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0
Restaurant 279. 회와 초밥
강지한은 한동안 멍했다.
할리우드에서 설탕이에게 연락이 왔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설마 미국 영화시장에서 설탕이를 원한다는 거야?”
-나도 김상수 감독님한테 들은 전해 들은 얘긴데, 앤드류 바그너라는 감독한테 이메일이 왔대. 현재 굿 필링이라는 영화를 촬영 중이고 마무리 단계래. 그래서 차기작으로 동물과 사람의 교감을 보여주는 영화를 생각 중인데 설탕이 왔다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나 봐. 그래서 리메이크를 하고 싶은데 주연 강아지는 설탕이가 그대로 연기해 줬으면 한다고 했다네?
“그래? 아…… 일단 내가 지금 방송을 시작해서, 끝나고 난 다음에 다시 연락 줄게.”
-오케이~
이향숙과의 통화를 끝낸 후 강지한은 바로 방송에 들어갔다.
이제 그의 채널 구독자 수는 40만 명까지 늘어나 있었다.
일반인치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구독자 수가 늘어가는 중이었다.
구독자 수가 늘어난 만큼 라이브 방송의 시청자 수 또한 늘어났다.
지금은 방송을 켜면 최대 3,500명 이상의 시청자를 끌어모을 수 있었다.
한데 여기서 발생하는 수입이 짭잘했다.
그들이 방송에 만족하며 보내주는 후원금이 어마어마했다.
아울러 채널에 업로드한 다시보기 영상들은 총 조회수, 방송 시간, 광고 시청 수 등등에 따라 따로 수익이 집계되었는데 그 또한 액수가 상당했다.
방송이 잘되어가니 강지한도 신이 났다.
그래서 갈수록 더 열심히 방송에 임하게 됐다.
오늘 그가 만들어 먹으려는 것은 회와 초밥이었다.
갖가지 횟감을 준비한 뒤, 그 자리에서 직접 회를 떠 초밥을 만들어 먹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줄 생각이었다.
강지한이 준비한 횟감은 광어, 연어, 도미, 농어였다.
이미 강지한의 회 뜨는 실력은 배틀 셰프에서 방송을 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실력이 늘었다.
주방에 선 강지한이 생선들의 피를 빼는 작업부터 들어갔다.
생선의 아가미를 벌려 그 사이로 회칼을 넣어서 심장을 찌른 뒤 꼬리뼈를 자르면 끝.
이렇게 피를 미리 빼주면 살이 물러지지 않아 식감이 쫄깃하게 살아난다.
“그럼 광어부터 해체 들어가겠습니다.”
멘트를 날린 강지한은 능숙하게 스마트폰으로 BGM을 깔았다.
그의 초이스는 요새 한창 인기 있는 의학 드라마의 수술 장면에서 나오는 음악이었다.
시청자들이 강지한의 센스에 즐거워했다.
몇몇 사람들은 후원금을 보냈다.
강지한은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며 빠르게 해체 작업을 시작했다.
첫 번째 타자는 광어.
강지한의 손에 잡혀 도마 위에 오르자마자 데바칼에 척추가 끊어졌다.
데바칼은 날이 두껍고 폭이 넓은 식칼을 말하는 것으로 정식 명칭은 데바보초(でばぼうちょう)라고 한다.
그걸 줄여서 데바칼이라고 부른다.
사시미칼이라고 부르는 일반 회칼은 회를 뜨는 작업용이라 뼈를 부러뜨리는 것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척추가 잘린 광어는 내장이 제거된 후, 머리가 잘렸다.
그리고 뼈와 살이 순식간에 분리되며 두 장의 살덩이가 나왔다. 그것은 다시 반씩 잘려 네 덩이가 되어 껍질이 벗겨졌다.
강지한이 그중 두 덩이를 두툼하게 썰어 접시에 담았다.
그는 회를 얇게 써는 것보다 두껍게 써는 걸 선호했다.
그래야 식감이 더 살아났고 한 점을 입에 넣어도 만족스럽기 때문이었다.
강지한의 귀신같은 손놀림에 시청자들은 난리가 났다.
그의 해체 기술은 마치 수산시장에서 몇십 년 일을 해온 장인의 그것을 떠올리게 했다.
강지한은 계속해서 다른 생선들도 회를 쳤고, 15분 만에 네 마리의 생선 손질이 전부 끝났다.
커다란 네 개의 접시에 서로 다른 생선의 살점들이 개화한 꽃처럼 아름답게 데코레이션되어 담겼다.
“자, 여러분. 맛있는 회가 완성되었습니다. 가까이서 보여드릴게요.”
강지한이 카메라 앞으로 회가 담긴 접시를 차례차례 가져갔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줄줄 흐를 만큼 싱싱한 회가 시청자들의 식욕을 마구 자극했다.
그때였다.
강지한의 눈앞에 메시지가 나타났다.
[일식 요리 장인 고(故) 미야타케 카즈타카의 지식이 충분한 경험치가 쌓여 레벨 업 합니다.]
[일식 요리 장인의 지식이 레벨 3이 되었습니다.]
[레벨 업으로 인해 전보다 더 많은 지식이 오픈됩니다.]
드디어 일식 요리 장인의 지식도 3레벨을 달성했다.
강지한의 머릿속에 새로운 일식 요리 기법들이 파도처럼 밀려 들어왔다.
그에 지한 푸드의 다음 목표가 바로 정해졌다.
중식 다음에 강지한이 손을 댈 분야는 일식이 됐다.
“그럼 이제 맛있게 먹어보도록 할게요.”
일식 요리 지식이 레벨 업 하며 기분이 좋아진 강지한은 광어 회 세 점을 집어 초장에 푹 찍어서 한 번에 입에 넣었다.
쫄깃쫄깃하며 신선한 광어의 살점이 혀 위에서 통통 튀며 춤을 추었다.
매콤새콤한 초장이 뒤섞인 광어를 꿀꺽 삼킨 강지한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말 맛있네요. 그런데 이렇게 먹으면 회 본연의 맛보다는 초장맛만 너무 강하게 나죠? 그런 거 싫어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보시다시피 막장과 간장도 준비했어요. 이번에는 막장에 한 번 찍어볼게요.”
다시 세 점이나 집힌 광어살이 막장에 푹 찍혀서 강지한의 입으로 들어갔다.
막장은 초장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혀를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자, 그럼 간장은 지느러미살을 찍어 먹을게요.”
지느러미살은 광어 한 마리를 잡았을 때 조금밖에 나오지 않는 부위다.
다른 부위보다 쫄깃하고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배가되는 게 그야말로 광어의 백미라고 할 수 있었다.
강지한의 경우, 지느러미살은 그 풍미를 온전히 느끼기 위해 간장에 찍거나 와사비만 살짝 올려 먹는 것을 좋아했다.
강지한의 젓가락이 지느러미살을 집었다.
그것을 간장에 찍어 입에 넣고 씹으니 참을 수 없는 고소함이 입안 가득 퍼졌다.
“아, 진짜 맛있네요.”
그가 나머지 생선들도 전부 맛을 보았다.
농어, 도미, 연어.
물고기들은 그 생김새만큼이나 맛도 다채로웠다.
간혹 회를 잘 못 먹는 사람들은 물고기 살맛이 거기서 거기가 아니냐고 한다.
강지한도 처음에는 그랬다.
늘 초장 맛으로 회를 먹었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의 권유로 간장에 찍어 먹으면서부터 회맛을 알게 되었다.
“그럼 이제 초밥을 만들어 먹어볼까요.”
각각의 회 맛을 본 강지한이 초대리를 섞어 만든 밥을 가져온 뒤, 남겨둔 횟감들을 초밥용으로 썰었다.
이윽고 그의 손안에서 초밥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한 입 크기의 밥에 회를 얹어 한 번, 두 번, 세 번을 쥐는 것만으로 완벽한 부채꼴 모양의 초밥을 완성해냈다.
보기에는 별거 아닌 것 같을지 몰라도 대단한 기술이었다.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초밥까지 만든 강지한은 이제 정말 먹는 행위에만 집중했다.
그럴수록 방송의 시청자들은 어마어마한 위장 테러를 당했다.
* * *
방송이 끝나니 새벽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샤워를 마치고 방에 들어온 강지한이 이불에 드러누웠다.
그러자 거실에서부터 토다다다! 하는 발걸음 소리 여러 개가 들려왔다.
곧이어 열린 문 너머로 해맑게 달려오는 인절미 육남매의 모습이 보였다.
녀석들은 너도나도 강지한에게 뛰어들어 몸을 비비고 얼굴을 핥아댔다.
하여튼 딴짓을 하고 있다가도 자신이 자려고 누우면 귀신같이 알고서는 이렇게 올라타는 녀석들이 강지한은 마냥 귀여웠다.
인절미 여섯 마리의 혓바닥 공격을 한참 당하고 있던 중 설탕이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인절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후다닥 엎드려서 눈을 감고 자는 척했다.
“설탕아, 이리 와.”
헥헥헥!
강지한의 부름에 설탕이는 꼬리를 팽팽 돌리며 걸어와 주인의 품에 폭 안겼다.
“우리 설탕이 요새 애들 돌보느라 많이 힘들지?”
왕왕!
“아니라고? 대견하네, 내 새끼.”
강지한은 설탕이의 주인이면서 인절미 육남매의 주인이기도 했다.
인절미들은 설탕이가 강지한을 괴롭힌다고 혼낼까 봐 자는 척을 하면서도 주인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귀를 쫑긋쫑긋 움직였다.
강지한은 그런 줄도 모르고서 설탕이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근데 설탕아. 너 할리우드에서 연락 왔다던데…… 해외진출 하고 싶니? 아직 확실한 내용은 모르겠는데 미국 영화판에서 너를 원하는가 보더라. 어때?”
왕! 헥헥.
“좋다고?”
왕!
“흐흐. 그래. 너처럼 촬영 좋아하는 애가 육아 때문에 오래 쉬긴 했지. 내일 아빠가 향숙이 누나한테 전화해서 어떤 내용인지 확실히 물어볼게.”
설탕이가 신이 나서 강지한의 얼굴을 핥았다.
“아이고, 예뻐라.”
강지한도 설탕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주인의 따스한 손길에 설탕이의 눈이 기분 좋게 감겼다.
인절미 육남매가 실눈을 뜨고 그런 설탕이를 힐끔힐끔 훔쳐봤다.
그러다가 꼬물꼬물 기어서는 설탕이 주변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자기들도 쓰다듬어 달라는 것.
“푸흐흐. 바보들아. 그렇게 움직일거면 뭐하러 자는 척하냐.”
강지한이 인절미들을 하나하나 쓰다듬어 주었다.
인절미들은 벌렁 뒤집어져 배를 내밀기고 하고 강지한의 손을 핥기도 하면서 좋아했다.
설탕이도 오늘만큼은 군기를 잡지 않고 그런 새끼들을 지그시 바라봐 주었다.
그렇게 강아지들 사이에서 행복한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 * *
굿 필링의 영화감독 앤드류 바그너는 촬영 기간 동안 에이사와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가 됐다.
앤드류는 에이사가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친화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이나 많은 탑배우 데이비드 캐머런은 물론, 촬영장의 모두와 가족처럼 친하게 지냈다.
배우, 스텝 할 것 없이 전부 에이사를 좋아했다.
그렇다 보니 에이사가 요즘 강지한이라는 한국 요리사에게 빠져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데이비드는 이미 에이사만큼 강지한을 좋아하게 되어 인튜브 쿡방 채널을 시간 날 때마다 보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배우들이 하나둘 강지한의 채널을 보기 시작하더니 그것이 스텝들에게도 전염되었고 결국 앤드류 감독까지 강지한의 영상에 관심을 갖게 됐다.
‘어디 한 번 잠깐만 봐볼까?’ 하는 생각으로 채널에 접속한 앤드류는 자신의 두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경험을 했다.
그만큼 강지한의 쿡방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었다.
이후로 앤드류도 영화판의 다른 이들처럼 강지한의 팬이 되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영화 촬영 중 쉬는 시간이 주어지면 하나같이 스마트폰으로 강지한의 영상을 보는 기이한 광경이 펼쳐졌다.
그러던 와중 영화 마무리를 며칠 남겨둔 상황에서 원작 소설가 김두찬이 응원차 현장을 방문했다.
그는 스텝, 배우들과 인사를 나눈 뒤 영화 촬영 과정을 묵묵히 구경했다.
오늘 하루 잡혀 있던 모든 촬영이 끝나고 김두찬은 앤드류 감독의 집에서 주연 배우들과 조촐한 술자리를 갖게 됐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던 와중 앤드류 감독은 혹시 이 사람을 아느냐며 김두찬에게 강지한의 채널을 보여주었다.
김두찬은 이를 보자마자 매우 반가워하며 그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음을 알려주었다.
그 말에 에이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강지한의 광신도나 다름없는 그는 지금 이 순간 김두찬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의 쿡방을 보고 있으면 차기작은 요리 영화로 만들고 싶어질 정도예요.”
앤드류 감독의 말이었다.
“아직 차기작이 정해지지 않았나요?”
김두찬이 묻자 앤드류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정해졌어요. 동물과 인간의 교감에 관한 영화를 찍고 싶어서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있었죠. 그런데 얼마 전 한국에서 개봉했다는 영화를 봤어요. 설탕이 온다라는 영화였는데 정말 좋았어요. 꼭 리메이크를 하고 싶을 만큼.”
“아, 저도 봤어요. 정말 잘 만든 영화죠.”
“그렇죠? 그런데 이왕이면 영화 속 배우와 환경이 바뀌더라도 강아지는 같은 강아지가 출연을 해줬으면 하는데…… 가능할지 모르겠군요.”
앤드류의 말에 김두찬이 피식 웃으면서 그가 들고 있는 스마트폰의 액정을 가리켰다.
액정 속에는 여전히 강지한의 채널이 떠 있었다.
“설탕이 주인에게 바로 물어보면 되겠네요.”
“무슨 말입니까?”
“감독님이 보는 그 영상 속 사내, 강지한이 강아지의 주인이거든요.”
김두찬의 설명은 앤드류의 뒤통수를 얼얼하게 만들었다.
아직 강지한의 방송에는 설탕이와 인절미 육남매가 등장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해서 강지한이 그 영화 속 강아지의 주인이라는 걸 앤드류는 몰랐다.
적잖이 놀란 앤드류는 다음 날, 바로 한국의 영화제작사에 연락을 취해 설탕이 온다의 리메이크 건에 대해 얘기를 했다.
영화제작사는 할리우드의 리메이크를 매우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에 앤드류가 주연 강아지를 그대로 등장시켰으면 하는데 가능할 것인지 물었다.
영화제작사는 이러한 사실을 설탕이 온다의 감독 김상수에게 전해주었다.
자신의 영화가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된다는 소식에 김상수는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설탕이만 출연 가능하면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가 가능하다는 얘기지?’
그는 바로 강지한에게 전화를 하려다가 공식적인 설탕이 매니저 이향숙에게 먼저 연락을 취했다.
강지한은 너무 바빠서 함부로 연락하기가 미안했기 때문이다.
김상수의 연락을 받은 이향숙은 늦은 밤 강지한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사실을 자세히 알려주려 했으나 그가 생방송 라이브를 해야 하는 바람에 급히 통화를 끝내고 말았다.
그다음 날.
강지한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이향숙과 통화했고, 자초지종을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설탕이가 하고 싶대, 향숙아. 김상수 감독님께 그렇게 전해드려.”
강지한은 설탕이의 뜻을 알려주었고, 이향숙은 그것을 김상수에게 전달했다.
김상수는 이를 다시 자신의 영화제작사에 말했으며, 영화제작사는 앤드류에게 연락해, 설탕이의 출연이 가능함을 알려주었다.
앤드류는 빠른 시일 내로 한국을 방문하겠다는 말로 화답했다.
그렇게 설탕의 할리우드 진출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