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266화 (266/330)

# 266

Restaurant 265. 사라진 기술

몇 달 전.

지한 만두의 사장 박춘식은 몰리는 사람에 비해 매장이 작아 고민이 많았다.

일단 매장을 옮기는 건 싫었다.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매장을 계속 끌어나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증축을 하자니 그 기간 동안 만두를 못 먹을 손님들이 신경 쓰였다.

마침 그때 만두 가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매장 하나가 나왔다.

20년 정도 감자탕집을 운영하다가 손님이 줄어들어 건물을 내놓은 것.

박춘식은 그 매장에 지한 만두 분점을 내면 어떻겠느냐 강지한에게 건의하고 싶었다.

하지만 염치가 없어 말도 못 꺼내고 있었다.

그런 그의 속내를 주방에서 만두를 빚던 전덕진이 바로 눈치챘다.

연륜이라는 게 참 무시 못 할 것이다.

전덕진은 박춘식의 고민을 강지한에게 전했다.

안 그래도 만두 가게를 증축하던 분점을 내던 해야겠다고 생각한 강지한이었다.

해서 감자탕집을 바로 인수해 만두 가게 분점으로 만들기로 했다.

그게 벌써 다섯 달 전이다.

리모델링은 넉 달 전에 끝났다.

그럼에도 아직 장사를 시작 못하고 있었다.

중식 때와는 달리 만두 가게를 하겠다고 달려드는 사람들 중에는 강지한이 만족할 만한 실력을 가진 이가 없었다.

해서 차일피일 오픈을 미루고 있던 와중, 상황을 지켜보던 한지민이 의견을 냈다.

서정혜를 지한 만두 분점의 주방장 겸 점장으로 보내면 어떻겠느냐 물어온 것.

이제 지한 식당은 한지민 혼자서도 잘 이끌어 나갈 수 있었다.

물론 서정혜가 있으면 더 도움이 되지만, 한지민은 늘 그녀의 능력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서정혜는 누군가의 밑에서 부주방장 딱지를 달고 일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하나의 주방을 온전히 책임질 깜냥이 있었다.

그래서 한지민은 서정혜의 뜻을 먼저 물어본 뒤, 그녀가 괜찮을 것 같다고 하자 의견을 타진한 것이다.

강지한도 그게 나쁘지 않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해서 서정혜를 지한 만두 분점의 점장 및 주방장으로 임명했다.

함께 일할 직원들도 구해주었다.

여태까지 지한 만두 분점의 기둥이 될 사람을 구하지 못해서 안절부절이었다.

한데 기둥이 세워지니 뿌리가 박히고 가지가 돋아났다. 거기서는 금세 꽃이 열리고 열매가 맺혔다.

한지민의 아이디어로 순조롭게 지한 만두 분점이 오픈을 하게 됐다.

그것이 두 달 전의 일.

현재 서정혜는 지한 만두 분점의 점장으로 맹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한지민의 예상이 맞았다.

그녀는 혼자서 능히 주방 하나를 통솔할 만한 여인이었다.

게다가 만두는 지한 식당에서도 많이 빚어본 터였다. 해서 만두 빚는 실력 또한 일품인지라 일에 적응하는 시간이 짧았다.

소의 고급화 및 피동의 추가만 신경 쓰면 되는 일이었으니.

해서 지한 만두는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오픈을 앞두고 있는 중식당이었다.

강지한은 서류 심사에서 합격한 면접자들 사이에서 하정운과 황태규를 뽑았다.

하정운은 당장의 능력은 높지 않았으나 슬로우 스타터라는 특수 능력이 범상찮았다.

아울러 정직도가 높았으며 사람이 진중해 보였다.

황태규는 정직도와 신뢰도가 낮았지만 능력이 좋은 데다가 진심을 다해 끌어가면 분명히 바뀔 것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그런 사례도 제법 있었다.

정직도와 신뢰도가 낮았는데 강지한의 밑에서 일을 하며 90이 넘어버리는 사람들이 열은 족히 되었다.

그런데 황태규는 변하지 않았다.

강지한에게서 기술과 레시피만 익히려 들 뿐이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마음을 열고 태도가 바뀌는 것인데, 그런 발전이 없었다.

원체 그렇게 생겨먹은 인간이었다.

결국 황태규는 지한 객잔의 오픈을 앞두고서 일을 그만두었고 강지한은 잡지 않았다.

대신, 그에게 투자했던 요리 능력치 1레벨 업권 다섯 장을 회수했다.

황태규는 지한 식당에서 단기간에 늘어버린 실력이 전부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중 80퍼센트가 아이템 빨이었다는 걸 꿈에도 짐작 못했다.

* * *

집으로 돌아온 황태규는 이것저것 장을 봐서 부모님의 중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안에는 부모님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상기된 얼굴로 식당에 들어서는 아들을 보자마자 엄마가 물었다.

“태규야, 너 일은 안 나가고 지금 뭐하는 거야?”

“이제 나갈 필요 없어요.”

“나갈 필요 없다니? 너 거기서 오픈 전까지 일 배우는 와중에도 대표님이 꼬박꼬박 월급 줬잖아.”

“수습 수준밖에 안 되는 돈인데요.”

“그래도 그렇지. 그 대단한 분한테서 배우는 것만 해도 네가 돈을 줘야 할 판인데. 그리고 이제 곧 오픈이라며. 오픈하면 제대로 된 월급 받을 거였잖아?”

“그렇긴 하죠.”

“세상에 요즘 그렇게 해주는 곳이 어디 있다고 제 발로 나와, 나오기를?”

“그것보다 더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길이 보여서 그랬어요.”

“됐고. 지금이라도 다시 들어가서 잘못했다고 빌어. 거길 왜 나와, 대체.”

“저 그만두는 거 후회 안 한다고 하고 나왔는데 어떻게 다시 들어가요, 쪽팔리게.”

“뭐? 쪽팔려? 너 그런 정신머리로는 평생 장사 못해. 무슨 가오가 어쩌고저쩌고. 여기 중식집 문 닫은 것도 그 덜 되먹은 마음가짐 때문이잖아.”

“에이, 그건 아니죠. 다른 중식집들보다 맛이 좀 덜하니까 손님들 발걸음이 끊긴 거지.”

“우리는 다 가르쳐줬어 너한테. 그런데 우리가 할 때는 그래도 이어지던 중식집이 네가 이어 받으니까 왜 그 모양이야? 직원들 교육 상태도 엉망이고. 네 음식도 그래. 대충 만들면 맛이 비슷해도 뭔가 빠진 맛이 나.”

“아휴, 알았어요. 그래서 제가 이제 다시 일으켜 세울 거라니까요.”

아들과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자 답답해진 엄마가 아빠를 바라보았다.

“당신도 뭐라고 좀 해봐요. 왜 보고만 있어요? 벙어리예요?”

그러자 아빠는 머뭇거리며 겨우 입을 열었다.

“거…… 태규야, 어지간하면 엄마 말 들어라.”

“아버지! 언제까지 엄마한테 잡혀 사시려 그럽니까. 이제는 아들 믿고 제 등에 딱 기대세요.”

말을 하며 황태규가 주방으로 향했다.

그러자 아빠는 다시 입을 닫았다.

엄마는 그런 아빠를 도끼눈으로 쏘아봤다.

“당신이 그렇게 오냐오냐 하니까 애가 저 모양으로 막 큰 거 아녜요.”

황태규의 아빠 되는 사람은 본디 마음이 여렸다.

해서 자식에게 손찌검 한 번 해보기는커녕 엄하게 혼을 낸 적도 거의 없었다.

그저 오냐오냐했다.

그게 엄마는 못마땅했고 지금 아들이 저 모양으로 자란 게 전부 남편 탓 같았다.

황태규가 자신 있게 재료를 다듬는 걸 보는 모습도 고까웠다.

그녀의 입에서 기어코 한 소리가 다시 터져 나왔다.

“아주 그냥. 오냐 새끼 호로 새끼 된다고. 어렸을 적부터 뭐 좀 힘든 일에 직면하면 혼자 해결해 나갈 힘을 길러줘야지. 조금 못하겠다고 하면 관둬라. 그만해라. 쉬어라. 이래 버리니 애가 제대로 크겠냐고.”

황태규는 엄마의 잔소리에 귀를 닫은 채 재료 다듬는 걸 마무리 지었다.

아빠는 그런 황태규의 모습을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으로 지켜봤다.

황태규가 손질한 재료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뭔가…… 느낌이 좀 안 사는데. 손이 덜 풀렸나?’

뭔지 모르겠지만 손이 둔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황태규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요리를 만들기로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실력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리는 없었으니까.

“지금부터 제가 기막힌 볶음밥이랑 짜장면, 짬뽕, 탕수육을 만들어 드릴게요.”

네 가지 모두 중식당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기본 메뉴다.

그것들만 기가 막히게 만들어도 충분히 손님을 많이 끌어모을 수가 있었다.

황태규가 저렇게까지 자신을 하니 엄마는 한 번 속는 셈 치고 믿어나 보자라는 심정으로 입을 닫았다.

그러나 자식을 보는 시선이 곱지는 않았다.

강지한 대표한테 은혜를 입은 줄도 모르고 경거망동했으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음식이 맛있다한들 반드시 혼을 낼 요량이었다.

‘시작하자.’

황태규가 손가락 관절들을 꺾은 뒤 요리를 시작했다.

제일 먼저 만들 건 볶음밥이었다.

가장 빨리 만들어지는 음식인 만큼, 먼저 내놓아 부모님이 시식을 하는 동안 짜장면, 짬뽕, 탕수육을 동시에 만들 생각이었다.

서너 가지의 음식을 동시에 만들어 내는 건 본래부터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은 더 완성도 높은 수준으로 만들 수가 있었다.

황태규는 강지한에게 배운 대로 볶음밥을 만들어 나갔다.

그 집 특유의 천연조미료와 계란물을 간하는 비법 같은 것은 알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기술이 늘었으니 레시피만 따라하면서 천연 조미료 대신 화학조미료를 사용해도 무리가 없을 터.

한제 요리가 진행되어 나갈수록 황태규의 얼굴에서 자신감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당황스러움이 자리했다.

‘왜 이러지?’

손이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어제만 해도 날아갈 듯 했던 웍질이 영 볼품없었다.

날렵하게 볶음밥을 휙휙 볶아내며 밥알 하나하나에 계란물을 완벽하게 코팅했던 그였다.

한데 지금은 웍질이 느려지니 계란이 밥알에 반은 코팅되고 반은 그냥 익어버렸다.

강지한이 강조한 것은 밥과 계란물의 혼연일체였다.

한데 이 볶음밥은 밥과 계란부터 따로 놀기 시작했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황태규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한 번 초조해지기 시작하니 가뜩이나 마음에 안 들던 손기술이 더 엉망진창으로 망가졌다.

평정심이 깨져 버린 것.

원하는 대로 밥을 볶지 못한 상태에서 황태규는 채썬 양파와 파, 햄을 넣었다.

갈수록 웍질은 개판이었다.

이를 지켜보는 엄마의 눈에서는 레이저가 쏘아질 판이었다.

아빠는 그런 아들을 차마 볼 수 없어서 눈을 감고 한숨만 쉬었다.

‘씨발. 씨발. 씨발. 왜 이러냐고 진짜 멍청한 새끼야.’

급기야 황태규가 본인을 욕하며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머리와 등은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었다.

얼굴은 피가 나올 것처럼 붉게 물들었다.

황태규가 조미료를 넣었다.

근데 긴장이 거듭되다 보니 지금 자신이 넣는 양이 제대로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혼란 속에서 볶음밥이 완성되었다.

커다란 쇠국자 모양 그대로 그릇에 담아낸 볶음밥이 황태규의 손에 들려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부모님께 선뜻 내어드릴 수가 없었다.

“저기…… 다시 한 번 만들어 드릴게요. 긴장을 해서 그런가……. 제 실력이 발휘되지 않아서.”

황태규는 두 사람의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볶음밥을 새로 만들어 나갔다.

긴장을 풀고 정신을 집중했다.

하지만.

전보다 조금 나아졌을 뿐, 여전히 전에 비해 확 줄어든 손 스킬은 늘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 했어?”

엄마의 물음에 황태규는 고개를 푹 떨구고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혹시나 싶어 짜장과 짬뽕, 탕수육을 만들어보았다.

강지한이 알려준 레시피를 그대로 인용했다. 하나, 머릿속에 있는 레시피를 손이 따라가지 못했다.

그 하는 양을 끈기 있게 지켜본 부모님이 드디어 시식을 하려 했다.

“먹지 마세요.”

황태규가 그런 두 사람을 말렸다.

엄마가 콧방귀를 팍 내 쉬었다.

“안 먹어봐도 맛이 어떤지 딱 알겠다. 그나마 양심은 있어서 다행이네. 이걸 손님이 어떻게 먹니?”

절망.

그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황태규가 만들어낸 음식들은 그가 부모님의 중식당을 물려받아 장사를 하던 시절보다 훨씬 형편없었다.

당연했다.

강지한의 레시피는 고급 기술이 필요했다.

기술이 따라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레시피였다.

한데 아이템을 빼앗겨 확 낮아진 손기술로 레시피를 따라가려 하니 제대로 된 음식이 만들어질 리 없었다.

“너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일자리 박차고 나온 거냐? 난 진짜 이해가 안 된다, 이해가. 내 배에서 나온 자식이 왜 이 모양인지 속이 터지고 썩어 들어갈 지경이야, 엄마가! 이눔새끼야, 너 앞으로 여기서 지내. 네가 호언장담한 대로 식당 다시 일으켜 세우기 전까지는 집에 기어 들어올 생각 하지도 마! 어휴. 어휴. 내가 저런 걸 낳고도 미역국을 먹었지.”

황태규의 엄마가 가슴을 퍽퍽 치며 식당을 나섰다.

그런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빠도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이번만큼은 그도 아들의 편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서 눈물을 뚝뚝 떨구는 아들을 가만히 바라보던 그가 한마디를 건넸다.

“이게 다…… 널 잘못 키운 내 업보인 모양이다.”

아빠의 그 한마디가 비수처럼 황태규의 가슴에 꽂혔다.

아빠마저 식당을 나가고 난 뒤.

황태규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주방에 털썩 주저앉았다.

“에이 씨발……. 대체 왜 갑자기 이 지랄인 거냐고!”

그가 자신의 손이 원망스러운 듯 마구 꼬집어대며 절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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