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6
Restaurant 275. 나비 효과
‘호감 받고 성공 더!’
에이사 버터필트가 주연으로 참여한 영화의 제목이었다.
그것은 세계적인 팬을 보유하고 있는 김두찬 작가의 역작으로 국내에서보다 미국에서 먼저 영화 제작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팬들이 미국 현지에도 상당했고, 그의 작품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들은 하나같이 상당한 스코어를 자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화의 영어명은 ‘굿 필링(Good feeling)’으로 정해졌다.
한국엔 짙은 밤이 내렸으나 미국은 이제 아침을 겨우 벗어난 시각이었다.
에이사는 오전 촬영을 위해 일찍부터 현장에 나왔다.
그리고 촬영 준비가 마무리되는 동안 본인의 트레일러 안에서 인튜브 라이브를 시청하는 중이었다.
그가 시청 중인 건 강지한의 방송이었다.
방송을 시청하는 에이사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는 매니저 ‘디안드레 본즈’는 뿌듯함을 감출 수 없었다.
‘다행이군, 제대로 먹혀서.’
에이사는 영화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순간 소속사가 생겼다. 당연한 수순으로 매니저도 붙었다.
디안드레는 자신의 배우를 위해서 열심히 일했다.
에이사의 컨디션을 매일 같이 체크하고 그가 싫어하는 것을 파악해서 스트레스받을 일은 애초에 단절시켰다.
반대로 그가 좋아하는 취미, 서적, 음악, 방송, 음식 등등을 파악해서 언제든 접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에이사는 그 모든 것들 중 먹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그렇다고 체중 관리가 안 될 만큼 많이 먹는 건 아니었다.
해서 디안드레는 에이사가 원하는 음식이 있다고 하면 몇 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구해다 주고는 했다.
이 방법이 영화 촬영 중반부까지는 잘 먹혔다.
영화라는 건 어마어마한 감정 노동이다. 실제가 아닌 꾸며진 상황 속에 몰입에서 없는 감정을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배우들은 심한 정신적 피로에 시달린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배우들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며 짧은 시간이나마 푹 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중요했다.
에이사의 컨디션이 바닥을 칠 때마다 디안드레는 그가 원하는 음식을 정성스레 사다 주었다.
한데 영화가 후반부에 들어가면서부터 이 방법도 먹혀들지를 않았다.
에이사는 어떤 음식을 가져와도 심드렁해서, 한국의 강지한이 만드는 음식을 먹고 싶다는 말만 푸념처럼 늘어놓을 뿐이었다.
디안드레는 대체 강지한이 누군지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타국에서 살아가는 이 사내의 히스토리를 알게 되었다. 그 3년 동안의 짧지만 영화 같은 성공기에 디안드레는 푹 빠져들고 말았다.
처음에는 에이사를 위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재미있어서 강지한을 파고 있었다.
그렇게 강지한에 대한 조사를 꾸준히 해오던 어느 날.
그가 인튜브에서 라이브 방송을 한국 시각으로 매일 밤 11시에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것이 일주일 전의 일이다.
디안드레는 이를 바로 에이사에게 알려주었다. 강지한의 라이브 방송이 그에게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에이사는 휴식을 취할 때마다 강지한의 방송을 꼬박꼬박 챙겨보았다.
라이브 방송을 할 때는 라이브로 즐겼고, 방송 시간이 아닐 때는 인튜브 채널에 업로드된 지난 방송들을 보고 또 봤다.
강지한의 인튜브를 접한 뒤로 에이사의 컨디션은 항상 좋았다. 격한 감정 연기를 하고 나서도 지치는 법이 없었다.
“영화 촬영이 끝나면 바로 한국부터 갈 거예요.”
에이사는 버릇처럼 그 말을 달고 살았다.
그쯤 되니 디안드레도 점점 강지한의 음식이 어떤 맛일지 궁금해졌다.
“매니저로서 혼자 보낼 수는 없다는 거 알지?”
디안드레의 속내를 뻔히 알고 있는 에이사가 기분 좋게 웃었다.
“하하, 따라오지 않는다고 하면 멱살 잡고서라도 끌고 가려 했어요. 당신이 없었으면 난 이렇게 잘 해내지 못했을 거예요. 같이 한국에 가요. 그리고 진짜 맛이라는 것이 무언지 느껴보세요.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어요.”
“기대하도록 하지.”
디안드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누군가 트레일러의 문을 두들겼다.
영화 스텝이었다.
“에이사! 촬영 들어갑니다.”
“방송 아직 안 끝났는데.”
에이사가 아쉬운 얼굴로 입맛을 다시며 트레일러 문을 열고 나갔다.
디안드레는 그에게 넘겨받은 스마트폰 액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서는 강지한이 물에 푹 익힌 닭을 열심을 먹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음. 비주얼은 영 별론데…… 맛있게도 먹네.”
꿀꺽.
저도 모르게 침이 넘어가는 디안드레였다.
* * *
8월 4일 일요일.
오늘은 지한 푸드 계열의 모든 식당이 쉬는 날이었다.
그래서 지한 푸드의 입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으로 괴로운 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식당에서 일을 하는 직원들에게는 꿀맛 같은 휴식이 주어지는 하루였다.
다들 가족, 혹은 연인, 친구들과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마음대로 쉬지 못하는 분야가 하나 있었다.
바로 밥차였다.
밥차의 음식을 담당하고 있는 독고진과 운전 담당인 오만석은 늘 영화촬영장의 스케줄에 맞춰 움직여야 했다.
그래서 쉬는 날이 일정치 않았다.
이것이 피곤했던 독고진은 강지한에게 얘기해 지한 밥차도 금, 토, 일은 예약을 받지 않고 쉬고 싶다 말했다.
독고진은 지한 밥차의 음식뿐만 아니라 지한 반찬의 반찬들도 책임을 지고 있었다.
물론 그의 일을 도와주는 보조 요리사가 여섯이나 됐지만 그럼에도 버거움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일주일에 지한 밥차를 세 번 정도만 쉬면 그나마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강지한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이면서 파격적인 제안까지 했다.
지한 밥차의 운영을 일주일에 화, 목 두 번만 하자고 한 것.
안 그래도 촬영바닥의 밥차 시장을 지한 밥차가 너무 독점하는 것 같아 신경이 쓰였던 차였다.
지한 밥차가 일주일에 오일을 쉬면 그 자리를 다른 밥차들이 충분히 나눠 먹을 수 있었다.
독고진은 바로 강지한의 말대로 따르겠다 했고, 다음 주부터 다른 직원들처럼 휴일에는 개인적인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사실 그동안 이향숙에게 마음이 있으면서도 제대로 대시하지 못한 것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기 때문이다.
지한 밥차 일을 시작하기 전엔 툭하면 이향숙에게 들이댔던 그였다.
한데 바빠진 이후로는 하루에 연락 한 번 하는 것이 힘들었다.
독고진은 이러다가 이향숙을 다른 놈이 채가면 어쩌나 걱정이었다.
한데 상황은 그가 걱정하는 것과 정반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늘 연락해 오던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연락이 뜸해지니 괜히 독고진이 신경 쓰이는 이향숙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먼저 독고진에게 연락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제야 이향숙은 스스로의 마음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본인도 독고진에게 어느 순간부터 이성으로서 끌리고 있던 것.
사실 몇 달 전, 설탕이를 매일 봐주는 이향숙이 고마워 뭐라도 해주겠다고 한 강지한에게 요리를 가르쳐 달라 한 것도 독고진에게 음식을 만들어주기 위함이었다.
이향숙은 그동안 강지한에게 열 번의 레슨을 받으며 집에서도 꾸준히 연습을 해온 결과 요리 실력이 상당히 늘었다.
하지만 독고진과 만날 시간이 없으니 마냥 실력만 쌓일 뿐 도통 선보일 기회가 없었다.
그러던 와중 독고진에게 데이트 요청이 왔다.
다음 주 주말에 함께 공원에 가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이향숙은 이를 받아들였고 다시 요리 연습에 박차를 가했다.
* * *
강지한의 인튜브 홈페이지는 지한 푸드의 홍보팀 오수아가 관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과거 인튜브 크리에이터로 활동한 경력이 있었기에 다른 사람보다 능숙했다.
현재는 지한 푸드의 홍보팀장직을 맞고 있는 오수아는 매일 하루에 열 번 정도씩 강지한의 인튜브 구독자 증가수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리고 매번 놀랐다.
강지한의 인튜브 구독자수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강지한이 방송을 시작한 지 보름이 지났다.
그런데 어제 마지막으로 확인해 본 구독자 수는 벌써 5만을 넘어가고 있었다.
일반인 치고는 눈이 튀어나올 만큼 빠른 속도였다.
아울러 강지한이 대단한 게 구독자 수 대비, 라이브 방송에 접속하는 시청자 수가 제법 많다는 점이었다.
다시 보기 횟수도 업로드된 영상들 하나당 전부 20만을 넘어가는 중.
하여튼 되는 사람은 뭘 해도 된다더니 강지한이 딱 그 짝이었다.
아침 일찍 회사로 출근한 오수아는 오늘도 컴퓨터를 켜고 처리해야 할 업무들을 정리한 뒤, 인튜브에 접속했다.
그런데,
“엥?”
강지한 채널의 구독자수를 확인하고서 깜짝 놀라 굳어버렸다.
혹시 본인이 잘못 본 건가 싶어 안경을 벗고 눈을 문질렀다. 그러고는 다시 안경을 쓴 뒤 모니터를 재차 확인했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아니……. 미친 거 아니야?
어제까지만 해도 5만이었던 구독자가 10만으로 껑충 뛰어 있었다.
“오류인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 만에 구독자수가 5만이나 붙는 경우는 그녀의 30년 인생에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일반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류가 아니었다.
구독자 통계를 보니 밤사이 갑작스럽게 구독자수가 확 올랐는데 대부분 외국인 유저들이었다.
특히 미국인들이 많았다.
‘뭔가 있는데, 이거.’
오수아가 인터넷에 검색을 시작했다.
그렇게 20분 정도가 흐르고 나서, 그녀는 이 사태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중견 배우 중 한 명인 ‘데이비드 캐머런’이 자신의 SNS에 강지한의 인튜브 주소를 올린 것이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자면 그는 친분이 있는 배우의 게시물을 공유한 것이었다.
최초로 강지한의 인튜브 주소를 올려 홍보한 사람은 에이사 버터필드였다.
그는 ‘정말 미치도록 식욕을 자극하는 채널’이라는 사족까지 달아 놓았다.
데이비드는 에이사와 함께 굿 필링의 주연으로 발탁되어 몇 달간 함께 생활하며 친분을 다졌다.
둘 사이에 나이 차가 제법 있었으나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죽이 잘 맞았고, 금세 오래된 친구처럼 지내게 됐다.
그렇다 보니 에이사는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들려주었고 강지한에 대한 이야기도 데이비드는 알게 되었다.
관심이 생긴 데이비드는 강지한의 채널에 들어가 동영상을 보고는 에이사처럼 푹 빠지게 됐다.
그래서 에이사가 올린 SNS의 글을 공유한 것이다.
만약 그가 공유하지 않았다면 강지한의 인튜브 구독자 수는 이렇게 많이 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데이비드와 달리 에이사는 아직 무명 배우이기 때문이다.
“와, 진짜 되는 사람은 이런 식으로도 일이 풀리는구나.”
오수아가 감탄했다.
지금도 데이비드 효과는 지속되며 구독자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이 기세면 인튜브만으로 벌어들이는 수입도 만만치 않겠는데.’
모니터에 꽂힌 오수아의 눈에 돈다발이 보였다.
* * *
늦은 밤.
집으로 귀가한 강지한은 평소처럼 인튜브 라이브로 쿡방을 시작하려 했다.
그런데,
‘……응?’
채팅창에 평소보다 영어가 많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뭐지?’
영어에 약한 강지한이 순간적으로 굳어서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그러는 사이 시청자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이제는 채팅창에 한글이 반, 영어가 반이 되었다.
강지한은 일단 영어를 못본 척하고 하던 대로 요리를 만들고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무심코 시청자수를 확인했는데, 그 수가 무려 2,500명이 넘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할리우드 배우의 스타파워는 어마어마했다.
* * *
오후 5시.
프랑스 파리의 거리는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푹 젖어 있었다.
넓은 대로변에 줄지어 위치한 저택 중 유난히 깨끗해 보이는 창문을 가진 곳이 있었다.
그 창문은 저택의 2층에 달려 있었다.
창문 너머에는 창틀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즐겁게 시청하는 금발의 남자가 보였다.
연한 갈색눈이 매력적인 ‘장루이 바로’는 데이비드 캐머런의 팬이었다.
그리고 어제 그의 SNS를 통해 강지한을 알게 됐다.
황금 같은 휴일.
장루이는 아침부터 강지한의 쿡방 영상만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그의 나이 올해로 서른여섯.
단언컨대 여태 단 한 번도 누군가가 요리하고 먹는 영상을 이렇게까지 넋 놓고 본 적은 없었다.
“이 사람의 식당은 직접 가보고 싶어지는데.”
장루이가 혼잣말을 흘렸다.
장루이의 오래된 철제 책상 위에는 명함 한 장이 놓여 있었다.
명함에는 그의 이름 ‘Jean-Louis Barrault’와 그가 다니는 회사의 상호, 회사 대표 메일, 대표 연락처만 적혀 있었다.
그 외에 개인적인 정보는 아무것도 없었다.
명함에 표기된 회사의 이름은 Michelin(미슐랭).
장루이는 미슐랭 가이드의 인스펙터(Inspector:전문 평가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