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295화 (295/330)

# 295

Restaurant 294. 설탕이가 이걸?

-네, 강 대표님. 어떻게 감이 좀 오셨나요?

신호가 두 번 울리자마자 하경춘의 음성이 들려왔다.

스마트폰을 붙들고서 강지한의 전화만 기다렸던 모양.

“하 도사님. 제 생각에 일단 식혜는 마시는 식혜가 아니라 생선으로 담근 식해를 말하는 것 같아요.”

-아……. 그 식해! 그렇네.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역시 신령 깃든 음식 만드는 요리사는 달라. 그럼 막걸리 떡은요?

“그건 개성주악 같아요.”

-개성…… 뭐시기요?

하경춘은 듣도 보도 못한 음식이었다.

개성주악은 주악의 일종이다.

주악은 옛 선조들이 찹쌀가루 반죽에 소를 넣고 흡사 송편 비슷하게 만들어서 기름에 지져 먹던 떡을 말한다.

이때 반죽에 치잣물이나 대춧가루 등을 섞어 여러 가지 색이 나게 했던 것이 특징이다.

여기서 파생된 개성주악은 개성 지방에서 많이 해 먹던 떡이다.

찹쌀가루와 밀가루를 섞어서 되직하게 반죽을 하는데, 물 대신 막걸리가 들어간다. 그것을 기름에 지져낸 뒤 조청에 담가 먹는 것이 바로 개성주악이었다.

개성에서는 이 떡을 귀한 손님이 왔을 때나 집안의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만들었다고 한다.

강지한은 이러한 사실을 차근차근 하경춘에게 설명해 주었다.

-옳타! 옳아! 막걸리가 들어가고 귀한 손님 모실 때 만든다는 걸 보니 딱 들어맞네. 근데 식해는 그렇다 쳐도 개성주악은 어디서 구한다냐.

하경춘이 전화를 받던 것도 망각하고 혼잣말을 흘렸다.

개성주악은 흔히 먹어볼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파는 곳도 찾기가 힘들었다.

강지한은 하경춘의 반응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제가 만들어 드릴 테니 걱정 말아요.”

-정말요?

하경춘이 반색했다.

“네. 생각보다 만드는 게 어렵지 않더라고요. 식해만 구해 놓으세요.”

-알았어요. 내가 당장 마트에 다녀올게요. 개성주악인가 뭐시기는 오늘 만들어지는 건가요?

“그럼요.”

-그럼 오늘 밤이 가기 전에 우리 만납시다. 아니, 내가 받으러 갈게요. 집 주소 좀 알려주시겠어요?

“문자로 넣어드릴게요. 한 시간 정도 후에 오시면 될 겁니다.”

-알겠어요. 정말 고마워요, 강 대표!

하경춘이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당장 식해부터 구하러 갈 요량인 것 같았다.

강지한은 거실로 나와 개성주악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들을 꺼내 놓았다.

“시작해 볼까.”

새로운 요리를 만들 때면 늘 가슴이 뛰는 그였다.

지금도 강지한은 설레고 있었다.

* * *

강지한의 집에 도착한 하경춘은 무방비 상태로 들어섰다가 강아지 육 남매의 육탄 공격에 뒤로 나자빠졌다.

이후 한참 동안 육 남매의 격한 환영 인사에 시달리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거실로 왔다.

그런 하경춘의 손에는 가자미식해가 들려 있었다.

“하 도사님, 앉으세요.”

강지한이 미리 만들어둔 개성주악을 내오며 말했다.

그러나 하경춘은 거실에 서서 사위를 정신없이 훑으며 대답이 없었다.

마치 뭔가에 홀린 사람 같았다.

“도사님?”

강지한이 다시 부르자 그제야 입을 여는 하경춘.

“어디에선가 영험한 기운이 아주 강하게 느껴져.”

“네?”

“저긴가?”

하경춘이 성큼성큼 부엌으로 향했다.

그리고 여기저기를 살펴보다 싱크대 위에 놓인 칼꽂이 선반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거기엔 여섯 종류의 식칼이 꽂혀 있었는데, 그중 손잡이 부분에 용의 무늬가 각인된 식칼에서 영험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강 대표, 이 식칼은 어디서 난 거예요?”

하경춘이 식칼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 그거는…… 어머니 유품이에요.”

레벨 업 시스템으로 얻었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게다가 따지고 보면 정말 엄마의 유품이 맞았다.

한정신이 설윤진에게 물려준 것이니까.

“이거 보통 칼이 아닌데.”

“어떻기에 그러세요?”

“어마어마한 영기(靈氣)가 담겨 있어.”

“안 좋은 건가요?”

“보통 혼령의 기운을 담은 물건이 집 안에 있게 되면 여러 가지 재난이 따르게 마련인데 이 식칼은…… 좀 달라요.”

“다르다는 건…….”

“이 집을 기둥처럼 받치면서 좋은 기운을 대표님한테 지속적으로 보내주고 있어요. 허허, 살면서 이렇게 기이한 기물은 처음이네.”

“그 덕분에 제가 승승장구하나 봐요.”

“정말 그런 것 같네.”

한참 동안 식칼을 바라보던 하경춘의 귀로 할아버지 혼령의 음성이 들려왔다.

-식혜가 먹고 싶소. 뜨더국 먹는 날이면 언제나 상 위에 올라오던 그 맛이 그립소. 막걸리로 만든 떡이 먹고 싶소. 귀한 손님 오시면 늘 내어주던 그 떡 맛이 잊히질 않소. 우리 오마니 맛이 그립소.

“아이고오! 환장하시겠네, 진짜!”

하경춘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몸서리쳤다.

“영혼이 계속 말 걸어요?”

“어휴. 우리 빨리 해결합시다.”

“거실로 가시죠.”

“그래요.”

두 사람이 거실로 자리를 옮겼다.

강지한이 상을 펴서 개성주악을 올려놨다.

개성주악은 모양이 마치 찹쌀도너츠를 연상케 했다.

하경춘은 그 옆에 가자미식해를 놓았다.

강지한은 젓가락과 앞접시를 가져와 하경춘에게 건네주었다.

“여기서 바로 드실 거죠?”

“조금이라도 빨리 먹어야 이 망할 할배가 성불하지.”

하경춘이 우선 가자미식해부터 맛을 봤다.

그리고 혼령의 반응을 살폈는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또다시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응? 이것도 아니야?”

그녀의 반응을 살핀 강지한이 냉장고에서 다른 식해를 꺼내 상에 올렸다.

“이건 뭐예요?”

“명태식해요.”

“명태식해? 그런 것도 있어요?”

하경춘은 의외로 요리에 대한 지식이 짧았다.

강지한이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북에서는 주로 명태식해를 해먹거든요.”

“그건 어디서 구했대요?”

“집에 있던 거예요.”

강지한은 지한 반찬을 꾸려 나가고 있는 입장이라 이런저런 반찬들에 관심이 많았다.

요즘에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반찬들 위주로 구입해서 맛을 보고 있었다.

명태식해도 그런 반찬들 중 하나였다.

하경춘이 제발 이번에는 성공하길 바라며 명태식해를 한 젓갈 떠서 먹었다.

매콤짭짤새콤함 속에 은은한 단맛이 퍼지며 쫄깃한 명태살이 씹혔다.

평소였다면 식해 맛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 하경춘은 그런 걸 느낄 경황이 없었다.

‘저놈의 귀신이 이번에는 어떻게 나오려나.’

머릿속에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명태식해를 꿀꺽 삼킨 하경춘이 자기 몸에 들러붙은 영혼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이것이오. 뜨더국에 곁들여 먹던 식해 맛이 바로 이것이오. 이제 막걸리로 만든 떡이 먹고 싶소.

“됐다!”

하경춘이 만세를 불렀다.

강지한이 덩달아 신이 나서 물었다.

“이게 맞대요?”

“맞대요! 어디어디. 이 떡은?”

하경춘은 급하게 개성주악도 집어 먹었다.

귀신은 이번에도 하경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것이오. 귀한 손님 오시거나 잔칫날이면 언제나 상에 올라오던 떡이 바로 이것이오.

“이것도 맞대요, 강 대표!”

“하하~ 다행이네요.”

-고맙소. 내 이제는 미련 없이 갈 수 있을 것 같소. 고맙소.

하경춘의 몸에 달라붙은 영혼의 존재감이 희미해지더니 곧 사라졌다.

“가셨다!”

하경춘이 크게 소리치며 축 처졌다.

완전히 진이 빠진 모습으로 벽에 등을 기대고서 헉헉대는 하경춘이 강지한에게 감사의 말을 건넸다.

“정말 고마워요, 강 대표. 강 대표 아니었으면 한참 동안 시달릴 뻔했어요.”

“별로 한 것도 없는데요.”

“아니야. 큰일한 거예요. 내가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큰 도움 받았는데 맨입으로 넘기기는 좀 그래서 선물 하나 가져왔어요.”

그녀가 입고 있던 점퍼 안주머니에서 부적 한 장을 꺼내 건넸다.

“부적이네요?”

“내가 파는 부적 중에 가장 비싼 거예요. 그거 하나 그리고 나면 영력이 너무 소진되서 일주일을 앓아눕는다고.”

“이게 무슨 부적인데요?”

“큰 액운을 피해가게 해주는 부적이에요. 인생이 무너질 정도의 사건이나 목숨이 위태로워질 사고 같은 것을 한 번은 무사히 넘길 수 있을 테니 몸에 꼭 지니고 다니도록 해요.”

“이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되는데요.”

“받아야 내 마음이 편해. 그냥 받아요.”

하경춘이 간절하게 말하자 강지한은 마지못해 부적을 받았다. 그리고 그것을 접어 스마트폰 케이스 안에 넣었다.

스마트폰은 어딜 가나 들고 다니니 그렇게 하면 늘 부적을 지니게 되는 셈이다.

“그럼 나 가볼게요. 오늘 밤은 푹 잘 수 있겠네. 정말 고마워요, 강 대표.”

“저야말로 우리 식당 늘 이용해 주셔서 감사해요. 살펴 가세요.”

하경춘은 이후에도 몇 번이고 고맙다는 말을 반복한 뒤에야 겨우 집을 떠났다.

그러자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퀘스트 클리어! 성공 보상이 지급됩니다.]

[복불복 룰렛이 활성화됩니다.]

메시지가 사라지자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주 사용하는 커다란 룰렛이 나타났다.

룰렛은 총 8칸이었다.

그중 네 개는 좋은 것이고 나머지 네 개는 좋지 못한 것이다.

강지한은 각 칸마다 적혀 있는 글귀를 읽어보았다.

행운의 칸에는 ‘네잎 클로버, 만족도 포인트 10,000, 단골 포인트 10, 직원 능력 한계 돌파권 한 장’이, 불운의 칸에는 ‘만족도 포인트 -100,000, 만족도 포인트 -50,000, 만족도 포인트 -10,000, 꽝’이 적혀 있었다.

“어휴. 만족도 포인트 마이너스 십만은 쎈데.”

돈으로 환전하면 1억이나 되는 액수였다.

제발 저기에는 걸리지 않기를.

아니, 불운의 칸에는 어디든 걸리지 않았으면 했다.

행운의 칸에서 강지한의 시선을 가장 사로잡은 건 네잎 클로버였다.

강지한은 설탕이가 물어온 네잎 클로버라는 아이템을 사용해 본 적이 있었다.

그가 네잎 클로버의 정보창을 띄웠다.

[네잎 클로버: 사용 시, 랜덤 박스에서 좋은 아이템이 나올 확률이 300% 증가합니다. 클로버 이파리 하나당 한 번, 총 네 번 사용 가능합니다.]

“맞아. 저런 능력이었지.”

당시 강지한은 네잎 클로버의 힘을 사용해서 퀘스트 하나와 괜찮은 아이템 세 개를 얻었었다.

“음……. 이번에도 네잎 클로버에 걸리면 대박인데.”

이미 한 번 재미를 쏠쏠히 봤던 그였기에 네잎 클로버가 간절해졌다.

“근데 이거 어떻게 돌리는 거야?”

강지한의 말에 바로 설명이 나타났다.

[박수를 한 번 치면 룰렛이 돌아갑니다. 돌아가는 룰렛은 소리에 반응해서 멈춥니다. 아무 소리나 내면 그 즉시 룰렛은 멈추게 됩니다.]

작동법은 상당히 간단했다.

강지한이 심호흡을 하고서 박수를 짝! 쳤다.

그러자 룰렛이 팽팽 돌기 시작했다.

어찌나 빨리 도는지 눈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였다.

즉, 룰렛의 어느 칸이 바늘이 가리키는 곳에 멈출지는 순전히 운에 맡겨야 한다는 뜻이다.

‘언제 멈추지?’

긴장을 잔뜩 한 강지한이 선뜻 소리를 내지 못했다.

어떤 소리든 내버리는 순간 룰렛은 멈추게 된다. 만약 룰렛이 -10만 포인트에 멈춘다면 그것보다 배 아픈 일이 또 없었다.

‘지금인가? 아니…… 지금? 아닌가.’

강지한이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고서 안절부절하고 있을 때였다.

끄아아아앙!

상황을 지켜보던 설탕이가 지겨웠는지 입을 쩍 벌리고서는 특유의 하품 소리를 냈다.

그러자 소리에 반응한 룰렛이 덜컥 멈춰섰다.

“헉!”

식겁한 강지한은 바늘이 가리키는 칸을 확인했다.

그리고는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네잎…… 클로버.”

바늘이 있는 곳에 멈춘 건 네잎 클로버 칸이었다.

강지한은 믿을 수 없는 시선을 설탕이에게 던졌다.

“우리 설탕이가 이걸?”

순간 복불복 룰렛이 사라지며 네잎 클로버 하나가 강지한의 손에 쥐어졌다.

“하품으로 복을 가져다주는 설탕이 너는 도대체…….”

강아지가 심하게 똑똑한 것도 놀라운데 행운까지 만렙일 줄이야.

강지한이 설탕이를 품에 안고 마구 어루만져 주었다.

“고맙다, 설탕아. 덕분에 아빠가 간만에 도박 한 번 해보겠다.”

네잎 클로버가 들어왔으니 이제 랜덤 박스를 뽑아볼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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