 이 시간엔 어쩐 일로…….

“네가 작업하려던 강지한 선생님이 내 은인이시다. 상황 파악됐지?”

-……네, 됐습니다.

그야말로 아닌 밤 중에 홍두깨였다.

곽진묵은 조금 전까지 마셨던 술이 한 번에 깨는 기분이었다.

정재계에서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사람이 둘 있었는데 세진 그룹 회장 백진목과 신사 진상명이었다.

진상명의 위명이야 너무나 유명했고, 백진목은 진상명이 은사님으로 모시는 사람이기 때문에 아무도 건드릴 수가 없었다.

백진목의 심기를 조금이라도 상하게 했다간 바로 진상명이 칼춤을 출 것이 뻔했기 때문.

전화를 받는 곽진목의 사지가 바들바들 떨렸다.

5년 전, 그에게 당했던 뼈마디가 아직도 시큰거리는 그였다.

육체적 고통은 차라리 견딜 만했다.

그는 재산의 대부분을 잃어버리고 의원직까지 박탈당할 뻔했다.

그런 것을 진상명이 불쌍하다 여겨 숨통만 트이게 해주었던 것.

한데 다시 그와 불미스러운 일로 엮이게 되었으니 이제는 다 끝났다고 봐야 했다.

의원직 내려놓는 건 기본이다.

목숨이라도 건질 수 있으면 많이 잃지 않았다고 생각해야 했다.

“살고 싶으면 누가 일 맡긴 건지 바로 말해. 알고 있겠지만, 말을 하든 안 하든 한…….”

진상명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두 시간 정도 후에 나랑 보게 될 거야.”

결국 사신이 낫을 들었다.

스마트폰 너머에서 모든 걸 체념한 듯한 음성이 들려왔다.

-신선정……. 한남선이 사주했습니다.

“그래? 알겠다. 술자리 봐놔라. 최후의 만찬 될 테니까. 도망치다 걸리면 그마저도 못 먹는다.”

무서운 말을 던지면서 통화를 끝낸 진상명이 강지한에게 미소 지었다.

“강 선생님, 사주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냈습니다.”

단 전화 몇 통으로 순식간에 상황을 종료시켜 버리는 진상명의 능력에 강지한은 혀를 내둘렀다.

“……혹시 한남선입니까?”

진상명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어떻게 할까요? 원하는 걸 말씀하세요. 그럼 그대로 될 겁니다.”

진상명은 강지한이 무얼 원하든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다.

아마 신선정의 패망을 말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리되도록 할 것이다.

그러나 그건 강지한이 바라는 게 아니었다.

강지한은 신선정을 만인이 보는 앞에서 제대로 누르고 싶었다.

후계자 경합에서 요리 실력으로 한민국을 이겨, 지금의 신선정은 예전의 신선정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자 했다.

그래서 당연하게 신선숙수의 권리를 가져오는 것이 강지한의 목표였다.

‘그렇게 되면 신선숙수의 자리와 신선정을 어찌할지 또한 내 손에 달린 것일 테니.’

강지한의 목표는 차기 신선숙수가 되는 게 아니었다.

짧은 생각을 끝낸 강지한이 진상명에게 말했다.

“어르신. 염치없지만 내년 봄, 경합이 다시 벌어질 때까지 신선정에서 오늘 같은 짓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힘써 주실 수 있을까요?”

의외의 부탁에 진상명이 빙그레 웃었다.

“한씨 일가를 혼내 달라고 할 줄 알았는데, 바람이 소박하시군요. 하지만 그만큼 강 선생님의 그릇이 크다는 것을 한 번 더 느꼈습니다.”

진상명은 강지한의 내심을 전부 파악했다.

“알겠습니다. 두 번 다시 한씨 일가가 오늘 같은 짓거리를 하지 못하도록 손을 써두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어르신.”

그때였다.

밖이 소란스럽더니 누군가 대문을 두들겼다.

탕탕.

“누구세요?”

집주인 강지한이 물었다.

“저기…… 어르신이 시키신 일이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

진상명이 강지한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문 열려 있으니 들어오세요.”

주인의 허락이 떨어지자 대문이 열리며 일단의 무리가 쭈뼛쭈뼛 들어섰다.

그들은 문경치가 연락해서 보낸 동생들이었다.

다들 어디서 한 잔 걸치다가 나왔는지 술냄새가 진동을 했다.

제법 거하게 마신 모양인데도 실수를 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보였다.

“그럼 수습해 가겠습니다.”

일단의 무리들은 조선족 세 사람을 엎고 이고 들고서는 부리나케 마당을 나섰다.

대충 정리가 끝나자 진상명이 살짝 고개 숙여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럼 저는 서울에서 만나봐야 할 의원도 있고 하니 그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네. 어르신. 조심해서 살펴가세요. 늦은 밤에 정말 죄송하고 감사했습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찾게 되는 사람이 가장 크게 의지되는 사람이라고들 하지요. 저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음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진상명은 그렇게 말하고서 강지한이 뭐라 더 얘기하기도 전에 자리를 떠났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난리 통이었던 마당에 기묘한 정적이 흘렀다.

“그럼 들어갈까, 자기?”

예소린이 강지한의 손을 잡아끌었다.

싸늘한 분위기를 털어내기 위해 일부러 밝은 척 미소를 지었다.

“소린 씨.”

“응?”

“……아니야.”

무언가를 물어보려다가 그냥 고개를 젓는 강지한.

예소린이 그런 강지한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물었다.

“알고 싶어? 내 과거.”

“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억지로 할 필요는 없어. 스스로 말해주고 싶어질 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

“말해줄 수 있어. 어렵지는 않아. 하지만 내 얘기를 듣고 나를 보는 지한 씨의 눈빛이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어.”

“약속할게.”

“……정말이지?”

“응.”

“안주 좀 만들어줘. 소주 한잔하면서 말해야 돼. 맨정신에는 좀 힘들 수 있어.”

“얘기하는게?”

“아니, 지한 씨가 듣는 게.”

* * *

장장 두 시간에 걸쳐 펼쳐진 예소린의 이야기는 거의 무협소설 수준이었다.

누가 들으면 허풍이라고 치부할 정도의 얘기들이었다.

하지만 예소린이 어떻게 싸우는지 두 눈으로 직접 본 강지한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

분명 자신을 덮치려 했던 세 명의 사내는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하나같이 덩치가 있었고 몸에서는 살기가 풀풀 풍겼다.

한데 예소린은 한참 여리 여리한 몸으로 그들을 단숨에 제압했다.

그러니 학창시절과 스무 살 초반 무렵의 그 화려했던 무용담이 전부 믿어졌다.

예소린은 스스로의 과거를 흑역사라 치부하기에, 오히려 얘기들의 사이즈를 조금 축소시키는 감이 있었다.

그럼에도 블록버스터 급이었다.

모든 얘기를 다 듣고 난 강지한은 소주 한 잔을 입에 털어 넣었다.

“나…… 조금 무서워?”

“아니. 다 지난일이잖아. 그리고 과거의 그 모습도 결국 소린 씨인 거니까. 전부 받아들일 수 있어.”

“정말?”

“응.”

“하아아……. 다행이다. 진짜 걱정했었어.”

강지한이 그런 예소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제 그런 걱정하지 마.”

“알았어, 지한 씨.”

“아, 나 화장실 좀 갔다 올게.”

“응.”

예소린이 방글방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녀에게 소금이가 다가와 안겼다.

“우리 소금이~ 이제 곧 한집에서 같이 살겠네?”

예소린은 소금에게 정신이 팔려 미처 보지 못했다.

화장실로 향하는 강지한의 같은 쪽 손과 발이 나가는 것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