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269화 (269/330)

# 269

Restaurant 268. 공치산과 한정국

지한 객잔 오픈 첫날.

점심 피크타임부터 1, 2, 3층의 홀이 거의 빈자리가 없을 지경으로 돌아갔다.

지한 객잔의 주방에서는 10명의 직원이 눈코 뜰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홀을 담당하는 직원의 수는 무려 30명이나 되었다.

1층에 12명, 2층에 10명, 3층에 8명씩 배치를 시켜 놓고 각층 손님 수에 따라 한두 명씩 유동적으로 움직이도록 했다.

강지한은 밀려 들어오는 주문을 해결해 나가며 정신없이 손을 놀렸다.

부주방장인 하정운 또한 강지한을 도와 부지런히 음식을 만들어 나갔다.

두 사람이 투톱으로 움직이자 그 많은 주문이 쇄도함에도 요리가 안정적으로 서빙되었다.

하나의 테이블에서 첫 음식이 나오는 시간은 최장 10분을 넘기지 않았다.

후루룩! 후루룩!

여기저기서 면 빨아들이는 소리가 홀을 가득 채웠다.

“어우, 짜장면 기가 막히네. 곱빼기로 시킬걸.”

“짬뽕도 대박이에요, 여보.”

“아빠, 내가 춘천에서 먹어본 탕수육 중에 여기가 갑이야.”

“와……. 이게 진짜 볶음밥이구나. 그동안 내가 먹었던 건 볶음밥이 아니었어.”

테이블마다 요리에 대한 칭찬이 오갔다.

어느 누구 한 명 음식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가 없었다.

모든 요리들이 다 맛있지만 특히 극찬을 받는 메뉴는 짜장면과 짬뽕, 볶음밥 그리고 꿔바로우였다.

짜장면 맛이야 강지한의 노력이 뒷받침된 비법 춘장이 있었으니 말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짬뽕 또한 중식 요리 장인 여위용의 지식과 강지한의 지식을 합쳐 환상의 국물 맛을 끌어냈다.

일반적으로 중국집에서 만드는 짬뽕은 여러 가지 재료를 고추기름과 고춧가루에 볶다가 닭육수에 끓여내는 식이다.

한데 지한 객잔의 짬뽕은 닭뼈와 돼지뼈가 들어간 육수를 사용하며 특제 양념장이 따로 존재한다.

특제 양념은 고추와 표고버섯, 대파 뿌리 등의 채소와 여러 가지 해산물을 넣고 푹 끓인 육수 베이스에 고춧가루를 넣어 꼬박 하루 동안 숙성시키는 것으로 만들어진다.

이 양념장 자체가 품고 있는 감칠맛과 풍미만 해도 어마어마했다.

한데 그게 진한 육수와 함께 섞이면 폭발적인 시너지가 일어나는 것.

강지한이 여러 중식당을 돌아다니면서 먹어본 짬뽕들의 맛은 대부분 비슷비슷했다.

조미료 맛이 강하거나 맵고 짰으며 먹고 나면 속이 더부룩한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너무 국물이 묽은 곳도 있었다.

짬뽕이 국물이 묽어 버리면 차라리 짠 것만 못했다.

짬뽕 특유의 맛 자체가 살지 않기 때문.

강지한은 짬뽕의 맛과 풍미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먹고 나서 속이 거북하지 않은 진한 국물을 내고 싶었다.

그래서 만들게 된 것이 사골 육수와 특제 양념장이다.

아울러 지한 객잔의 짬뽕엔 돼지고기가 들어간다.

짬뽕은 크게 해물로만 맛을 낸 해물 짬뽕과 돼지고기가 들어가는 진한 고기 육수 짬뽕의 두 종류로 나뉜다.

지한 객잔의 짬뽕은 후자였다.

육수 자체도 사골을 사용하는데 돼지고기까지 들어가니 국물 맛이 아주 진했다.

게다가 불향도 완벽하게 담아서 새빨간 국물 한 입을 맛보는 순간 술을 먹지 않았어도 해장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지한 객잔의 볶음밥은 짜장이 밥과 같은 그릇에 담겨 나오지 않는다.

따로 조금만 담겨 나온다.

사실 강지한은 애초에 짜장을 빼려고 했다.

강지한이 만든 볶음밥은 짜장 없이 먹어도 완벽하게 맛있었기 때문.

그러나 으레 볶음밥이라고 하면 짜장이 같이 나온다는 고정관념이 대부분 박혀 있기 때문에 안 내어갈 수는 없었다.

해서 다른 접시에 조금만 담아 내어주는 것이다.

볶음밥을 서빙하는 홀직원들도 손님들에게 볶음밥 먼저 따로 드셔보시고 간이나 맛이 심심하다 싶으시면 짜장과 섞어 드시라고 필히 설명해 주었다.

강지한은 과연 짜장 없는 볶음밥이 손님들에게 얼마나 먹힐까 궁금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볶음밥과 함께 나간 짜장이 대부분 손을 거의 안 타고 돌아온 것.

그만큼 볶음밥 자체의 맛이 완벽했기에 손님들은 그 맛만을 오롯이 즐기고 싶어 했다.

짜장을 섞으면 그 특유의 맛이 흐트러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꿔바로우의 맛이야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기름에서 세 번 튀겨내어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한 고기 튀김은 새콤한 소스와 기가 막히게 어우러지며 혀를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명동 주민인 게 행복해진다.”

“나도.”

“근데 여기 배달은 안 되겠지?”

“이렇게 바쁜데 배달을 어떻게 해. 밖에 오토바이도 없더만.”

“귀찮아도 나와서 먹어야겠네. 농담 안 하고 내 귀차니즘을 무너뜨린 식당은 여기가 처음이야.”

손님들의 극찬은 끊이지를 않았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카운터를 보고 있는 직원은 계산하기 바빴다.

1, 2, 3층에서 로테이션으로 식사를 마친 손님들이 한 팀 한 팀 나오는 상황이다 보니 계산대를 비울 수가 없었다.

회전률이 빨라서 더더욱 그랬다.

지한 객잔 역시 주방은 오픈되어 있었다.

강지한은 음식을 만들면서 계산을 하고 나가는 손님들의 만족도를 힐끔힐끔 살폈다.

대부분 70 이상이었다.

높은 경우는 80까지도 만족도가 찍혔다.

지한 객잔의 스타트 스코어가 상당히 좋았다.

* * *

작년 상반기까지 대한민국 레토르트 식품의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 삼영식품이었다.

그런데 신푸드가 강지한과 손을 잡으면서 판도가 완전히 뒤집히고 말았다.

신푸드는 레토르트 식품의 혁명을 일으키며 종전의 기록들을 깡그리 갈아엎기 시작했다.

삼영식품의 마케팅 전략부에서 부장으로 일하고 있는 공치산은 연신 승승장구하는 신푸드로 인해 골머리를 앓는 중이었다.

“젠장. 원숭이도 한 번은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인데.”

이놈의 신푸드는 떨어질 줄을 몰랐다.

‘하아, 재용이는 잘 지내나.’

공치산이 서재용을 떠올렸다.

그는 삼영식품의 마케팅 전략부 과장으로 사석에서는 공치산을 형처럼 따르는 이였다.

그런데 몇 달 전, 서재용은 회사를 떠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잘렸다.

작년 6월 무렵.

공치산은 신푸드의 레토르트 식품이 승승장구하며 삼영식품의 판매고를 위협하자 서재용의 인맥을 동원해 거짓 기사를 뿌리게 했다.

물론 이런 일을 저지를 땐 그만한 대가가 필요한 법이다.

공치산은 기자에게 뒷돈을 건네주었다.

한데 이러한 사실이 만천하에 밝혀지고 말았다.

기사를 쓴 기자가 스스로 양심 고백을 하고 만 것.

그 이면엔 신푸드와 기술적 협약을 맺게 된 세진 그룹 백진목 회장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걸 공치산은 나중에서야 알았다.

한마디로 삼영식품이 신푸드에게 잽을 날렸는데, 마침 신푸드가 세진 그룹과 손을 잡게 되면서 스트레이트를 날려 버린 것이다.

기자는 양심 고백 이후 그 바닥을 떠났다.

백진목이 은밀히 보낸 사람에게 어떠한 협박을 받았던 것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 이후로 삼영식품의 이미지는 말도 못 하게 추락했다.

아울러 이 모든 일의 책임을 질 사람이 필요했고, 결국 서재용이 총대를 메게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모든 일을 계획한 공치산이 그만두는 게 맞았다.

하지만 회사 측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능력 있는 사람이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이 당연한 일.

때문에 공치산보다는 서재용을 자르고 싶었는데, 마침 양심 고백을 한 기자가 서재용의 인맥이라는 걸 알아내면서 결국 일이 그렇게 되고 말았다.

이후로 공치산은 미안해서 서재용에게 연락조차 하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휴.”

서재용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오는 공치산이었다.

그러자 사무실에 있던 부서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공치산의 눈치를 살폈다.

작년 하반기부터 지금껏 회사는 줄곧 얼음장 위를 걷듯 아슬아슬한 분위기였다.

특히 공치산의 심기가 늘 좋지 못했다.

해서, 작은 잘못 하나에도 심하게 꾸중을 들었다.

‘뭔가 수를 내야 돼.’

직원들이 같은 생각을 했다.

이 분위기가 나아지려면 삼영식품이 신푸드를 누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수를 도대체 낼 수가 없었다.

수가 안 나는 건 공치산도 마찬가지였다.

드르륵. 드르륵.

그가 신경질적으로 마우스 휠을 돌리며 인터넷 기사를 검색했다.

그러다 문득 어떤 기사에서 손이 멈췄다.

기사는 한남선의 장남 한민국에 대한 것이었다.

그가 작년에 런칭한 한식 매장이 승승장구하며 벌써 전국 백여 개 체인점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한민국이라.’

톡톡톡.

공치산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들겼다.

그 소리가 다른 직원들의 귀에는 상당히 거슬렸다.

* * *

이른 저녁, 한민국은 공치산과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형에게 볼일이 있던 한정국이 한민국의 집을 찾았다.

“형, 나왔어~ 아, 전화 중이네.”

한정국은 거실 소파에 앉아 전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는 잘 알겠습니다. 대략적인 조건들도 괜찮은 것 같고요. 하나…… 거듭 말씀드리지만 제가 지금 큰 도움을 드릴 수는 없는 상황이라서요. 더 신경 써야 할 문제가 있다는 걸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네. 맞아요. 내년엔 차기 신선숙수의 경합이 있습니다. 지금은 온전히 거기에만 집중하고 싶네요. 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통화를 끝낸 한민국에게 한정국이 궁금한 듯 물었다.

“누구야?”

“삼영식품 마케팅전략부 부장.”

“삼영식품? 거기 부장이 왜?”

“레토르트 식품 개발에 힘 좀 빌려 달라고 하더라.”

“레토르트? 그 사람들도 참 생각 없네. 뭐 그런 걸 만드는 데 차기 신선숙수의 손을 빌리려 그래? 사이즈 없어 보이게.”

“말 너무 막하지 마라. 그 사람들도 오죽했으면 나한테 연락을 했겠냐.”

“하긴. 삼영식품이 요새 전 같지 못하다는 얘기가 많이 들리긴 하더라. 신푸드라던가? 거기에 작년 하반기부터 완전히 밀렸다던데.”

말을 하던 한정국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가만. 신푸드 거기 강지한이랑 손잡고 레토르트 식품 찍어내는 곳이잖아.”

그런 한정국을 한민국이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너 또 쓸데없는 생각 하는 거 아니겠지?”

“어? 무슨 쓸데없는 생각?”

“……아니다. 그래서, 왜 찾아왔어?”

“차 좀 빌려줘.”

“너 차 있잖아.”

“어제 수리 맡겼어.”

“하여튼.”

한민국이 한숨을 쉬었다.

대체 차를 어떻게 관리하면 두 달에 한 번씩 정비소에 들어가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그가 차키를 한정국에게 던져주었다.

“고마워, 형. 내일 아침까지 갖다 놓을게.”

“꼭, 그렇게 해라.”

한정국이 씩 웃고서 집을 나섰다.

* * *

한민국의 차에 올라타자마자 한정국은 삼영식품에 전화를 걸어 마케팅 전략부 공치산 부장을 찾았다.

-네. 전화 바꿨습니다. 공치산입니다.

“반갑습니다. 저 한민국 동생 한정국이라고 합니다.”

-아! 네네. 한남선 대가님의 차남 되시지요?

“그렇죠. 하하.”

-반갑습니다. 어떤 일로 전화를 주셨습니까?

“제가 본의 아니게 우리 형이 과장님과 주고받는 대화를 듣게 됐습니다.”

-하하, 그러셨군요. 보기 좋게 거절당했는데 조금 민망하네요.

“이해하세요. 우리 형이 원래 조금 고지식한 데가 있습니다. 차기 신선숙수 자리에는 자연히 본인이 앉게 될 텐데도 유난을 떨지요.

-그렇다고 해도 진중하게 임하는 자세에 제가 많이 배웠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형에게 건넸던 제안, 제가 대신 받아도 될까요?

-네?

“저는 형이랑 성격이 조금 달라서 탁 까놓고 단도직입적으로 질문드릴게요. 신푸드에서 강지한이 만들고 있는 레토르트 식품들만 눌러 버리면 되는 겁니까?

-아……. 네, 그렇죠.

“저랑 손잡으시죠. 제가 눌러드리겠습니다. 신푸드.”

‘그리고 강지한도’라는 말은 굳이 내놓지 않고 속으로 삼킨 한정국이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겠습니다!

스마트폰 너머로 들려오는 공치산의 음성이 상당히 격앙되어 있었다.

한정국이 씩 웃으며 물었다.

“그럼 언제 만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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