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294화 (294/330)

# 294

Restaurant 293. 식혜와 막걸리로 만든 떡

김정훈의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뭐라고 하신 건지? 아니, 방금 하신 말이 제가 생각하는 그 뜻이 맞는 건가요?”

“어떻게 해석했는데요?”

“그러니까…… 저를 스카웃하겠다는 거라고…….”

“제대로 이해하셨네요.”

김정훈의 가슴이 미칠 듯이 뛰었다.

‘강 대표님이 나한테 손을 내밀어 주다니.’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그는 자타공인 춘천 요식업계에서 최고로 쳐주는 셰프였다.

이제는 전국에서도 그 이름이 크게 알려졌고, 인튜브 방송으로 인해 세계적인 명성을 조금씩 얻고 있었다.

김정훈의 입장에서는 태산과도 같은 존재가 함께하자고 하니 현실감이 없었다.

그래서 물었다.

“갑자기 왜 저한테…….”

“어제 술자리에서 사장님이 만든 음식들 먹어보고 확신이 왔거든요. 지한 일식을 저와 함께 이끌어갈 수 있는 분이라는.”

“제가요?”

“네.”

김정훈은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저…… 아무래도 잘못 판단한 것 같네요. 방금 먹어본 대표님 초밥은 제가 당장 따라잡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닌데요.”

“저도 당장 오픈할 게 아니에요. 리모델링 작업이 끝나려면 보름 이상 걸려요. 게다가 리모델링이 끝난다고 바로 영업을 개시할 것도 아니에요.”

“그럼 언제 영업을 하시려고 그러시는지?”

“사장님께서 제가 만족할 만한 실력이 되었을 때요.”

“……네?”

“한 가지 여쭤볼게요. 사장님, 꿈을 접어두었다고 그때 말씀하셨지만 한 번도 초밥 만들고 회 뜨는 연습 쉬신 적 없죠?”

김정훈이 정곡을 찔렸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런 것 같았어요. 만약 중간에 조금이라도 손을 쉬었다면 그만큼 완성도 높은 숙성회를 만들 수가 없었을 테니까요. 제가 보기에 사장님은 지금 정체되어 있는 것 같아요. 정체의 원인은 꿈과 현실의 괴리에서 왔던 것이고요.”

김정훈은 꿈을 좇다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는 쪽을 택했다.

하지만 마음속 미련을 완전히 떨쳐 버리지도 못했다.

그래서 매일은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초밥 쥐는 연습을 해왔다.

때문에 실력이 녹슬지는 않았으나 발전할 수도 없었다.

“한 번 만들어 주시겠어요?”

강지한이 김정훈에게 초밥을 만들어 달라 부탁했다.

얼떨떨한 와중에도 김정훈은 알겠다며 손을 씻고 조리대 앞에 섰다.

“후우.”

짧게 숨을 내쉰 그가 긴장을 털어낸 뒤, 빠르게 초밥 하나를 완성했다.

강지한은 우선 스스로 초밥의 레벨을 가늠해 봤다.

‘레벨 6.’

그리고 정보창을 확인해 보니 역시나 레벨 6이 맞았다.

하지만 강지한이 직접 만든 밥이 아니었다면 레벨 5의 수준이 나왔을 터.

사실 초밥에서 가장 중요한 건 회보다 밥이었다.

밥을 얼마나 잘 짓고 거기에 들어가는 초대리를 어떻게 만들어 배합하느냐에 따라 초밥의 맛은 하늘과 땅 차이로 달라진다.

강지한은 자신만의 비법으로 이 밥을 만들었다.

김정훈이 만드는 밥은 이것보다 질이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방금 그가 초밥 쥐는 것을 보고 확신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떨어지는 부분은 별로 없었다.

강지한보다 조금 덜하기는 하나 조금만 연습하면 충분히 발전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아울러 어제 숙성회를 먹어보니 회를 다루고 관리하는 솜씨 또한 대단했다.

그럼에도 김정훈은 강지한의 초밥을 먹고서는 자신이 따라갈 수준이 아니라 말했다.

그럼 결론은 밥에서 밀린다는 것뿐이었다.

만약 그가 모든 것을 걸고 조금 더 열심히 공부를 했다면 강지한의 도움이 없이도 충분히 레벨 6의 수준에 올라섰을 게 분명했다.

‘근데 참 아깝네. 이 정도의 초밥이면 당장 초밥 전문점을 차려서 운영했어도 잘되었을 텐데.’

김정훈에겐 횟집을 말아먹었던 것이 데미지가 컸던 모양이다.

때문에 자신이 추구하는 꿈의 목표를 너무 높게 잡았다.

결국 완전무결한 상태가 아니면 초밥집을 차리지 않겠다는 고집이 자신의 발목을 잡아버린 격.

강지한은 김정훈의 초밥을 맛있게 먹고는 확신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사장님은 한 달 안에 제가 만든 것과 비슷한 수준의 초밥을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아~ 하하하! 농담이 심하십니다. 한 달 안에 어떻게…….”

“가능해요. 속는 셈치고 매일 장사 끝나면 여기로 오셔서 두 시간 씩만 저한테 배워 보실래요?”

“으음.”

김정훈이 눈을 질끈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입을 열었다.

“하루만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혹 생계 걱정 때문이라면 장사가 되든 안 되든 사장님께 지금 버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할 것이라고 약속드릴게요.”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죠. 한데 제가 고민하는 건 그게 아니고요. ……아무튼 곧 연락 드리겠습니다.”

김정훈은 뭔가를 더 말하려다 말고 황급히 마무리 지었다.

강지한은 더 캐묻지 않고 알겠다며 그를 보내주었다.

“같이 했으면 좋겠는데.”

주방에 홀로 남은 강지한이 혼잣말을 읊조렸다.

* * *

다음 날.

강지한은 춘천의 식당들을 하나하나 둘러보고 있었다.

매장에 문제가 없는지, 직원들의 관계는 괜찮은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 그는 직원 개개인의 상태도 살피는 걸 잊지 않았다.

하지만 전처럼 무조건적으로 상태창을 띄우지는 않았다.

우선 눈으로 직원을 관찰하고 이전의 모습들과 비교를 해본 뒤 실력의 발전이 있는지, 그렇다면 현재 그 직원의 능력치는 어느 정도 수준인지 등등을 가늠해 본 이후 상태창을 열어 비교해 봤다.

그럼 90퍼센트 이상은 맞아 들어갔다.

사람 보는 눈도 더욱 확실해졌다.

이제는 직원들에게 고민이 있는지 없는지 슬쩍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식당에 대한 마음이 갈수록 식는 직원들과 더욱 소속감을 느끼는 직원들이 누구인지 또한 확연히 보였다.

황태규와 허이숙의 사건이 강지한에게 시스템의 의존도를 떨어뜨리고 자립심을 기를 수 있게 만들어 준 덕분이다.

오후 6시.

강지한은 춘천에 있는 모든 식당들을 둘러 보고서 마지막으로 지한 객잔을 방문했다.

지한 객잔은 하정운과 호중원의 활약으로 늘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다른 직원들 사이에도 딱히 문제는 없어 보였다.

특히 하정운과 호중원은 무지개빛 선으로 연결이 되어 있어 더욱 마음이 놓였다.

매장의 투톱인 둘의 관계가 좋으니 전체적인 분위기가 편안할 수 있었다.

강지한이 만족스럽게 지한 객잔을 나서려고 했다.

그런데 식사를 하는 손님들 중 누군가의 머리 위에 느낌표가 나타났다.

퀘스트였다.

강지한은 손님의 얼굴을 확인했다.

빠글빠글 파마머리를 한 여인은 춘천의 유명한 점쟁이 하경춘이었다.

한데 그녀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뭔가 큰 고민이라도 안고 있는 것 같았다.

하경춘은 강지한이 오픈하는 모든 식당의 단골이었다.

이제 강지한과는 오다가다 만나면 친근하게 인사까지 하는 사이였으므로 그냥 모른 체할 수가 없었다.

강지한이 그녀의 퀘스트를 수락했다.

그러자 퀘스트 내용이 눈앞에 나타났다.

[퀘스트-정신없는 혼령이 하경춘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혼령의 소원을 들어주어 하경춘을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세요.]

[클리어 보상: 복불복 룰렛]

[복불복 룰렛-총 8개의 칸으로 이루어진 룰렛으로 반반씩 행운과 불행의 칸으로 나뉘어져 있다.]

퀘스트를 수락하고 보니 클리어 보상이 좀 애매했다.

여태까지는 무조건 좋은 것을 주었는데, 복불복 룰렛이라는 건 결국 퀘스트를 클리어하고도 좋지 않은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말 아닌가?

괜히 퀘스트를 수락한 건가 싶었지만 되돌릴 수 없는 일.

강지한이 심각한 얼굴로 짬뽕 국물을 들이켜는 하경춘에게 다가가 인사부터 건넸다.

“하 도사님, 안녕하세요.”

“응? 강 대표님?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대요? 땅에서 솟았나? 하늘에서 떨어졌나?”

“저 홀에서 한 10분 정도는 서 있었는데요.”

“나는 못 봤네요. 짬뽕에 너무 심취했나 봐요.”

“짬뽕 맛이 영 별로세요?

“아니? 엄청 맛있는데? 강 대표님이 런칭하는 식당들 음식은 참 요상해요. 어딜 가서 먹으나 신령이 깃드는 맛이라니까.”

“다행이네요. 표정이 영 안 좋으셔서 음식이 맛이 없나 싶었어요.”

“내 표정이 그렇게 안 좋았어요?”

“네. 시종일관 미간에 내천(川) 자가 깊이 파여 있던데요.”

“이거 내가 티를 안 내려고 했는데도 참. 나는 진짜 티 안 내고 싶은데 여기서 그냥 입 닫아 버리면 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죽을상을 하고 있었던 건지 대표님이 궁금하시겠죠?”

“그럼요.”

“그럴 줄 알았어요. 어쩔 수 없이 들려드려야지. 실은 사흘 전에 이상한 귀신 하나가 달라붙었거든.”

“귀신이요?”

“아흔 먹은 할배 귀신인데, 엄마가 만들어 준 식혜랑 막걸리로 만든 떡이 먹고 싶다고 징징대면서 떠나지를 않는 거야. 어찌나 염원이 강한지 성불시켜 드리려고 별의별 수를 다 써도 들어먹지를 않아.”

“아이고, 골치 아프시겠네요.”

“골치 아프지. 내가 그래서 식혜란 식혜는 이 동네 저 동네 발 닿는 대로 돌아다니면서 사다 먹였거든. 근데 먹을 때마다 그게 아니래. 막걸리로 만든 떡은 증편 아니겠어? 그래, 증편도 잘한다는 집을 굳이 찾아가서 사다 먹였는데 그것도 맛이 아니래. 그러니 내가 안 뒤집어져? 지금 이 할배 귀신이 내 영업도 방해하고 있다니까. 지금도 내 귀에 대고 계속 징징대.”

“정확히 뭐라고 하는데요?”

하경춘이 바로 펜과 종이를 꺼내 뭔가를 적어 건넸다.

거기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식혜가 먹고 싶소. 뜨더국 먹는 날이면 언제나 상 위에 올라오던 그 맛이 그립소. 막걸리로 만든 떡이 먹고 싶소. 귀한 손님 오시면 늘 내어주던 그 떡 맛이 잊히질 않소. 우리 오마니 맛이 그립소.’

“그 말만 무한 반복 중이야. 이것저것 물어봐도 종일 저 불경 외듯 저 소리만 해댄다니까.”

“귀신의 고향이 북한인가 봐요?”

“그런가 보지.”

“음… 전쟁 때 남한에 내려와서 돌아가지 못한 실향민일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고향 음식 못 먹고 죽어서도 그리운 거 아닐까요?”

“사정을 물어봐도 답을 안 하니, 그런 짐작 하는 것도 지치고 나는 그냥 이 할배가 뭘 먹고 싶은 건지나 알았으면 좋겠어.”

“제가 조금 고민해 보고 바로 연락드릴게요.”

하경춘은 이미 강지한에게 한 번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

땡중 귀신이 붙어서 곡차와 두부가 먹고 싶다며 떠나지 않았을 때, 강지한은 그것이 술과 보쌈인 걸 알아채고 답을 알려주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강지한이 제발 귀신이 뭘 먹고 싶어 하는 건지 알아주기를 바라며 남은 짬뽕 국물을 원샷으로 해치웠다.

* * *

집으로 돌아온 강지한은 하경춘이 건네준 쪽지를 꺼내 펼쳤다.

‘식혜가 먹고 싶소. 뜨더국 먹는 날이면 언제나 상 위에 올라오던 그 맛이 그립소. 막걸리로 만든 떡이 먹고 싶소. 귀한 손님 오시면 늘 내어주던 그 떡 맛이 잊히질 않소. 우리 오마니 맛이 그립소.’

문장을 읽어본 강지한은 우선 뜨더국이 수제비임을 바로 알았다.

뜨더국은 수제비의 북한말이다.

즉 수제비를 먹는 날이면 항상 상 위에 함께 올라왔던 것이 식혜라는 얘기다.

‘수제비가 담백한 맛이 강하니 반찬으로는 장아찌나 김치 같은 게 어울릴 텐데. 그렇게 생각해 보면 식혜라는 건…… 아무래도 식해를 잘못 알아들으신 것 같고.’

식해는 생선을 토막 쳐서 소금과 밥을 섞어 발효시킨 것으로 이북음식이다.

때문에 강지한의 추리는 그럴 듯했다.

‘문제는 막걸리로 만든 떡이라는 부분인데. 귀한 손님 오시면 내어주던 떡이라…….’

강지한은 자신이 아는 모든 지식을 천천히 되짚어 보았다.

그러자 막걸리가 들어가는 이북식 떡 하나가 바로 떠올랐다.

강지한이 그 떡의 이름을 인터넷에 쳐서 검색했다.

이어, 정보를 확인한 강지한은 손님이 왔을 때 내어줬다는 부분이 들어맞음을 확인하고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거다.’

강지한이 바로 하경춘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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