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7
Restaurant 286. 가짜 육수와 양념장
허이숙은 새벽 일찍부터 지한 식당 분점에 나왔다.
어젯밤.
잠들기 전 강지영에게서 온 문자 한 통 때문이었다.
그녀는 허이숙에게 비법육수와 양념장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알려줄 테니 오전 다섯 시까지 식당에 나오라 일렀다.
그에 허이숙은 10분 전에 도착해서 강지영을 기다렸다.
약속한 시간에 칼같이 도착한 강지영이 허이숙과 함께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강지한이 알려준 가짜 레시피대로 육수를 우리기 시작했다.
비법 양념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지만, 육수는 몇 시간을 우려야 하니 새벽부터 서둘러야 했다.
허이숙은 강지영이 육수통에 넣는 재료들을 보며 말했다.
“의외로 평범한 것들만 들어가네?”
“그치? 중요한 건 비율이랑 우려내는 시간이야, 언니.”
“요리라는 게 사소한 차이로도 맛이 참 많이 달라지는 것 같아.”
“그럼~”
말을 하는 와중에도 허이숙의 손은 들어가는 육수의 레시피를 적어내느라 분주했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일념이 얼굴에서 엿보였다.
두 사람의 앞에 세 종류의 육수통이 갖가지 재료를 담고서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이걸로 끝. 이제 전부 세 시간씩 우려내기만 하면 돼.”
“그래? 난 한 여섯 시간은 우려야 하는 줄 알았는데.”
“그렇게 하면 육수가 더 진해지긴 하지만 깔끔한 맛이 사라지거든. 그래서 부족한 맛은 비법 양념으로 채우는 거야.”
“아, 그렇구나.”
허이숙은 큰 깨달음을 얻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비법 양념 들어가 볼까?”
“응. 보여줘 봐.”
말을 하는 허이숙의 음성이 상당히 들떠 있었다.
그것이 강지영은 이상했다.
‘날 도와주려고 비법 알려 달라던 언니 맞나 싶네.’
허이숙은 육수와 양념의 비법에 대해서는 전혀 궁금하지 않은 사람처럼 굴었다.
그녀의 초점은 오로지 강지영의 일을 덜어주고 싶다는 것에 맞추어져 있다고 강조했었다.
그런데 귀를 활짝 열고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살짝 희열감까지 어려 있는 그녀의 모습은 강지영으로 하여금 진정성을 의심토록 만들었다.
제발 허이숙이 다른 마음 품은 것이 아니기를 바라며 강지영은 가짜 비법 양념의 레시피도 전수해 주었다.
“이걸로 끝.”
“으음. 찌개에 들어가는 양념장들은 좀 복잡하네.”
“그래도 이렇게 해야 제대로 된 맛이 나니까 제대로 익혀둬야 돼, 언니.”
“그럼, 당연하지.”
“맛 좀 봐봐.”
“응.”
허이숙은 완성된 양념장 세 가지를 전부 맛보았다.
하나하나 혀끝으로 그 맛을 신중하게 느끼는 허이숙의 얼굴에 미소가 맺혔다.
‘이거다.’
기존에 식당에서 만들어 먹던 양념장과 그 맛이 같았다.
“어때?”
“응, 그 맛이네.”
“잘 적어놨지?”
“그럼~ 근데 이거 강 대표님 허락 받고 알려주는 거야? 괜히 지영 씨가 나 너무 믿고 독단적으로 알려준 건데 걸리기라도 하면…….”
“다 허락 받은 거니까 걱정하지 마, 언니.”
“그럼 다행이고.”
“아, 그리고 육수는 올라오는 거품을 그때그때 다 걷어내줘야 돼.”
“어머. 알았어. 내가 할게.”
* * *
오전 8시 반.
3시간이 흘러 세 가지 육수가 모두 완성되었다.
“언니, 먹어봐.”
허이숙이 세 가지 육수 맛을 천천히 음미했다.
“음~ 맛있다.”
“식당 육수 맛 그대로지?”
“그러네.”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대답에 강지영이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 식당 육수랑 양념들 모두 나 몰래 먹어봤나 봐.’
허이숙은 강지영의 앞에서는 절대로 육수나 양념을 먹어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것에 관심도 없다는 듯 행동했었다.
한데 그녀는 이미 육수와 양념의 맛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특히 육수는 깊이 파고들지 않으면 주재료의 풍미가 크게 살아나 대부분 거기서 거기라고 느껴진다.
때문에 육수에 담긴 오묘한 차이점을 잡아내기 위해서는 오래도록, 그리고 자주 육수를 맛보아야 한다.
지금 강지영이 만든 가짜 육수는 요리에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먹었을 땐, 지한 식당의 진짜 육수와 맛이 거의 비슷했다.
아주 심오한 차이가 있는데 그건 절대미각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찾아내기 힘들 정도로 어려웠다.
아무튼 허이숙은 강지영이 만든 육수와 양념의 맛이 기존 식당 육수의 맛과 비슷하다는 걸 인정했다.
말인즉, 그녀가 사람들 몰래 그것들을 자주 맛보았다는 것이다.
‘이거 진짜 지한이 의심이 맞아 들어가는 거 아니야?’
강지영은 점점 마음이 불안해졌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돌이킬 수는 없는 일.
그녀로서도 의심이 들기 시작한 이상, 확실하게 해두지 않으면 내도록 찝찝할 터.
“아, 새벽부터 힘썼더니 배고프네.”
강지영이 사전에 준비해두었던 말을 자연스럽게 꺼냈다.
“배고파, 지영 씨?”
“빈속으로 나왔거든. 나 고생했는데 아침밥 좀 사주면 안 될까?”
“여기서 안 먹고?”
“나 사실 어제부터 사거리 콩나물 국밥이 땡겼는데.”
실제로 강지영은 근처 사거리에 있는 콩나물 국밥집의 단골이었다.
브레이크 타임 때도 직원들을 데리고 자주 방문했을 정도.
춘천에서 몇 안 되는 24시 식당으로 3,9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콩나물 국밥을 먹을 수 있었는데, 맛도 상당히 괜찮아서 인기가 제법 많았다.
“지영 씨 고생했는데 내가 아침 정도는 사줄 수 있지. 말 듣고 보니까 나도 땡긴다. 가자, 지영 씨.”
“고마워요, 언니.”
두 사람은 식당에서 나와 문을 걸어 잠그고 콩나물 국밥집으로 향했다.
잠시 후, 귀신같이 나타난 강지한이 잠긴 식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곧장 주방으로 향한 그가 뒷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뒷문은 지한 식당 분점의 전용 추자장으로 연결된다.
거기로 큰 냉동탑차 한 대가 들어와 정차하더니 운적석에서 독고진이 내렸다.
“고생했다, 진아.”
“고생은요.”
강지한은 어젯밤, 독고진에게 탑차를 잠깐 빌릴 수 있겠느냐 물었다.
그에 독고진이 무슨 일인데 그러느냐 되물었다. 강지한은 지금의 상황을 말해주어도 되나 고민했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만약 강지한의 오해라면 그는 공식적으로 허이숙에게 사과를 할 참이었다.
반대로 허이숙이 그릇된 마음을 품고서 지한 식당에 들어왔던 것이라면 이 일을 공론화한 뒤 해고할 생각이었다.
어떻게 하든 이번 일은 들어날 터.
강지한은 독고진에게 지금의 상황을 전부 알렸다.
무슨 일이 있는 건지 파악을 한 독고진은 직접 탑차를 끌고 도와주겠다며 나섰다.
독고진이 분주하게 움직여 차의 짐칸을 열었다.
그러자 거대한 육수통과 큰 반찬통 세 개가 뚜껑이 꽉 밀봉된 상태로 놓여 있는 게 보였다.
거기에 들어있는 것들이 진짜 비법 육수와 양념이었다.
강지한이 새벽 4시 반부터 만든 것이다.
짐칸의 냉동기는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냉동기가 돌아가서 육수가 식어 있으면 안 되기에 꺼두었다.
“그럼 나르자.”
“네.”
두 사람은 육수와 양념통을 주방 안으로 날랐다.
그리고 가짜와 진짜를 바꿔 치기 했다.
육수통은 진짜와 가짜가 담긴 것이 같은 제품이었다.
양념통 역시 마찬가지.
탑차의 짐칸에 가짜 육수와 양념장을 실은 독고진이 운전석으로 올라 시동을 걸었다.
‘흐으으. 이거 괜히 떨리네.’
남 몰래 이런 일을 벌인다는 것이 조금 긴장되는 그였다.
“고맙다, 진아. 조심해서 들어가.”
“네, 대표님. 고생하세요.”
독고진이 차를 몰아 떠났다.
강지한은 주방에 흔적이 남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고 식당을 나섰다.
* * *
지한 식당 분점의 점심 피크 타임.
홀에는 식당을 찾은 손님들로 바글바글 했다.
허이숙은 식사를 하는 손님들의 반응을 살폈다.
다들 평소와 다름없이 맛있게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맛이 제대로 나왔나보네. 육수랑 양념 레시피가 확실한 게 맞구나.’
그녀는 혹시나 강지영이 거짓 레시피를 알려준 건 아닌지 의심했었다.
육수와 양념장의 맛이 뭔지 모르게 약간 다른 것 같았기 때문.
강지한이 생각하는 것보다 허이숙의 혀는 더 예민했다.
그러나 손님들에게서 아무런 컴플레인이 들어오지 않는 걸 보니 안심이 되었다.
사실 간을 보는 척하며 직접 음식맛도 보긴 했다.
평소처럼 맛이 나온 것 같긴 한데 그녀에겐 확신이 필요했다.
‘내가 너무 예민했나 봐. 이제 됐다.’
허이숙의 머릿속으로 이곳에서 일했던 지난 1년간의 기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 * *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강지한은 미미 식당의 근처에 차를 세워놓고 있었다.
과연 이번에도 허이숙이 저 식당으로 들어갈 것인지 궁금했다.
그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택시에서 내린 허이숙이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러고는 한 시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다.
식당의 주방불은 계속 켜져 있었다.
강지한은 어떤 확신을 가지고 조용히 차를 몰아 자리를 벗어났다.
* * *
다음 날, 점심나절.
어딘가로 외출을 다녀온 강지한의 손에는 검은 봉지가 들려 있었다.
그가 봉투에 담긴 것을 꺼내며 퀘스트 창을 띄웠다.
[퀘스트-보름 내에 정직원 한 명을 해고하세요.]
[남은 시간: 2일]
[클리어 보상: 영어 마스터 패치권]
퀘스트의 남은 시간은 이제 2일.
처음에는 막막하기만 했던 퀘스트였는데 이제는 많은 정황이 허이숙을 가리키고 있었다.
봉투에서 꺼낸 것은 미미 식당에서 포장해 온 김치찌개와 제육볶음이었다.
강지한은 어제 모자와 마스크를 푹 눌러쓰고 미미 식당을 방문했었다.
그리고 오늘과 똑같은 메뉴를 포장해 와서 먹어봤다.
음식의 레벨은 고작 3이었다.
총체적인 평가를 내려보자면 지한 식당의 음식을 흉내 내려고 했는데 하나같이 어설픈 수준이었다.
어린이가 어른의 요리 실력을 탐낸 느낌이랄까.
물론 레벨 3도 일반적인 식당에서 먹을 만하게는 나오는 정도였으나 단골을 잡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러니까 허이숙이 미미 식당과 연관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준 가짜 육수와 양념을 당장 사용할 수밖에 없었을 거야.’
강지한이 준 가짜 육수와 양념으로는 레벨 3 이상의 음식을 만들어 낼 수가 없다.
그런데 인간의 혀라는 것이 참 교묘하다.
시각과 후각을 차단한 채 양파를 먹으면 그것을 사과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다고 할 만큼.
아울러 기분에 따라 음식의 맛을 제멋대로 판단하기도 한다.
지금 허이숙은 자신이 배워간 육수와 양념의 레시피가 진짜라고 생각하고 있다.
때문에 그것을 사용해 같은 3레벨의 음식이 나와도 조금 더 맛이 좋다고 느낄 게 분명했다.
물론 제대로 된 육수와 양념을 사용할 경우 맛이 압도적으로 좋아야 한다.
그 부분에 대해서 의아함을 가지긴 했을 터.
하지만 음식 장사를 하는 사람으로서 더 맛있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는데 굳이 그것을 사용 안 할 이유가 없었다.
강지한은 상 위에 세팅한 음식들의 정보창을 확인했다.
[구일만의 맛있는 김치찌개]
요리 등급: LV3
-무난하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수준의 김치찌개다. 강지한의 레시피로 만든 육수와 양념장이 사용되었다.
[구일만의 맛있는 제육볶음]
요리 등급: LV3
-무난하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수준의 제육볶음이다. 강지한의 레시피로 만든 육수와 양념장이 사용되었다.
‘잡았다.’
이제 허이숙의 정체를 모두에게 밝히는 일만 남았다.
물론 거기에 대한 방법도 전부 세워둔 강지한이었다.
일전에 김치전골 전문점에서 일하던 장주희도 레시피를 빼돌리려다가 혼쭐난 적이 있었다.
이번에는 상대가 장주희보다 조금 더 치밀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그래 봤자 강지한의 손바닥 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