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5
Restaurant 264. 회수
예소린은 눈치가 빠른 여인이다.
그녀는 예경천이 어느 순간부터 강지한을 좋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요즘에는 그것을 넘어 서서 사윗감으로 보고 있다는 것 또한 꿰고 있었다.
해서 기회를 보다가 오늘이 좋겠다 싶어 말을 꺼낸 것이다.
딸의 충격 발언에 놀란 예경천은 한동안 멍해 있다가 겨우 물었다.
“강…… 대표? 내가 아는 그 강 대표 말하는 거 맞아?”
“응.”
“언제부터? 언제부터 그렇게 된 사이였는데?”
“제법 됐어. 2년 넘었나, 다 되어가나.”
예소린은 백 일이나 이백 일 같은 기념일을 잘 챙기지 않는 성격이었다.
강지한 또한 그런 걸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두 사람은 서로 함께한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잘 알지 못했다.
상대방을 향한 마음의 크기만을 중시했다.
“아니 이것 참…….”
어쩔 줄 몰라 하는 예경천의 반응이 예소린은 재미있었다.
아마 아빠 성격에 다른 놈 이름이 튀어나왔다가는 당장 술집을 뒤집어 놨을지도 모르는 일.
한데 애인이 강지한이라는 사실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딸을 빼앗겼다는 충격과 강지한이라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동시에 몰아치는 중이었다.
보태서 여태 그런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던 딸과 강지한이 괘씸했다.
“당장 강 대표 호출해.”
“지금?”
“응.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다. 오늘 여기서 나랑 술 한잔하고 상황 정리하자.”
예경천이 무언가 단단히 각오한 얼굴로 그리 말했다.
예소린은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이 들어 강지한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스럽게도 강지한은 아직 깨어 있었다.
그녀가 강지한에게 잠시 나올 수 있냐고 물었고, 강지한은 바로 가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 * *
강지한을 기다리는 동안 부녀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강 대표가 너한테 잡혀 살겠다?”
예소린은 여느 남자에게 지지 않을 만큼 힘이 셌다. 그걸 알고서 예경천이 물어봤다.
“지한 씨는 나 이런 거 몰라.”
“2년을 사귀었는데 여태 몰라? 그럴 수가 있나.”
“내가 잘 감췄지.”
대답하는 예소린의 머릿속에 문득 예전 일이 떠올랐다.
아직 강지한과 그녀가 연인이 되기 전이었다.
한창 애견 카페에 놀러오던 설탕이가 일주일이 넘도록 찾아오지 않자 소금이는 상사병에 걸렸었다.
그로 인해 소금이는 애견 카페 마감 시간이 끝나고 새벽이 다 되어가도록 카페에 배를 깔고 누워 농성을 벌였다.
설탕이가 카페에 찾아올 때까지 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그런 소금이를 힘으로 끌고 갈 수도 있는 예소린이었다. 하지만 강아지를 그렇게 대하는 건 그녀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카페 마감이 끝난 뒤, 한 시간 반이 넘도록 대화로 풀어보려 했다.
하지만 소금이는 조금도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도저히 안 되겠어서 어쩔 수 없이 무력행사를 하려 했다.
목줄을 툭툭 잡아당기면서 마지막 경고를 날렸다.
“너 강제연행 한다?”
한데 바로 그때, 누군가 유리창을 똑똑 두들겼다.
동창회 모임에서 술을 한잔하고 돌아온 강지한이었다.
그에 막 힘을 주려던 예소린의 팔에서 힘이 빠졌다.
강지한을 안에 들인 그녀는 힘쓰려던 것만 쏙 빼놓고 상황을 설명한 뒤 이렇게 말을 했다.
“제가 힘이 장사도 아니고, 얘가 이러고 있으니까 들고 나를 수가 있어야죠. 설탕이 때문에 벌어진 상황이니까 설탕이 아버님이 도움 좀 주실 거죠?”
결국 강지한이 소금이를 들어 예소린의 차 안에 실어주었었다.
회상을 끝낸 예소린이 쿡쿡 하고 웃었다.
타이밍 좋게도 바로 그때 강지한이 술집 안으로 들어왔다.
예소린이 어디 있는지 찾던 그의 시선이 자신을 뚱하게 바라보고 있는 예경천과 마주쳤다.
“어? 예 사장님, 왜 여기에…….”
예소린에게 아무 말도 듣지 못한 강지한은 뒤늦게 예경천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그녀를 발견하고서 굳어버렸다.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 * *
예소린과 강지한에게 그간의 얘기를 전부 듣고 난 예경천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소주 한 잔을 쭉 들이켜더니 빈 잔을 강지한에게 내밀었다.
강지한이 그것을 받아들자 잔을 채워주고서 마시라 했다.
시키는 대로 잔을 비우니 다시 잔을 건네받아 이번엔 채워 달라 했다.
강지한은 두 손으로 공손하게 예경천의 잔을 채웠다.
그것을 연거푸 들이켠 예경천은 강지한을 가만히 쏘아보다가 물었다.
“결혼할 생각입니까?”
결혼.
그것에 대해서 딱 한 번 정도 생각해 봤었다.
우습게도 설탕이와 소금이,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강아지들을 보며 자신도 예소린과 결혼하면 쟤들처럼 행복할 수 있을까 싶었다.
이후로는 딱히 결혼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물음을 던지는 순간 답이 바로 나왔기 때문이다.
“네, 그럴 생각입니다.”
강지한이 망설임 없이 말했다.
그는 예소린과 결혼하면 무조건 행복해질 것이라 믿었다.
의외의 대답에 예경천은 물론이고 예소린도 놀랐다.
그녀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강지한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지한 씨, 진심이야?”
“응.”
고개를 끄덕이는 강지한에게 예경천이 다른 것을 물었다.
“결혼을 하겠다 하면, 내 딸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자신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어떻게 자신합니까, 강 대표.”
“평생 그녀만 사랑할 거니까요.”
자신만만한 그 모습에 예경천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프흐, 흐흐흐흐. 으하하하하!”
술집이 떠나가라 웃던 예경천이 박수까지 치며 입을 열었다.
“그래! 사내라면 저래야지. 자기 여자만 사랑하겠다는 자신이 있어야지. 행복하게 만들어 줄 거라는 배짱이 있어야지. 나는, 두 사람, 인정합니다.”
거기까지.
탕.
“아빠!”
예경천은 테이블에 머리를 처박고 잠이 들었다.
* * *
비로소 강지한과 예소린은 제대로 인정받는 공식 커플이 되었다.
이제 예경천에게 숨길 것도 없었다.
강지한을 인정한 예경천은 오히려 예소린에게 언제 결혼할 것이냐며 부추기기 바빴다.
마음을 열기는 힘들어도 한 번 열면 모든 걸 다 내어주는 사내가 예경천이었다.
그는 이미 강지한을 사위로 생각하고 대했다.
강지한도 예경천을 더 이상 부동산 사장님이 아닌 장인어른으로서 대접해 주었다.
* * *
에이사 버터필드는 영화 촬영에 한창이었다.
올해 스물한 살의 무명 영화배우인 그는 운 좋게도 할리우드의 영화 주연으로 발탁되었다.
사실 에이사는 나이에 비해 연기력도 출중하고 외모도 상당했다.
문제는 그런 배우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
할리우드에서 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준비가 갖추어진 상황에서 어쩌다 한 번 찾아오는 행운을 잡아야 했다.
에이사는 바로 그 행운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가 주연으로 서게 된 영화는 할리우드 흥행 감독의 다섯 번째 작품이었다.
워낙 이름값이 있는 감독의 영화인 데다 시나리오도 좋아서 제작사와 투자처들은 분명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단 무명 배우를 주연으로 기용해 스타파워가 없다는 불안함이 존재했다.
하지만 에이사는 스타성이 충분히 있는 배우였다.
카메라에 얼굴 담기는 날이 많아질수록 점점 더 그는 빛나고 있었다.
영화 촬영 중반부에 이르러서는 이미 에이사의 떡잎을 알아본 매체들이 여기저기서 인터뷰를 요청해 왔다.
촬영 도중 장비가 문제를 일으켜 잠시 쉬는 시간에도 에이사는 어느 잡지사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중이었다.
기자는 중요한 질문부터 전부 던진 뒤 비교적 가벼운 질문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영화 촬영에 들어가기 전 한국 여행을 하고 있었다던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 하나만 소개해 줄 수 있나요?”
그에 에이사는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음식이요. 한국의 모든 음식을 말하는 게 아니라 강지한이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의 음식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지금도 생각나요. 사실 촬영장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생각이 납니다. 그 맛은……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 정도로 최고였어요. 다시 한국에 가게 된다면 그 식당이 있는 동네에서 한 달 동안 묵을 거예요. 그리고 그 식당의 음식을 하루 세 끼 매일 먹을 겁니다.”
* * *
“확실히 엄청 늘었어.”
황태규는 1년 전 문을 닫아버린 부모님의 중식당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어보았다.
완성된 음식들의 수준은 그 동네에서는 어디가도 밀리지 않을 만큼 괜찮았다.
몇 달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황태규는 빠르게 성장했다.
이 정도면 굳이 남의 밑에서 월급 받을 필요가 없었다.
자기 장사를 해도 충분히 먹고사는 게 가능했다.
아니, 제법 큰돈을 만질 수도 있을 터였다.
게다가 그의 머릿속엔 지한 객잔의 음식 레시피도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물론 특제 육수와, 양념, 비법 소스, 천연 조미료 같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들 없이 일반 중식당과 비슷한 재료들을 사용해 만들어도 충분히 맛있는 음식이 나왔다.
무엇보다 황태규에게 부족했던 손기술이 말도 못하게 늘어버렸다.
그게 가장 중요했다.
‘그냥 혼자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지한 객잔의 오픈까지는 이제 나흘밖에 남지 않았다. 만약 자신이 빠져 버리면 지한 객잔에게 폐를 끼치게 되는 것이다.
고민은 짧았다.
마음을 정한 황태규는 또다른 요리들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 * *
“뭐?”
강지한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만두겠다고요.”
평소처럼 아침 일찍 지한 객잔으로 나온 황태규가 갑작스레 그만두겠다고 해버리는 게 아닌가.
“갑자기 왜?”
강지한이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부모님 가업 이어가야 할 것 같아서요. 지금 우리 부모님 중식당이 문을 닫고 있는데 다른 사람 중식당 주방에서 일을 한다는 게 좀…… 그렇더라고요.”
그것이 핑계임을 강지한은 바로 알아챘다.
황태규는 본인의 실력이 늘어나니 강지한의 밑에 있기보다는 자기 장사를 하고 싶어진 것이다.
그러나 강지한은 이를 모른 척하고 마지막 기회를 주었다.
“태규야, 정말 그러고 싶어?”
“……네.”
황태규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후우. 이제 오픈까지 사흘밖에 남지 않았는데, 네가 갑자기 이러니 참 당황스럽다.”
황태규에게 거는 기대가 컸던 강지한이었다.
그래서 직원 요리 능력 레벨 업권을 근래 두 개나 더 투자해 주었었다.
즉, 황태규에게 들어간 레벨 업권만 총 다섯 개였다.
“그건 죄송하게 생각해요. 근데 제 입장도 헤아려 주세요.”
황태규의 음성에는 진심이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옆에서 이를 듣고 있던 하정운이 황태규를 무섭게 노려봤다. 그 시선이 불편했던 황태규가 짜증 섞인 음성을 뱉었다.
“넌 또 왜? 뭐?”
“네가 사람 새끼냐.”
“뭐 인마?”
“금수만도 못한 놈. 대표님한테서 단물만 쏙 빼먹고 내빼겠다는 거냐.”
과묵하기로는 제일가는 하정운의 입에서 독설이 다발로 쏟아졌다.
“말 다했어?”
“다 못했는데 더해줘?”
그대로 두었다가는 두 사람이 제대로 붙을 판이었다.
결국 강지한이 그들을 중재했다.
“그만해, 둘 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하정운은 바로 고개 숙여 사과를 했지만 황태규는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이 없었다.
“태규야.”
“네.”
“너 여기 나가서 후회 안 할 자신 있냐.”
“있습니다.”
“그래, 알았다. 그럼 더 잡지 않을게. 가봐.”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황태규가 그제야 고개를 숙이고서 지한 객잔을 나갔다.
그와 동시에 시스템 메시지가 강지한의 눈앞에 나타났다.
[지한 객잔 주방 직원 황태규가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황태규에게 투자했던 아이템을 회수하시겠습니까?]
강지한이 속으로 대답했다.
‘응.’
[황태규에게 투자했던 아이템 ‘직원 요리 능력치 1레벨 업권’ 다섯 개가 회수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