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8
Restaurant 267. 지한 객잔 오픈!
괜히 지한 객잔을 찾아온 황태규는 수모만 잔뜩 당하고 돌아갔다.
그는 이제 지한 객잔 근처에도 얼씬 못할 것이다.
자존심보다는 이득을 따지는 인간이지만 겁이 너무 많았다.
강지한의 단호함과 하정운의 주먹맛을 봤으니 겁 많은 그는 다시 올 수가 없었다.
하정운은 속이 좀 후련했다.
사실 어제 황태규가 그만둔다고 했을 때부터 한 대 쥐어박고 싶었었다.
강지한도 참고 있는데 자신이 차마 나설 수가 없어서 가만있었을 뿐.
그러던 와중 황태규가 제 발로 와서 들쑤셔 놓으니 이때다 싶어 주먹맛을 보여주었다.
평소 주방에서도 같이 연습을 하다 보면 은근히 하정운을 자신보다 아래로 보던 황태규였다.
하정운은 말도 없는 편인 데다 살짝살짝 놀려도 그냥 웃고 넘어가는 순한 성격이었기에 얕봤던 것.
하지만 성질을 낼 줄 몰라서 내지 않았던 게 아니었다.
같은 공간에서 일해야 할 동료이기에 이해하고 넘어갔던 것이다.
사실 하정운에게도 질풍노도의 시기가 짧게나마 있었고 나름 학교 하나를 주름잡기도 했었다.
그걸 모르고서 까불던 황태규는 오늘내일 피똥 좀 싸게 될 판이었다.
“정운아.”
“네, 대표님.”
“잠은 푹 잤어?”
“많이는 못 잤습니다.”
하정운의 눈 밑에 다크서클이 퀭했다.
아무래도 황태규의 빈자리를 메워야 한다는 사명감에 밤새 요리 연습을 하다 온 것 같았다.
“실력은 좀 늘었고?”
그 물음에 하정운이 아리송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그게…… 늘긴 늘었는데 이상하더라고요. 요리를 하던 와중 갑자기 늘었어요. 전체적으로 손기술이 확 늘었고, 간도 전보다 훨씬 정확하게 봐지던데요.”
강지한이 아이템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사실 하정운은 이런 경험을 지한 객잔에 들어와서 두 번 겪었다.
그때마다 그는 스스로 기이하게 여겼다.
마치 이것이 본인이 열심히 해서 이루어낸 실력이 아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이를 완벽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더더욱 열심히 노력을 해왔다.
강지한이 그런 하정운의 등을 토닥토닥 두들겼다.
“열심히 하는 사람한테는 언젠가 길이 열리게 마련이야. 네 노력이 빛을 발해서 벽을 뛰어넘은 게 아니겠니.”
“그럼 다행이지만…….”
“어디, 밤새 노력한 실력 좀 볼까?”
“네, 뭘 만들어 볼까요?”
“자장면.”
“알겠습니다.”
자장면은 강지한이 지한 객잔의 대표 메뉴중 하나로 생각할 만큼 대단한 맛을 자랑한다.
비법은 춘장에 있었다.
지한 객잔에서 사용하는 춘장은 보통 춘장이 아니었다.
일단 춘장 자체를 강지한이 직접 집에서 만들었다.
대두콩을 자신만의 비법으로 발효시켜 완성시킨 춘장은 시중에서 파는 일반 춘장과는 맛의 깊이 자체가 달랐다.
감히 함부로 견주기도 아까울 정도로 끝내주는 최상품의 춘장이었다.
거기에 따로 열흘 간 숙성시킨 발효콩을 섞어 사용한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게임은 끝났다고 봐야했다.
자장면 맛의 반 이상을 좌우하는 것이 바로 이 춘장 맛이기 때문이다.
한데 여기서 다가 아니었다.
강지한은 이 춘장에다가 수분기를 쪽 뺀 두부까지 섞었다.
아무리 수분기를 제거했다 해도 원체 물기가 많은 두부인지라 춘장에 섞이면 그 맛이 싱거워질 수 있었다.
하지만 강지한이 직접 담근 춘장은 일반 시제품보다 맛이 강했다.
해서, 적당한 농도로 맛을 완화시켜 주는 역할을 이 두부가 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잘게 갈려 춘장에 섞인 두부는 자장면 특유의 느끼한 맛을 반감시켜 준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직접 담근 진한 춘장.
열흘간 발효시킨 콩.
수분을 뺀 두부.
이 세 가지가 지한 객잔 춘장의 핵심이었다.
물론 이러한 춘장의 비밀을 하정운은 알지 못했다.
그는 강지한이 집에서 만들어온 춘장을 사용한다.
강지한은 신뢰가 크게 쌓이기 전까지 절대 요리의 핵심 비법을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정운이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면의 반죽과 삶아내는 시간, 춘장으로 만들어내는 자장의 완성도였다.
하정운이 특제 자장을 웍에 넣고 라드(돼지고기 지방을 녹인 기름)를 섞어 볶았다.
춘장이 볶아지며 중국집 특유의 고소한 냄새가 주방을 가득 메웠다.
잘 볶은 춘장을 그릇에 덜어놓은 그가 이번엔 라드에다가 돼지고기와 다진 양배추, 양파, 애호박을 넣고 빠르게 볶았다.
웍 안에서 고소함의 극치를 달리는 향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근데 여기에 한 가지 더 추가되는 재료가 있었다.
바로 한 입 거리로 잘라 튀긴 두부였다.
자장면에는 고소한 풍미를 위해 돼지고기를 넣는다.
그런데 그 양이 많지 않아 씹히는 재미는 크지 않다.
그것을 보완해 주는 것이 바로 이 튀긴 두부의 식감이었다.
각종 채소와 튀긴 두부를 볶던 와중 하정운은 라드에 볶아 놓았던 춘장을 투하했다.
채소와 춘장이 섞어내는 그의 손놀림은 전날보다 훨씬 발전해 있었다.
하지만 아직 황태규의 빈자리를 메우기에는 부족했다.
그것을 강지한도, 하정운 본인도 알고 있었다.
‘더…… 더 늘어야 돼.’
웍 안에서 자장으로 변하는 재료들을 보며 하정운은 이를 앙 다물었다.
그의 양 어깨가 말도 못하게 무거워졌다.
지금 그는 지한 객잔의 주방을 무리 없이 끌어 나가야 하는 중책이 됨으로써 막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였다.
[하정운이 거대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슬로우 스타터의 각성 조건이 만족되었습니다.]
[하정운의 특수 능력, 슬로우 스타터가 각성합니다.]
[각성 완료. 상태창을 확인하세요.]
‘어? 상태창 확인.’
예상 못했던 메시지에 강지한이 얼른 하정운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혀를 내둘렀다.
<하정운의 능력치>
직급: 지한 반점 주방 근무 지원자
등급: A
능력: 요리 LV 22(+5), 청소 LV 6, 회계 LV 1, 설거지 LV 9, 화술 LV 3
특수 능력: 슬로우 스타터(Slow Starter)-각성
정직도: 100/100
신뢰도: 100/100
종합 평가: 제대로 된 스승을 만나 특수 능력 슬로우 스타터의 각성으로 무서운 성장을 이루었다. 조금 늦더라도 꾀부리지 않고 정직하게 한 발 한 발 정진하는 타입이었던 성향 또한 빠르게 성장하는 성향으로 바뀌었다.
‘대박.’
슬로우 스타터의 각성으로 하정운의 등급이 C-에서 A로 바뀌었다.
게다가 요리의 능력이 16에서 22로 껑충 뛰어올랐으며 정직도와 신뢰도 또한 100이 되었다.
더불어 종합 평가도 전과 달라졌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느려도 한 발 한 발 정진한다는 부분이 빠르게 성장한다는 것으로 바뀌어 버린 것.
그야말로 오리가 백조로 변신을 해버렸다.
각성과 함께 요리를 하는 하정운의 손기술이 눈에 띄도록 좋아졌다.
이를 하정운도 느끼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어젯밤에 이어 오늘도 뭔가 벽을 깨고 나온 듯 스스로의 기술이 확 늘어버리자 어안이 벙벙한 하정운이었다.
어젯밤의 일은 아이템의 사용으로 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일어난 실력의 향상은 하정운이 본래 가지고 있던 특수 능력이 개화되면서 일어난 것이다.
즉, 평생 자신의 것으로 가지고 갈 수 있는 능력이라는 말이다.
강지한의 도박이 제대로 먹혀 들어갔다.
사실 하정운은 특수 능력이 아니었다면 면접에서 떨어지는 게 맞았다.
하정운보다 조금 더 능력이 좋은 면접자가 있었기 때문.
그런데 강지한은 하정운과 함께하길 고집했다.
지한 푸드의 유진아와 인사팀장 박민규가 보기에 그런 강지한의 선택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무슨 생각이 있겠거니 하고 넘어갔었다.
근데 그것이 결국 잭팟을 터뜨렸다.
칙칙칙칙!
하정운은 누가 봐도 베테랑의 솜씨로 춘장과 자장 재료들을 볶았다.
채소에서 나온 채수가 춘장을 묽게 만들어주었다.
거기에 물을 살짝만 넣고 보글보글 끓이다가 전분물을 부어 농도를 맞추는 것으로 자장이 완성되었다.
하정운이 완성된 자장의 맛을 보았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눈을 부릅떴다.
어제까지 자신이 만든 자장보다 그 완성도가 훨씬 높았다.
‘이게 내가 만든 자장이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하지만 놀라움은 한편으로 접어두고 바로 면 만들기에 돌입했다.
가장 이상적인 면의 반죽 비율은 강지한에게 전수받아 알고 있었다.
해서 지금까지 해온 그대로 면을 반죽하려 하는데 강지한이 그를 제지했다.
“잠깐만 정운아.”
“네.”
“면 반죽 이렇게 해봐.”
말을 하며 강지한은 쪽지 한 장을 건넸다.
거기에는 면을 반죽하는 데 필요한 재료들과 각 재료들의 비율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만들어왔던 것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이게 뭡니까, 대표님?”
“그게 진짜 지한 객잔에서 사용할 면 박죽 비율이야.”
“……그렇군요.”
하정운은 강지한의 말뜻을 알아챘다.
마냥 순진했던 강지한은 그동안 자신의 식당을 하나하나 늘려 나가며 참 많은 사람과 사건 사고들을 겪어왔다.
그렇다 보니 순진했던 그의 성정도 조금 더 영악해지는 쪽으로 바뀌었다.
어제까지 그는 황태규와 하정운에게 지한 객잔에서 사용할 진짜 면 반죽의 비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최후의 한 수는 숨겨놓았던 것.
그러다 하정운에게 확신이 생기자 오픈을 이틀 앞둔 오늘에서야 진짜 비법을 알려준 것이다.
하정운은 새로운 레시피대로 면반죽을 만들어 기계로 뽑아냈다.
강지한은 굳이 수타면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반죽만 제대로 되면 기계로 뽑아도 면이 충분히 탄력 있고 맛있기 때문이다.
물론 수타로 쳤을 때의 식감을 이기기란 힘들지만, 손님이 몰려들 때의 회전률을 생각하면 기계로 면을 뽑는 것이 현명하다는 판단이었다.
하정운이 뽑아낸 면을 물에 잘 삶아 건져내 맑은 물로 한 번 헹군 뒤 그릇에 담고 그 위에 뜨거운 자장을 얹었다.
거기에다 통조림 완두콩과 깨를 조금 뿌리는 것으로 완성.
강지한은 자신의 앞에 놓인 자장면의 레벨을 확인했다.
[하정운이 만든 최고의 자장면]
요리 등급: LV7
-자장면에 들어간 강지한의 춘장이 완벽한 맛의 밸런스를 잡아냈으며 깊은 풍미와 감칠맛 또한 살렸다. 면의 반죽이 이상적이며 삶는 시간 또한 제대로 잡아내어 탄력 있는 식감을 즐길 수 있다.
‘이거지.’
하정운의 손에서 탄생한 자장면은 강지한이 만든 것과 같은 7레벨을 자랑했다.
물론 강지한의 특제 춘장이나 방금 알려준 면반죽 레시피가 없었다면 레벨 3에서 잘해서 4정도밖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특제 춘장과 면반죽 레시피를 가진 사람이 모두 레벨7의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건 아니다.
강지한의 레시피는 손기술이 뒷받침되어야 그 진가가 발휘되는 법이다.
좋은 예로 황태규가 레시피만 믿고 나갔다가 손기술이 따라주지 않아 좌절을 겪지 않았던가.
짜장면 한 그릇을 강지한의 앞에 내놓은 하정운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시선으로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강지한이 말했다.
“먹어봐.”
“네? 아…… 네!”
하정운이 짜장면 그릇을 들고 한 젓가락 크게 집어서 입에 넣었다.
후루룩! 꿀꺽!
“하아.”
직접 만든 짜장면을 맛본 그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세상에, 말로 어떻게 표현을 할 수 없을 만큼 맛이 있었다.
그가 바로 한 젓가락을 더 당겼다.
후루룩!
달콤 짭짤하면서도 고소한 풍미를 풍기는 짜장이 입안을 가득 메워 즐겁게 해주었다.
동시에 치아에서 느껴지는 탱글탱글한 면발은 더할 나위 없는 만족감을 안겨주었다.
꿀꺽!
식도를 넘어가면서까지 맛있다는 기분이 무언지 알 만했다.
이 짜장면은 완벽 그 자체였다.
하정운은 눈시울이 붉어져 강지한에게 고개 숙였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정말 감사합니다.”
강지한이 있었기에 자신이 여기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는 걸 잘 아는 하정운이었다.
그런 하정운의 어깨를 강지한이 토닥여 주었다.
“앞으로 기대할게. 잘해보자, 정운아.”
“네!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강지한이 미소 지었다.
* * *
2019년 7월 22일, 월요일.
드디어 지한 객잔이 오픈하는 날이었다.
영업시간은 오전 11시 반부터 오후 9시까지.
라스트 오더는 8시 20분.
아직 오픈하려면 30분이라는 시간이 남았음에도 지한 객잔을 찾은 손님들로 문 밖엔 웨이팅이 걸렸다.
지한 객잔의 홀과 주방은 오픈 준비로 분주했다.
오픈 10분 전.
강지한이 식당 내부를 마지막으로 총점검한 뒤 홀매니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홀매니저가 방긋 웃으며 지한 객잔의 문을 열어 길게 늘어선 손님들을 맞이했다.
그와 동시에 허공에 강지한에게만 보이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Last Stage. 지한 객잔]
[목표: 지한 푸드의 식당 중 한 곳이라도 미슐랭 스타를 받을 것.]
[성공 보상: 레벨 업 시스템 최종 레벨 업.]
[오픈했습니다.]
[상급자의 난이도가 적용됩니다.]
[만족도는 10일 동안만 습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