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282화 (282/330)

# 282

Restaurant 281. 단짠 커플

강지한은 차를 몰고 어딘가로 향하는 중이었다.

한데 신호에 걸려 정차하고 있던 와중 갑작스레 나타난 퀘스트는 그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었다.

‘정직원 한 명을 해고하라고?’

강지한은 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퀘스트가 나타난 것인지 의아했다.

문제를 일으키는 수습이면 몰라도 정직원들은 문제없이 일을 잘하고 있었다.

스스로 그만두겠다고 하지 않는 이상에야 강지한이 함부로 자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퀘스트는 수락해야만 내용을 알 수 있었기에 이미 수락해 버린 상황.

되돌릴 수는 없었다.

한데 제한 시간이 있는 퀘스트였고 클리어 보상 밑에 메시지 한 줄이 더 보였다.

[실패 시 패널티: 장인의 지식 모두 삭제]

장인의 지식은 강지한이 성공 가도를 달리는 데 크나큰 도움을 주었다.

한데 실패 시 그것들이 전부 사라진다니.

황당할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아무 직원이나 해고할 수는 없잖아.’

강지한이 직원들의 상태나 상호관계를 마지막으로 확인했던 게 불과 이틀 전이다.

다들 서로 사이가 나쁘지 않았고 개인적인 문제 또한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한 명을 해고하라니.

강지한은 혹시 자신이 놓친 부분이 있는 건 아닌가 고민에 빠졌다.

“으음. 내일 한 번 더 전체적으로 자세히 살펴봐야겠네.”

중얼거리는 순간 신호등의 파란불이 켜졌다.

다시 차를 몰아 강지한이 도착한 곳은 예소린의 애견 카페였다.

유리벽 너머로 보이는 홀엔 설탕이가 없었지만 손님들로 가득했다.

이미 뽀삐의 하루는 설탕이 버프를 받지 않아도 찾아오고 싶어질 만큼 분위기가 좋고 디저트와 음식이 맛있는 애견인들의 성지가 되었다.

물론 예소린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남자 손님들도 꾸준했다.

뽀삐의 하루 분점 역시 비슷한 분위기였다.

본점의 모든 장점을 이어받았으며, 점주인 연주연은 열심히 매장을 꾸려 나갔다.

강아지들과 하루 종일 함께하는 것 자체가 즐거우니 일이 일로 다가오지 않았다.

강아지들 관리도 게을리하지 않아서 아이들의 상태가 너무 좋았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손님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예소린은 이제 뽀삐의 하루 3호점과 4호점의 런칭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분점의 성공 이후 창업을 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프렌차이즈 업체로 성장한 것.

애견 카페 사업이 순항을 타니 예소린의 기분은 날아갈 듯 좋았다.

딸랑-

강지한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손님들이 그를 알아보고 반색했다.

“어! 강지한이다!”

“카페 사장님 남친분 오셨네?”

“대박. 저 사람을 여기서 보다니.”

“어제 서울 나갔다가 지한 레스토랑 갔었는데.”

이제 춘천에서 강지한을 몰라보는 사람은 없었다.

지한 푸드 계열의 맛집들이 춘천 전역 요소요소에 뿌리를 내리게 됨으로써 강지한도 덩달아 유명인사가 되었다.

“지한 씨, 왔어?”

막 손님 테이블로 음식을 서빙한 예소린이 강지한에게 다가갔다.

강지한의 시선이 그녀가 만든 음식으로 향했다.

레벨이 5였다.

절대 애견 카페에서 나올 수 있는 수준의 음식이 아니었다.

전부 강지한이 전수한 비법 소스와 양념, 레시피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예소린의 손맛도 한몫 톡톡히 했다.

아무리 제대로 된 재료와 레시피를 건네주어도 감각이 없으면 엉망진창인 요리가 탄생하게 마련이다.

“엄청 바빠 보이네.”

“응, 소금이 데려가려고 왔지?”

어제, 강지한은 예소린에게 소금이를 자신의 집으로 완전히 데려가 키우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소금이는 강지한의 집에 자주 드나드는 식으로만 새끼들과 설탕이를 보아왔다.

새끼들이 어미젖을 빨리 떼지 못해 만나기만 하면 젖을 물려 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완벽하게 젖을 뗐다.

해서 소금이도 이제 강지한의 집에서 완벽한 가정을 이룰 수 있었다.

그 와중에 강지한은 걱정되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근데 소금이 정말 괜찮을까. 원래 주인은 소린 씨잖아. 많이 보고 싶어 할 텐데.”

강지한의 말에 예소린이 손으로 장난스레 어깨를 툭 쳤다.

“우리도 빨리 결혼하면 되지.”

순간 강지한은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흘릴 뻔했다.

예소린 딴에는 가볍게 두들긴다고 한 건데 강지한의 어깨에 상당한 충격이 전해졌기 때문.

강지한은 놀라 눈을 크게 떴는데, 이후 더 놀라운 말이 예소린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내년 초 어때?”

“응?”

“생각 있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묻는 예소린에게 강지한은 백 퍼센트 진심을 담아 대답했다.

“응. 그러자.”

짧고 간결하면서도 망설임이 없는 반응에 예소린은 활짝 미소 지었다.

강지한이 거침없이 그러자고 해주니 예소린의 마음이 확 놓였다.

그를 평생의 동반자로 삼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지한도 예소린과 같은 마음이었다.

아무튼 예소린은 본의 아니게 프로포즈를 하게 된 상황.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손님들 중 몇몇이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다.

“사장님 멋져요~ 먼저 프러포즈하시고.”

“두 분 결혼하시면 완전 선남선녀 부부 탄생인데요?”

예소린이 그런 손님들의 반응을 즐기며 화답했다.

“감사드려요, 여러분. 오늘 기분으로 제가 음료수 한 잔씩 서비스 드릴게요.”

한 잔이 아니라 열 잔이라도 사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두 남녀는 예정에도 없이 미래를 약속하게 됐다.

* * *

멍멍!

왕왕!

사흘 만에 재회한 단짠커플 설탕이와 소금이는 신이 나서 마당을 뛰어다녔다.

그러다 서로 엉켜 몸 구석구석을 핥아줬다.

그런 부모의 곁에 인절미 6남매가 우르르 몰려들었다.

설탕이와 소금이는 자신의 새끼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함께 놀아주었다.

강아지 가족의 행복한 모습은 유정미의 카메라에 담겨 그대로 송출되는 중이었다.

“여러분~ 단짠커플 재회했어요. 이제 소금이가 지한 오빠네 집에 완전히 들어와서 살게 됐대요. 진짜 좋겠죠? 아, 그리고 오늘은 지한 오빠랑 합동 방송 할 거예요. 강지한의 심야식당은 하루 쉬고, 대신 강아지들 간식 쿡방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유정미가 한참 멘트를 치고 있을 때였다.

엄마 아빠랑 신나게 놀던 인절미들이 갑자기 그녀를 향해 마구 달려들었다.

덩치가 그렇게 큰 편은 아닌지라 한두 마리 정도면 감당이 되지만 여섯 마리의 동시 육탄 공격은 유정미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꺅!”

유정미는 전방에서 일시에 덮쳐드는 인절미들의 앞발을 버텨내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인절미들이 유정미의 몸 위에 올라타서 얼굴이며, 손이며 목을 마구 핥아대기 시작했다.

헥헥헥헥!

인절미들의 숨소리와 부드러운 혀의 감촉이 시각과 촉각을 행복하게 자극했다.

강아지들이 가끔 얼굴을 밟을 때 맡아지는 발바닥 젤리의 꼬리꼬리한 냄새도 기분 좋았다.

인절미 육남매는 유정미에게 과격한 애정표현을 하며 꼬리를 마구 흔들어댔다.

하나같이 대단한 미견인지라 마치 설탕이 여섯 마리가 동시에 프로펠러 꼬리를 돌리는 듯한 착각마저 일었다.

“꺄하하하! 간지러! 간지러억! 으히힛!”

유정미는 간지럽다면서도 별로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도 프로 방송인인 그녀는 강아지들에게 둘러싸인 자신의 모습을 능숙하게 카메라로 잡아 내보냈다.

꼬리가 팽팽 돌아가는 강아지들의 뒤태는 시청자들의 심장을 마구 두들겼다.

-아, 개부럽.

-진짜 행복하겠다아아아아 ㅠㅠ

-정미님, 나도 거기 갈래요.

시청자들이 난리가 났다.

그러는 사이 강지한은 휴대용 가스버너와 조리 도구들, 그리고 요리 재료를 마당으로 가지고 나왔다.

마당에는 그가 반년 전 만들어 놓았던 넓은 평상이 놓여 있었다.

위로는 두꺼운 비닐로 만든 지붕이 두 배 이상의 면적으로 세워져 있어 비 오는 날도 이용할 수 있었다.

평상 위에 방에서 가져나온 것들을 늘어놓은 강지한의 모습을 유정미가 카메라로 담았다.

“지한 오빠, 오늘 뭘 만드실 건가요?”

“소금이가 우리 집에 완전히 들어온 기념으로 강아지용 간식을 만들어볼 겁니다.”

“와~ 어떤 간식이죠?”

“연어와 두부스테이크, 그리고 야채스프입니다.”

“우와. 내가 먹으면 안 돼죠?”

“네.”

“헐. 단호박, 레알인가요? 진짜 기대된다. 맛있게 만들어 주세요.”

“그럼요.”

대답을 한 강지한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 * *

공치산은 한 달 사이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한정국의 레시피로 만든 즉석식품이 발매되었을 당시에는 회사에서 영웅 대접을 받았으나 신푸드의 신제품들이 발매되고 난 이후부터는 역적 취급을 당했다.

한정국에게 2억을 공으로 준 셈이기 때문.

게다가 신푸드와의 경합에서 밀리면 받은 돈을 토해내기로 한 한정국이 잠수까지 해버리니 더더욱 공치산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결국 한남선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 줬지만 완전히 추락해 버린 공치산의 입지는 다시 올라가기가 힘들어졌다.

그는 지금 대구의 식품생산 공장 현장에 감독관으로 와 있었다.

일주일 전만 해도 사무실 안에서 궁둥이 붙이고 일하던 그였다.

그런데 하루 종일 서서 근무해야 하는 생산파트의 감독관 일을 맡아 하자니 죽을 맛이었다.

‘내가 지방 발령이라니.’

공치산은 회사의 일방적인 지방 발령 명령에 제대로 된 준비도 못 갖추고서 부랴부랴 대구로 내려오게 된 것이다.

그의 상사는 이번 일 때문에 회사 분위기도 좋지 않고 하니 조금 잠잠해질 때까지만 지방에 가 있으라 했다.

그 말인즉 잠잠해지지 않으면 평생 본사로 복귀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공치산은 자신이 다시 서울 본사에 발을 들일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는 걸 알았다.

자신의 가족은 전부 서울에 있었다.

한데 그의 직장은 대구에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지내야 했다.

가족들이 전부 대구로 내려오면 되겠으나 이미 모든 생활이 서울에 맞추어져 있으니 그럴 수도 없었다.

결국 본사에서 불러들이지 않는 이상 공치산은 가족과 떨어져 지방의 생산공장에서 일해야 한다.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사표를 내고 다른 회사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실상 회사에서 원한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이건 권고사직이나 다름없었다.

하루 일을 끝내고 작은 원룸에 돌아온 공치산이 홀로 술을 들이켜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고는 가방에서 노트와 펜을 꺼냈다.

노트의 윗부분에는 무거운 세 글자가 천천히 적혔다.

‘사직서’.

공치산은 이 상황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사람 냄새 가득한 집이 필요했고 가족이 보고 싶었으며 아내가 챙겨주던 맛있는 밥이 그리웠다.

‘내가 등신짓을 했지.’

한 회사의 중책을 맡고 있는 사람이 신푸드를 잡는 데만 혈안이 되어서 몹쓸 계획을 세웠다가 부하 직원 한 명의 밥줄을 잘랐다.

그러고도 정신 못 차리고 또 까불었다가 이제는 자신마저 스스로 나갈 처지가 되고 말았다.

사직서에 짧은 글귀를 적어 나가는 공치산의 마음속에 그저 후회뿐이었다.

그러나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이다.

* * *

다음 날.

강지한은 일찍부터 춘천에 있는 자신의 식당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전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갈수록 직원들 간에 무지갯빛으로 연결된 선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을 뿐이었다.

특히 지한 식당 분점의 직원들이 가장 분위기가 좋았다.

점주인 강지영이 사람 다루는 솜씨가 대단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직원들 사이엔 대부분 파란색이나 무지갯빛 선들로 가득했다.

파란색은 상호간 시너지가 좋음을 나타내고 무지갯빛은 최고의 상성임을 보여준다.

특히 강지영과 초창기부터 분점의 부주방장으로 일하고 있는 여직원 허이숙은 대부분의 직원들과 무지갯빛의 상성을 자랑하고 있었다.

‘여기도 문제가 없는데.’

춘천에 있는 모든 식당들을 둘러본 강지한이 고민에 빠졌다.

그때 스마트폰이 울렸다.

전화를 건 사람은 도근한이었다.

순간 강지한이 자신의 머리를 탁 때렸다.

“이런 바보. 레스토랑을 깜빡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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