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281화 (281/330)

# 281

Restaurant 280. 이상한 퀘스트

10월 중순.

밤바람이 싸늘해지는 무렵이다.

한정국은 우유나의 집에서 보름째 기거하는 중이었다.

사실 그는 우유나에게 두 번 속은 이후 관계를 끊어버리려 했다.

하지만 삼영식품에게 받은 돈을 전부 토해내는 것도 모자라 신선정의 품격에 먹칠을 한 머저리로 낙인 찍혀 오갈 데가 없어지니 당장 우유나부터 떠올랐다.

우유나는 한 달이 넘도록 연락조차 잘 되지 않던 그를 별말 없이 받아주었다.

인터넷에서 삼영식품과 신푸드의 즉석식품 관련된 글을 늘 읽어오던 그녀였다.

그래서 한정국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익히 알고 있었다.

한정국은 신선정의 차남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도 보름간 우유나의 집에서 두문불출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서른둘이나 먹은 어른의 대처법이 아니었다.

한정국에게는 무엇인가가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었다.

본인만 모르고 있을 뿐.

연인과 함께하는 보름 동안 한정국은 불안증세에 시달렸다.

스마트폰을 들고 오지 않아 연락 올 곳이 없음에도 시종일관 안절부절못했다.

우유나가 외출이라도 하려 치면 누구를 만나는 거냐고 히스테릭하게 따져 물었다.

그렇다 보니 이제는 우유나가 지쳐가고 있었다.

‘이별이 다가오나 보다.’

차라리 자신에게 연락조차 않던 냉정한 애인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덜 성숙한 남자는 싫었다.

이제 우유나도 결혼 상대를 찾고 싶었다.

한정국의 지금 상태를 보면 평생 함께할 동반자로서는 믿음이 가질 않았다.

지금도 그랬다.

“오빠, 나 친구 만나고 올게.”

외출 준비를 마친 우유나가 구두를 신으며 말하자 방에 틀어박혀 있던 한정국이 후다닥 달려 나와 물었다.

“친구 누구?”

“민아. 전화해서 확인시켜 줘?”

“……언제 들어올 건데?”

“한 시간 내로 올게. 됐지?”

“알았어.”

한정국을 안심시킨 우유나는 건물을 나서자마자 바로 신선정 사무실에 전화를 넣었다.

“여보세요. 네, 신선정이죠? 사람 한 분 찾아가시라고 전화 드렸어요. 신선숙수님 차남 한정국이라는 분인데요. 그래요. 몹시 찾고 계실 줄 알았어요. 여기가 어디냐면요.”

* * *

우유나가 나간 뒤 한정국은 여전한 불안감에 시달렸다.

그의 머릿속은 신호등이 고장난 사차선의 사거리 도로처럼 엉망진창이었다.

제대로 된 사고가 불가능했다.

한마디로 어마어마한 패닉 상태.

‘이대로 얼마나 더 잠적하고 있어야 하지? 한 달? 두 달? 아니, 세 달 정도면 조용해질까? 형이랑 아버지는 내 걱정을 하고 있을 테지. 어디 가서 죽어버리는 건 아닌가 하고.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서라도 나서주실 거야.’

한정국은 자신을 걱정하는 집안사람들이 삼영식품 측과 완만하게 일을 해결해 줄 것이라 믿었다.

자신에 대한 걱정이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한 실수를 눈감도록 만들어 줄 테니까.

한동안 뉴스를 지켜보다가 삼영식품의 얘기가 잠잠해지면 그제야 가족에게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런 망상에 빠져 있을 때였다.

띠띠띠띠-.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능숙하게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나 왔어?”

한정국이 얼른 현관문까지 달려가서 우유나를 반겼다.

그런데 열린 문 너머로 서 있는 건 성난 맹수 같은 얼굴을 한 그의 형, 한민국이었다.

“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한민국이 낮게 물었다.

“혀, 형이 여길 어떻게…….”

한정국은 당황해서 덜덜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그때, 한민국의 옆에서 한남선의 개인 비서 구민호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도련님, 조용히 함께 가시죠.”

“구 이사님, 여기 왜 왔어요? 돌아가세요.”

다급히 문을 닫으려 하는 한정국.

하지만 그보다 한민국이 더 빨랐다.

탕.

한민국은 닫히려는 문을 손으로 강하게 밀었다.

그러자 벌컥 열리는 문의 반동을 견디지 못한 한정국이 뒤로 넘어졌다.

쾅!

“윽!”

그 꼴을 보며 한민국이 한숨을 쉬었다.

“후우. 정국아, 아무래도 너는 말로 해서는 안될 것 같다.”

“뭐야.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이 집 비밀번호는 또 어떻게 알아냈…… 아, 이거 꿈인가.”

급기야 현실도피까지 하는 한정국.

볼썽사나운 동생의 모습에 한민국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구 이사님, 먼저 내려가 계세요.”

“……살살 하세요, 큰 도련님.”

구민호가 한정국에게 측은한 시선을 보내고서 자리를 피했다.

그러자 한민국이 현관문을 닫고 널부러져 있는 동생에게 다가갔다.

한정국은 꿈에서 깨고 싶기라도 한 듯 자신의 뺨을 살짝살짝 때려댔다.

“그렇게 해서 깨겠냐?”

한민국이 말을 하는 순간 한정국의 눈에 별이 번쩍했다.

짜아악!

“어억!”

무쇠솥 같은 손바닥이 왼쪽 뺨을 무섭게 후렸다.

한정국의 볼 안쪽이 이에 찧어 터지며 피가 입안 가득 찼다. 그 아찔한 고통에 한정국은 이것이 현실임을 자각했다.

그리고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의 형이 한 번 꼭지가 돌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았으니까.

“형, 자, 잠깐만!”

짜아악!

“억!”

한민국은 동생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없이 반대쪽 뺨을 날렸다.

단 두 대만, 그것도 손바닥으로 맞았을 뿐인데 한정국의 입안은 걸레짝이 되었다.

입술과 턱이 흘러나온 피로 흥건하게 젖었다.

한민국은 동생이 바닥에 흘린 피를 보며 말했다.

“남의 집 바닥이다. 피 닦아.”

한정국이 아픔을 돌볼 새도 없이 혼비백산해서 소매로 피를 훔쳤다.

“끄흐윽.”

그런 자신의 처지가 서러웠는지 급기야 울음을 터뜨렸다.

와중에도 더는 피가 바닥에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남는 소매로 입을 틀어막았다.

피를 닦으라고 했는데 떨어뜨리면 어디 한 군데 부러질 때까지 얻어터질 게 분명했다.

화가 난 형은 그런 사람이었다.

흰 소매가 붉게 변하는 대신 바닥은 깨끗해졌다.

“나와.”

명령하듯 말을 뱉고서 뒤돌아서는 형을 향해 동생이 물었다.

“끄, 끝난 거야?”

“나머지는 집에 가서 맞자.”

“…….”

“여기서 맞을래?”

한정국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된 심정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우유나의 집에서 나왔다.

‘이제 난 죽었구나.’

머릿속엔 그 생각만 가득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계속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내가 여기 있는 줄은 어떻게 알고. 비밀번호는 또 어떻게…… 설마.’

비로소 한정국은 우유나가 자신을 버렸음을 깨달았다.

“끄흐으으윽.”

그의 눈에서 더 많은 눈물이 쏟아졌다.

“흐느끼지 마.”

“으읍.”

하지만 그마저도 한민국의 한마디에 쏙 들어가고 말았다.

* * *

한정국은 여기저기 불어터지고 멍이 든 얼굴로 한남선의 앞에 앉아 있었다.

한남선의 사무실에는 소파가 있었으나 한정국은 바닥에 죄인처럼 무릎을 꿇은 상태였다.

그 모습을 그의 아버지가 성난 호랑이처럼 쏘아보고 있었다.

“저 새끼 꼬라지가 왜 저러냐.”

신선정 절대권력자의 물음에 뒤에 시립해 있던 구민호가 대답했다.

“큰 도련님께서 혼을 좀 내신 모양입니다.”

“얼굴은 좀 피해서 때리지. 입술이 다 터져서 묻는 말에 대답이나 제대로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구민호는 태연한 척했으나 속으로는 적잖이 받은 충격을 희석시키는 중이었다.

한남선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당연한 듯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과연 저것이 친아버지의 입에서 튀어나올 수 있는 말이던가.

한남선이 자식보다 가문의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이라는 걸 대번에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는 잘난 자식에게 더 집중하고 못난 아들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이 비뚤어진 교육법의 폐해를 입은 결과물이 한정국이었다.

“우선 왜 그랬는지부터 들어보자. 삼영식품에 신선정 이름까지 들먹이며 같지도 않은 즉석요리를 개발한 이유가 뭐야? 내 얼굴에 똥칠하겠다는 심산이었느냐?”

“아닙니다.”

한정국은 벌벌 떨며 대답했다.

“결과가 그리됐는데 아니라고 한들 누가 믿어주겠어. 네 덕분에 신선정의 매출이 10%나 급락했다. 브랜드 이미지라는 건 한 번 손상되어 버리면 다시 고쳐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란 말이야, 이 멍청한 자식아!”

“죄, 죄송합니다, 아버지!”

“누가 네 아버지야! 너처럼 미련한 새끼 자식으로 둔 기억 없어! 아버지라는 말 한 번만 더 담았다간 입을 찢어놓을 줄 알아!”

“……!”

한정국은 지금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고 한 말보다 입이 진짜 찢길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숨이 턱 막혔다.

“병신 같은 게 여태 해왔던 것처럼 눈에 띄지 말고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면 좀 좋아?”

“…….”

“네가 삼영식품에 받았던 돈이 2억이었지. 내가 2억 더 얹어서 줬다. 그걸로 신제품에 신선정과 네 이름을 떼는 것으로 합의 봤다.”

“아……. 감사합니다.”

역시 아버지는 날 버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한정국이었다.

그러나 그 착각이 무너지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니 네가 받아 처먹은 2억 가지고 내 집안에서 나가라.”

“……네?”

“내가 너한테 해준 집이며 차, 신선정에서의 네 직함. 전부 내놓고 나가.”

“아, 아버지!”

“입 찢는다고 했다.”

“어, 어떻게 그럽니까? 집도 차도 직장도 다 내놓으면 전 어떻게 살라는 겁니까?”

“누가 다 뺐었어? 2억은 그냥 줬잖아. 그거 가지고 살아.”

겨우 2억 가지고 대체 어찌 살라는 것이냐 따지고 싶었으나 한정국은 입을 닫았다.

여기서 한남선을 더 긁어봤자 자신에게 득 될 것이 없었다.

잘못했다간 2억마저도 빼앗길지 모르는 일.

“……그만 가보겠습니다.”

한정국은 피눈물을 삼키며 굽혔던 다리를 폈다.

신선정의 이름을 잃는다는 것은 곧 그의 모든 인맥도 끝이 난다는 말과 같았다.

그에게 잘 보여 신선정과의 연줄이나마 이어가려던 모든 이들이 이제는 등을 돌릴 것이다.

이곳저곳에서 명예 이사며, 뭐며 해서 얻은 자리들도 모조리 사라질 것이다.

‘다 끝났다.’

그동안 호화로운 생활에 젖어 있던 한정국에게는 2억이란 한없이 작은 돈이었다.

발가벗겨져서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심정이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손을 내밀 수 없었다.

집 밖으로 나오자마자 우유나에게 전화해 보았으나 없는 번호라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다리가 풀린 한정국이 정원에 주저앉아 비참하게 흐느꼈다.

괜한 자존심 하나 때문에 강지한을 눌러 버리려 했던 자의 말로는 비극으로 끝이 났다.

* * *

지한 객잔이 오픈한 지도 세 달이 지났다.

지한 객잔은 이제 명실공히 춘천 최고의 중식당으로 손꼽혔다.

전국에서 알아주는 중식당이 되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중식 덕후 호중원과 노력하는 천재이자 슬로우 스타터인 하정운은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며 주방을 이끌어 나갔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강지한이 없으면 조금 애를 먹는 모습들이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조금도 그런 것이 보이지 않았다.

해서 요즘엔 강지한이 슬슬 손을 떼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동안 강지한은 지한 푸드의 식당 여러 곳을 돌며 성실히 일하는 직원들에게 가지고 있던 아이템을 아낌없이 퍼주었다.

본인들은 모르고 있었으나 뭔가 갑자기 일의 능률이 올랐다는 건 확실히 인지하는 모습들이었다.

강지한은 스스로 즐겁게 일하는 직원들을 보면 무엇이라도 조금 더 챙겨주고 싶었다.

하지만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법.

열심히 하는 직원이 있으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이제 강지한이 일일이 직원들의 면접을 보고 뽑기에는 그 규모가 너무 커져 버렸다.

해서 그의 손을 거치지 않고 뽑힌 직원들 중에는 정직도나 신뢰도가 현저히 떨어지거나 영 일할 마음이 없는 듯한 자세로 시간이나 때우려는 이들이 존재했다.

강지한은 그런 이들은 가차 없이 내보냈다.

일전의 경험들로 인해서 사람을 너무 믿어주기만 하는 것도 좋지 못하다는 걸 깨우친 그였다.

일자리를 잃는 사람도, 그를 자르는 사람도 속이 편할 리 없었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지금 아프고 마는 것이 서로에게, 그리고 지한 푸드의 입장에서 나았다.

아울러 강지한은 열심히는 하지만 다른 직원들과의 연결고리가 검은색이거나 붉은색일 경우 일자리를 옮겨주는 방안을 택했다.

강지한의 눈에만 보이는 직원들 사이의 연결선 중 검은색은 서로의 상성이 좋지 않다는 걸 뜻하고 붉은색은 상호간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나타낸다.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보이면 지한 식당에서 일하고 있을 경우 지한 분식이나 지한 김치만두 등등 다른 곳으로 보냈다.

그리고 조금 더 지켜본 뒤 옮긴 자리에서 문제가 없으면 계속 일을 하게 두었다.

한데 거기에서도 문제가 생긴다면 본인에게 잘못이 있는 것이니 이 또한 어쩔 수 없이 자르는 쪽을 택하곤 했다.

물론 이런 상황은 지한 푸드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수습 기간의 경우에 대부분 나타난다.

이 과정을 잘 넘겨서 정식 직원이 되면 별문제 없이 잘 지내고는 했다.

아무리 강지한이 지한 푸드의 대표라 해도 정직원이 된 이들을 함부로 자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이상한 퀘스트에 강지한은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퀘스트-보름 내에 정직원 한 명을 해고하세요.]

[남은 시간: 15일]

[클리어 보상: 영어 마스터 패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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