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 하는 식당-264화 (264/330)

# 264

Restaurant 263. 애인 있어요

직원 요리 능력치 1레벨 업권의 투자로 인해 황태규의 요리레벨은 17, 하정운은 14가 되었다.

그 정도면 하정운은 몰라도 황태규는 충분히 레벨 6 수준의 음식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 터.

한데 강지한은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이 있었다.

바로 황태규의 정직도와 신뢰도였다.

그의 정직도는 73, 신뢰도는 60에 불과했다.

보통 강지한과 한 달 이상 생활을 하면 정직도와 신뢰도가 못해도 80 이상으로 올라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황태규의 수치는 거의 올라가지를 않고 있었다.

특히 신뢰도가 문제였다.

아무래도 타인에게 마음을 잘 열지 않는 타입인 것 같았다.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심한데.’

딱히 강지한이 황태규에게 못해준 것도 없었다.

막대한 건 더더욱 아니었다.

오히려 잘해줬다면 잘해줬다.

그러고 보면 황태규는 말이 많고 쾌활한데 비해 자기 얘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게다가 속이 깊은 스타일도 아니었다.

묵직하고 말수가 적은 대신 행동 하나하나에 진정성이 느껴지는 하정운과는 정반대되는 타입이었다.

‘어떻게 하면 신뢰가 두터워지려나.’

강지한이 직원들과의 관계에서 크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 신뢰도였다.

대표에 대한 신뢰가 없는 직원은 직장에도 마음을 두지 못하게 마련이다.

그것은 곧 자신의 일에 대한 나태와 태만으로 돌아온다.

당장 강지한의 식당이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건 크게 상관없었다.

다만, 그렇게 보내 버린 직원의 시간은 스스로에게 조금도 보람되지 못할 테니 강지한은 그것이 신경 쓰였다.

‘방법을 강구해 보자.’

강지한은 황태규가 마음을 열어주길 바랐다.

* * *

한밤중.

잘 준비를 하던 예소린이 예경천의 연락을 받고서 집 근처 술집으로 향했다.

예경천은 오늘 저녁부터 동호회 사람들과 술 약속이 잡혀 있었다.

평소 술을 자주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한 번 마시면 끝까지 가는 것이 예경천의 습관이었다.

게다가 나름 술도 셌다.

때문에 3차 정도는 가주어야 성이 차는 예경천이었다.

그런데 동호회 사람들은 대부분 가정이 있었다.

그래서 오래 마셔봐야 2차 이상 자리를 하기가 힘들었다.

오늘도 예경천이 한창 달아올랐을 때 자리가 파했다.

밤 11시.

아직 예경천은 술을 더 마실 수 있었지만 사람이 없었다.

결국 적적한 마음에 집 근처 술집에 들어가 혼술을 시작했다.

번데기 탕 하나를 시켜놓고 소주를 홀짝이다 보니 30분 만에 한 병을 비웠다.

그쯤 되니 슬슬 술이 예경천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아, 역시 우리 강 대표 손맛만큼은 못하네.”

예경천이 번데기 탕을 떠먹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의 머릿속에 몇 달 전, 강지한이 찾아와서 끓였던 닭고기 국물이 떠올랐다.

소금이 몸보신용으로 만들어서 닭 이외엔 어떤 재료도 들어가지 않았었는데 그 국물이 그토록 담백, 깔끔하면서도 구수했다.

“괜히 여기서 궁상인가? 신푸드 음식 하나 사가지고 집에 들어가서 한잔할걸.”

신푸드 또한 예경천이 애용하는 레토르트 식품이었다.

그는 일을 나갈 땐 지한 분식이 같은 건물에 있으니 거기에서 끼니를 해결했고, 집에 있을 땐 신푸드의 식품으로 배를 채웠다.

이제 그의 일상에 강지한의 손맛은 떼려야 뗄 수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집에 가서 술을 마실까 싶었던 예경천은 남아 있는 번데기 탕이 아까워 소주 한 병을 더 주문했다.

그리고 적적한 마음에 예소린에게 전화를 걸었다.

막 자려고 누웠던 예소린은 혀가 좀 풀린 아빠의 음성에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트레이닝 복을 걸치더니 모자를 눌러쓴 간편한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아빠가 혼자 술을 마시고 있다는 걸 모른 척 그냥 둘 딸이 아니었다.

같이 마주 앉아 술 대작이라도 해줄 요량이었다.

금이야 옥이야 하는 딸래미가 나와준다고 하니 예경천의 기분이 금방 좋아졌다.

“하하하. 내가 딸 하나는 아주 잘 키웠지, 암.”

그는 마치 주변 사람들이 들으라는 듯 조금 큰 목소리로 말하고서 술을 홀짝였다.

* * *

예경천의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청년 세 명은 조금 전부터 그를 술자리 안주거리로 삼고 있었다.

우락부락 산도적 같은 아저씨가 혼자 술집에 와서 번데기 탕 하나만 놓고 술을 마시는 모습이 적잖이 없어 보인 모양.

“얼마나 주변에 사람이 없으면 저러고 혼자 마실까.”

청년들 중 몸이 좋고 표독스러운 인상을 가진 김진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두꺼비 같은 몸집의 청년 이서근이 피식 웃었다.

“존나 꼰대같이 인생을 살면 저 모양 나는 거야.”

두 사람이 말하는 양을 보며 맞은편에 앉아 있는 청년이 낄낄대며 웃었다.

한데 그는 다름 아닌 황태규였다.

“진짜 없어 보인다. 우리는 저렇게 되지 말자.”

김진대가 말을 하고서는 잔을 들어 올렸다.

이서근과 황태규가 같이 잔을 들어 건배하고 술을 넘겼다.

근데 그때였다.

“하하하. 내가 딸 하나는 아주 잘 키웠지, 암.”

딸과 전화를 마친 예경천이 조금 격양된 음성으로 말했다.

그 소리가 황태규 일행의 귀에도 들려왔다.

그에 이서근이 저도 모르게 풋! 하고 웃었다.

김진대도 한마디를 했다.

“크큭. 딸이 저 아저씨 닮아서 잘 컸으면 알 만하겠네.”

근데 술이 된 김진대였는지라 목소리가 너무 컸다.

그 말이 예경천의 귀에 들어갔다.

“저기요, 선생님. 지금 뭐라 그러셨습니까?”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자기 딸을 비아냥거리는데 속 편할 부모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예경천이 따지듯 김진대에게 물었다.

“아, 그냥 혼잣말한 거예요. 술 드세요.”

“남의 귀에 다 들리게 하는 게 혼잣말입니까?”

“아저씨가 먼저 우리한테 다 들리게 혼잣말했잖아요.”

“제 목소리가 컸던 건 사과드립니다. 그런데 내가 선생님들 욕을 했습니까? 왜 상관도 없는 제 딸 흉을 보고 그러십니까?”

예경천도 사업을 하는 사람인지라 술이 얼큰하게 취한 상태에서도 화를 억누르며 최대한 신사적으로 나가려 애썼다.

하지만 김진대는 안하무인이었다.

“아이씨. 아저씨, 그냥 술 드세요. 좋은 기분 잡치게 하지 마시고. 졸라 떽떽거리네, 씨발.”

김진대가 욕을 뱉었다.

“야, 왜 욕을 해?”

놀란 이서근이 김진대를 나무랐다.

물론 이서근도 조금 전까지 예경천을 흉봤다. 그러나 그건 자기들끼리의 얘기였다.

상대방의 귀에 그런 이야기가 들어가는 순간 상황은 늘 좋게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김진대는 술만 마시면 그런 자제력을 잃었다.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예경천의 참을성이 끝나 버리고 만 것이다.

“뭐? 떽떽? 씨발? 그게 지금 어른한테 할 소리야!”

예경천이 소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김진대도 지지 않고 일어서서 예경천의 테이블로 다가갔다.

김진대의 뒤를 이서근이 따라붙으며 상황을 정리하려고 애썼다.

“말로 해요, 아저씨. 말로. 진대야, 너도 그만해.”

한편, 황태규는 자리에 앉아 흥미로운 눈빛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구경했다.

그런 그의 행태는 마치 모르는 사람들의 싸움 구경을 하는 것만 같았다.

김진대가 예경천에게 바짝 다가가 머리부터 들이밀었다.

“왜 일어섰어요? 한 대 치려고? 쳐봐요, 돈 많으면. 깽값이나 벌게.”

“아, 미친 새끼야, 좀!”

이서근이 김진대를 뒤로 잡아당겼다.

하지만 예경천이 더 빨랐다.

그가 김진대의 멱을 틀어쥐었다.

순간 눈이 돌아간 김진대가 예경천의 멱을 똑같이 틀어쥐었다. 아니, 틀어쥐려 했다.

턱.

한데 그보다 먼저 누군가의 손이 그의 팔목을 움켜쥐었다.

김진대는 이서근인줄 알았는데 취한 와중에도 자신의 팔목을 쥔 손이 남자의 것이라 하기엔 희고 곱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의 행동을 제지한 사람은 술집에 들어선 예소린이었다.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뭐야?”

“당신이 아래위도 없이 멱살 틀어쥐려 했던 분 딸인데요.”

“이거 안 놔? 내가 먼저 멱살 잡힌 거 안 보여?”

“보여요. 우리 아빠가 멱살 잡게 만들 정도면 어지간히 막 하셨나 보네요.”

“이런 썅!”

김진대가 예소린을 밀치려 했다.

그 순간, 예소린이 몸을 뒤로 빼며 잡고 있던 김진대의 팔을 살짝 당겼다가 놓았다.

그에 김진대는 중심을 잃고 앞으로 튀어나가 빈 테이블에 몸을 처박고 고꾸라졌다.

“꺼어!”

숨넘어 가는 신음을 흘린 김진대가 얼른 일어서지 못하고서 바들바들 떨었다.

자빠지면서 어딘가에 코를 잘못 부딪쳐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그런 그의 모습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예소린을 밀어내려다가 힘을 주체 못하고서 제풀에 자빠진 것으로만 보였다.

“이런……. 야, 괜찮아? 어휴. 죄송합니다. 저 새끼가 술만 마시면 개가 돼서…….”

이서근이 예경천과 예소린에게 사과를 했다.

“후우. 젊은 양반들, 술 그만 자시고 들어들 가세요.”

예경천이 사건을 더 키우고 싶지 않아 그리 말했다.

결국 이서근은 김진대를 부축해서 일으키는데 황태규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예소린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부리나케 술집에서 도망을 쳤다.

황태규와 하정운이 지한 객잔에서 강지한에게 요리를 배울 때 종종 들렀던 예소린이었다. 해서 황태규는 그녀와 안면을 트고 지내는 사이였다.

때문에 이런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엮이면 좋을 게 없었다.

“하여튼 의리라고는 개똥만큼도 없는 새끼.”

이서근이 툴툴대며 술값을 계산하고 홀을 떠났다.

* * *

“아빠는 왜 젊은 사람들이랑 시비가 붙고 그래. 요즘 사람들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

“내 딸 흉보는데 어찌 그래?”

“정작 당사자가 아무렇지 않으니까 앞으로는 그러지 마요.”

“알았다. 흐흐……. 그래도 내가 딸한테 조기교육은 기막히게 시켰어. 그치?”

예경천은 예소린을 끔찍하게 아끼는 만큼 자기 한 몸 지킬 수 있는 무술 하나는 배우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했던 것이 합기도였다.

그런데 예소린이 그쪽으로 어마어마한 재주를 보이는 게 아닌가? 시작은 예경천의 권유였지만 나중에는 본인이 좋아서 다니게 됐다.

그러다 합기도로는 부족했는지 태권도까지 익혔고, 거기에서도 발군의 기량을 자랑했다.

“너무 강하게 키우는 바람에 잠깐 질풍노도의 길로 빠지기도 했지만. 흐흐흐.”

예경천이 게슴츠레한 시선으로 딸을 보고 웃었다.

순간 자신의 흑역사가 떠오른 예소린이 질색하며 몸을 떨었다.

“그 얘기는 절대 하지 마, 아빠. 끔찍하니까.”

“안 한다, 안 해.”

예경천의 입에서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러다 갑자기 뜬금없는 걸 물었다.

“요즘에는 엄마 보고 싶지 않냐?”

“아빠랑 나 버리고 다른 남자 좋다면서 떠난 사람이 왜 보고 싶겠어.”

기습적인 질문이었지만 예소린은 태연하게 넘어갔다.

어릴 때의 상처가 이제는 거의 다 아물어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런 딸의 모습이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예경천이었다.

“앞으로 네가 어떤 놈이랑 만나서 살게 될지는 모르겠다만 아빠의 경우를 타산지석 삼아서 연예계 일 하는 놈이랑은 만나지 마.”

“그럴 일 없어.”

“어떻게 단언해?”

너무 단칼에 딱 잘라 버리는 딸의 반응에 예경천이 물었다.

다음 순간 돌아온 예소린의 대답에 예경천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나 애인 있으니까.”

“뭐?! 애, 애인? 애인이 있다고?”

“응.”

“누구? 누구야! 어떤 놈이야?”

예소린이 방긋 웃으며 그 사람의 이름을 꺼냈다.

“강지한.”

0