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7
Restaurant 266. 김밥전과 차가운 콩나물국
지한 객잔 공식 오픈까지 남은 시간은 사흘.
이미 오픈 시점을 한 차례 미루었기 때문에 한 번 더 미루는 건 안 될 일이었다.
한데 지한 객잔의 메인 주방장으로 생각하고 있던 황태규가 나가 버리면서 계획에 구멍이 났다.
황태규가 일을 그만둔 날.
집으로 돌아와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민하던 강지한은 가장 심플하고 간단한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하정운에게 아이템을 투자해 주는 것.
하정운은 황태규와 달리 됨됨이가 진국인 사람이었다.
베풀어 준 것을 나 몰라라 하며 책임감 없이 행동할 타입은 아니었다.
‘이제 너무 정보의 눈에만 의지해서도 안 되겠어.’
이번 황태규 사건으로 강지한은 크게 느끼는 바가 있었다.
여태 강지한은 정보의 눈을 거의 맹신하다시피 했다.
정보의 눈이 띄워주는 상태창엔 그 사람의 능력과 정직도, 자신에 대한 신뢰도가 분석되어 있고 성향과 성격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적혀 있었기 때문.
때문에 애초에 강지한의 식당에 악심을 품고 접근하는 경우에도 이를 알 수 있었다.
그런데 황태규는 별생각 없이 직원이 됐다가 손기술이 늘자 마음이 바뀌어버린 경우였다.
생각해보면 황태규의 종합 평가란에 이런 말이 있었다.
‘일에 대한 욕심이 많다.’
그 욕심이 이런 욕심일 줄은 몰랐다.
아무튼 강지한은 정보의 눈에만 너무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사람 보는 안목을 더 키우고자 마음먹었다.
사람이 한 번 넘어지지 않고 걸을 수는 없는 법이다.
이번의 실수를 교훈 삼았으니 강지한은 더욱 발전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꼬르륵.
강지한이 배를 어루만졌다.
지한 객잔에서 하정운이 만든 음식을 몇 입 먹어본 것 말고는 오늘 하루 종일 한 끼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그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러자 은박지에 싸서 고이 모셔둔 김밥 세 줄이 보였다.
어젯밤에 갑자기 김밥이 먹고 싶어 열 줄이나 말았다가 일곱 줄만 먹고 남은 것이다.
사실 그것도 다 먹을 수 있었다.
그만큼 강지한의 위는 상당히 컸다.
하지만 잘 밤이었기에 간단하게 먹어야 해서 다 먹지 않고 놓아둔 것이다.
강지한이 김밥을 꺼냈다.
냉장고 안에서 하루가 묵은 김밥은 전체적으로 차갑고 딱딱했다. 이런 김밥은 다시 열을 가해 먹으면 김이 흐물흐물해지고 맛도 상당히 떨어진다.
그렇다고 그냥 먹자니 차갑고 딱딱해서 영 별로였다.
그러나 이런 김밥을 맛있는 김밥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는 간편한 방법이 있었다.
강지한이 계란 두 알을 까서 소금을 한 꼬집만 넣은 뒤 휘휘 저어 계란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김밥 세 줄을 빠르게 썰었다.
이것으로 모든 준비가 끝났다.
프라팬에 기름을 두르고 가열한 강지한은 김밥에 계란물을 입혀서 전처럼 익혔다.
치이이익.
김밥을 흠뻑 적신 계란물이 노랗고 하얗게 익으며 고소한 냄새가 풍겼다.
지글지글.
거대한 프라이팬 안에서 계란물을 입은 김밥들이 맛있게 익어갔다.
한 면이 노릇노릇 구워지면 뒤집어서 반대쪽 면을 익힌다.
그렇게 양쪽 면을 충분히 익히는 것으로 끝.
냉장고 속에 있던 김밥을 이용해 아주 간편하고 맛있는 김밥전이 완성되었다.
김밥전을 만들 때 중요한 건 계란물이 김밥 속속 배어들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겉에만 계란물을 묻히는 것보다 이편이 풍미가 한층 살아난다.
김밥이 풀어지면 어쩌냐 걱정하는 경우가 있다.
해보면 알겠지만 계란물에 넣고 너무 젓가락으로 휘휘 젓지만 않으면 쉽게 풀어지지 않는다.
혹, 조금 풀어지더라도 프라이팬에 얼른 틀을 잡아 올려주면 계란물이 익으면서 모양을 다시 잡아준다.
“됐다.”
접시 위에 한가득 쌓인 김밥전을 상 위에 놓은 강지한이 냉장고에서 어제 만들어 둔 콩나물국을 꺼냈다.
이것 역시 오밤중에 김밥과 같이 먹으려고 끓여놨던 것이다.
콩나물국은 다시 데우지 않았다.
뜨끈한 콩나물국도 맛있지만 시원하고 차가운 콩나물국 또한 매력적이다.
오늘은 김밥이 뜨거우니 차가운 콩나물국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먹어보자.”
강지한이 상 앞에 가서 앉자마자 한참 전부터 강지한의 뒤를 쫄래쫄래 쫓아다니던 설탕이 2세 여섯 마리가 우르르 달려들어 무릎에 올라타려 들었다.
“이 녀석들아, 이거 너희 먹을 거 아니야. 아빠 밥 먹게 내려가 있어. 어서.”
강지한이 인절미들을 밀어내며 말했지만 녀석들은 속수무책이었다.
하나같이 분홍빛 혀를 내민 채로 촉촉한 검은 코를 킁킁대면서 강지한과 상을 포위했다.
알알! 알! 알알!
다른 녀석들에게 밀려 강지한 근처에도 다가가지 못하던 한 녀석은 억울한 듯 짖기 시작했다.
통제가 되지를 않았다.
강지한이 난감해하고 있을 때였다.
왕왕!
안방에서 한참 꿀잠을 자다가 거실의 소란을 감지한 설탕이가 등장했다.
녀석이 새끼들을 향해 크게 두 번 짖었다.
그러자 강지한의 말이라고는 콧등으로도 안 듣던 새끼들이 바람처럼 물러나 일렬로 착! 섰다.
근데 막내 담백이의 다리가 풀렸다.
녀석이 비틀거리며 옆으로 무너지자 몸을 붙이고 서 있던 강아지들이 도미노처럼 우르르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지한이 피식 웃었다.
“꼬시다, 이놈들.”
말로는 그러면서도 강아지들을 보는 눈에는 애정이 가득했다.
“아빠 밥 먹을 시간 줘서, 고마워~ 설탕아.”
왕! 헥헥.
강지한을 보는 설탕이의 꼬리가 팽팽 돌았다.
비로소 강지한이 김밥전을 입에 넣었다.
방금 전까지 프라이팬에서 구워 따끈한 김밥은 계란 옷을 베어 물자마자 뜨거운 열기로 안에 머금고 있던 풍미가 팍 하고 터져 나왔다.
특히 열이 가해진 단무지는 신맛이 살짝 빠지고 단맛이 배가되어 더욱 맛이 있으면서도 다른 재료들과 조금 더 조화롭게 어울렸다.
‘갓 만들어 먹는 김밥도 좋지만, 이것도 매력 있다니까.’
김밥전이 얼마나 맛있는지 누가 꿀이라도 발라놓은 것 같았다.
김밥 다섯 개를 순식간에 먹어치운 강지한이 조금 메이는 목을 시원한 콩나물국으로 달랬다.
“꿀꺽! 꿀꺽! 크으.”
담백하고 개운한 콩나물국이 식도를 깨끗하게 씻어주었다.
“역시 김밥엔 콩나물국만 한 게 없다.”
강지한은 만족스럽게 식사를 이어나갔다.
* * *
식사를 끝낸 강지한이 시계를 봤다.
8시.
문득 하정운이 뭐하고 있나 궁금해졌다.
오늘, 황태규가 독립선언을 하고 나간 뒤 하정운은 홀로 요리 연습을 하며 한마디 말이 없었다.
황태규가 나갔으니 자신이 어떻게든 해나가야 한다는 책임감이 어깨를 짓눌렀기 때문.
하정운의 성정을 잘 아는 강지한은 그런 그의 내심을 잘 알고 있었다.
‘걱정 마라, 정운아. 넌 잘할 수 있을 테니까.’
강지한은 바로 직원 요리 능력치 1레벨 업권 두 개를 하정운에게 투자했다.
그것으로 하정운의 요리 레벨은 16이 되었다.
레벨 업권이 총 다섯 장 들어간 것이다.
일단은 이 정도만 해두고 내일 하정운의 실력을 더 본 다음, 부족하다 싶으면 몇 장 더 투자해 줄 셈이었다.
그렇게 하면 황태규의 빈자리를 완전히 메꿀 수 있을 터.
“나도 놀고 있을 수는 없지.”
강지한은 메뉴에 걸 중식 음식들에 수정 보완할 부분이 있는지 꼼꼼하게 체크해 나갔다.
식당이 오픈하기 전까지 만반의 준비를 갖추려 노력을 멈추지 않는 강지한이었다.
* * *
다음 날.
지한 객잔에 출근한 강지한과 하정운은 어처구니없는 광경을 마주하게 됐다.
“다시 받아주세요.”
어제 독립하겠다며 나갔던 황태규가 고작 하루 만에 다시 돌아왔다.
그는 강지한의 앞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다시 자신을 받아 달라 부탁했다.
황태규는 부모님 앞에서 만든 음식을 모조리 망쳐 버린 이후 밤새 다른 요리들을 이것저것 만들어봤다.
하지만 지한 객잔에서 연습을 할 때만큼의 실력이 도저히 나오지 않았다.
그 원인이 무언지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런 실력으로는 다시 중식집을 열어봤자 전처럼 파리만 날릴 게 뻔했다.
어차피 황태규는 자존심보다 이익이 되는 쪽으로 움직이는 타입이다.
하루 만에 강지한에게 가서 머리를 숙이는 것쯤, 잘 벌어먹고 살 수 있다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강지한처럼 순둥순둥한 사람이라면 한 번의 잘못 정도는 용서해 줄 것도 같았다.
한데, 그의 생각은 틀렸다.
강지한의 성격이 좋은 건 맞지만 아무에게나 퍼주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럴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만 한정된 이야기였다.
한번 눈 밖에 난 사람은 냉정할 만큼 잘라 버리는 그였다.
“태규야, 너 후회 안 한다며?”
강지한의 입에서 차가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제가 잘못 생각했어요. 죄송합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난 어제 충분히 기회를 줬다. 더는 얼굴 보는 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대표님!”
“태규야, 오래 말 섞기 싫다. 내 입에서 험한 말 나오기 전에 그만 가라.”
“사람이 한 번 정도 실수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이렇게 냉정하게 나오실 겁니까?”
그 안하무인격인 황태규의 행동에 강지한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황태규, 그만하고 나가.”
“대표님, 오픈까지 이제 이틀 남지 않았습니까? 저 없으면 주방 어떻게 끌어가시려고요? 정운이가 제 몫까지 해낼 리는 없을 테고.”
유들거리는 황태규를 강지한이 매섭게 쏘아봤다.
“네가 들어오면 뭐가 달라질 것 같니? 내 생각은 아닌데.”
“…….”
어쩐지 강지한이 자신의 속내를 훤히 들여다 본 것 같았다.
찔끔했던 황태규는 머리를 굴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렇게 나오신다 이거죠? 근데 그런 생각 안 해보셨어요? 이틀 후에 어찌저찌 오픈 한다 쳐요. 그때 제가 여기 손님으로 오면 우리 입장이 서로 바뀔 텐데 그때 제 얼굴 어떻게 보려고 그러세요?”
그 말에는 강지한도 더 참을 수가 없었다.
그가 거친 말을 뱉으려 했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하정운이 튀어나가더니 주먹이 허공을 가르고는 황태규의 복부에 꽂혔다.
퍽!
“억!”
무방비 상태에서 얻어맞은 황태규가 힘없이 뒤로 나가 떨어졌다.
“너, 너 씨발……. 지금 쳤어?”
황태규가 씨근덕거렸다.
하정운은 그 말에 대꾸도 없이 강지한에게 물었다.
“사장님, 지금 CCTV 안 돌죠?”
“응.”
“저 한 달 치 월급 좀 미리 땡겨주세요.”
“왜?”
“저 새끼 반 죽여 놓고 깽값 좀 물게요.”
하정운이 팔을 걷어붙였다.
이를 본 황태규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자, 잠깐만 정운아…… 우리 말로 하자, 말로.”
본래 깡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황태규였다. 그러니 술집에서 제 친구들과 예경천이 시비가 붙었을 때도 예소린을 보고 놀라 도망쳤던 것일 테지.
아무튼 하정운은 자신이 일할 식당을 상대로 협박질이나 하는 황태규를 그냥 보내줄 수가 없었다.
그가 쓰러진 황태규에게 다가가며 재차 강지한에게 확인했다.
“월급 땡겨 주실 거라고 믿겠습니다.”
하지만 강지한에게서 들려온 대답은 기대와 달랐다.
“그건 안 돼.”
순간 하정운의 발이 우뚝 멈췄고 황태규는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그러나 다음에 이어지는 강지한의 말이 상황을 반전시켰다.
“그냥 내가 내줄게.”
“알겠습니다.”
하정운이 호랑이 같은 얼굴을 하고서 멈췄던 걸음을 다시 움직였다.
“으, 으이익!”
놀란 황태규가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켜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쳐 나갔다.
그걸 본 하정운이 당장 부엌으로 들어가 소금을 가지고 나오더니 바깥에다 뿌렸다.
그런 하정운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강지한의 마음이 든든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