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3
Restaurant 292. 접어버린 꿈
강지한은 광어회의 정보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김정훈의 환상적인 광어 숙성회]
요리등급: LV6
-생물 광어를 직접 잡아 뼈에서 살을 발라낸 뒤, 10시간 저온 숙성한 숙성회다. 활광어를 잡자마자 피와 내장을 제거했기에 신선하고 비린내가 없다. 살 또한 버리는 부분 없이 완벽하게 분리했다. 회를 치는 솜씨가 일품이다. 발라낸 살의 크기와 모양이 일정하며, 최상의 식감을 안겨줄 수 있는 두께로 잘라낸 것이 신의 한 수.
‘레벨 6이라니.’
어떻게 칼국수 사장님의 손에서 이런 숙성회가 탄생할 수 있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의문을 품고서 강지한은 회 한 점을 집어 입에 넣었다.
잘 숙성된 광어회는 활어회와 달리 입에 들어가 이로 씹는 순간 부드럽게 육질이 잘렸다.
동시에 단맛과 감칠맛이 은은하게 퍼지면서 사치스러울 정도의 만족감을 주었다.
한마디로 정말 맛있었다.
“와~ 사장님, 진짜 맛있어요.”
강지한과 함께 회 한 점을 맛본 예소린이 눈이 동그래져서 말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께서는 어떠신지?”
김정훈은 과연 강지한이 뭐라고 말할지 조금 긴장하고 있었다.
요식업계에서는 자신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으니 당연했다.
“근래 먹어본 숙성회 중에 가장 맛있는데요.”
“정말입니까?”
의외의 호평에 놀란 김정훈의 입이 귀에 걸렸다.
“네. 이렇게 맛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아~ 하하하!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네요.”
김정훈이 몹시도 좋아했다.
그가 소주 한 병을 까서 모두의 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이렇게 기쁜 날은 무조건 소주로 달려야죠.”
“맞아요.”
예소린이 방긋 웃으며 동의했다.
세 사람이 잔을 마주치고 술을 한 잔씩 마셨다.
그러기 무섭게 예소린과 강지한은 바로 회 한 점을 또 집어 먹었다.
숙성회를 처음 접하는 예소린은 완전히 신세계를 만난 기분이었다.
“넘 맛있어.”
회가 식도로 넘어가면서 그녀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이를 본 김정훈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강 대표님께서 안 사주셨어요?”
“그러니까요. 호호.”
“강 대표님 너무하셨네.”
김정훈의 농에 세 사람이 가볍게 웃었다.
한데 강지한의 웃음은 어쩐지 억지로 만들어 낸 것 같은 위화감이 들었다.
그는 지금 김정훈과 예소린의 대화가 들려오지 않았다.
대체 이렇게 완성도 높은 회를 어떻게 김정훈이 다룰 수 있는 건지 그게 궁금했다.
해서 연유를 물어보려던 찰나, 김정훈이 무언가를 회상하듯 이런 말을 꺼냈다.
“실력이 죽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안에 담긴 속뜻이 궁금했던 예소린이 눈을 크게 깜빡였다.
“아……. 그게, 하하하! 조금 민망한데요. 제가 원래 칼국수 전문이 아니고 일식 전문이었습니다.”
“일식이요?”
이번엔 강지한이 물었다.
“네. 한…… 4년 전까지는 애막골에서 나루또라는 일식당을 운영하다가 3년 전부터 여기서 칼국수를 팔고 있는 거거든요. 특이하죠? 아차차! 그걸 안 가지고 왔네. 잠시만요.”
대화를 하다 말고 황급히 주방으로 들어간 김정훈은 왕새우튀김과 소고기타다끼가 담긴 접시 두 개를 가지고 나왔다.
“회랑 곁들여 드시라고 미리 만들어놨던 건데 깜빡하고 내놓지 않았네요.”
강지한이 두 음식의 정보창을 확인했다.
둘 다 레벨 4로 괜찮은 수준이었다.
“이게 일식당에서 팔던 메뉴인가요?”
“네. 회 먹다가 심심하면 드시라고 준비했습니다.”
강지한과 예소린이 내온 음식을 먹어봤다.
일식을 전문으로 했다는 사람답게 맛도 상당히 괜찮았다.
“한데 어쩌다가 칼국수를…….”
“음… 딱 까놓고 얘기해서 장사가 잘 안됐어요.”
“이렇게 음식들이 맛있는데요?”
“그게 사연을 얘기하자면 좀 긴데… 아~ 하하하!”
느닷없이 웃어버린 김정훈이 소주 한 잔을 훌쩍 넘기고서 말을 이었다.
“제가 칼국수까지 해서 총 세 번 음식 장사를 했습니다. 그중 하나는 제대로 말아먹었고 하나는 현상유지에서 그쳤고 마지막 하나는 그나마 잘되고 있죠.”
“잘되고 있는 게 혹시 칼국수집이에요?”
예소린의 물음에 김정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첫 번째로 덤볐던 게 횟집이었어요. 당시 제가 자신 있는 선어회를 팔았는데 참 여러 가지 문제에 봉착해서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선어회의 개념을 잘 모르시는 손님들께서 왜 미리 썰어놓고 한참 지난 회를 가지고 오냐 따지시면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회 재활용하는 거 아니냐. 오래된 거 아니냐. 살이 쫄깃쫄깃하지 않고 너무 무르다. 컴플레인이 너무 많이 들어왔죠. 아~ 하하하!”
김정훈의 올해 나이가 마흔이다.
그가 횟집을 차렸던 것은 12년 전의 일이었다.
당시엔 아직 우리나라에 선어회라는 개념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니 활어회를 주로 먹는 한국인들에게는 생소하고 이상하게 다가올 수밖에.
물론 식당이 안 된 이유가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실력보다 패기가 넘쳤었어요. 나름 선어회를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엉망진창이었죠. 선어회와 숙성회가 같은 거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요.”
“뭐가 다른 건데요?”
회에 깊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대부분 선어회와 숙성회의 차이를 모른다.
다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둘 사이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숙성회는 제가 만든 대광어처럼 활어를 회 떠서 숙성시키는 걸 말하는 거고요, 선어회는 활어로 유통시키기 어려운 생선을 죽은 상태로 가져와 회를 뜨는 걸 말하는 거거든요.”
“뭐가 달라요?”
“숙성회는 활어를 바로 숙성하는 것이고, 선어회는 이미 죽어서 냉동처리 된 상태로 횟집에 도착한 것을 다시 냉장고에 넣어 숙성시키는 것이니 당연히 맛의 차이가 생길 수밖에요.”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김정훈을 강지한이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는 실력만큼 회에 대한 지식 또한 풍부했다.
그가 한 말은 전부 다 맞는 얘기였다.
요리라는 것이 같은 음식이라 해도 조리과정의 한두 가지 차이로 맛이 크게 달라지게 마련이다.
하물며 활어를 잡아 바로 숙성하는 것과, 이미 죽어서 한 차례 냉동처리 되었던 것을 다시 숙성시킨 것의 맛이 같을 리 없는 법.
김정훈의 설명을 듣고 난 예소린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구나. 요리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재미있네요.”
“머리만 아프죠 뭐. 아~ 하하하! 자, 지느러미살도 드셔보세요. 이게 정말 대박입니다.”
예소린이 다이아몬드 무늬의 칼집이 자잘하게 들어간 지느러미살을 얼른 와사비 간장에 찍어 먹어 보았다.
“어머.”
그녀가 저도 모르게 감탄을 뱉었다.
지느러미살은 씹자마자 진한 고소함과 감칠맛이 확 하고 터져 나왔다.
그 풍미가 다른 부위보다 몇 배 이상은 강렬했다.
그리고 조금 더 꼬들꼬들한 식감이 너무 좋았다.
같은 광어임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다른 생선을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좋죠?”
“담백한 생선이 갑자기 기름진 생선으로 바뀐 것 같아요. 너무 고소하고 맛있어요.”
“지느러미살은 활어회로 먹어도 맛있잖아요. 근데 그걸 숙성시켜서 먹으면 지금처럼 더 맛있어집니다. 아~ 하하하!”
맛있다는 리액션을 양껏 해주는 예소린으로 인해 김정훈의 기분이 좋아졌다.
그가 신이 나서 과거 이야기를 다시 이어 나갔다.
“얘기가 잠시 다른 곳으로 샜네요. 아무튼 이래저래 준비도 안 된 데다가 우리나라에서 선어회는 아직 생소하던 터라 첫 번째 요식사업은 완전히 말아먹었어요. 사실 제가 최종적으로 하고 싶은 건 초밥집이었거든요. 횟집이 성공하면 초밥도 끼워 팔면서 나중에는 초밥 전문점을 운영하려고 했는데 제대로 넘어졌죠. 그래서 다음으로 덤벼든 게 일식 주점이었습니다.”
“아까 말씀하셨던 애막골의 나루또요?”
“맞습니다. 사실 마음은 장사도 하지 않고 초밥 공부에만 몇 년 몰두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저도 먹고는 살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일단 일식 주점 하면서 돈을 모으려고 했습니다. 물론 돈을 모으는 기간 동안 초밥에 대한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겠다 다짐했고요. 결과적으로 반만 성공했어요. 초밥 공부는 많이 했는데 돈은 생각만큼 모이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적자는 겨우겨우 면해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적자가 꾸준히 나버리니 더 유지하기가 힘들어졌죠. 그때는 처자식도 있던 상황이라 그래서는 안 됐거든요.”
“사장님 실력이면 충분히 장사가 잘됐을 텐데 이상하네요.”
그것은 강지한의 말이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숙성회와 새우튀김, 소고기 타다끼, 어느 것 하나 훌륭하지 않은 게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전략을 잘못 짠 것 같아요. 사실 애막골이 식사보다는 술을 마시러 오는 곳이잖아요. 근데 우리 집 안주는 비쌌어요. 물론 저는 그만큼 맛이 있다 자부했고요. 그런데 손님들은 맛이 조금 떨어져도 더 싸고 푸짐한 곳으로 가서 술을 마시더라고요.”
“아…….”
“그래도 적자는 나지 않으니까 한 3년 버티면 분명히 인정받고 단골들이 늘어날 거라 생각했어요. ……제 착각이었죠.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어 전략을 바꿔보려고 했는데 너무 지치더라고요. 뭘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도 모르겠고. 전반적으로 심신이 너무 엉망이 되어 버렸어요. 그래서 장사를 접고 한 달 정도 쉬는데 부모님께서 부르시더라고요.”
김정훈의 부모님은 공단사거리 근처에서 40년째 중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힘이 들어 더 이상 식당을 끌어갈 수가 없었다.
결국 식당문을 닫자고 결론지었다.
한데 건물이 놀고 있으면 아까우니 아들에게 넘겨주려 한 것이다.
김정훈의 일식당 나루또는 월세 자리였기에 가게세 부담이 컸다.
하지만 부모님의 식당으로 들어가서 장사를 하면 적어도 가게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계약 기간도 끝나가는 상황.
일이 그렇게 되려고 했나 보다 싶던 김정훈은 바로 물려받은 식당을 리모델링했다.
그런데 일식전문점이나 초밥전문점이 아니었다.
생뚱맞게도 칼국수 전문점이었다.
김정훈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예소린이 의아해서 물었다.
“왜 초밥집을 차리지 않은 거예요. 그게 목표이자 꿈이었다면서요.”
“공부가 덜 됐어요. 그때까지도 초밥이 제가 스스로 만족할 만큼의 퀄리티가 나오지 않았죠.”
“그럼 일식 전문점은요?”
“이 동네엔 젊은 분들이 많지 않아서 맞지 않겠더라고요. 근데 제가 중식집 자식이라 면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만들 자신이 있었거든요. 그렇다고 중식을 그대로 이어받아 하긴 싫었고…… 회는 만지지 못하더라도 해산물들을 좀 만지면서 장사를 하고 싶은 욕심에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 보니 칼국수집이 좋겠더라고요. 아~ 하하하!”
뭔가 급조한 듯한 냄새가 팍팍 풍기는 말이었다.
예소린과 강지한은 믿지 않는 눈치로 바라보니 김정훈이 한숨을 푹 쉬고서 이실직고했다.
“네. 사실 그것보다는 안전한 메뉴로 승부를 보자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이제 저도 지쳐서 모험을 하기 싫었어요. 언제까지 처자식 고생시킬 수는 없으니까요.”
“그랬군요.”
“상황만 주어진다면 당장에라도 칼국수 집 문 닫고 초밥을 쥐고 싶은데…… 이젠 다 흘러가 버린 꿈이죠.”
예소린이 안타까운 시선으로 김정훈을 바라봤다.
자신 때문에 공기가 무거워지자 김정훈은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술잔을 들어 올렸다.
“우중충한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술이나 한잔하시죠. 짠!”
* * *
다음 날 밤 열 시.
김정훈은 지한 일식 건물 앞에 서 있었다.
어제, 술자리가 끝나가던 즈음에 강지한은 그에게 말했다.
“사장님. 제가 이따 주소 하나 적어드릴 테니 내일 장사 마치고 거기로 와주시겠어요?”
강지한은 김정훈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둘 사이에 조금이라도 더 친분을 다지고 싶었던 김정훈은 흔쾌히 알겠다고 대답했다.
한데 주소를 따라 와보니 지한 일식이라는 간판이 떡하니 달린 2층짜리 건물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이제는 일식까지 하시려나 보네.”
김정훈은 내심 부러워하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아직 리모델링 중인 식당 내부는 홀이 상당히 어수선했다.
그러나 주방의 수리는 완벽히 끝나 있는 상태였다.
강지한은 트레이드마크인 검은색 조리복을 입은 채 주방에 서 있었다.
“사장님,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제 옆으로 오세요.”
“아, 네.”
김정훈이 저도 모르게 경건해진 마음으로 주방에 들어섰다.
한데 조리대 위에 참치 대뱃살 한 덩이와 초대리 섞인 밥이 놓여 있는 게 아닌가.
“어? 대표님. 초밥 만드시려고요?”
강지한은 대답 대신 이렇게 되물었다.
“사장님. 어제 그러셨죠. 상황만 주어진다면 다시 초밥을 쥐고 싶다고.”
“네? 아 그랬죠. 근데 그게 쉽지가 않아요. 일단 제가 만드는 초밥 자체가 스스로 만족할 수 없는 수준인 데다가 잘되는 칼국수집 접고 새로운 종목으로 덤벼든다는 게 좀…….”
“제가 지금 참치 대뱃살로 초밥 하나 쥐어 드릴게요.”
말을 마치는 순간 강지한의 손이 바람처럼 움직였다.
그가 대뱃살을 초밥용으로 썰어낸 뒤, 밥을 적당히 떴다. 그리고 밥 위에 와사비를 조금 바르고 대뱃살을 얹어 딱 세 번 쥐는 것으로 초밥을 완성시켰다.
완성된 초밥의 모양을 본 김정훈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단 세 번 쥐었을 뿐인데 어떻게 저런 완벽한 모양이……!’
놀라는 김정훈에게 강지한이 초밥을 권했다.
“드셔보세요.”
“네.”
김정훈은 초밥을 한입에 넣었다.
순간, 그는 황홀경을 맛봤다.
그 초밥에 담긴 것은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맛이었다.
바로 이런 초밥을 만들고자 그토록 노력하며 달려왔던 것이었다.
초밥을 삼킨 김정훈이 너무 놀라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을 때, 강지한이 그에게 제안했다.
“사장님께서 접어두었던 꿈. 저한테 한 번 맡겨보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