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8
Restaurant 297. 부적이 부른 사람
2020년 1월 중순.
지한 일식은 오픈 준비 막바지에 들어갔다.
강지한의 예상대로 김정훈은 한 달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무섭도록 성장했다.
이제 그는 초밥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밥을 완벽하게 지어낼 줄 알았다.
밥에 들어가는 초대리 역시 적절한 양을 섞어내는 것에 능숙해졌다.
초밥을 쥐는 기술 또한 전보다 몇 보 전진한 상황.
회는 원체 잘 다루었으니 그것만으로도 김정훈이 만들어내는 초밥은 7레벨의 수준에 다다르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강지한이 끝끝내 김정훈에게 알려주지 않은 게 있었다.
바로 초대리를 만드는 방법이었다.
어떤 재료들이 어떠한 비율로 들어가는 건지에 대해서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김정훈은 그저 잘 지은 밥에 강지한이 만들어 온 초대리를 섞을 뿐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 일말의 불만도 없는 김정훈이었다.
저 멀리 접어두었던 꿈을 다시 꿀 수 있게 해준 것만도 감지덕지였다.
초대리의 비밀까지 알려 달라고 하는 건 너무 염치없는 짓 아닌가.
자신이 강지한의 입장이라도 마지막 비밀 하나는 남겨둘 것이라 생각했다.
게다가 강지한에게 초대리의 비법을 알아낼 생각도 없었다.
그는 오랜 시간이 걸려도 스스로 알아내고 싶었다.
그래야만 진정 자신의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노동 없이 먹게 되는 밥은 불필요한 살만 찌울 뿐이다.
오늘도 그는 지한 일식의 주방에서 열심히 회를 썰고 초밥을 쥐는 중이었다.
그 외에 지한 일식에서 파는 다른 요리들의 연습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지한 소스에서 가져오는 특제 육수와 양념, 그리고 강지한 레시피의 버프를 받아 일식당의 모든 메뉴들을 레벨 7의 수준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제 그간의 노력을 최종 점검받는 시간이었다.
리모델링이 완벽히 끝난 지한 일식의 홀 테이블 위엔 식당에서 파는 모든 메뉴들이 놓여 있었다.
전부 김정훈이 만든 것들이었다.
강지한은 그 요리들을 하나하나 맛보고 레벨을 가늠했다.
‘전부 7이다.’
확신을 하고 나서야 음식들의 정보창을 확인해 봤다.
역시나 일괄적으로 레벨 7을 자랑하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김정훈이 물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개시하면 되겠네요.”
“정말입니까?”
“네.”
오늘이 1월 17일 금요일이다.
그러니 이제 사흘 뒤면 지한 일식이 개업을 하게 되는 것.
“강 대표님, 한데 정말 메인 셰프를 더 구하지 않아도 될까요?”
김정훈이 불안한 듯 물었다.
본래 지한 일식의 메인 셰프는 두 명으로 생각했던 강지한이었다.
그런데 보름 전쯤 김정훈 원톱으로 진행하겠다며 정책을 변경했다.
“김 주방장님 혼자 하셔도 충분합니다.”
강지한에게는 그런 확신이 있었다.
그의 눈에 김정훈의 상태창이 보였다.
<김정훈의 능력치>
직급: 지한 일식 주방 직원
등급: A+
능력: 요리 LV 26(+4), 설거지 LV 20(+2), 서빙 LV13(+2), 청소 LV 17(+2), 회계 LV 15(+2), 화술 LV 5(+2)
특수 능력: 민첩의 손
정직도: 100/100
신뢰도: 99/100
종합 평가: 화술 빼고 모든 것이 다 되는 만능 요리사. 특수 능력 ‘민첩의 손’으로 인해 요리를 하는 속도가 무섭도록 빠르다. 혼자서 헤드 셰프 두 사람분의 일을 능히 해낼 수 있다. 매사에 부지런하고 정이 깊으며 의리 있는 타입.
강지한은 김정훈에게 직원 요리 능력치 1레벨 업권 두 장과 직원 능력치 올(All) 레벨 업권 두 장을 사용했다.
그로 인해 가뜩이나 대단하던 김정훈의 요리 레벨은 무려 26까지 올랐다.
아울러 특수 능력 민첩의 손은 사기적인 스킬이었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굳이 주방장 한 명을 더 들일 필요가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김정훈에게 너무 과한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
해서 강지한은 부주방장들과 다른 주방 직원들 또한 출중한 실력을 가진 이들로 픽업했다.
“가슴이 두근두근합니다. 아~ 하하하!”
오픈이 코앞으로 닥쳐오자 김정훈은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다음 주 월요일은 지한 일식의 오픈일일뿐더러 김정훈의 꿈이 실현되는 날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잘하실 수 있죠?”
“잘하겠습니다.”
김정훈의 눈이 그 어느 때보다 맑게 빛났다.
* * *
2020년 1월 20일.
드디어 지한 일식이 오픈했다.
이제 강지한이라는 이름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브랜드가 되었다.
‘지한 푸드’에서 런칭하는 식당들은 단 한 번도 소비자들을 실망시킨 적이 없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다.
때문에 지한 일식의 오픈 첫날 웨이팅은 어마어마했다.
11시 반 오픈인데 10시 반부터 손님들이 몰려들더니 가게를 빙 돌아서 줄을 섰다.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김정훈은 잔뜩 긴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설렜다.
이제 그동안 갈고닦아 왔던 실력을 평가받을 시간이었다.
그가 강지한과 함께 주방의 체크 리스트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11시 반.
굳게 닫혀 있던 식당의 문이 열리고 홀 직원들이 손님들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문서가 주방으로 몰려들었다.
첫 번째 주문은 런치 스폐셜 초밥과 가츠동, 메밀소바였다.
강지한은 그것을 고스란히 김정훈에게 넘겨주었다.
“이 식당의 첫 메뉴는 사장님께서 개시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씩씩하게 대답한 김정훈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먼저 조리에 들어간 건 가츠동이었다.
가츠동은 일본식 돈까스를 쯔유에 양파, 파, 등의 채소와 계란물을 뿌려 익혀낸 다음, 그것을 고슬고슬 지은 밥 위에 얹은 음식이다.
한마디로 돈까스 덮밥이라고 보면 된다.
김정훈은 숙성 통에서 두툼한 돼지고기 등심 한 장을 꺼냈다.
돼지고기 등심은 핏물을 쫙 빼서 허브 섞인 와인에 숙성을 시킨 것으로 잡내가 전혀 없었다.
거기에다 소금, 후추로 밑간을 한 뒤 달걀과 밀가루가 섞인 반죽옷을 입혔다.
그리고 빵가루까지 입혀서 적당히 달궈진 기름 안으로 투하.
이제 돈까스가 익는 동안 다른 음식들을 만들어야 한다.
가츠동의 조리에 들어가기 전 미리 올려두었던 물이 끓자 메밀 면을 넣고 삶았다.
그러는 사이 시원한 소바 육수를 만들어 내놓고 빠르게 초밥 14피스를 쥐었다.
그때쯤 다 익은 메밀 면을 꺼내 찬물에 시원하게 씻어 세 덩이로 나누어서 담아냈다.
다음으로는 바삭하게 튀겨진 돈까스를 꺼내 자른 뒤, 프라이팬으로 옮기고 쯔유로 만든 소스와 계란물, 야채들을 넣어 익히면서 졸였다.
야채의 숨이 아직 살아 있고, 계란물이 70퍼센트 정도만 익었을 때, 그것을 밥 위에 얹는 것으로 마무리.
서비스로 나가는 우동 국물까지 담아내니 첫 번째 주문이 완벽하게 완성됐다.
김정훈이 세 가지 음식을 만들어 내는 데 걸린 시간은 채 8분이 넘지 않았다.
“첫 번째 주문 끝냈습니다!”
김정훈이 요리를 하는 동안 이어서 들어온 주문들을 소화해 나가던 강지한과 다른 주방 직원들이 놀란 눈으로 김정훈을 바라봤다.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세 가지 요리를 완벽하게 해내다니.
‘역시 멋져.’
강지한이 속으로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주방으로 다가온 홀 직원이 음식을 손님 테이블로 서빙했다.
김정훈은 다른 주문을 받아 요리를 해나가면서도 첫 번째 손님들의 반응을 예의주시했다.
결과는,
“진짜 맛있어. 인생 가츠동 찾았다.”
“와……. 초밥 장난 없다. 밥알이 입에서 확 풀어져. 감동인데?”
“메밀소바가 개꿀이야. 면이랑 육수가 입에 착착 감겨.”
“역시 지한 푸드는 항상 옳아.”
대성공이었다.
물론 김정훈의 귀로 그들이 나누는 대화가 들리지는 않았다.
다만 밝은 얼굴 표정과 열정적으로 음식을 먹는 모습에서 자신의 요리가 인정받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랫입술을 저도 모르게 꽉 깨무는 김정훈.
그의 눈가가 촉촉해져 있었다.
음식을 만드는 중이니 눈물을 흘릴 수는 없어서 터져 나오려는 격한 감정을 꾹 참는 중이었다.
오래 돌고 돌아 겨우 꿈을 잡게 된 남자의 가슴이 크나큰 환희로 격동하고 있었다.
* * *
지한 일식의 첫 장사는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밤 11시.
직원들을 모두 퇴근한 시각.
강지한은 홀로 남아 매장을 정리한 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뭔가 느낌이 싸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
사방이 뻥 뚫린 야외주차장에는 강지한 말고 다른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마치 누군가 지켜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착각인가?’
고개를 갸웃한 강지한이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부우웅.
강지한의 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그러자 근처의 어둠 속에서 검은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실루엣으로 보아 제법 우람한 덩치를 가진 사내인 듯했다.
짙은 어둠 때문에 그의 얼굴은 자세히 알아볼 수 없었다.
그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강지한 출발했다. 차에서 내리면 바로 처리해.”
자신이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은 사내는 다시 어둠 속으로 몸을 감추고 그곳을 떠났다.
* * *
강지한은 차를 집 근처 도로변에 세워두곤 했다.
그의 집은 좁은 골목으로 형성된 오래된 마을 안에 있었기에 마당이 넓어도 차가 들어갈 수 없었다.
차에서 내려 문을 잠근 강지한이 싸늘한 겨울바람에 양어깨를 비볐다.
‘춥다.’
얼른 따뜻한 이불 속에 들어갈 생각을 하며 집을 향해 잰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골목에 들어섰을 때,
“……?”
어디서 나타난 건지, 우람한 덩치의 사내 둘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흠칫! 놀란 강지한이 뒷걸음질을 치려다 말고 아찔한 기운에 고개를 돌렸다.
한데 그의 뒤에도 정체 모를 사내 한 명이 서 있는 게 아닌가?
이건 흡사 앞뒤로 포위를 당한 꼴이었다.
‘뭐지?’
사내들은 강지한에게 명백한 적의를 드러내며 조금씩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위험해.’
자신이 위급한 상황에 처했다는 걸 인지한 강지한은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CCTV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가로등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사위는 그저 어두웠다.
이런 골목에서라면 누군가에게 해코지를 당해도 가해자를 찾을 수 없을 터였다.
위기를 느낀 강지한이 소리라도 지르려 했다.
그런데,
번쩍.
앞에서 다가오는 한 사내의 손에 들린 무언가가 달빛을 반사하며 찰나지간 번뜩였다.
그것은 분명히 칼이었다.
‘이 사람들 대체 뭐야?’
강지한의 가슴이 터질 것처럼 뛰기 시작했다.
소리를 질러야 하는데 온몸을 옥죄는 공포가 입을 틀어막았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러면 안 돼.’
강지한은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
그리고 짧은 시간 동안 생각했다.
‘소리를 지르면 살 수 있을까?’
이미 사내들과 강지한의 거리는 너무 가까웠다.
살려달라고 소리를 쳐도, 비명을 들은 이웃 사람들이 뛰쳐나왔을 때 강지한의 몸에는 이미 구멍 여러 개가 뚫려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수가 없었다.
양옆은 담벼락으로 막혀 있고 앞뒤의 사내들은 칼을 들고 다가왔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없었다.
어르신들만 모여 사는 동네인지라 9시가 넘어가면 골목이 조용해진다.
결국 강지한은 입을 열고 크게 소리를 지르려 했다.
한데 그보다 뒤에 서 있던 사내가 더 빨랐다.
쏜살같이 몸을 날린 사내는 강지한의 등을 어깨로 들이받았다.
퍽!
“쿱!”
무방비 상태에서 큰 충격을 받으니 숨이 턱 막히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얌전히 있으면 손모가지만 날아가고 발버둥 치면 모가지가 날아간다.”
강지한을 들이받은 사내의 입에서 소름끼치도록 음침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한데 억양이 이상했다. 연변에서 온 사람들 같았다.
바닥에 넘어진 강지한에게 다른 사내가 다가왔다.
그리고 손에 쥔 칼을 휘두르려 하는데,
번쩍!
스마트폰을 넣어둔 강지한의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서 푸른 빛이 일렁였다.
스마트폰의 액정에 불이 들어온 건 아니었다. 푸른 빛은 스마트폰의 케이스 안쪽에서 흘러나와 기지개를 켜고 사라졌다.
케이스의 안에는 하경춘이 준 부적이 들어 있었다.
‘뭐야?’
놀란 사내가 칼을 거두며 뒤로 후다닥 물러났다.
그때였다.
“지금 뭐하시는 거죠?”
어둠을 가로지르며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강지한을 노리던 세 명의 사내는 물론이고 넘어진 강지한의 시선까지 목소리의 주인에게 향했다.
어두운 골목, 위기에 처한 강지한의 앞에 나타난 이는 다름 아닌 예소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